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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비비의 '홍대R&B'와 '한강공원' 속에 숨어 있는 SF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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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3년 만에 인터뷰하는 거예요.
네? 말도 안 돼. 3년이나 됐어요?
네. 이전 인터뷰가 2020년 12월호였으니까 딱 3년이에요.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그 3년 동안 형서 씨의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 같더라고요. 서는 무대도 완전히 달라졌고,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졌을 테고.
맞아요. 정말 많이 바뀌었죠.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그대로일 수가 있어요?
저는 제가 엄청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요. 당연히 변하죠. 모든 것이 다 바뀌는데 어떻게 안 변하겠어요.
최근 인터뷰들 찾아봐도 여전한 것 같고, 아까 촬영 때도 사실 너무 웃기고 반가웠거든요.
어떤 때요?
예를 들어서… 스튜디오 음악에 맞춰 춤추면서 나오다가 ‘아직 촬영 세팅 좀 더 해야 한다’고 하니까 뒷걸음질로 춤추면서 들어가실 때? 뭐랄까, 형서 씨 특유의 ‘로우키의 하이텐션’ 같은 게 여전하다고 느꼈어요.
(웃음) 로우키의 하이텐션, 맞네요. 제가 그런 건 있어요. 근본이 밝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또 에너지는 있으니까. 사실 제가 보기에는 그동안 제 내면은 많이 바뀌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어떤 흐름이라든가, 공식이라든가, 신념이라든가 그런 건 아주 많이 바뀌었어요. 제 의식이나 자아는 되게 말랑말랑한 편이라서 그런 부분은 굉장히 자주 바뀌는 편인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말버릇이나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들이 잘 안 바뀌는 것 같아요.
아니, 그런데 사투리는 왜 오히려 더 심해진 거예요? 이런 케이스는 제가 또 처음 보는데.
요즘 마음이 편해서.(웃음) 3년 만에 만나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더 그런 것 같고요. 느낌이 괜히 친한 것 같고. 그러고 보니까 얼마 전에 제 메이크업 해주는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너를 데뷔 때부터 봤는데, 하나도 안 변했다고요. “네 잘못 때문에 지각 한 번 한 적이 없고, 늦잠 한 번 잔 적이 없고, 기분 상한다고 뭘 펑크 낸 적도 없잖아.”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좀 놀랐어요. 지각을 한다거나 펑크를 낸다거나 그런 옵션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일에서는 그런 융통성이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게 칭찬이라는 게 그냥 웃겼는데요. 생각해보니 좀 우쭐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 나 안 변했어. 지각한 적 없어. 난 좀 달라, 하고.(웃음)
3년 동안 새롭게 알게 된 스스로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성실함. 새롭게 알게 된 단점도 있을까요?
새롭게 알게 된 단점… 제가 너무 예민해요.
오래도록 함께 일한 매니저와도 심하게 다툰 적이 딱 한 번밖에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 정도면 꽤 무던한 편 아닌가요?
그게 문제인 거죠. 예민한 사람인데 그 모든 걸 계속 참고, 그러다가 가족 같은 사람들한테 가서 터져요. ‘이게 이랬으면 좋겠는데 저 사람이 지금 상태를 더 편해하는 것 같으니까 그냥 둬야겠다’ ‘나 방금 상처받았지만 저 사람이 나 상처받으라고 한 얘기는 아닌 것 같으니까 넘어가야겠다’ 그렇게 하나하나 넘기다가 한계에 도달해서 한 번 뻥 터지면 그때는 아무 일도 아닌 걸로 화를 내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작은 서운함이나 불편함을 그때그때 표현하려고 해요. 참다가 터지면 감정으로 밀어붙이고 질러버리는데, 그냥 좀 서운한 상태에서는 좀 더 잘 정리해서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면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긴 한데, 엄마가 오늘 우리 집에 온다고 했으면서 안 온 게 난 너무 섭섭해.” 이런 식으로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엄마한테 그렇게 얘기한 날도 결국 싸움으로 흘러가긴 했는데.(웃음)
결과를 떠나서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는 그 말 자체는 굉장히 예쁘고 좋은데요.
요즘은 또 웃기게, 좀 재미있게 표현하는 법도 익히고 있어요. 예를 들면 “아, 진짜 짜증 나게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할 상황이 있다고 쳐요. 그럼 대신 이렇게 말하는 거죠. “너라는 계집애는 매일 나한테 이렇게 똥을 먹여.”
(웃음) 웃겨서 따지고 들 생각도 안 날 것 같긴 하네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해야 해요. 제가 너무 예민해서. 진짜 모든 것이, 사는 게 전부 다 피곤해요. 근데 또 생각해보면 그렇게 예민해서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런 성격이 어떤 분야에서는 재능이 되니까. 저희 할머니는 시인이고 아버지도 음악을 하셨는데, 다들 성격이 그래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히스테릭함이자, 우울이자, 예술혼인 거예요. 박영자(김형서의 할머니)의 우울.

니트, 셔츠, 쇼츠, 타이 모두 발렌티노. 슈즈 프라다.
그렇게 자양분이 되니까 계속 스스로의 광기를 파고드는 예술가도 많은데, 그래도 형서 씨는 평정이나 건강한 관계를 찾고자 노력한다는 점이 다행스럽네요.
2022년이 제 인생 최악의 시기였어요.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던, 계속 풀지 못했던 내면의 어둠이 폭발한 것 같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작년 중순 정도까지는 그냥 살면서 행복한 적이 없었구나 싶은 거예요. 그런데 올해는 어떤 계기로 이렇게 좋아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모든 게 한 번에 왔던 것 같아요. 좋은 사람, 좋은 동료, 좋은 친구, 좋은 취미, 좋은 일거리, 좋은 음악, 좋은 나 자신과 모든 것….
지난해는 데뷔 4년 만에 정규 1집 <Lowlife Princess: Noir>를 내놓은 해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앨범 작업을 하는 내내 단 하나만 생각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까지 어두워야 했나.’ ‘나는 왜 이렇게까지 불행한가.’ 그 앨범을 통해 그걸 풀고 싶었죠. 물론 누가 대신 답을 줄 수는 없는 문제이긴 한데, 고모가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저희 고모가 심리학 박사거든요.
최근에 발표한 싱글 <홍대 R&B>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건 그래서였군요. 1집 이후 첫 싱글인데, 앨범 소개에도 이런 표현이 쓰여 있어요. ‘비비 사랑의 에라(era) 시작’.
1집으로 ‘누아르 에라’가 정리된 거죠. 그러니까 그 안에 스토리가 다 있어요. 누아르는 어떤 애가 사랑 때문에 사람까지 죽이고 막 이런 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노래들이었고요. 사랑 에라는 2044년 한강 복개 사업이 끝난 후를 배경으로 그 한강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아, 근데 이게 말로 하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그렇군요. 보통 음악에 이런 식으로 스토리를…
(끼어들며) 혹시 듣고 싶으세요? 얘기해드릴까요?
저는 좋아요. 다만 형서 씨가 이 인터뷰 뒤에 스케줄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저는 괜찮아요. 얘기 잠깐 들으실래요? 20분 안에 끝나요. 10분이면 돼요.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10분.
(웃음) 그럼 해주세요. 듣고 싶어요.
과학자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의 천재 아들이 열다섯 살에 죽어요. 그래서 DNA를 난자에 넣고 다시 잉태하는 신기술로 애를 살려내죠. 그런데 사실 그 기술은 윤리적 문제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 옆에 숨어 살게 되고요. 그리고 그해에 오래도록 엄청나게 사랑받아온 국민 여자 가수가 사망하는 일이 생겨요. 따라 죽는 사람도 많고, 그러니까 국민청원이 막 올라오는 거예요. 이 가수, ‘이브’를 살려내라고. 그래서 예외적으로 허용해서 이브-1이 태어나게 돼요. 그 둘이 자라고 나니까 이제 2044년인 거죠. 열다섯 살이었던 남자애와 50대 후반의 여자가 동갑으로 태어난 거예요. 이브-1은 음악을 엄청나게 잘해요. 목소리도 이브랑 똑같고. 그런데 이브는 발라드랑 예쁜 노래만 불렀는데 이브-1은 자꾸 반항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거죠. 반면에 남자애인 루카는 원본과 달리 천재가 아니에요. 어느 날 부모가 그런 부분에 대해 말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 여차저차해서 이브-1과 루카가 같이 자신들의 근원을 더듬는 여행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돼요. 루카의 원본은 천재였는데, 대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전혀 몰랐어요. 맨날 왕따당하다가 자살해서 죽은 거였죠. 이브-1은 이브가 맨날 발라드만 부르는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 이면에서는 욕망과 광기에 충실한 완전히 미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래서 두 사람은 그 여정에서 큰 충격을 받고, 결국 죽기로 해요. 인간은 원래 아무 목적 없이 태어나는 건데 둘만 목적을 띠고 태어났잖아요. 하지만 이브-1은 예쁜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부르는 애가 아니고 루카는 천재가 아니니까 그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거죠. 근데 자살이라는 게 사실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거든요. 그렇잖아요. 칼날이 잘 안 들어가요. 그래서 그렇게 포기하고 앉아 있는데, 둘 다 나이가 열여덟 살, 열아홉 살이 됐고 성에 눈을 떴을 때니까 갑자기 키스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키스를 하다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죠. “너도 가짜고 나도 가짜지만 우리가 아이를 낳으면 걔는 진짜잖아. 목적 없이 태어난 애잖아.” 이렇게 흘러가는 이야기입니다.
와, 재미있네요. 그럼 이 이야기가 곡들의 밑바탕이 되는 세계관 같은 건가요?
맞아요. 이브와 이브-1이 만든 곡이 하나씩 나오는 거죠. 이번 싱글에서도 이브-1이 만든 게 ‘홍대 R&B’, 이브가 만든 게 ‘한강공원’이고요. ‘홍대 R&B’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표현이 거칠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정적인 시선은 아니고, 어둠과 빛을 구분하지 않는 어조의 이야기에 가깝죠. 반면에 ‘한강공원’은 은유로 가득하고, 세상과 사랑을 무조건 예쁘게 바라보는 일종의 강박으로 가득한 노래고요. ‘굉장히 작위적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의도하고 만든 노래.
그럼 이 이야기는 어디에 나와 있어요?
아무 데에도 안 나와 있어요. 그냥 저만 알고 있는 거죠. 그렇게 해도 알아낼 사람은, 제 스토리와 제 세계관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찾아내더라고요. 여기서 무슨 얘기 하고 저기서 무슨 얘기 하는 걸 다 조합해서. 분명히, 제발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제발. 내가 좋아하니까 제발.
그렇게 숨겨진 이야기를 제가 기사에 실어도 되는 거예요?
네. 그냥 써주세요. 제가 어떻게 전개해보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작가님도 구해야 하고, 뭐 어떻게 하기가 힘들 것 같더라고요.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웃음)

시퀸 드레스 프라다. 글리터 스틸레토 돌체앤가바나.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이규원
- STYLIST 윤지빈
- HAIR 박창대
- MAKEUP 이숙경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동희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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