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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김히어라가 역할마다 전혀 다른 이미지를 선보일 수 있는 이유

범죄 조직 수장 용사장, 탈북자 계향심, 마약중독자 이사라, 절대악 겔리 버허드, 사랑을 추구하며 투쟁한 화가 프리다 칼로까지. 김히어라가 이렇게나 다양한 캐릭터를 다양한 모습으로 열심히 재현해내는 이유는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프로필 by 김현유 2023.07.24
 
역할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히어라 씨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예요. 처음 이름을 알렸을 때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계향심과 <더 글로리> 이사라가 같은 배우였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죠. 개인적으로는 연극 <마리 퀴리> 포스터 속 히어라 씨와 <경이로운 소문> 겔리가 동일 인물인 점은 알면서도 놀랍더라고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아요.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를 깊게 확장해서 들어가는 분들이 있고, 저처럼 여러 가지로 변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죠. 맞고 틀린 건 없지만, 저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접한 분들이 김히어라라는 사람은 잊고 그 캐릭터에만 집중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요. 그래서 공연할 때는 비슷한 장르나 캐릭터는 지양하고, 차기작으로는 항상 아주 다른 작품들을 골랐죠. 그런데 저는 아직도 저를 발굴하는 중이에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해낼 수도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은 거죠. 동시에 겁나는 것도 있어요. 내 부족한 연기가 들킬까 봐 무서운 거죠. 비슷한 역할을 연달아 맡았다가 이전과 완전히 비슷한, 뻔한 모습만 보여줄까 봐. 들키지 않기 위해 매번 새로운 역할을 선택했어요. 가끔 친구들이 역할을 두고 상담을 할 때가 있어요. 저는 그 때마다 이렇게 말해요. “새로운 거 해봐. 생각보다 잘할 수 있어. 대신 들키지 않게 조심해.”(웃음)
들키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죠?
기자님이 아까 물었듯이, <경이로운 소문>의 겔리나 <더 글로리>의 이사라 모두 악역이고, 그전에 찍은 <배드 앤 크레이지>의 용사장도 빌런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비슷할 수 있고, 변화 없이 똑같아 보인다면 그건 제 한계를 들킨 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똑같은 악당이라도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더더욱 노력했죠. 세 작품에서 모두 각각의 매력을 접할 수 있을 거예요.
요즘은 뮤지컬 <프리다> 연습으로 바쁠 텐데,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요?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식사하고 약을 먹습니다. 그러고 운동 또는 발성 레슨을 받으러 갔다가, 연습을 하러 가서 열심히 연습을 하죠. 연습 마친 후엔 이어폰으로 노래 가사를 외우면서 귀가하고, 그러고 나서는 대본이나 TV 보다가 자는 생활을 하고 있죠.
일과 연습의 반복이군요.
드라마 찍을 때랑 좀 달라요. 촬영할 때는 남는 시간에 어떻게든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애를 쓰거든요. 제가 엄청난 외향형 인간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에겐 배울 점이 있거든요. 특히 연기할 땐 ‘아, 이 캐릭터는 누구누구랑 비슷해’ 하고 참고하는 부분이 있죠. 그런데 공연은 고강도의 체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라 최대한 사람 안 만나고, 말 안 하고, 힘을 좀 비축하려고 해요.
핑크 드레스, 레드 글러브 모두 페라가모. 이어링 프루타. 샌들힐 로저 비비에.

핑크 드레스, 레드 글러브 모두 페라가모. 이어링 프루타. 샌들힐 로저 비비에.

오늘은 쉬는 날이라 약속을 잡았나 봐요.
아까 들으셨어요?(웃음) 정말 오랜만의 약속이에요.
프리다 칼로의 삶을 다룬 <프리다>를 통해 뮤지컬 주연을 처음 맡게 됐어요. 이미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라 준비하면서 디테일에 많이 신경 썼을 텐데, 김히어라의 프리다를 보여주기 위해 어떤 것에 집중했나요?
프리다를 주제로 한 영화, 책, 다큐멘터리 등 온갖 콘텐츠를 다 찾아봤어요. 원래 그녀를 좋아했기에 집에 자료도 많았고요. 처음에는 프리다의 고통에 집중하려 했는데, 사실 프리다가 반복적으로 하는 건 ‘사랑’이거든요. 고통이 없어요. 그녀는 계속 사랑을 갈구하고,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지를 생각해요. 동시에 인생을 축제로 여겨요. 남들이 봤을 때는 고통스러운 삶인데, 스스로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너무 아픈 삶을 살다 간 사람이 아닌, 치열하게 삶의 고통에 투쟁해온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동시에 뮤지컬이 끝나고 난 뒤 관객들이 프리다에게서 용기를 받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첫 주연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사실, 너무너무 부담됩니다.(웃음) 저랑 같이 프리다 역을 맡은 배우가 (김)소향 언니, 알리 언니예요. 워낙 어릴 때부터 노래방에서 따라 부르던 가수들과 함께 주연을 맡게 되어 고민이 컸어요. 한동안 뮤지컬을 안 했던 터라 몸을 뮤지컬에 맞추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도 필요했고요. 그래도 하기로 했던 건…
들킬까 봐?
맞아요. 들킬 수도 있어서 새로운 게 필요했어요.(웃음) <경이로운 소문>을 끝내고, 아까 얘기한 대로 세 작품 연달아 악역을 하고 나니 에너지가 소진되고 말았어요. 덕분에 아주 아프기도 했고요.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딱 들어온 게 <프리다>이니,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연습을 시작하니까 방전됐던 에너지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오감이 살아나는 느낌이었어요. 무대에서 멋진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잃어버린 것들을 충전하고 있는 기분이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아까 촬영 중에 조명이 켜지니까 ‘무대에 선 것 같다’면서 기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너무 설레요. 저는 무대가 너무 좋아요. 무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분명 있어요. 뭔가 ‘네 맘대로 펼쳐봐’ 하는 느낌.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느낀 것과 비슷해요. 이 공간 안에서는 제가 가진 모든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거죠.
역할을 준비하면서 캐릭터를 공부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보였어요. 가장 유명한 이사라를 예로 들면 각종 마약 다큐를 보고 이사라의 심리 상태를 추측해서 캐릭터를 쌓아 올렸더라고요. 프리다 칼로 역시 비슷했던 것 같고요.
생각보다 힘들진 않아요. 똑같은 책도 공부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졸리기만 한데 좋아해서 읽는 건 재미있잖아요. 저는 제 캐릭터를 ‘덕질’ 해요. 자연스럽게 생활에 녹여요. 얼마 전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저더러 “프리다에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만나자마자 차에 멕시코 음악 켜놓고 다른 주제로 얘기하다가 “프리다가 할 법한 말 같아” “저거 프리다가 좋아했던 꽃이다” “프리다가 그린 그림이랑 비슷하다” 등등 계속 프리다 얘기를 해버렸거든요. 결국 친구가 그만하라고 고개를 젓더라고요.(웃음)
그림과 인연이 꽤 있어요. 고등학생 때 미술과 연기를 놓고 고민했고, 이사라와 프리다 칼로도 화가고, 또 히어라 씨는 아직도 그림을 그리잖아요.
연기와 동시에 질리지 않는 또 한 가지가 바로 그림이에요. 연기랑은 좀 다른 게 결과물을 얻을 때까지 집요하게 하게 돼요. 어떤 때는 16시간을 앉아서 그린 적도 있어요. 일기를 쓰듯 제 감정을 그림에 쏟아내는 거라, 오래 끌지 않고 정해진 시간 안에 딱 끝내야 좋더라고요.
연기와 그림, 둘 다 감정을 다루는 건데 차이는 뭐예요?
많은 배우가 우울증 같은 문제를 겪는 게 결국 ‘내가 누구지’라는 질문에 답을 못 하기 때문이거든요. 다른 인물로 오래 살다 보니까,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진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지 판단하지 못하는 때가 와요. 무대 위, 혹은 카메라 앞에서 살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상태가 텅 비어버리는 거죠. 저에게는 스스로를 찾을 수 있는 매개체가 그림이에요. 정말 모든 감정을 쏟아내거든요. 창피할 때도 있어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쟤가 저런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티가 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그런 감정까지 담아야 부정적인 마음까지 흘려보낼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숨기지 않으려 해요. 그러고 나면 확실히 많이 해소가 되고요.
민트 플리츠 드레스, 팬츠 모두 YCH. 이어링 잉크.

민트 플리츠 드레스, 팬츠 모두 YCH. 이어링 잉크.

예전에 개인전을 했는데, 또 할 계획이 있어요?
아직은 없어요. 그때는 사실 유명할 때가 아니라서, 제 지인들과 소수의 팬들에게 ‘나 사실 좀 아팠어’ 하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서 열었던 거예요. 수익금은 기부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은 분들이 오실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그때와는 달리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신 분들도 보게 될 거고, ‘얘 뭐야, 얘가 화가라고?’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죠. 아직 많이 부족해서 계획은 없습니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웃음)
(웃음) 맞아요. 정확해요. 그래서 지금은 두려워요. 나중에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악역은 실컷 해봤는데, 또 어떤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코미디, 완전 망가지는 코미디나 멜로를 해보고 싶어요. 지금 <프리다>를 하다 보니까, 늘 사랑을 추구한 그녀처럼 사랑을 생각하게 되네요. 또 동시에 투쟁적인 인물도 해보고 싶어요. 독립운동가라든지. 아,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아요. 산만하게도.(웃음)
이렇게 매력이 넘치는데, 혹시 예능 나가볼 생각은 없어요?
아직은 들킬까 봐 안 돼요.
뭐 이렇게 들킬 게 많아요.(웃음)
그러니까요.(웃음) 그런데 정말 솔직한 생각이에요. 연기를 하는 사람, 배우로서의 저를 사람들이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을 때 예능에 나가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 막 대중에게 제 존재를 각인하기 시작했고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역할이 많잖아요. 미리부터 보이게 되면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지게 될까 봐 아직 자신이 없어요. 더 나은 연기, 스스로 만족할 만한 연기를 보이게 될 때는 꼭 출연할 거예요. 그때까지는 역할에 집중하려고요.

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GRAPHER 채대한
  • STYLIST 허선영
  • HAIR 도희
  • MAKEUP 권호숙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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