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오래된 거장들'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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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래된 거장들'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유

거장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언젠가부터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게 된 작가들.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지만 작업의 내용보다는 이름으로만 회자되게 된 작가들. 각 분야의 전문가 네 명이 그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추천사를 썼다. 어째서 이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족적을 남긴 존재인지에 대해서.

오성윤 BY 오성윤 2022.11.27
 
 

제프 쿤스 

1955~, 미국 / ‘세 개의 공 50/50 탱크’ ‘토끼’ ‘마이클 잭슨과 버블스’ ‘강아지’ etc.

1955~, 미국 / ‘세 개의 공 50/50 탱크’ ‘토끼’ ‘마이클 잭슨과 버블스’ ‘강아지’ etc.

 
삶의 양식 자체를 예술적, 미학적 성취의 징표로 삼는다는 것은 인생 전체를 작업의 최종적 완결을 위한 빌드업 재료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통칭 ‘개념미술’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많은 작가조차도 그 정도 수준의 예술적 일관성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쿤스가 보여주는 개인적 삶과 작품 세계의 일치도는 그런 점에서 놀랄 만한 것이다.
 
2010년에 출간된 미셸 우엘벡의 소설 〈지도와 영토〉의 첫머리는 꽤 알려진 화가인 주인공이 제프 쿤스와 데이미언 허스트를 한 그림에 그려놓고 고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미술시장을 양분한 데이미언 허스트와 제프 쿤스’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리면서 주인공은 이 두 작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는 데이미언 허스트가 “죽음을 주제로 한 음울한 작업을 계속하는 반골 기질의 예술가”로서 “아스널의 팬처럼 다혈질인 데다 어딘가 꽉 막힌 듯한 전형적인 영국인”이어서 특징을 잡아내기가 수월한 반면, 제프 쿤스는 “이중적인 무언가, 전문 영업사원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교활함과 고행자의 희열 사이에 존재하는 극복 불가능한 모순 때문에 묘사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는 그것을 “모르몬교 포르노 작가를 그리는 것만큼이나 버거운 일”이며, 나아가 “세상을 상대로 쉐보레 오픈카를 팔아먹기로 작정한 판매원 같은 인상을 뛰어넘는 그 무엇, 쿤스라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표정은 (그를 찍은) 어느 사진에서도 찾을 수 없어 절망적”이라고 읊조린다. 결국 그는 술김에 그림을 찢어버린다.
1990년대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을 뿐 아니라 미술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가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쿤스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질시와 배척, 논란과 비평적 공격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특히 2019년 작품 ‘튤립’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그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2015년에 연달아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해 제프 쿤스가 제안한 것이었는데, 많은 프랑스 문화계 인사들은 ‘기회주의적이고 시니컬’할 뿐 아니라 테러의 희생자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인다며 비판했다. 심지어 작품 설치를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총 350만 유로의 제작비를 민간의 기부로 충당해 완성한 이 작품이 설치된 뒤 작가는 작품의 이미지 사용권 및 저작권의 80%를 희생자들의 유족에게 할당한다고 밝혔다.(나머지 20%는 작품의 유지 보수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우엘벡의 묘사처럼 전형적인 미국의 대기업 영업사원과 모르몬교 선교사를 합쳐놓은 듯한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 태도와 더불어, 그가 ‘생산’해내는 작품들 역시 지나치게 ‘상품’처럼 보이는 외양 때문에 일종의 위화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제프 쿤스는 많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신뢰’할 만한 것임을 강조해왔다. 마치 제조업체 사장이 자기 회사의 제품에 대해 말하듯이. 그에게 ‘신용’, 즉 작품을 믿고 살 수 있으며 그것이 돈값을 한다는 논리는 전형적인 미국 자본주의의 청교도적 미덕의 원칙에 부합하는 미학적 기준, 내적 기준인 셈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중소도시에서 인테리어 및 장식물 업자로 일하는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온갖 장식물을 작품으로 극대화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자기 삶의 배경이 된 미국 중산층의 대중문화가 유럽에서 온 고급문화 못지않게 훌륭한 것일 수 있음을 항상 강조한다.
제프 쿤스는 1990년대에 포르노 배우였던 일로나 스탈레르, 일명 치치올리나와 ‘Made in Heaven’ 연작을 위해 협업하다 결국 그녀와 결혼까지 한다. 둘 사이에 아들 루드비히 막시밀리언이 태어난 뒤 이들은 3년 만에 이혼하게 되는데, 양육권 소송이 벌어지자 치치올리나는 도망치듯 아이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떠나버린다. 이후 제프 쿤스가 만들어낸 작품 대부분이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재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풍선 장난감을 금속으로 확대 제작한 ‘벌룬 독’ 같은 조각 연작은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그의 일상적 생활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들이다. 그는 두 번째 부인인 저스틴 휠러 사이에서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이러한 사생활에서 얻은 영감은 마찬가지로 ‘발레리나’ 연작 등의 작품에서 계속 나타난다.
미술평론가인 할 포스터는 그의 대표적 저서 〈실재의 귀환〉에서 앤디 워홀이 당대의 미국 사회와 자본주의를 어떻게 메타크리틱 차원에서 스스로 체화하며 다루었는지에 대해 외상적 리얼리즘(traumatic realism)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나는 기계이기를 원한다”고 역설한 워홀의 태도는 예술가가 세계로부터 받은 충격을 체화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역시 할 포스터의 언급처럼 ‘외상’을 드러내는 앤디 워홀의 메타-재현은 어떤 면에서 제프 쿤스의 뻔뻔스러운 숱한 표절과 과도한 직접적 재현에 사람들이 느끼는 역겨움과 역설적으로 상응한다. 많은 비평가가 그를 ‘키치’ 예술가로 규정하고, 공장에 가까운 작업실을 운영하는 그의 제작 방식을 평가절하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그의 이러한 태도가 전형적으로 동시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런 점에서 쿤스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거부감은 다소 부당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마르셀 뒤샹 이래로 가장 강력한 예술적 예시는 물건에서 태도, 나아가 작가의 삶의 양식 전체가 작품의 내용을 구성하는 경우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삶의 양식 자체를 예술적, 미학적 성취의 징표로 삼는다는 것은 인생 전체를 작업의 최종적 완결을 위한 빌드업 재료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마치 영화 〈프레스티지〉 속 마술사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살해하며 마술을 펼치는 것처럼. 통칭 ‘개념미술’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많은 작가조차도 그 정도 수준의 예술적 일관성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쿤스가 보여주는 개인적 삶과 작품 세계의 일치도는 그런 점에서 놀랄 만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로서 위치시키기 이전에 자신의 비즈니스에 충실한, 고객이 신뢰할 만한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강조해왔다. 그렇게 해서 제작된 작품들의 예외성과 완성도는 실제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수준이다. 아마도 기성 예술계가 참을 수 없어 하는 점은 바로 이러한 독보적 완성도와 그것이 보여주는 놀라운 일관성이 아닐까 한다. 큰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콤플렉스에 휩싸인 미국 서민 중산층 출신의 남자로서 전형적인 계층성을 드러내 보이곤 한다. 동시에 그가 그러한 계급적 배경을 숭고한 다른 것으로 변환시켜 나가는, 모순될뿐더러 급진적인 방식은 신디 셔먼이나 매튜 바니 등의 작품들처럼 동시대 미국 미술의 윤곽을 가장 극명하고도 첨예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제프 쿤스처럼 앤디 워홀 역시 당대에 ‘싸구려 키치’ 취급을 받았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혐오하는 조수에게 총격을 당해 생명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워홀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제프 쿤스도 결국 그렇게 평가되리라 본다. 
- 유진상(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제임스 캐머런 

1954~, 캐나다 / 〈터미네이터〉 〈어비스〉 〈에이리언2〉 〈타이타닉〉 〈아바타〉 etc.

1954~, 캐나다 / 〈터미네이터〉 〈어비스〉 〈에이리언2〉 〈타이타닉〉 〈아바타〉 etc.

 
제임스 캐머런은 처음부터 SF를 자양분으로 구축한 영화라는 가상 세계의 왕이었고, 그의 관심사는 자신의 왕국으로 세상 사람들을 초대할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선택한 건 새로운 질감의 비주얼을 통한 감각의 확장이었다.
 
“나는 세상의 왕이다!” 제임스 캐머런이 어떤 사람인지 이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인용구가 있을까. 말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핵심은 장소와 상황에 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타이타닉〉의 잭(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 외쳤던 이 대사를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쳤다. 듣기에 따라선 자의식 과잉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고 다소 오글거리기도 하는 수상 소감이지만, 〈타이타닉〉이 그해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휩쓸며 흥행과 평단의 찬사를 독차지한 사실을 상기하면 꽤 합당한 선언이기도 했다. 오만하게까지 들리는 제임스 캐머런의 외침을 그저 기쁨의 퍼포먼스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건 그가 걸어온 길의 굴곡과 명암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캐머런은 스스로가 최고라는 자부심 속에 길을 개척해온 연출자다. 동시에, 빛나는 성취에도 불구하고 쉽게 따라잡기 힘든 상업적인 성공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과소평가된 작가이기도 하다. 본디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법. 제임스 캐머런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때마다 그를 향한 편견의 벽 또한 두꺼워졌다. ‘흥행의 마술사’라는 찬사 뒤에는 ‘상업적인 프로젝트에 특화된 감독’이라는 평가절하가 이어졌고, 독창적인 비주얼에 대한 감탄은 있어도 내러티브와 연출에 대한 칭찬은 드물었다. 앞선 세대의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는 SF 장르의 신기원을 이루었다고 상찬받았던 반면, 다음 세대에서 SF 블록버스터의 전성기를 떠받친 제임스 캐머런에 대한 박수 소리는 다소 밋밋했던 게 사실이다.
‘훌륭한 비주얼리스트지만 무난한 스토리텔러’라는 꼬리표는 제임스 캐머런이 끝내 넘어서기 힘든 벽 같았다. 하지만 정작 제임스 캐머런 본인은 세간의 평에 무덤덤해 보였다. 적어도 아카데미 시상식,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세상을 향한 저 일갈을 토해내기 전까지는. 제임스 캐머런은 이후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서운했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부당한 평가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비결은 ‘SF를 향한 애정과 모험심’이었다고 고백했다. 어린 시절부터 SF소설광이었던 캐머런은 〈제임스 캐머런의 SF 이야기〉라는 책에서 SF를 “가장 깊은 철학의 심연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르”라고 정의한다. 캐나다에 살다 17세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캐머런은 왕복 2시간이 걸렸던 통학길에 SF소설을 탐독하며 자신의 문화적 소양을 다져갔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결실이라 할 만한 영화가 바로 〈터미네이터〉(1984)였다.
제임스 캐머런의 ‘이야기’는 숱한 SF소설들을 통해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그의 관심사는 그 단단하고 심오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영상화’할 수 있을까에 맞춰졌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의 광적인 팬이었던 그는 미니어처와 특수효과에 몰두하며 영화계의 문을 두드렸다. B무비의 제왕 로저 코먼의 뉴월드 픽처스에서 첫 영화 경력을 시작한 캐머런은 1980년 영화 〈배틀 비욘드 더 스타스〉의 미니어처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후 1981년 〈피라냐2〉로 악몽 같던 감독 데뷔를 마친 제임스 캐머런은 드디어 자신의 진정한 데뷔작 〈터미네이터〉의 시동을 건다. 직접 쓴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 게일 앤 허드를 찾아간 캐머런은 속편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1달러에 넘길 테니 자신을 감독으로 고용하라고 제안했고, 65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한 묵시록적 SF 〈터미네이터〉는 당시 ‘테크노 누아르의 등장’이란 호평과 함께 대성공을 거뒀다.
얼핏 들으면 신인의 패기로 거머쥔 성공담 정도로 기억될 법한 에피소드다. 하지만 이 무모해 보이는 거래가 가능했던 건 패기라기보다 그의 자기 확신 덕분이었다. 제임스 캐머런의 완벽주의 기질과 확신에 찬 태도는 데뷔 초기나 흥행의 정점에 오른 뒤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SF를 자양분으로 구축한 영화라는 가상 세계의 왕이었고, 그의 관심사는 자신의 왕국으로 세상 사람들을 초대할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선택한 건 새로운 질감의 비주얼을 통한 감각의 확장이었다. 그는 집요할 정도로 최첨단 기술에 집착했고,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대치 예산을 투입해 이를 실현해왔다. 〈터미네이터〉와 〈에이리언2〉의 성공으로 충분한 제작비를 확보하게 된 제임스 캐머런은 본격적으로 시각적 표현의 확장을 도모했다. 1989년 4000만 달러를 투입한 〈어비스〉는 〈터미네이터〉 이후 제임스 캐머런의 유일한 흥행 실패작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어비스〉는 훗날 그의 영화 작업의 토대가 될 원형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도전이었다. 컴퓨터그래픽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어비스〉는 필름으로 ‘찍는’ 영화에서 디지털 정보를 토대로 ‘그리는’ 영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실현했다. 〈터미네이터2〉 〈트루 라이즈〉 심지어 〈아바타〉까지, 비주얼을 구현하는 장인으로서 제임스 캐머런의 행보는 거의 대부분 〈어비스〉의 위대한 실패에 빚을 지고 있다.
물론 제임스 캐머런이 CG나 3D 같은 영상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기술들이 영화의 미래가 될 거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대세로 굳힌 사람은 그였다. 제임스 캐머런이 〈어비스〉로 증명하기 전에는 CG가 실사 이미지를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는 없었다. 제임스 캐머런이 〈터미네이터2〉를 블록버스터로 성공시키기 전에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메카닉 SF가 주류 장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누구도 믿지 않았다. 제임스 캐머런이 〈아바타〉를 통해 부활시키기 전까지는 사라져가던 3D 기술이 극장 산업을 살릴 마법의 열쇠가 될 거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언제나 불씨를 지피는 사람이 아니라 키우는 쪽의 사람이었고, 물꼬를 트는 사람이 아니라 물줄기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비결은 간단하다. 반박 불가능한 압도적인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누군가 꿈을 꿀 때 제임스 캐머런은 그걸 물리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했다. 가능성의 영역에 있던 시청각적 체험을 세간의 인식을 뒤집을 만큼 혁신적인 규모로 선사함으로써 세상을 바꿔왔다고 해도 좋겠다. 그 탁월한 비전과 욕망 그리고 압도적인 사이즈의 미학은 가히 ‘왕의 행보’라 부를 만하다. 
- 송경원(〈씨네21〉 기자)
 
 
 

한스 짐머 

1957~, 독일 / 〈라이온 킹〉 〈글래디에이터〉 〈캐리비안의 해적〉 〈다크 나이트〉 etc.

1957~, 독일 / 〈라이온 킹〉 〈글래디에이터〉 〈캐리비안의 해적〉 〈다크 나이트〉 etc.

 
영화음악은 클래식의 연장선에서 출발했다. 한스 짐머는 영화음악의  이런 전통적 작업 방식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발전시켰다.
 
한스 짐머는 아마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장 바쁜 영화음악 작곡가일 것이다. 그 존재감이 엔니오 모리코네, 존 윌리엄스 같은 해당 분야의 전설들에 비견될 정도니까. 그는 영화 장르든 음악 장르든 부문을 가리지 않고 작업해 지금껏 15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완성했으며, 〈글래디에이터〉 〈캐리비안의 해적〉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명작을 남겼다. 많은 감독과 제작사가 그와 함께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그의 이름은 ‘무조건 믿고 맡길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한 사람의 작업량은 절대적인 한계치가 있는데, 기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작업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수없이 많은 대작을 연달아 배출한 것은 의아할 정도였으며, 간혹 ‘자기복제’ 혹은 ‘웅장한 사운드를 제외하면 기억에 남지 않는 음악’ ‘멜로디의 부재’ 등 창의성 결여에 대한 지적과 작품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나왔다. 한스 짐머가 작곡가로서 이토록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의 다작에 대해 논란이 불거진 이유 사이에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다.
영화음악은 클래식의 연장선에서 출발했다. 모리코네나 윌리엄스의 작업들을 봐도 알 수 있듯 하나의 작품은 보통 한 명의 작곡가가 온전히 담당했고, 주로 오케스트라 편성을 사용했으며, 서양 악기나 전통악기에서 찾을 수 없는 음색은 직접 악기를 만들어 그 소리를 구현했다. 그래서 영화감독은 작품에 어울리는 작곡가를 수소문하고 찾아다녀야 했다. 한스 짐머는 영화음악의 이런 전통적 작업 방식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발전시켰다. 그는 오케스트라 사용은 물론 전자음악, 즉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반젤리스의 음악으로 대변되는 전자악기와 가상 악기를 활용한 음악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짐머는 밴드의 신시사이저 연주자 겸 프로듀서로 활동했을 만큼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에게는 실제 악기와 가상 악기를 자연스럽게 섞어서 사용하는 특별한 감각이 있었다. 능력과 시대가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짐머는 영화감독과 작곡가를 매칭하는 회사 리모트 컨트롤 프로덕션(Remote Control Productions)을 설립하고 작곡가와 연주자, 사운드 디자이너 등 각 분야의 전문 인재들을 대거 영입했다. 그들은 하나의 작품을 공동으로 작업하며 영화감독의 요구에 맞춰 빠르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RCP가 많은 인력을 동원하는 만큼 사업 규모도 커졌다. 뿐만 아니라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했고 애프터서비스까지 확실해 그야말로 할리우드 상업영화 작업환경에 최적화된 시스템이었다. 최고의 영화감독이 함께하는, 고가의 장비와 기술력까지 갖춘 RCP에서 많은 작곡가가 짐머의 감독하에 작품을 만들며 경험을 쌓고 있고, 그곳을 거친 그의 제자들 역시 ‘짐머풍’ 음악으로 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이다. 그렇게 짐머는 수많은 흥행작을 통해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누구보다 많이, 오랜 시간에 걸쳐 유행시켰으며, 곧 오늘날 블록버스터 영화음악을 상징하는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대부분 미니멀리즘과 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방식을 간단히 예로 들면, 8개 코드로 반복되는 화성 진행 위에 피아노 음이 두세 개씩 올려지고, 이어서 첼로가 멜로디를 연주하면 호른과 트롬본이 감싸는 식이다. 이렇게 작곡한 음악은 변주가 가미되어 영화 내내 반복되는데, 작품의 통일성을 부여하고, 긴 시간 동안 일관된 감정과 기억을 쌓기에 좋은 장치다. 그는 소리에 대한 뛰어난 감각과 취향을 가지고 다양한 음색을 고급스럽게 조합하는, 즉 클래식 분야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 능력’이 있다. 영화 〈듄〉을 보며 낯설고 신비한 음색을 디자인해 외계의 소리를 구현한 것과 긴 상영 시간 동안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몰입시키는 짐머와 RCP의 음악에 어찌나 감탄했던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짐머의 경우 다른 작곡가에 비해 적극적인 멜로디 사용은 적은 편이다. 그가 음악으로 영화를 침범하지 않고, 내용 자체에 충실한 음악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음악이 자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전개되면 그 작품성과는 별개로 영화와 분리될 위험이 있는데, 짐머의 미니멀리스틱한 멜로디는 그 가능성을 잠재운다. 최근 국내에서 한스 짐머, 존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코네와 히사이시 조까지 아우르는 영화음악 콘서트를 열고 있는 위필하모닉의 예술감독 김재원 지휘자는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은 영화음악이더라도 음악 그 자체로서 내용이 있지만, 한스 짐머의 경우 영화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음악만 따로 평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확고한 그의 사상과 RCP 비즈니스가 결합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스타일이 굳어지자, 이전 세대의 거장들과 비교하며 짐머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을 불문하고, 예술은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성을 기준으로도 따져야 하며, 현재의 시각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짐머의 경우 작곡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선보였고 상업영화의 작업환경을 시대에 맞게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음악이 영화에 지나치게 종속되고 모양새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가치 절하되고 있는 것이다.
노래들이 비슷하다는 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사실 하나의 유행이 탄생하려면 수많은 복제가 있어야만 한다. 물론 누가 먼저인지, 어떤 것이 진품인지는 따져야 하겠지만 유행은 대량의 복제 없이는 꽃피울 수 없다. 이 명제는 클래식 작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안토니오 비발디, 안톤 브루크너, 아스토르 피아솔라, 필립 글라스 같은 이들의 음악은 누구보다 확실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놓는 작품들이 비슷하다고 그런 작가들의 예술성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스타일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창의력과 의미를 찾는다. 누군가에게는 한스 짐머의 음악, 또는 그가 유행시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화음악 역시 뻔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편견을 제쳐두고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며 그가 추구하고 제시한 음악을 따라가 보시라. 그가 거장인 이유를 저절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 손일훈(작곡가, 음악감독)
 
 
 

무라카미 하루키 

1949~, 일본 /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기사단장 죽이기〉 etc.

1949~, 일본 /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기사단장 죽이기〉 etc.

 
스타일이란 문장의 간결함이나 만연함 따위로 한정되지 않고, 플롯과 패턴 모두, 즉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정신 조성의 패턴을 포괄한다. 건축으로 따지면, 스타일은 타일이나 벽돌의 모양이 아니라 골조를 올리는 공법, 전체적인 양식을 말한다.
 
지난 2017년으로 기억한다. 문학과 전혀 상관없는 게임 게시판에 웬일로 문학과 관련된 기사가 인기글로 올라왔다. 문학과 관련된 글이 게임 게시판 인기글에 오르는 건, 국내 주요 일간지에 캐나다 아이스하키 3부 리그 플레이메이커의 인터뷰가 올라오는 것만큼 낯선 일이다. 글의 내용은 직전에 열린 서울국제문화포럼이라는 행사에서 이 자리에 참석도 하지 않은 하루키가 뜬금없이 도마 위에 올랐고, 패널로 참석한 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이 “하루키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골 빈 대학생이 하루키를 너무 좋아한다”며 단칼에 내리쳤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손을 들고 외치고 싶었다. “선생님, 그 골 빈 대학생이 바로 접니다. 그리고 저는 00학번으로 이미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고, 이제는 하루키를 읽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키 씨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렇다. 유종호 선생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일갈한 하루키의 인기는 〈1Q84〉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로 쌍봉낙타의 등짝 곡선처럼 거대한 두 번의 호황을 누린 후 하강하기 시작해, 어깻죽지 정도까지 내려앉은 후였다.
당시엔 하루키 손절이 유행이었다. 술자리에서 누군가 “〈상실의 시대〉를 최근에 읽었는데 도저히 못 읽겠더라. 온갖 댄디한 폼은 다 잡는데, 다시 보니 걔들이 스무 살이더라고. 애송이들이 잔뜩 폼만 잡고”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눈을 흘기며 20대 시절 하루키스트의 자아에 빙의해 “우리 스무 살 때 다 컸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땐 하루키가 멋있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면, 그건 좀 꼰대 아냐?”라고 면박을 줬다. 그러나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상실의 시대〉의 앞부분을 다시 읽었다. 30대 중반의 나는 과연 하루키를 여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의 두 학년 선배인 나가사와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 기숙사에서 생각이 조금이라도 제대로 박힌 건 나와 너뿐이야. 나머지는 모두 다 휴지조각 같은 존재들이지…(중략)…우리 두 사람 모두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잖아?” 오그라든 손가락을 펴며 마음속으로 ‘이런 식으로 나이로 후려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홀든 콜필드는 똥폼 잡는 16세일 뿐’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어쩌면 유종호 선생을 화나게 한 지점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2010년 유 선생은 한 칼럼에서 “〈상실의 시대〉 작중인물이 읽고 있는 토마스 만을 읽는 한편으로 무라카미도 읽는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쓴 바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상실의 시대〉를 읽어야 한다. 그래야 하루키 씨가 욕을 덜 먹을 수 있다.
하루키를 향한 수많은 비판엔 나름의 논리가 있다. 하루키의 작품 중엔 시답잖은 연애소설로 읽히고, 재즈 바에서 맥주나 마시며 지껄이는 철부지들의 담화 녹취에 불과하며, 승려인가 싶은 무심한 댄디 남들이 세상 시크한 여자들과 건조한 섹스를 이어가는 통속소설로 보이는 지점들이 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깊이가 없다’고 정리해버리는 건 비틀스의 ‘Please Please Me’만 듣고 3분짜리 팝송이나 만드는 밴드라고 평가 절하하는 셈이다.
이제 막 3개의 단편을 발표했을 뿐인 초초초 초보 소설가이자 러시아 문학을 학부에서밖에 공부하지 못한 문학 애호가의 입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의 선언 중 하나는 이것이다.
‘굴튀김에 관해 이야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얘기를 하자면 먼저 ‘굴튀김 이론’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독자 중 한 명이 이메일로 보낸 ‘취직 시험에서 원고지 4매로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하루키는 지면을 빌려 이렇게 답했다. “원고지 4매로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예를 들어 굴튀김에 관해 원고지 4매 이내로 쓰는 것은 가능하겠죠. 그렇다면 굴튀김에 관해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른바 하루키의 굴튀김 이론이다.
그런데 굴튀김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고양이 법칙’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2001년 오바 다케시의 〈나라는 미궁〉에 하루키가 찬조해 쓴 해설에 좀 더 자세히 설명된다. 내 식대로 그의 표현을 살리며 줄여서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소설가는 마치 의식 없는 고양이처럼 포슬포슬하고 부드러워 좀처럼 쌓기 힘든 가상의 이야기(‘가설’)를 쌓는다. 고양이의 탑, 즉 가상의 이야기들은 보통은 소설가의 무의식 속에서 자동적으로 쌓여가는데, 비록 고양이들은 허구일지 몰라도 이 고양이를 쌓는 구조의 설계와 정신적 노동에서 드러나는 정신 조성의 패턴은 작가의 세계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다시 굴튀김 이론으로 돌아와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데 왜 굴튀김에 대해 쓰라는 걸까? 그건 소설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굴튀김에 대해, 민스 커틀릿에 대해, 새우 크로켓에 대해 쓰면서 ‘그런 사상 혹은 사물과 자기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와 방향을 데이터로 축적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굴튀김뿐 아니라, 민스 커틀릿과 새우 크로켓, 그것들에 곁들여 마시는 맥주와 함께 듣는 음악에 대해 쓸수록 나라는 미궁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얘기다. 단말기에 도달하는 여러 GPS 위성의 신호 세기를 계산해 휴대전화의 위치를 특정하는 삼변측량법과 조금 비슷한 이야기다. 다만 소설의 경우엔 그 사상과 사물이 좀 더 큰 덩어리인 ‘가상의 이야기’라 그것을 지탱하는 정신 조성의 패턴 역시 더 복잡하고 클 뿐이다.
나는 이 이론이 이야기 예술의 본질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하루키가 이를 글로 읽어 안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길어낸 만큼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 증거는 고양이라는 상징의 오랜 역사다. 1982년 잡지 〈보물섬〉에 실린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이라는 소설에서 화자는 “나는 계속해서 새끼 고양이를 모아서 쌓아 올려간다. 새끼 고양이들은 축 늘어져 있고 아주 부드럽다”라고 말한다. 이미 30년 전부터 그는 고양이 쌓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니 그 누구보다 고양이라면 자신 있게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특별한 얘기는 아니다. 많은 소설가들이 ‘결국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라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종종 우리는 ‘스타일’을 문체로 번역하는데, 여기서 스타일이란 문장의 간결함이나 만연함 따위로 한정되지 않고, 플롯과 패턴 모두, 즉 하루키가 말한 정신 조성의 패턴을 포괄한다. 건축으로 따지면, 스타일은 타일이나 벽돌의 모양이 아니라 골조를 올리는 공법, 전체적인 양식을 말한다.
하루키의 정신 조성 패턴, 곧 ‘스타일’은 어쩌면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세 번 썼다. 그 유명한 진구 구장의 에피파니 이후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산 2000엔짜리 세일러 만년필로 원고지에 쓴 것이 그 처음이다. 그 육필 원고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은 후, 그는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던 올리베티 영자 타자기를 꺼내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제한된 외국어의 단어 수와 한정된 문장의 형태 안에서 ‘효과적 조합’으로 써낸 자가 영문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시 만년필을 들고 한 문장 한 문장 일본어로 번역했다. 혹자는 그의 문체를 두고 번역투라 비판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하루키가 한정된 언어로 효과적 조합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아주 튼튼하고 독특한 정신 조성의 패턴 구성법을 익혔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디 쉬웠을까?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사내가 바나나 잎을 엮어 대서양을 횡단할 작은 범선을 만드는 일에 범접하지 않을까?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문고본으로 4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중국행 슬로 보트’라는 단편을 당장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가 만난 중국인 고양이들이 얼마나 엉성하게 쌓여 있는지, 그러나 그 엉성한 고양이들은 또 어찌나 단단하게 결속되어 마치 한 몸인 듯 중력을 이겨내고 캠프파이어의 장작처럼 곱게 쌓인 채 잠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당신이 말하는 ‘소설’의 거장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고양이 쌓기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 박세회(〈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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