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축구팀 팬인 나는 호날두보다 메시가 더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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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축구팀 팬인 나는 호날두보다 메시가 더 싫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현유 BY 김현유 2022.12.02
 
2022 시즌, 나는 성남FC(이하 성남)의 팬이 된 이래 처음으로 시즌 티켓을 구입하지 않았다. 원인은 김남일 감독이었다. 2019년 겨울, 그가 성남의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뉴스를 봤을 때 내 입에선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많은 이에게 그는 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이겠지만, 나에겐 그저 성남이 성남일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전성기에 수원삼성(이하 수원)의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항상 우리 골문을 노려보던 끔찍하게 싫은 선수 중 하나일 뿐이었다.
수원에 대한 나의 증오는 축구를 보지 않는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범주를 조금 뛰어넘는다. 2003년 이후 나는 푸른색 옷을 사본 적이 없다. 심지어 ‘수자원공사’처럼 어쩐지 수원과 푸른색을 연상케 하는 단어조차 듣는 순간 그냥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 정도다. 무슨 썰렁한 농담이냐 싶겠지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증오야말로 프로스포츠 팀에게는 역설적으로 최고의 찬사다. 성남은 일화 시절 밥 먹듯 우승하면서도 타 팀 팬들에게 동정을 받곤 했다. 모기업이 종교와 엮여 있다는 점과 촌스러운 유니폼, 적은 관중 등의 이유로 안쓰러움의 아이콘이 됐던 것이다. 반면 징그럽게 많은 푸른색 깃발을 흔들어대며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경기장을 응원 소리로 뒤덮는 수원은 수원 팬을 제외한 모두에게 미움받는 존재였다. 2003년 11월 12일, 성남은 홈에서 수원에 2:4로 패배했다. 이 경기는 성남 팬이 된 뒤 처음으로 본 수원전이었고, 비록 성남이 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후였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끔찍했다. 이날 이후로 내 마음속에선 수원을 향한 끝 모를 증오가 피어올랐지만, 한편으로 나는 그 증오를 부러워했다.
김남일 감독이 부임한 2020, 2021 시즌 내내 성남 팬들은 최악의 경기를 견뎌야 했다. 팀은 항상 강등권이었다. 선수들은 지쳐갔고 팬들은 분열됐다. 그러나 2022년에도 여전히 김남일 ‘감독’은 건재했고, 나는 예전처럼 시즌 티켓의 예약 구매가 뜨자마자 결제창에 들어가는 대신 몇 경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성남은 초반 세 경기를 1무 2패로 마치고 무승 상태에서 홈으로 수원을 불러들였다. 67분 뮬리치가 2:0으로 앞서가는 골을 넣었을 때 나는 기쁨에 겨워 미친 듯이 팔을 흔들어댔다. 후반에 두 골 차로 앞서가는 든든함과 수원을 상대로 시즌 첫 승을 거둔다는 흥분이 뒤섞여 내 머릿속은 아드레날린으로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리고 성남은 내리 두 골을 먹었고 수원 팬들의 비웃음 섞인 함성과 함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이후 나는 성남 팬인 동료들에게 김남일 감독이 나갈 때까지 모든 경기를 보이콧하겠노라 선언했다. 대신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마들 스타디움에 가서 K4(4부) 리그 노원 유나이티드의 홈 개막전을 보기로 했다. 반대편 응원석을 새파랗게 물들인 수원 팬들을 보는 것도 이제는 지쳤던 것이다. 흡사 올드 트래포트를 떠나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맬컴 글레이저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수를 반대하는 팬들의 주도로 2005년 창단된 시민구단. 현재 7부 리그에 소속돼 있다)를 응원하는 홈팬들처럼 오붓한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상대 팀이었던 강원FC B(강원FC에서 운영하는 산하 팀, 이하 강원)는 꽤 많은 원정 팬을 대동했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앉았던 곳은 하필 원정석 한복판이었다. 강원이 공격할 때마다 묘하게 들뜨는 주변 분위기에 위화감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가 스탠드 벽에 줄을 지어 걸려 있는 강원 유니폼을 보고 아연실색한 나는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기는 노원 유나이티드가 2:0으로 이겼고 돈을 꽤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는 축구를 본 것도 오랜만이지만 여기서 축구를 보는 한 적어도 수원과 관계된 것들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수원은 K4 리그를 위한 별도의 산하 팀을 운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용히 즐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4부 리그 홈경기를 의외로 열정적인 원정 팬들 탓에 방해받았기 때문에 약간 화가 난 채로 집에 온 나는 곧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어리석은 나 자신을 탓했다. 4부든 1부든, 축구장에서는 화가 나기 마련이었다. 화가 나기 싫었으면 원정 팬이 없는 중계근린공원에 가서 책이나 읽을 것이지 어쩌자고 축구장을 찾았단 말인가.
많은 사람이 K리그가 재미없거나 경기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당신이 K리그를 보지 않는 이유는 경기를 봐도 화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K리그의 클럽들은 한국의 대중을 상대로 보편적 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이것은 한국에서 지역 연고 스포츠가 자생하기 힘든 수많은 원인과 맞닿아 있지만 여기에서 K리그를 부흥시킬 묘안들을 구구절절이 쓰지는 않겠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언급했듯 현대의 스포츠는 과거 야만 사회의 폭력적 약탈 행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쟁의 성격을 가장 깊게 띠고 있는 종목이 아마 축구일 것이다. 제대로 된 축구장에는 군중들의 화가 존재해야 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서로를 향한 거친 욕설뿐 아니라, 때로는 폭력까지 동반한다.
한국의 축구 팬들은 미지근한 K리그 대신 자신들을 화나게 하는 다른 것을 찾아내 혐오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두 선수 중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를 두고 싸우는 ‘메호대전’은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주제다. 내 입장에서야 둘 다 성남에서 뛸 확률이 절대로 없을 선수들이라 누구의 기량이 뛰어나든 알 바 아니지만, 굳이 둘 중 더 싫어하는 선수를 꼽는다면 아마 메시일 것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메시가 지금 뛰고 있는 파리 생제르맹의 컬러가 수원과 같은 청·백·적색이기 때문이다. 질 나쁜 농담 같겠지만 아니다. 나는 정말 그 정도의 이유로 지난 2019년 한국 투어에서 그야말로 ‘깽판’을 놓아 국민 호래자식이 되어버린 호날두보다도 메시가 더 싫다. 혹자는 나처럼 로컬 풋볼에 열광하는 사람은 직접 볼 일도 없는 지구 반대편 선수들에게 과몰입하는 메호대전을 의미 없는 행위로 치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유니폼에 수원의 색이 일부 들어갔다는 이유로 세계 최고의 선수를 싫어하는 수준의 의식을 가진 내가 의미 있는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을까? 4부 리그 로컬 팀의 시즌 티켓을 사든, 단톡방에 호날두 인성 스페셜 영상을 링크하든, 축구 때문에 누군가의 골통을 후려 차고 싶은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그 사람은 어엿한 축구 팬이다.
성남은 일찌감치 강등이 확정됐지만 그래도 두 개의 희소식이 찾아왔다. 하나는 드디어 김남일 감독이 성남을 떠났다는 것이다. 다음 시즌은 불만 없이 성남의 시즌 티켓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다른 하나는 수원삼성이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강등권에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만의 작은 희소식이 아니었다. 수원삼성이 최종 순위 10위로 정규 시즌을 마무리하며 과거의 라이벌 FC안양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것이 확정되자 K리그 판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수원이 강등당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 팀의 어두운 현실과 미래 정도는 깡그리 잊어버릴 수 있었다.
1차전을 0:0으로 비긴 뒤 양 팀은 운명을 건 2차전을 시작했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중계창 앞에 앉아 수원의 강등을 간절히 기원했다. 비록 성남은 2부 리그로 떨어졌지만, 만약 수원도 함께 떨어진다면…. 푸른 옷을 입고 좌절에 빠진 팬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팀의 쇠락을 깨달은 그 얼굴들과 다음 시즌을 함께 보낸다면 어쩌면 20년간 쌓아왔던 증오와는 조금 다른 감정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수원은 연장 120분에 결승 골을 넣고 내 얼굴에 푸른색 침을 뱉은 뒤 1부 리그에 잔류했다.
 
김근석은 필명 샤다라빠로 활동하는 웹툰 작가다. 성남FC와 노원 유나이티드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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