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골 때리는 그녀들> 배우 이영진이 축구를 하며 처음 느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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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상태가 쓰레기 수준이라는 것도 축구를 하고 나서야 알았다. 난 내가 그래도 운동에 젬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달리기든 멀리뛰기든 체력장의 어떤 종목도 평균은 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축구를 할 만한 수준의 신체가 아니었다. 당시 내 신체의 근육 비율은 한 자릿수였고 심지어 그 근육도 모델 일을 하면서 유지해온 복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앉고 서고 누울 수 있는 정도의 근력만 가진 상태”라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었다. 부상에서 뛸 수 있을 만큼 회복된 후에도 벤치 신세였다. 실력이 모자랐으니까. 벤치를 지키고 있자니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희생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너무 힘들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도 실력이 떨어지는 나와 교체하는 순간 팀이 위기를 맞을까 싶어 교체 사인을 보내지 않는다. 그게 너무 싫었다. 나의 플레이가 불안해서 누군가가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결장과 악플로 점철된 암흑기의 부채감이 나를 훈련으로 내몰았다.
처절한 승부욕을 온몸으로 느껴본 것 역시 처음이었다. 액셔니스타에 처음 합류했을 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하는 배우 동료들을 보며 “예능인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승리에 집착해 몸을 다쳐가며 뛰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얘들아, 우리 배우고 모델이야. 축구선수 아니잖아’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적도 종종 있다. 지금은 내 눈이 그 누구보다 격하게 뒤집혀 있다. 부상 회복과 함께 1일 3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을 이용한 기초체력 단련을 하고, 점심때면 재활 스포츠센터에 가서 종아리 근육과 허벅지 근육을 키웠다. 저녁에는 본격적인 축구 개인 레슨을 받았다. 그렇게 1주일에 5일을 가득 채웠다. 마음 같아서는 7일을 모두 채우고 싶었지만, 근육을 쉬어주지 않으면 또 다른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충고를 들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까지 해가며 이겨야만 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우리는 똑같이 힘들다. 액셔니스타뿐 아니라 다른 모든 팀도 최선을 다해 개인 시간을 짜내가며 훈련한다. 그러니 오히려 이런 마음이 든다. 똑같이 힘들었는데, ‘우리’가 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승리와 패배가 사람의 신체까지 지배한다는 건 축구를 하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다. 방송을 보면 잘 아시겠지만, 지금의 <골 때리는 그녀들>의 스피드는 예전에 비해 훨씬 빨라졌고, 몸싸움도 격해졌다. 한 게임을 뛰고 나면 무조건 1주일은 골골 앓는데, 지면 그 회복 기간이 2주일로 늘어난다. 몸이 더 오래 아프고, 같은 부상도 더 서럽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걸 깨달은 다른 사건도 있었다. 내가 들어간 시즌에 우리는 7연승을 했다. ‘챌린지 리그’ 첫 경기에서 개벤져스에게 한 번 지고 4번을 연달아 이겨 ‘슈퍼 리그’로 올라갔고, 슈퍼 리그에서도 3번을 연달아 이기며 결승 무대에 섰다. 내 덕은 아니지만, 내가 뛰기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기에 승리에 잔뜩 취해 있었다. 결승을 치르기 전 4강에서 나는 에바가 찬 공에 맞은 갈비뼈 쪽이 조금 아프다고 생각했다. 아팠지만, 진통제 주사를 조금 맞고 뛰었다. 결승전 상대는 ‘국대패밀리’였다. 지난달 파리 생제르맹의 미드필더가 된 이강인 선수의 누나 이정은이 있는 팀인데, 그 경기에서 우리 팀과 욱신거리던 바로 그 부위를 부딪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진 상태였다. 4강 경기에서 부러진 것인지, 결승전에서 부러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뼈가 부러진 줄 몰랐다는 사실이다. 어딘가가 부러져본 적 없는 사람은 통증이 와도 그 통증이 뼈가 부러지거나 인대가 끊긴 심각한 통증인지, 그저 타박상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갈비뼈에 금만 가도 숨을 쉬지 못할 만큼 아프다는데, 난 아프긴 한데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아서 그냥 뛰었다. 그때는 우승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고, 난 정말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인생의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를 얻게 된 것 역시 축구 덕분이다. 세 번째 시즌의 준결승전에서 우리는 모델들로 이뤄진 ‘구척장신’과 붙었다. 3:4로 뒤지던 후반, 혜인이(정혜인)의 킥인을 받아 내 앞을 막아선 현이를 제치고 슛을 성공시켰다. 그 전에도 골을 넣어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멀리서 에라 모르겠다며 때린 공이 들어가 어떨결에 기록했던 내 인생의 첫 골이 있었다. 그러나 현이를 제치고 넣은 골은 혜인이의 킥인이 올 때부터 머리에 그리고 있던 장면을 내 이 보잘것없던 신체, 그러나 6개월 넘게 단련해오며 이제는 신체의 근육 비율 27%를 찍는 당당한 신체로 정확하게 수행해낸 성공이었다. 그 골을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내가 인생을 살며 상상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지난 7월 5일 방송에서 우리 팀 ‘액셔니스타’는 처음으로 슈퍼 리그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나는 울었다. 그야말로 펑펑, 엉엉 울었고 “축구가 없는 인생을 이제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 축구가 좋으냐고 물으면, 잠시 지옥 같은 훈련을 떠올리며 망설일 것이다. 그러나 저 말만은 단 하나의 과장도 보태지 않은 사실이다. 이제는 축구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그날 눈물을 흘릴 때 지금 내가 적은 이 모든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시에 축구를 하며 가장 소중했던 순간은 이겼을 때의 기쁨이 아니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몇몇 순간이 있었다. 두 번째 시즌 결승에서 패배했을 때, 세 번째 시즌 준결승에서 5:4의 난타전 끝에 석패했을 때 느낀 소중한 감정들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패배의 순간만큼은 나와 완벽하게 같은 패배의 감정을 공유하는 다섯 명의 동료가 있다는 어떤 위안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그 순간 우리 여섯은 우정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느꼈다. 아마 참전 군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인간은 절대 완벽한 소통에 도달할 수 없다. 내 감정은 언어로도 예술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타인에게 완벽하게 전달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액셔니스타와 함께 패배했을 때 우리가 인간이 도달하기 가장 힘든 단계의 소통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험이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이영진은 배우이자 모델이다. 2021년 시즌1을 마친 SBS의 축구 예능 프로 <골 때리는 그녀들>에 합류했다. 그날 이후 축구는 이영진의 삶에서 꽤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이영진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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