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드미트리 메스나흐가 말하는 '파인 와인'의 세계

한국을 찾은 잭슨 패밀리 와인즈의 마스터 소믈리에 디미트리 메스나흐를 만났다. 전 세계에 300명밖에 없는 와인 업계에서 가장 고귀한 직업과 파인 와인의 본질에 대해 물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3.12.29
 
 
마스터 소믈리에는 전 세계에 3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아직 한국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당신은 제가 처음 만나본 마스터 소믈리에이기도 하고요.
마스터 소믈리에(MS)는 Introductory(입문), Certified(공인), Advanced(심화) 그리고 마지막인 Master Sommelier의 4단계로 나뉘어 있죠. 현장에서 소믈리에로 활동하면서 이 과정을 밟으면 짧게는 7년, 길게는 10년까지 걸립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과정이 한국에서도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곧 한국에서도 마스터 소믈리에가 나올 겁니다.
지금 메스나흐 씨가 몸담고 있는 잭슨 패밀리 와인은 거대한 와인 기업이죠. 대중에게도 매우 익숙한 기업이고요. 그곳에서 당신의 역할은 뭔가요?
잭슨 패밀리라고 하면 모두가 알고 있는 켄달 잭슨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죠. 잭슨 패밀리 와인즈는 이 켄달 잭슨을 포함해 캘리포니아에 35개, 오리건주에 4개, 호주에 3개, 이탈리아 토스카나·보르도·남아프리카공화국·칠레에 각각 1개의 와이너리를 둔 거대한 와인 기업입니다. 설립자인 제스 잭슨(Jess Jackson)은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한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죠. 원래는 인생 말년을 준비하며 1974년부터 소소하게 샤르도네 품종을 길러 파는 은퇴한 포도 농사꾼이었는데, 1982년 불경기가 계기가 됐죠. 경기가 안 좋으니 어떤 와이너리도 제스의 샤르도네를 사가지 않았던 겁니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팔고 싶지는 않았던 제스 잭슨은 결국 ‘차라리 내가 내 포도로 와인을 만들겠다’며 와인을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죠. 그렇게 처음 만든 와인이 그 유명한 ‘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Kendall Jackson Vintners Reserve Chardonnay)죠. 이 와인이 10년 후인 1992년부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샤르도네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는 미국의 대표 샤르도네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각 와이너리들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건가요?
아녜요.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은 독립적인 셀러 마스터를 두고 각각의 독립적인 와인 철학에 따라 독립된 브랜드를 이끌어나가고 있어요. 프리미엄 와인의 카테고리에서 잭슨 패밀리 와인즈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합니다. 또한 프리미엄 와인부터 대중 와인까지를 아우르는 방대한 영역의 프로덕트 레인지를 가지고 있죠.
그럼 잭슨 패밀리 와인즈와 당신의 역할은 뭔가요?
잭슨 패밀리 와인즈는 이 와인들을 세계 주요 도시의 레스토랑들에 리스트업되도록 하고, 수입사들과의 관계 등을 도맡아서 관리하죠. 다양한 컬러를 지닌 와이너리들을 그에 맞는 수입사들과 매칭해 비즈니스를 연결하고 주관합니다. 저 역시 유명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의 와인 리스트에 저희 와인이 들어가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저희 와인에 대해 교육하고 홍보하죠. 예를 들면 이번에 서울에 온 건 토스카나에 있는 와이너리 테누타 디 아르체노를 알리기 위해서예요. 와인은 좀 어때요?(우리 앞에는 테누타 디 아르체노의 키안티 클라시코 리세르바 2019를 비롯해 테누타 디 아르체노의 슈퍼투스칸 와인 아카넘 2014와 발라도나 2014가 잔에 채워져 있었다.) 예를 들면 이 테누타 디 아르체노의 키안티 라인들은 J와인이, 슈퍼투스칸인 아카넘과 발라도나는 나라 셀러에서 수입 중이죠. 켄달 잭슨은 아영 FBC에서 수입 중이고요.
와인 업계의 트렌드나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와이너리에 와인 메이킹에 대한 조언도 할 수 있겠군요.
각각의 브랜드와의 관계에서 역할 또는 잭슨 패밀리 와인즈는 와인 메이킹과는 좀 거리가 있어요. 셀러 마스터들을 만나면 테이스팅을 하고 의견을 교환하지만, 직접적인 가이드를 주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역할이 있다면, 마스터 소믈리에로서 회사의 큰 결정을 내릴 때 좀 큰 소리로 조언을 하는 점 정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잭슨 패밀리 와인즈의 회장인 바버라 뱅키가 유럽의 어떤 와이너리를 사들이고 싶다고 한다면, 제 입김이 그 결정을 다는 아니지만 조금 좌지우지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건 제가 마스터 소믈리에라서이기도 하지만, 이 회사를 15년이나 다닌 장기 근속자여서이기도 해요. 어느 회사에서나 오래 다닌 사람들은 입김이 세거든요.
아까 우리가 얘기할 때 잠깐 ‘파인 와인’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전 그 표현이 참 재밌었어요. ‘파인 아트’ ‘파인 다이닝’의 ‘파인’에는 정말 다양한 의미가 있으니까요. 파인 와인이란 뭔가요?
제가 가진 파인 와인의 개념은 ‘그 지역의 특성을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재배되고 양조된 와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떤 와인을 마셨을 때 이 와인이 토스카나에서 난 건지, 나파 밸리에서 난 건지 보르도에서 난 건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와인의 본질이지만, 그게 지켜지지 않는 와인들이 너무 많으니 그런 와인들은 조금 모호한 개념인 ‘파인 와인’으로 따로 부르는 거죠. 아무래도 그런 와인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이 좀 더 많이 들어요. 좋은 포도를 일일이 골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압착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죠. 모든 과정이 그런 식이다 보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모든 건 아니라도 대부분의 파인 와인은 비쌀 수밖에 없죠.
미국에서 켄달 잭슨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리는 샤르도네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는 아시다시피 오크 배럴에서 숙성되는 샤르도네 와인이에요. 미국 샤르도네가 보통 그렇죠. 처음엔 오크 숙성을 시작하며 아메리칸 오크를 사용했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프렌치 오크에서 우리가 기대하던 그 퀄리티가 나오지 않았던 거죠. 오크 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크 나무를 잘라서 말리고 이걸 스테이브 판으로 만들죠. 이 스테이브 판을 만드는 공장을 스테이브 밀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 옛날에 미국의 오크 통 제작 회사와 함께 손을 잡고 프랑스에 가서 스테이브 밀 회사를 샀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게 프렌치 오크인데, 켄달 잭슨은 프랑스에서 프렌치 오크를 생산하는 공장을 소유한 유일한 미국 회사가 될 수 있었죠. 그 이후로도 그런 회사는 없어요. 아마 이런 것들이 켄달 잭슨의 가격 대비 뛰어난 퀄리티 유지의 비결이 아닐까요?
한편 최근에 전 세계 와인 트렌드라면 소비자들이 오키한 플레이버를 꺼리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도 있죠.
맞아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오크를 좀 덜 쓰는 트렌드로 가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쓰더라도 작은 오크 통보다는 큰 오크 통을 쓰고, 뉴 오크보다는 중고 오크 통을 써서 오크의 향미 물질이 와인에 미치는 영향을 적게 하죠. 그런데 그걸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오크의 영향이 적게 들어간 와인을 즐기는 건 와인을 너무 빨리 따서 마시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또 다른 이유는 건강을 생각한 식단 때문일 수도 있죠. 오크는 불에 그을린 지방과 단백질의 향미에 어울리죠. 건강식인 지중해식 식단에는 좀 더 가볍고 오키하지 않은 와인들이 어울려요. 그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이런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죠. 그런데 지금 아카넘을 마시는 당신의 눈빛이 정말 행복해 보이는군요.
아마 제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줬겠죠. (나는 메스나흐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카넘 2014를 마시고 있었고 아마 놀랐을 때 우리가 짓는 표정을 보았을 것이다.)
와인은 그런 게 중요해요. 사업도 좋고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좋은 와인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중요한 법이죠. 제가 이 직업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김성룡
  • ASSISTANT 신동주
  • ART DESIGNER 김동희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