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밀튼(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애칭)의 상징과도 같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지나 그 유명한 자선열차 앞에 섰다. 모두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하 ‘힐튼’)이 ‘서울 힐튼’이던 시절부터 여기 있던 것들이다. 미니어처로 제작한 유럽식 마을을 빙빙 도는 장난감 열차 앞에 부모 손을 잡은 꼬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이들이 열차를 구경하는 동안 어른들은 열차 옆면에 붙은 기업 로고를 눈으로 훑는다. 두카티, 코카콜라, 할리데이비슨, 이지스자산운용… 올해 후원금을 낸 ‘골드 서포터즈’ 중에는 머지않아 이곳의 새 주인이 될 투자사 이름도 포함되어 있다. 아들이 혼자 계단을 오르내릴 무렵부터 매해 크리스마스 시즌 이곳을 찾았다는 지인 K는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자선열차를 배경으로 한 가족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최근 찍은 사진에서 K의 아들은 열차를 에두른 160cm 높이의 유리 스크린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다.
2022호는 뜻밖에 ‘스페셜한’ 남산 전망이었다. 서울N타워와 구불구불한 성곽길이 18세기 풍경화처럼 완벽한 구도를 이루는, 이제껏 힐튼에 묵으면서 한 번도 배정받지 못한 전망의 방이다. 그건 아마 내가 언제나 호텔에서 가장 좁은 객실을 최대한 값싸게 예약하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관련 있을 것이다. 힐튼은 도심 한가운데 있는 5성급 호텔이다. 서울에 사는 나 같은 소시민에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5성급 호텔에서의 하루란 어쩌다 한 번 큰맘 먹고 구입하는 캐시미어 코트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서울 시민이 이곳을 각별히 여겨온 데는 지난 40여 년간 누구에게나 광장처럼 활짝 열려 있던 아트리움의 역할이 크다. 높게 뚫린 유리 천장 아래로 자연광이 듬뿍 쏟아지며,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탤리언 레스토랑과 이따금 결혼식장으로 쓰이는 아름다운 야외 바비큐장이 있고, 연말이면 천천히 회전하는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자선열차를 볼 수 있는 광대한 로비 공간 말이다. “예전에는 아트 작품이 많은 곳으로 유명했어.” 그간 취재와 결혼식으로 이곳을 자주 찾았다는 매거진 편집장 L이 아련한 눈으로 덧붙였다. “아트리움 중앙에 누워 있던 헨리 무어의 ‘여인상’이 특히 근사했지.”
폐업을 목전에 둔 호텔은 놀랍도록 차분했다. 과하지 않게 친절한, 알맞게 데운 목욕물 같은 직원들의 서비스도 여전했다. 난파하는 타이타닉호에서 마지막까지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하나같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조식이 나오는 뷔페 식당은 정상 운영 중이었고, 수영장 앞에는 그날의 방역 시간을 정리한 타임테이블이 붙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때 배웠다가 까먹은 수영을 남편에게 다시 배운 것도 이곳 수영장에서였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야외 데크에 누워 메리 루플의 산문집을 읽었던 것도 기억난다. 금세 지루해져 책을 덮었다가 그 자리에서 인생 최고의 낮잠을 경험한 것도.
이그제큐티브 룸에 딸린 라운지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늦은 밤 인적 없는 로비를 걸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물결치듯 이어지는 이 아트리움이 21세기 자본주의 셈법으로는 감히 구현할 수 없는 종류의 문화유산이라는 건 건축에 문외한인 나조차 감각으로 알 수 있다. 아트리움 바닥에 깔린 베이지색 대리석은 트래버틴(travertine)이라는 이름의 고급 건축 자재다. 기둥에는 브론즈가, 벽에는 베르데 아첼리오(verde acceglio)라는 녹대리석이 쓰였다. 소고기 사태에 낀 마블링처럼 흰 줄기가 촘촘한 베르데 아첼리오는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채석하는 여러 녹대리석 중에서도 가장 ‘농축된’ 녹색을 자랑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2018년 발행한 〈김종성 구술집〉에 자세히 나와 있다.
힐튼은 한국 모더니즘 1세대 건축가 김종성의 작품이다. 김종성은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의 유일한 한국인 직제자다. 1977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당시 미국 시카고에서 활동하던 김종성을 직접 찾아가 설계를 부탁했다. 예산도 넉넉했다. 서구 현대건축을 향한 동경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1984년 지어진 힐튼에는 모두가 ‘모던’을 향해 달려가던 그 시기의 열망이 뜨겁게 서려 있다.
1984년 경제 호황기에 지어진 힐튼은 2022년 가장 비경제적인 호텔이 되었다. 코로나19가 결정적이었다. 록다운이 지속되자 결혼식이 주 수입원이었던 호텔에 적자가 쌓였다. 힐튼을 인수한 이지스자산운용이 건물을 철거하고 오피스 빌딩을 세운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건축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건축물의 가치가 큰 만큼 보존해 재평가하자는 것이었다. 건축계 바깥의 입장은 또 달랐다. 시민사회가 널리 향유해온 건물이 아니라는 점이 주된 갈등 요인이었다. 호텔 보존은 범사회적 동의를 얻지 못한 소수 건축가들의 논의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힐튼의 미래는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다른 건물들의 운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겁니다. 단순히 건축계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건축가 황두진은 지금 이 논쟁이 우리가 한국 근대사를 대하는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힐튼은 1980년대 초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한국 건축가들이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세계 건축과 직접 소통할 기회를 찾던 시기죠. 그런 때에 세계 근대건축의 핵심이었던 미스 반데어로에의 가르침을 받은 건축가가 이를 한국 토양에 맞게 발전시킨 결과물이 바로 힐튼 호텔입니다. 건축뿐 아니라 문화 전 분야를 통틀어 역사상 이 정도로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별로 없어요. 그런 건물을 시내 여느 빌딩처럼 단순 소유권 논리로 철거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그렇다면 호텔 내부 사정은 어떨까. 영업 종료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객실을 예약하면서 내가 정말로 궁금했던 건 바로 그게 아니었나 싶다. 오랫동안 힐튼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아쉽기는 하죠. 아마 다들 비슷한 마음 아닐까요?” 이른 아침 조식 코너에서 만난 25년 차 소믈리에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다행히 젊은 직원들은 대부분 고용 승계 절차를 밟았습니다. 저처럼 오래 일한 직원들은 퇴직 보상금을 받았고요. 앞으로 뭘 할지는 차차 생각해봐야죠.” 체크아웃을 하며 프런트 직원에게 ‘힐튼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좋았던 점’을 묻자 그는 아직 이별이 실감 나지 않는다는 듯 현재형으로 답했다. “원래 진짜로 좋은 건 소문내지 않잖아요. 힐튼이 그래요. 저희랑 단골들만 아는 자부가 있죠. 탕수육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된 재료를 쓰니까요.” 그렇잖아도 전날 라운지에서 뷔페 샐러드에 놀랍도록 질 좋은 관자가 들어간 것을 보고 속으로 깜짝 놀란 터였다. “저희도 다른 호텔에 묵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서비스 퀄리티가 다른 게 확 느껴져요. 자랑이 아니라 정말로, 직원들끼리 자주 하는 말이에요.”
2022년 12월 30일, 힐튼 간판이 철거되고 호텔 정문 앞 ‘키스하는 연인’ 조각상에 운영 종료 안내문이 붙었다. 12월 31일, 직원들이 유니폼을 반납하고 1995년 첫 기적을 울린 자선열차가 완전히 운행을 멈추었다. 앞서 만난 프런트 직원은 “마지막 날 전 직원이 다 같이 로비에 모여 간단한 티 파티를 열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품위 있는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을 그들을 상상하며, 호텔에서 기념으로 받아온 카드키를 지갑 안쪽 깊숙이 찔러 넣었다.
강보라는 기사와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16년간 잡지에서 일했고 2021년 〈한국일보〉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