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절절 흐르는 힙합 가사를 만나기까지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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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절절 흐르는 힙합 가사를 만나기까지

김현유 BY 김현유 2022.12.09
그러니까 힙합이 싫었다기보다는 힙합 가사를 듣기 싫었다. 가사는 알아듣기도 어려웠지만, 어쩌다 들리는 말은 얼마나 많은 차를 새로 뽑았고 얼마나 많은 여자를 얼마나 아무 때나 끼고 다닐 수 있게 됐는지를 자랑하는 내용이었으니까. 실제로 플레이 리스트에서 좋다고 느끼는 곡을 듣게 되어도 가사에 대해서는 대체로 귀를 닫았다. 그건 가사가 좀 별로라고 해도 장르 하나를 통째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나 자신의 취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였다. 게다가 힙합을 좋아한다는 다른 사람들을 봐도 가사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팝 신곡들의 가사 번역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었다. 받아 든 일감 중에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힙합 아티스트들의 곡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러다 보니 힙합 음악을 가사를 유념해가며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나는 이 상황이 굉장히 반가웠다. 어쩌면 귀를 필터링하는 바람에 그대로 굳어졌을지 모를 내 속 좁은 편견을 새 시대의 음악으로 녹여버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지켜보기만 한 어떤 진실의 문을 여는 것 같았고, 음악을 드디어 편하게 듣게 되겠다는 생각에 약간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알게 됐다. 새 시대에도 그런 가사는 아직 많다는 것을. 집에 가면 카펫 대신 돈다발이 깔려 있다든지 현금 뭉치가 너무 두꺼워서 바지 주머니가 터진다든지 하는 가사는 물론, 조금 지루하기는 했지만 문화적인 맥락을 생각하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이 등장하는 부분은 여전히 거슬렸다. 성공을 과시하는 도구로 등장시켜 눈앞의 여자들을 대상화할 뿐인 성적 묘사들은 단어마저 같은 것들이 반복돼 지루했다.
물론 그런 가사를 쓰는 건 아티스트 마음이고, 그런 자기표현을 담은 곡들도 존재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런 곡들을 연속으로 들으면 폭력적인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몇 편 연달아 본 것 같은 피폐함이 느껴진다. 신곡을 듣다 보면 처음 듣는 속어나 외국어 단어들도 종종 등장하는데,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시간을 들여 의미를 알아내 마침내 짜 맞춘 이야기의 조각이 ‘너의 부티(booty) 빵빵해’와 ‘너의 푸씨(pussy) 내가 먹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내용이었을 때 피로감이 배가되곤 한다.
그렇게 몇십 곡째인가를 지나며 마침내 나의 희망이 빛을 보는 순간이 찾아왔다. 온갖 고유명사와 여성 성기를 칭하는 수십개의 비속어들로 성공을 과시하는 내용이 아닌, 진짜 자기 삶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곡들이 나온 거다. 재미있게도 앞서 수많은 속어를 숙지해둔 덕분에 리릭(lyric)을 중심으로 쓴 이 곡들도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었다. 부티와 푸씨의 언덕을 힘겹게 넘어 마침내 서정과 서사의 평원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가장 마음의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들은 곡은 덴젤 커리(Denzel Curry)의 ‘Walkin’’이었다. 1995년생 아티스트가 만들었지만 2000년대 초반 느낌도 얼핏 감도는 이 곡에는(아무래도 그래서 처음부터 귀에 쏙 들어온 것 같다) 자신의 과거 트라우마와 지금의 슬픔과 또 자신의 과거보다도 더 오래된 차별 속에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스스로를 구하려고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내 마음속 악마들을 죽여버리고 있어 / 내 영혼은 구원받을 가치가 있으니까.” 그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 한때 좋아했던 것들에 더 이상 아무 관심이 없어졌고, 알코올 의존의 경계에 - 어쩌면 이미 그 경계 너머에 - 있으며, 상담 치료에서는 눈물을 쏟으며 무너진다. “이야기하는 대가로 한 여자에게 180을 지불해 / 그녀는 내 감정을 조절해왔어 / 내 감정을 리얼하게 날것 그대로 설명해 / 나에게는 이 모든 병이 있어.” 곡은 그래도 이런 역겨운 세상과 끔찍한 삶 속에서도 트라우마와 슬픔과 괴로움을 안은 채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계속 걸어, 멈추지 않고 / 이 더럽고, 불결하고, 썩었고 / 끔찍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작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낙관적인 사람들을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이해해줄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칸예(Ye)지만, 텐타시온(XXXTENTACION)이 만든 벌스에, 이제는 따로 살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더한 ‘True Love’를 들으면, 그를 좋아했고 그의 음악을 즐겨 듣던 때가 떠올랐다. 이 벌스는 텐타시온이 2018년 총격 피해로 사망하기 전에 만든 것으로, 사망 당시 그에게는 ‘Gekyume’라 예명을 붙인,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었다. “진짜 사랑은 (아빠 여기 있어) / 이렇게 복잡해서는 안 되잖아 (불 켜져 있어) / 난 너의 품 안에서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빠 집에 있어) / 난 너의 품 안에서 죽을 거라고 (Gekyume에게 전해줘).”
무엇보다 올해 나온 신보 중에는 래퍼 최초 퓰리처상 음악 부문 수상자이면서, 세계 최대 힙합 음악 시상식인 ‘BET 힙합 어워드’에서 가장 훌륭한 가사를 쓴 아티스트에게 주는 ‘리리시스트(Lyricist)’ 부문을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1년간 총 여덟 번이나 수상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앨범이 있었다. 기억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개인적인 자기 고백으로 채워진 이 몇 해 만의 새 앨범의 수록곡 중 ‘Auntie Diaries’는 자기반성이 특히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곡이다. 켄드릭은 트랜스젠더인 이모와 사촌의 이야기를 하며,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낸 사랑하는 가족들이기에 남들과 달리 자신은 두 사람을 더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기 역시 아무렇지 않게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단어를 욕으로 쓰는 한편 정작 자신은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에 분노했다며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자기 삶의 일부였으며 흑인 커뮤니티에서 무거운 영향력을 지닌 종교에 반발한다. 켄드릭의 가사를 보면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장 솔직하게 했을 때 얻는 보편성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새삼 깨닫게 된다. “‘호모, 호모, 호모’ 우린 잘 몰랐어 / 말 가릴 줄 모르는 초등학생들이었잖아 … 다른 도시에서 공연하던 때가 생각났어 / 팬을 무대 위로 불러 랩을 하게 했는데 / 그 팬이 내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을 해서 막았던 그때가 말이야 / 넌 말했지, ‘켄드릭, 그건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이야 / 정말 사랑이 뭔지 이해하려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 / ‘호모, 호모, 호모’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어 / 네가 그 백인 여자에게 ‘검둥이’라는 말을 해도 된다고 허용한다면 말이야.”
이 글을 쓰느라 간만에 ‘Walkin’’ 뮤직비디오를 다시 봤는데, 노래 가사에 공감을 표현하는 댓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삶이 계속해서 속도를 올리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아주 감사하게도 좋은 음악이 있다.” 올해 나에게 있었던 좋았던 일들 중 하나라면, 바쁜 마음에 미뤄두고 지나쳐버렸던 음악을 온전히 집중해서 들으면서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는 마음 아픈 일들이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각자가 음악과 예술에서 조금의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박수진은 번역가 겸 에디터다. 공연예술과 디자인,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글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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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김현유
    WRITER 박수진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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