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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말하고 싶은 것

로스앤젤레스의 석양처럼 극적이었던 베르사체의 2023 F/W 컬렉션.

프로필 by ESQUIRE 2023.05.02
 
베르사체 2023 F/W 쇼가 지난 3월 9일 열렸다. 장소는 밀라노가 아닌 로스앤젤레스. 베르사체가 LA에서 쇼를 선보이는 건 20여 년 만의 일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선택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베르사체는 대체 불가한 어떤 상징이었으므로. 또 도나텔라 베르사체에게 LA는 그녀가 사랑하는 자유분방한 에너지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쇼는 베르사체의 낭만과 추억, 비전과 포부를 아우르는 축제처럼 읽히기도 했다. 쇼는 원래 3월 10일로 계획되어 있었고 오스카 어워즈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그런데 LA로 향하기 불과 며칠 전, 쇼가 하루 앞당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쇼 예정일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 때문이었다. 심지어 일주일 전엔 34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려 샌버너디노 산맥에 눈이 소복이 쌓인 상황. 일 년 중 굳은 날이 오히려 드문 LA에서 이런 날씨는 악천후라 할 만했다.
 
다행히 쇼 당일 날씨는 화창했다. 베르사체가 이번 쇼를 위해 베벌리힐스 퍼시픽 센터 옥상에 설치한 거대한 계단 무대에 올라서니 LA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한눈에 보이는 도시의 풍경과 스카이라인, 캘리포니아의 파스텔 톤 석양은 그 자체로 쇼를 위한 낭만적인 시노그라피가 되었다. 쇼의 시작이 가까워오자 도나텔라의 초대를 받은 셀러브리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시상식에서나 볼 법한 길고 긴 포토월 앞에선 전설적인 뮤지션 엘턴 존과 베르사체의 새로운 캠페인 모델 앤 해서웨이, 올해 오스카 남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된 키 호이 콴, 두아 리파와 릴 나스 엑스, 마일리 사이러스, 데미 무어 등 그녀의 절친한 스타들이 포즈를 취했고 한국에선 뮤지션 T.O.P와 배우 이병헌 & 이민정 부부, <지금 우리 학교는>의 히어로 박지후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석양의 색이 점점 더 짙어지자 프리퀠의 곡 ‘Part XV’ 오케스트라 전주가 낮게 깔리며 파워풀한 블랙 아워글라스 재킷과 펜슬 스커트를 입은 지지 하디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박스 실루엣 드레스와 여유로운 테일러드 슈트를 입은 모델들이 이어졌다. 곡선과 직선이 섞인 디자인은 대범하고도 분명했으며, 소재와 장식은 한결같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 곳곳에 사용된 메두사 포인트와 크로커다일 모티브의 레더 룩은 베르사체 특유의 글래머러스한 존재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정교하게 수놓은 플로럴 엠브로이더리 가운, 메시 시스루 드레스, 크리스털을 촘촘히 장식한 쿠튀르적 이브닝 슈트 역시 베르사체 아틀리에의 노하우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78벌의 룩이 쏟아지듯 지나간 후 마침내 쇼의 피날레에 맞춰 프린스의 ‘Let’s go crazy’가 흘러 나왔다. 관객들의 끊임없는 박수 갈채가 이어졌고 도시를 울리는 음악에 함께 춤췄다.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밝은 미소와 인사로 화답했다. 뜨거운 열정과 강렬한 환희, 극적인 고양감과 폭발할 듯한 에너지는 베르사체 그 자체였다.
 
 

 
Interview with 
DONATELLA VERSACE 
 LA는 당신에게 어떤 곳인가?
내게 로스앤젤레스는 단순한 장소 그 이상이다. 이 도시는 나를 늘 넓고 크게 생각하게 한다. 게다가 로스앤젤레스는 베르사체의 또 다른 정체성이기도 하고. 이번 컬렉션은 로스앤젤레스와 할리우드의 에너지가 큰 영감이 됐기에 그 극적이고 영화적인 감성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선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이곳 베벌리힐스여야 했다.
LA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개인적으로 최근 가장 좋아하는 곳은 LGBT센터다. 이곳은 퀴어에게 특별한 보금자리다.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한 사람, 단순히 안전한 곳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쇼 일정을 급박하게 앞당긴 것은 당신에게도 큰 결단이었을 거다.
사실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쇼 예정일에 비가 온다는 걸 알았고, 우리는 좋은 쇼를 보여줘야만 했으니까. 그러니 쇼 일정을 앞당기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모두 열심히 노력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남여 통합 쇼를 선보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쇼를 진행할 예정인가?
이번 쇼에서 남여 통합 컬렉션이 가진 강렬한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중에는 다시 남녀 컬렉션을 분리할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한 쇼에서 모든 컬렉션을 함께 선보이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지난 컬렉션과 비교하면, 실루엣이나 스타일의 변화가 눈에 띈다.
이번 컬렉션은 원단 선택부터 드레스 커팅, 재단 같은 일련의 과정에 아틀리에 베르사체 컬렉션의 쿠튀르적 접근 방식을 함께 취했다. 옷을 입었을 때 자신감을 주고,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느낄 만한 강력한 서사의 옷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르사체의 재킷이나 슈트를 입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분명 당신도 스스로를 파워풀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느끼게 될 거다.
반대로 반드시 고수하고 싶은 것도 있을 거다.
뾰족한 어깨 테일러링, 아워글라스 실루엣, 플루티드 네크라인, 남성복의 벨트 마감 등 베르사체의 시그너처가 이번 컬렉션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작업해온 새로운 베르사체의 시그너처다. 물론 ‘베르사체’다운 요소를 유지하면서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새롭고 흥미로운 컬렉션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베르사체의 DNA는 아름다운 럭셔리 테일러링이고 이것만큼은 앞으로도 쭉 지켜나갈 거다.
이번 컬렉션에 영향을 준 아카이브 피스가 있나?
특히 더블브레스티드 재킷과 스커트에 집중했다. 1990년대 베르사체 슈트를 바탕으로 디자인했는데 이 아이템들이 베르사체를 한눈에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패션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아직까지도 계속 도전하게 하는 원동력은 뭔가?
고마운 말이지만 나에게 전설은 영화나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나는 현재를 살고 싶다. 그리고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일하고 싶다. 베르사체와 함께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으로부터 끊임없이 힘과 영감을 받고 싶다.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베르사체 맨은 어떤 사람인가?
자신감 넘치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알며, 예상치 못한 새로운 스타일에도 유연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이를테면 테일러드 재킷을 스커트나 쇼츠에 매치하거나, 가죽 바이커 재킷 안에 악어 무늬 실크 셔츠를 입는 남자다.
이번 컬렉션 중 한국 남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세 가지 룩을 꼽는다면?
테일러드 재킷과 브로드 숄더 코트를 매치하고 스커트나 그레카 포르티코 부츠로 포인트를 더한 스타일, 버클과 시그너처 메두사 버튼을 장식한 모던한 데님 토털 룩, 마지막으로 악어 엠보싱 레더 코트와 반투명 데보라 셔츠를 매치한 스타일을 꼽겠다.

Credit

  • EDITOR 김유진
  • PHOTO 베르사체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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