오디오병 중증 환자의 고백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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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병 중증 환자의 고백

김현유 BY 김현유 2022.11.12
 
모든 해프닝은 지난봄에 스피커가 고장 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스피커는 1973년에 제작된 것으로, 그렇게 오래된 물건은 정비를 해줄 필요가 있었다. 다음 날 솜씨 좋다는 종로의 어느 수리실에 가서 수리를 맡겼다. 그런데 그 후로 뭔가 이상해졌다. 본래 그 스피커는 바위로 내려치는 것 같은 단단한 중저음과 찰랑거리면서도 부드러운 고음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분명히 그런 소리였다.
하지만 수리한 뒤에는 어쩐지 소리에 힘이 없고, 돌덩어리는커녕 방석으로 내리치는 정도의 벙벙한 중저음으로 변해 있었다. 수리한 후에 길이 덜 들어서 그런가? 볼륨을 높여 한 달 정도 쾅쾅 틀어봤지만 그래도 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리실에서 뭔가를 잘못한 것 같았다. 다시 점검을 받아야 한다. 20kg짜리 스피커 두 짝을 승용차에 싣고 수리실에 가는 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할 일은 해야지. 이 상태로 음악을 틀 순 없으니까. 그러나 재점검을 한 수리기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뿐이었다.
“스피커는 정상입니다. 앰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점검해보세요.”
앰프가 문제라니,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쓰고 있는 앰프는 평생을 함께할 것으로 여겨 정말 어렵게 구한, 그야말로 ‘빈티지 명품’이다. 애초에 스피커를 수리하고 나서 소리가 이렇게 된 것이지 앰프가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지 않나.
그의 말은 마치 책임을 전가하려는 정치인의 말처럼 들렸다. 몹시 언짢았지만, 어쨌든 소리는 나오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증명할 팩트가 없었다. 본래의 저음은 돌덩이 같았다고 말해봐야 비웃음만 살 것 같았다.
어떻게든 소리를 되살려놔야 한다. 스피커에 대한 고급 정보가 필요해 인터넷 오디오 동호회에 접속했다. D동호회는 오디오 애호가 10만 명의 회원수와 42만 개의 게시물을 자랑하는 곳이다. 문답의 댓글까지 합치면 오디오에 대한 정보량이 어마어마하다. 이 정도면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조회해보니 나와 비슷한 경우의 게시물은 2개 나왔다. 42만 개의 게시물 중 2개지만, 어쨌든 있긴 있었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느냐고 쪽지를 보냈는데, 한 사람은 스피커를 바꿨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탈퇴했는지 답이 없었다.
답답해서 질문을 올렸더니 선의로 가득한 동호인들이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조언을 해준다. 가장 귀에 솔깃한 말은 오버홀(overhaul), 다시 말해 기계를 모두 분해해 재조립하며 점검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추천하는 서울 외곽의 어느 스피커 장인에게 가서 오버홀을 부탁했다.
두 주일 뒤, 오버홀을 마친 수리기사는 이 스피커는 특히 저음이 소리가 좋다고 칭찬했다. 그야 당연히 그래야지. 그 스피커 소리는 본래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버홀을 받은 첫날은 좋은 것 같았다. 오디오 마니아들이 하는 말로 ‘첫날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오디오를 새로 연결하면 첫날은 무조건 소리가 좋게 들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둘째 날이 되면 플라시보 효과는 사라지고 차츰 객관을 되찾는다. 그때부터는 새로 바뀐 소리의 장점이 뭐고 문제점이 뭔지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소리는 맑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폭탄 터지는 듯한 타격감은 되찾지 못했다. 볼륨이 작아서 그런가, 소리도 마음도 답답해서 폭탄이 아니라 스피커가 터지도록 볼륨을 올려서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틀어본다. 가지고 있는 다른 오디오들을 이리저리 연결하고 비교해보며 대여섯 시간을 테스트한다. 그러고 나면 귀가 마치 자극적인 찌개를 수십 번 맛본 사람의 혀처럼 되어서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이제는 하는 수 없이 내일 다시 테스트해보기로 하고 몹시 찜찜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든다. 마음이 편치 않으니 잠자리도 뒤숭숭하다.
물론 나 혼자만의 판단이 100% 옳을 수는 없다.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청하고 같이 들어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다들 관심을 갖고 재미있게 듣는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 서서히 표정이 바뀐다. 언제부턴가 오디오 이야기를 듣자마자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내 말이 언제 끝나나 하는 느낌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에 따라 나도 점점 말이 줄어들고 차츰 오디오를 수리하거나 바꾸겠다는 것을 지인들에게 숨기게 된다.
왜 그 단단한 저음이 사라진 걸까. 한 달쯤 후에 오버홀을 한 수리실에 다시 문의해보았으나 거기서도 스피커는 정상이니 앰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테스트해보라고 한다. 몹시 속이 상하지만 두 군데서 같은 말을 하니 이제는 나도 앰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 단골 앰프 수리실은 종로 세운상가에 있다. 무거운 앰프를 들고 낑낑대며 들어가니 수리실 사장님은 늘 하던 농담을 내게 던진다. “경상이요? 중상이요?”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증상을 이야기하니 그 역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스피커 때문에 소리가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앰프 수리 경력 40년의 수리기사는 특유의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앰프를 노려본다. “두고 가세요. 내가 한번 볼게.”
일주일 뒤 IC회로에 문제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앰프가 범인은 아니었다. IC회로의 문제로 고음의 왜곡이 약간 생길 뿐이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 빌어먹을 돌덩이 저음과는 상관이 없었다. “정 그렇다면 여길 가봐.” 그가 소개한 곳은 경기도 파주의 고즈넉한 계곡에 위치한 작업실이었다. 그곳에 진짜 스피커 고수가 있다는 것이다.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그 작업실을 찾아갔다. 각종 계측기와 음원으로 정밀 진단을 마친 스피커 장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렸다.
“스피커는 정상입니다. 마음의 병이에요.”
몹시 허탈해져서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이것이 팩트인가. 결국 이것이 내가 기억하던 소리였던가.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소리는 도대체 뭐였던 말인가.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수십 년 만에 다시 가본 느낌이 이런 것일까. 이어지는 스피커 장인의 말에 나는 얼른 그곳을 나왔다.
“오디오를 바꿀 때가 된 거예요. 이제 그 소리로는 만족이 안 되는 거지. 나한테 이것보다 한 단계 위의 스피커가 있는데….”
그는 스피커에 대해서는 고수였지만 장사 수완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9월 초순 파주의 외곽도로엔 푸르고 푸른 소나무들이 녹음을 내뿜고, 전망 좋은 길모퉁이의 카페들은 옛 애인을 그리워하기에 적당한 고즈넉한 테라스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5개월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서서히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나의 오디오 중독 증세를 고쳐준 것은 파주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파주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안도의 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이제는 마음의 병이 나았다. 나도 내 오디오의 한계를 알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의 조급함은 사라지고 여유가 생겼다.
그러므로 지금의 앰프를 팔고 그다음 버전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토록 내가 원하던 소리에 근접할 것이라는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했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현금을 장전하고 중고장터에서 몇 달을 매복하다 보면 구입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드디어 꾀꼬리가 하늘을 날며 웅숭깊은 저음이 부드럽게 폭발하는 천국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정승환은 20여 년간 DJ로 일하고 있으며 음악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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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현유
    WRITER 정승환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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