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레인지로버의 매력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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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레인지로버의 매력

50년 전 실용의 대명사였던 랜드로버는 어떻게 럭셔리 SUV 브랜드가 되었나?

박호준 BY 박호준 2023.01.07
 
(왼쪽) RANGE ROVER VOGUE(1990)/ (오른쪽) RANGE ROVER P530 AUTOBIOGRAPHY(2022)

(왼쪽) RANGE ROVER VOGUE(1990)/ (오른쪽) RANGE ROVER P530 AUTOBIOGRAPHY(2022)

RANGE ROVER VOGUE(1990)
파워트레인 3947cc V8 자연흡기 가솔린, 4단 자동 최고 출력 188마력 최대 토크 32.5kg·m
 
RANGE ROVER P530 AUTOBIOGRAPHY(2022)
파워트레인 4395cc V8 가솔린 트윈 터보, 8단 자동 최고 출력 530마력 최대 토크 76.5kg·m

 
“Tough loads, rough roads the Land Rover can take it!”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53년 랜드로버가 광고에 쓴 문구다. 짧은 글에서 엿볼 수 있는 와우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어지간한 랩 가사 뺨치는 라임이고 두 번째는 실용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럭셔리 SUV의 대명사가 된 요즘과 달리 초창기 랜드로버는 고급스러움과 거리가 멀었다. 군용차에 가까운 디자인과 성능을 무기로 도시가 아닌 농촌이나 산지에 사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했다. 오죽하면 레인지로버의 조상 격인 S1 모델은 자동차 실내에 물을 뿌려 청소할 수 있을 정도였다.
1970년에 처음 등장한 랜드로버의 대표 모델인 레인지로버를 보자. 그때는 지금과 꽤 달랐다. 기존의 ‘오프로드 명가’ 이미지는 지키면서도 매끈한 아스팔트 위에서도 잘 달리는 도심형 SUV로도 손색없다는 점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승차감을 개선하기 위해 트럭이나 버스에 사용되던 리스 스프링 대신 세단에 쓰이던 코일 스프링을 모든 바퀴에 적용했다. 당시 출시되던 사륜구동 모델 중 네 바퀴 모두 코일 스프링을 적용한 차는 레인지로버가 유일했다.
“솔직히 많이 출렁거리죠. 핸들링 감각도 느슨하고요. 물론 지금 기준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차가 나올 무렵엔 이런 감각을 두고 ‘부드럽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라라클래식 김주용 관장의 말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140여 대의 차를 수집했는데 레인지로버 1세대 역시 일본에서 가져온 물건이다. “이 차는 1990년형이고 우드 패널과 가죽이 적용된 ‘보그’ 트림입니다. 2세대는 1994년에 나왔어요. 같은 V8 엔진이지만, 초기 모델은 배기량이 3.5리터였던 것과 달리 이 차는 3.9리터라서 커다란 차체를 움직이는 데에 부족함이 없죠.”
그가 1세대 레인지로버를 두고 ‘크다’라고 표현했지만, 나란히 세워놓은 5세대 신형 레인지로버는 훨씬 더 크다. 롱 휠베이스 모델이 아닌 스탠더드 모델을 가져왔는데도 그렇다. 지난 50년 동안 야금야금 크기를 키운 결과다. 신형 레인지로버 스탠더드 모델은 1세대 모델에 비해 길이는 602mm, 폭은 185mm, 높이는 80mm 늘었다. 참고로 1세대 레인지로버의 크기는 현재 판매 중인 준중형 SUV인 기아 스포티지와 가장 비슷하다.
체급은 달라졌어도 레인지로버의 헤리티지 디자인과 같은 ‘클램 셸 리어 게이트’와 ‘플로팅 루프’는 그대로다. 트렁크가 위아래로 각각 열리는 걸 클램 셸 리어 게이트라고 한다. 다시 말해, 트렁크 문은 열지 않고 유리만 위로 젖혀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면 트렁크에 물건이 가득 찼을 때 굳이 문을 열지 않고도 손만 집어넣어 원하는 걸 꺼낼 수 있으며 서핑보드와 같이 길이가 긴 물건을 싣는 것도 가능하다. 신형 레인지로버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전자동 시스템을 이용해 클램 셸 리어 게이트를 전부 작동하는 건 기본이고 트렁크를 간이 소파로 바꾸어주는 ‘테일게이트 이벤트 스위트’를 더한 것이다. 경치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 하부에 숨겨져 있는 등받이와 쿠션을 꺼내어 곧추세우면 그곳이 어디건 나만의 라운지가 된다. 플로팅 루프는 말 그대로 차 옆 기둥을 유리와 같은 어두운 색으로 처리해 천장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디자인이다. 엔진룸, 캐빈룸, 트렁크로 구분되는 전통적인 3박스 구조에서 벗어나 차체를 더 길고 날렵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다른 자동차 브랜드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디자인이지만, 레인지로버는 1세대부터 줄곧 플로팅 루프를 적용해왔다.
“당연히 디자인이죠.” 구입을 결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주용 관장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내놓은 답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차는 여럿 있지만, 차를 모르는 사람이 한눈에 봐도 같은 모델이라는 걸 느끼게 하는 차는 드물어요. 그런 차를 아이코닉하다고 말하죠. 레인지로버가 딱 그렇습니다.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차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을 단지 오너가 자신의 차에 보내는 애정으로만 보긴 힘들다. 레인지로버는 자동차 중 최초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차다. ‘산업 디자인의 모범 작품’이라는 팻말을 걸고서 말이다.
앞선 질문과 달리 “정비와 관리에 대한 부분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땐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영국 차는 다른 나라 차와 많은 부분이 달라요. 헤드램프 조작법을 예로 들어볼게요. 레버를 돌리거나 눌러서 주행등을 켜는 대부분의 차와 달리 이 차는 레버를 앞뒤로 밀고 당기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사소하게 다른 디테일이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파워트레인이나 공조장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퍼져 있어요.” 장치의 생김새나 작동 방식이 달라 호환성이 떨어져 대체할 부품을 구하기 어려울 뿐이지 유독 레인지로버만 고장이 잦은 건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른 게 틀린 건 아니라는 말이 떠오른다.
반세기를 뛰어넘어 마주한 두 대의 차를 나란히 놓고 살피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보수적일 줄 알았던 레인지로버가 실은 진보적인 모델이라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탱크같이 단단한 차를 만들던 랜드로버가 1970년 레저와 온로드를 강조한 레인지로버를 선보인 것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소비자에 맞춰 차를 럭셔리 SUV로 새롭게 포지셔닝한 것도, 경쟁 모델보다 반 박자 빠르게 순수 전기차 트림을 선보이기로 약속한 것 모두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레인지로버의 면면이다.
클램 셸 리어 게이트는 레인지로버의 아웃도어 DNA를 잘 보여준다.성인 2명이 걸터앉기에 충분하다. 누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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