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위스키 제국의 황제 '샌디 히슬롭' | 에스콰이어코리아
FOOD

발렌타인 위스키 제국의 황제 '샌디 히슬롭'

샌디 히슬롭은 세계 최대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 중 하나인 발렌타인과 럭셔리 위스키의 대명사 로얄살루트의 마스터 블렌더다. 그는 농담으로 자신이 위스키 왕국의 차르라고 말했으나, 우린 그가 진정한 황제라고 생각한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3.05.30
 
발렌타인의 선대 마스터 블렌더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첫 번째 마스터 블렌더는 창립자인 조지 발렌타인이었죠. 스코틀랜드 동부의 식료품 가게에서 블렌디드 위스키 사업을 시작해 서부의 글래스고 지역까지 사세를 떨쳤죠. 그다음으로는 전쟁 시기에 발렌타인을 이끌었던 조지 로버트슨이 있고, 제 멘토이기도 한 잭 가우디가 그분의 뒤를 이었죠. 잭 가우디는 스승이었고, 보스였지만, 제 친구이기도 했죠. 잭 가우디의 뒤를 이은 블렌더가 바로 로버트 힉스입니다. 항상 신중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잭 가우디와는 달리 힉스는 외향적이었죠. 제겐 두 사람 모두와 일 할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회사에 잭과 일하고 싶다고 말했죠. 그래야 나중에 잭이 회사를 그만뒀을 때 힉스의 의견과 상반되는 견해로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번에 발표한 발렌타인 40년 마스터클래스는 당신이 잭 가우디에게 배운 다섯 가지 기술을 토대로 한 해에 하나의 기술을 주제 삼아 다섯 해 연속으로 공개하는 컬렉션이지요. 발렌타인의 역사에 5명의 마스터 블렌더가 있었으니, 5명의 이름을 딴 5개의 발렌타인 40년을 기획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잭 가우디라는 마스터 블렌더가 그만큼 특별했다는 건가요?
매우 특별하지요. 입사 후 스코틀랜드 동부에서 글래스고까지 이사를 가야 했는데, 그곳에서 저를 돌봐준 사람이 바로 잭이었어요. 아로마 향미를 식별하는 법을 알려준 것도, 그것들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도 모두 잭이었죠. 물론 때로는 쉽지 않은 직장 상사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아주 공정했죠.
이번 발렌타인 40년 마스터클래스의 주제는 ‘리멤버링’입니다. 전 이 단어를 듣고 추억 같은 게 아니라 위스키를 블렌딩할 때 반드시 필요한 기억의 기술을 얘기하는 거라고 단박에 예상했어요.
맞습니다. 이번 주제인 ‘리멤버링’은 마스터 블렌더로 일하면서 필수 불가결한 여러 가지 향미를 식별하고, 기억해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거예요. 그 능력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40년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거거든요. 우리 머릿속에는 각자가 맡은 향미에 대한 사전이 하나씩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 책에서 일치하는 향미의 기억을 찾아내는 것이죠.
얼마 전 조향사들이 사용하는 향기 물질 키트를 두고 여러 사람들과 공부해본 적이 있었는데, 다들 향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월계수 향이었는데, 누군가는 바질이라 하고 누군가는 낙엽이라고 했지요. 하나의 언어로 통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어요. 사람이 모든 냄새를 다 외울 수는 없지요. 각자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향기의 책도 다 다르고요. 중요한 건 일관성입니다. 전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샌디라면 이 향에 대해 어떻게 표현할까’는 전혀 신경 쓰지 말라고 가르쳐요. 자신의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그대로를 ‘일관되게’ 기억하고 표현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오늘 누군가가 발렌타인 17년을 맛보고 ‘달콤한 서양배 맛이 난다’고 표현했다면, 내일도 똑같이 ‘달콤한 서양배 맛이 난다’고 하면 되는 거죠. 그 향의 실제가 배가 아니라 사과인 건 상관없어요.
한국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시장 중 하나가 럭셔리 위스키 시장입니다. 2000만원을 상회하는 발렌타인 40년 마스터클래스를 한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는 것 역시 일종의 신호일까요?
한국 시장이 발렌타인의 진가를 인정해주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럭셔리 시장을 지금의 시점에 특별히 공략하고 있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저희는 1930년부터 17년, 30년 제품들을 만들어온 브랜드잖아요.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원액이 그만큼 방대하다는 얘기죠. 특히 제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40년 되는 해에 발렌타인 40년 마스터 컬렉션이 출시되어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잭 가우디도 38년 정도밖에 채우지 못했거든요.
5개의 기술이 술로 어떻게 구분되고 표현될지도 궁금하네요.
사실 이번에 저희는 5개의 각기 다른 증류소, 각기 다른 캐스크에 중점을 맞추려 했어요. 그 첫 번째로 선택한 곳이 덤바턴이었고요. 덤바턴은 가우디가 직접 관리했던 곳이고 제가 가우디와 함께 위스키 원액을 다뤘던 곳이라 제겐 매우 특별합니다. 지금은 이미 증류를 멈춘 상태라 원액을 더 생산하지 않고 얼마 남지 않았죠. 앞으로 이런 식으로 희귀한 증류소의 원액을 바탕으로 한 위스키들이 출시될 텐데 마지막 다섯 번째가 나오는 2027년은 발렌타인이라는 브랜드의 200주년이 되는 해지요. 첫 술인 덤바턴은 제 입사 40주년을 기념해, 마지막 다섯 번째는 회사의 창립 200주년을 기념해 나오는 셈이죠.
오! 기막힌 계획이 다 있었군요. 아주 좋은 마케팅인데요?
맞아요. 사실이에요.
당신은 어떤 마스터 블렌더로 기억되고 싶고, 또 당신을 위해 후대들이 위스키를 블렌딩한다면 어떤 증류소의 원액을 키 몰트로 삼고 싶은가요?
후대들을 위해 원액들을 완벽하게 보관해준 마스터 블렌더로 기억되고 싶고, 증류소 중에는 글렌버기의 몰트를 키 몰트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제게 매우 의미가 깊은 증류소거든요.
어째서 글렌버기인가요?
오랜 시간 숙성된 위스키들뿐만 아니라 이제 막 만들어져 숙성에 들어가는 위스키 원액들도 제가 관리합니다. 여러 증류소의 원액을 비교해보면 글렌버기의 스피릿은 정말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잘 농축된 과일 향미가 느껴져요. 그 맛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원액들이 아메리칸 오크가 품은 바닐라, 토피 등의 향과 어우러지면 정말 아름다워지죠.
이번 기사의 제목을 ‘위스키 함대의 장군’으로 할까 싶어요.
하하하. 그거 말고 이건 어때요? ‘The Whisky Tsar’. →

Keyword

Credit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김성룡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최지훈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