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VOLKSWAGEN GOLF CABRIOLET (1992), (오른쪽) VOLKSWAGEN GOLF GTI (2022)
파워트레인 1781cc I4 자연흡기 가솔린, 3단 자동 최고 출력 90마력 최대 토크 14.5kg·m
VOLKSWAGEN GOLF GTI (2022)
파워트레인 1984cc I4 가솔린 터보, 듀얼클러치 8단 자동 최고 출력 245마력 최대 토크 37.8kg·m
“초코입니다. 차체 크기도 그렇고 색깔이 귀여워서 붙인 이름이에요.” 올드카만 20여 대를 소유하고 있는 최성우 대표가 1세대 골프 카브리올레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초코는 독특한 외모 덕에 샤이니 민호의 첫 솔로 앨범 〈CHASE〉의 인트로 영상에도 등장했다. 양평에서 카페 겸 빈티지 갤러리 ‘걸리버 여행기’를 운영 중인 그는 SNS에서 ‘뼈폭맨(뼛속부터 폭스바겐 마니아)’이라는 닉네임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폭스바겐을 좋아하게 된 건 아주 어릴 때 마주했던 폭스바겐 비틀의 영향입니다. 아버지가 폭스바겐 비틀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비틀만 5대를 소유하셨었죠.” 아버지는 비틀, 아들은 골프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폭스바겐의 자동차 계보를 아는 사람에겐 사뭇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비틀을 계승한 모델이 바로 골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폭스바겐 골프의 역사는 1974년 시작됐다. 1930년대에 등장한 후 폭스바겐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비틀이 있었지만, 개발된 지 40년이 넘은 상황에 이를 대체할 새로운 차가 필요했다. 뒷좌석과 트렁크를 분리하지 않는 해치백 형태로 만든 골프는 출시 2년 만에 100만 대가 팔리면서 ‘해치백의 대명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

열고 닫을 수 있는 프런트 벤트 글라스는 운전자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실내 환기와 채광에 도움을 준다. 공조장치 성능이 뛰어나지 않았던 시절에 주로 쓰이던 디자인이다.
“요즘 차랑 비교할 순 없어요. 출력도 약하고 변속기도 3단까지밖에 없어요. 빠르게 치고 나가는 다른 차들과 도로 위에서 흐름을 맞추려면 꽤 열심히 달려야 해요. 그렇지만 연속으로 이어지는 코너에서 민첩하게 움직일 때 느껴지는 손맛은 일품이죠. 선선한 날 지붕을 벗기고 남한강변을 따라 출퇴근할 땐 행복이 느껴질 정도로요.” 최 대표의 말이다. 짙은 회색에 갈색빛이 살짝 더해져 은은한 멋을 내는 그의 초코는 일반적인 골프 1세대 모델과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대표적으로 뭉툭하게 튀어나온 플라스틱 범퍼와 4개의 동그란 헤드램프가 그렇다. 1세대 골프는 짧고 평평한 철제 범퍼를 달고 있으며 헤드램프도 2개뿐이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출생의 비밀은 생산 연도에 있다. 골프 카브리올레는 1979년부터 1993년까지 생산됐는데 초코는 1992년식 북미형 모델이다. 1983년 이미 2세대 골프를 선보인 폭스바겐이지만, 카브리올레 모델만큼은 1세대 플랫폼을 그대로 유지하며 약간의 업데이트만 반영하는 쪽을 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정확히 밝혀진 바 없으나 지붕을 덜어내고 차체 강성을 보강해야 하는 대수술을 감행하는 것보다 이미 잘 팔리고 있는 모델을 개량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플라스틱 범퍼와 트윈 스포트라이트가 장착된 건 1988년의 일이다. 1993년, 3세대 골프 카브리올레가 등장하면서 골프 카브리올레의 가계도는 2세대를 건너뛰고 1세대에서 바로 3세대로 넘어가게 된다.

골프에게 빨강은 GTI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프런트 그릴, 브레이크 캘리퍼, 스포츠 시트 등 차체 곳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1세대 골프와 최신형 골프 GTI를 나란히 놓고 보더라도 닮은 부분을 찾긴 쉽지 않다. 초창기 모델의 곧추서 있던 A필러는 세대를 거듭하며 점점 비스듬해졌고 차체 길이 역시 47cm나 길어진 탓이다. 굳이 찾자면 두껍게 디자인된 C필러 정도다. 외형은 바뀌었지만, 골프가 50년 가까이 고수하고 있는 헤리티지는 명확하다. ‘국민차’라는 사명에 맞는 실용성을 유지하면서 BMW나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못지않은 탄탄한 달리기 실력을 구현하는 것이다. 최 대표는 “8세대 골프 GTI 구매를 고려하고 있어요. 핫해치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며 자동차 역사에 방점을 찍은 모델이잖아요. 폭스바겐 마니아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죠”라고 말했다. 유독 해치백의 인기가 적은 우리나라에서 골프 GTI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