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종일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 나가게 되는 저녁 미팅 자리는 특히 그렇다. 이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이솝의 휠이다. 음식 냄새를 덮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뿌리는데, 이렇게 해도 역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향수는 휠이 유일하다. 그 어떤 냄새와 섞여도 부담 없는 짙은 흙 내음과 담백한 이파리의 향취. 그래서 휠만 벌써 10여 병을 비웠다. 휴대하기 좋은 작고 가벼운 패키지 또한 이 향수가 지닌 많은 장점 중 하나다. 내 손이 닿는 자리엔 항상 휠이 있다. 휠 오 드 퍼퓸 50mL/15만5000원 이솝.

오랫동안 수염을 길러왔고 직업 특성상 다양한 셰이빙 관련 제품을 경험해봤다. 그중에서도 프로라소의 애프터셰이브 밤은 꾸준히 손이 가는 제품이다. 1948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프로라소는 이미 전 세계 수많은 바버에게 제품력을 인정받은 브랜드. 고전적이고 빈티지한 보틀 디자인이 특히 매력적이다. 피부 타입별로 라인이 나뉘는데 나는 자극에 예민한 편이라 민감 피부용 화이트 라인을 사용한다. 귀리와 녹차 추출물을 함유해 면도 후 트러블 발생을 최소화하고 보습 로션을 바른 것처럼 피부를 부드럽게 보호한다. 과하지 않고 고급스러운 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애프터셰이브 밤 100mL/16달러 프로라소.

몸이 건조한 편이라 보디 제품을 열심히 챙겨 바른다. 오랜 경험에 비춰볼 때 내게 가장 적합한 방식은 보디 버터와 오일을 섞어 바르는 것. 이 편이 훨씬 부드럽게 발리며 피부 밀착력도 좋아서, 각각의 단점을 상쇄하는 동시에 보습력도 높일 수 있다. 프레데릭 말의 뮤스크 라바줴 보디 버터와 오일은 3년 넘게 쓰고 있는 제품. 평소 쓰는 엉 로즈, 포트레이트 오브 레이디 같은 장미 계열 향수와 레이어링했을 때도 향이 거슬리지 않는다. 뮤스크 라바줴 보디 버터 200g/31만1000원, 보디 앤 헤어 오일 200mL/27만8000원 모두 프레데릭 말.

스킨케어 루틴에서 토너 패드는 필수다. 맑은 피부를 갖기 위해선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깨끗하게 닦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로라하는 수십 가지의 토너 패드를 사용해봤지만 비싼 제품이라고 해서 다 맞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독하거나 피부를 더 예민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기 때문. 반면 키노닉스의 카밍 토너 패드는? 벌써 8통째 사용 중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양배추 추출물과 안티 세범 P, PHA 성분이 함유되어 피부 진정부터 모공 수렴, 각질 케어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오코텍스 인증을 받은 100% 목화솜으로 만들어 매일매일 닦아내도 피부에 무리가 없다. 양배추 카밍 진정 토너 패드 70ea/2만2000원 키노닉스.

치실은 오로지 기능만을 위해 태어난 도구라고 생각했다. 불리의 이 제품을 보기 전까지는. 예쁜 패키지, 그 하나의 이유로 집어 든 불리의 치실을 4년째 쓰고 있다. 자주 꺼내지도 않으면서 가방 안에 이 육각형 종이 케이스만큼은 꼭 챙긴다. 매끈한 검은색 실은 그 색깔만큼이나 기능적으로도 마음에 든다. 잇몸에 상처를 내지 않을 만큼 적당히 도톰하고 부드럽다. 지난해 한국에서 단종된다는 소식을 듣고 네 통을 쟁여두었는데, 얼마 안 가 고급스러운 실버 케이스로 다시 출시된 건 웃지 못할 해프닝. 그래도 이 종이 케이스가 가방 속에서 낡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퍽 즐겁다. 덴탈 플로스 가격 미정 오퓌신 유니버셀 불리.

하와이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다 바닷바람에 살짝 마른 듯한, 그 촉촉하면서도 컬리한 헤어스타일을 좋아한다. 새터데이즈 뉴욕의 그루밍 크림은 헤어 오일과 섞어 쓰면 딱 그런 느낌을 내준다. 모발을 꾸기듯이 살랑살랑 바르면 컬이 살아나고 왁스처럼 찐득하게 굳지 않아 바른 듯, 안 바른 듯 자연스러운 스타일링도 가능하다. 작년, 새터데이즈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주문하려 했는데 이 크림이 사라져 있었다. 비슷한 제품도 몇 개 써봤는데 이 크림만큼 마음에 드는 것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겨울 뉴욕 매장에서 마지막 남아 있는 그루밍 크림 다섯 통을 운 좋게 발견했다. “제발 이 크림 좀 다시 만들어주면 안 될까?” 남은 재고를 모조리 쓸어 담으면서 매장 직원에게 사정했지만, 내 간절함이 닿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도 새터데이즈 홈페이지엔 이 크림이 없다. 그루밍 크림 50mL/가격 미정 새터데이즈 뉴욕.

시칠리아 해안을 따라 돌다가 시라쿠사의 작은 호텔 욕실에서 오르티자 시칠리아를 처음 봤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가 뒤엉켜 세상에 둘도 없는 정서를 만드는 섬. 이국적이라는 그 흔한 말이 아깝지 않다. 이 배스 오일의 향과 패키지가 꼭 그랬다. 마침 호텔 근처에 작은 가게가 있어 살 수 있었는데 시칠리아섬이 그렇듯 파고들수록 풍요로워서 요즘도 종종 주문한다. 오르티자의 배스 오일은 총 네 가지. 그중 이 자가라를 제일 좋아하는데 아보카도, 올리브, 피마자 씨앗 오일에 오렌지 꽃을 더했다. 목욕물을 받아두곤 몇 방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내키는 대로 태닝할 때 바르기도 한다. 자가라 배스 오일 200mL/50유로 오르티자 시칠리아.

한동안 치아 상태가 안 좋았다. 오랜 시간 치과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치약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그 즈음 우연한 기회로 쿠토를 알게 됐다. 샛노란 박스에 빈티지한 폰트로 볼드하게 로고가 인쇄된 패키지.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었고 약사가 만든 전통 있는 제품이라는 점도 믿음이 갔다. 거품이 풍성하지 않아서 처음엔 조금 어색할 수 있지만, 양치를 마치고 나면 깔끔한 청량감이 길게 이어진다. 박하사탕 500개를 입안에 한 번에 넣은 느낌이랄까. 뒷맛까지 개운해서 그 이후로 치약은 쿠토만 쓴다. 치약 60g/1만원대 쿠토.

유독 건조한 입술을 가진 탓에 20대 때부터 꾸준히 립밤을 써왔다. 괜찮다는 제품을 여럿 써봤지만 제형과 보습력, 가격을 두루 따졌을 때 완벽하다 할 만한 제품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작년 겨울 블리스텍스의 립 메덱스를 만났다. 블리스텍스는 나사에서 인정한 유일한 립밤 브랜드. 그만큼 보습력이 우수하고 성분도 안전하다. 유칼립투스 잎과 카카오씨 버터가 함유되어 바르고 나면 입술이 오래도록 촉촉하고, 기분 좋은 쿨링 효과도 있다. 부담 없는 가격과 귀여운 패키지 역시 크나큰 장점. 불과 반년 만에 2통을 비웠다. 앞으로도 이만한 립밤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립 메덱스 7g/4000원 블리스텍스.

태양의 두 번째 EP 앨범 〈DOWN TO EARTH〉 재킷 촬영을 준비하며 받은 미션이 있었다. 바닷물에 젖은 머리를 그대로 말린 듯한, 꾸덕꾸덕하고 웨트한 질감의 헤어였다. 곧바로 해외에서 시 솔트 헤어 스프레이 다섯 가지를 주문해 테스트했고, 그중 가장 시안에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제품이 오지엑스의 모로칸 시 솔트 스프레이였다. 뿌린 후에 머릿결이 건조하게 굳는 스프레이도 많은데 이 제품은 오랫동안 촉촉함을 유지했다. 볼륨감을 살려주면서 원하는 형태로 잘 유지되어 헤어스타일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그 헤어를 재킷 화보에 연출하지 않았지만 이 스프레이만큼은 지금도 즐겨 사용한다. 모로칸 시 솔트 스프레이 177mL/8.49달러 오지엑스.

꽤 오래전, 도쿄 여행 중 감기 기운이 있어 찾은 약국에서 발견한 박하유. 휴대성과 사용감이 좋아 일본에 갈 때마다 몇 개씩 사 들고 오는 제품이다. 심신을 청량하게 깨우고 싶을 때 목 뒤에 뿌리기도 하고, 일을 시작하기 전 공중에 분사해 주변 공기를 환기시키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방충 효과도 있어 여름철 모기와 싸우는 데 사용하기도 하고,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마스크에 소량 뿌려 답답함을 덜어내기도 했다. 식품첨가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해서 몇 번 먹어봤는데 맛은 영 씁쓸했다. 박하유 스프레이 10mL/1080엔 키타미 하카 통상.

언젠가부터 거울을 볼 때마다 피부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관리를 받아야겠다 생각했다. 처음엔 큰맘 먹고 에스테틱을 끊었는데 바쁠 때는 제때 관리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실큰의 페이스타이트 3.0으로 셀프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마사지 젤을 바르고 30분 정도 부드럽게 마사지하면 끝. 실제로 피부 탄력이 개선되는 것을 느껴서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꼭 챙겨 쓴다. 다이아몬드 프레스티지 다이아몬드 젤 120mL/2만8000원, 페이스타이트 3.0 마사지기 56만원 모두 실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