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아메리칸 차이니즈부터 동남아식 중식까지, '이국적 중국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들
넓은 중국 대륙은 물론 그 바깥에도 수많은 ‘중국요리’가 존재한다. 짜장면을 파는 한국식 중식당과 미국에서 진화한 아메리칸 차이니스 레스토랑이 다르고, 일본 대중에 맞게 변화한 마치추카(町中華)가, 동남아 곳곳에서 명맥을 이어온 중식과 서구화된 홍콩 중식이 각기 다르다. 이민자들이 대륙 너머에서 이룩한 다양한 갈래의 중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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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중국요리’를 먹기 시작한 지는 대략 100년쯤 되었다. 국내 최초의 중국집으로 알려진 공화춘이 인천에 개업한 것이 1912년으로,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국 곳곳에 중국집이 생겨나며 대중화의 수순을 밟았다고 한다. 물론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 광복 직후에 중국음식점을 경험해볼 기회가 한국인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 100년 동안 국내에서 ‘중국요리’가 갖는 의미는 시시각각 변해왔다. 신진 외래 문물로서 중요한 사람을 대접할 때에나 먹는 음식으로 취급되던 시기도 있었고, 물가 지표나 정부 가격 관리 대상 품목에 짜장면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서민 음식의 대표 자리를 차지한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식’이 대중의 관심사나 선호에서 조금씩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말도 종종 나온다.
물론 이 말에는 이해에 따라 약간의 어폐가 있다. ‘중식’이나 ‘중국요리’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 문단에서 ‘중국요리’나 ‘중식’에 따옴표를 쳐 표기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 말이 가리키는 음식은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져 왔으며, 이제는 단어가 지시하는 ‘중국 본토의 음식 문화’라는 의미와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중식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를 대강이라도 알 필요가 있다. “기록에 보면 1883년쯤 처음 우리나라에 화교들(통상 ‘화교’는 중국 국적을 가진 채 해외에 체류하는 이들을 말하며 해외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은 ‘화인’이라 부르지만 해당 기사에서는 편의상 둘을 아울러 ‘화교’로 칭한다)이 대규모 이주를 했다고 되어 있어요. 임오군란 때 청나라군이 수습하려 내려올 때 그 군대에 물건이나 음식을 팔려는 상인들이 같이 내려온 거죠. 대부분 산둥성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한국인 대상으로도 장사를 해서 돈을 벌려고 하다 보니 조금씩 중국음식이 퍼져 나가기 시작한 거예요. 그 당시에 외국 음식이라고 하면 늘 선망의 대상이었을 테니까요.” 박찬일 셰프의 설명이다. 기자 출신으로, 주방에 서는 한편 지속적으로 음식 문화를 기록해오기도 한 그는 ‘그 분야에 내가 전문가는 아닌데’ 하면서도 중국요리라는 주제 앞에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식도락가에게든 역사문화 콘텐츠 애호가에게든, 워낙 즐거운 주제이기 때문일 터였다. “그렇게 국내에서 중국요리가 발달을 해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거죠. 그런데 이게 2000년대 초반까지는 어느 정도 이원화되어 있었어요. 정통을 표방하는 고급 요리로서의 중국요리도 존재했던 겁니다. 그런데 1990년대쯤 무너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호텔 중식당 외에는 다 사라졌으니 명맥을 잃은 거예요. 이제는 한국에서 ‘중국요리’라고 하면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팔면서 배달을 주업으로 하는 그런 ‘중국집 음식’이라고 이해하게 됐죠.”

아메리칸 차이니즈 친의 음식들.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랍스터 해피 패밀리, 몽골리안 비프, 오렌지 치킨이다.
사실 세계에 차이나타운이 없는 대도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면, 온갖 종류의 융합이 일어났다는 건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는 아메리칸 차이니스일 테다. 외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노출되며 국내에도 비교적 잘 알려졌으니까. 음식의 특성보다는 사각 형태의 하얀 테이크아웃 컵이라는 특유의 이미지로 회자된 경향이 컸지만 말이다. 사실 이 분야는 기조를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넓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중국 음식이 넓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미국을 만나며 천차만별의 갈래를 낳았기 때문이다. “제가 1년 정도 북미 여기저기에 살면서 아메리칸 차이니스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지역마다 속성이 굉장히 달라요. 샌프란시스코, 뉴욕, 피닉스, 토론토, 밴쿠버… 어디냐에 따라 중식을 먹는 맥락이 달라지죠. 그래서 ‘무엇이 아메리칸 차이니스다’ 하고 정리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의 설명이다. 음식을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풀어내는 작업을 지속해온 그는 유학 시절부터 이어진 중국과의 인연으로 특히 중식 문화에 관련한 저서를 여러 권 내기도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오렌지 치킨, 제너럴 쏘 치킨, 몽골리안 비프처럼 으레 회자되는 아메리칸 차이니스의 전형이나 특유의 맛은 아마도 ‘판다 익스프레스’로 대변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깝다. “미국 유학생들이 돈이 없으니까 그런 음식을 자주 접했겠죠. 그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그 맛을 그리워하니까 국내에도 아메리칸 차이니스 식당이 생겼을 거고요.”
그의 이야기 중에 유독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미 20년도 전에 국내에서 아메리칸 차이니스 식당이 시도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1년 정도밖에 운영되지 못하고 망했기에 별달리 알려지지가 않았을 뿐. ‘왜 실패했는가’ 하는 질문은 연구자에게 가볍게 던질 만한 성격의 것은 아니겠으나, 주영하 교수는 친절히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주었다. “한국 사람들의 고집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랬겠죠. 짜장면, 짬뽕을 이길 수가 없으니까.” 요컨대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중국 음식은 어떤 종류의 맛이 나야 한다’는 강한 관념이 있다는 것이다. 가격 측면의 문제도 있다. 유학생들이 먹었던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아메리칸 차이니스는 그런 음식을 합리적 가격으로 만들 수 있는 미국 내 환경이 있었을 텐데, 국내는 상황이 다르니 가격까지 고스란히 이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종합하면, 국내에는 이미 오랜 시간 검증된 ‘익숙한 맛의 저렴한 중식’이 있는데 가격까지 비싼 아메리칸 차이니스가 그걸 꺾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얘기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서울 안에 많은 아메리칸 차이니스 레스토랑이 생겼다. 프랜차이즈 브랜드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까지, 일종의 소소한 유행처럼. 그간 사람들의 문화적 포용성이 올라가고 식자재도 다양해졌기 때문일까? 아직도 성공보다는 실패 사례가 많아 보이긴 하지만, 제법 오래 자리를 지키며 명성을 얻은 곳도 있다. 아메리칸 차이니스를 캐주얼 다이닝의 포맷으로 풀어낸 아메리칸 차이니즈 친도 그중 하나다. 장유식 오너셰프는 일찍이 미국식 스테이크 하우스와 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 두루 근무한 경력이 있는 요리사로, 그가 손님들에게 이 문화의 온갖 요소를 다양한 관점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다. ‘쿵파오 치킨’이 그 원류인 ‘궁보계정’과 어떤 식으로 다른지, ‘오렌지 치킨’이나 ‘몽골리안 비프’는 어째서 아메리칸 차이니스 안에서도 독특한 결을 가진 음식인지, ‘해피 패밀리(전가복全家福이 ‘모든 가족의 행복’이라는 뜻을 품은 요리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부분 역시 아메리칸 차이니스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가 어떤 원리를 가진 요리이며 그래서 어떤 변형이 가능한지. 폭넓은 이력의 장점은 단순히 박식하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장유식 셰프의 가장 큰 강점은 중식의 요소와 미국적 색채를 세심히 파악하고 그것을 한국인의 맥락에 맞게 해석해내는 균형감각이다. “사람들이 아메리칸 차이니스에 기대하는 강렬한, 달리 말하자면 좀 불량한 맛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미국에서는 굉장히 일상적인 음식이고, 좀 더 들어가보면 고급화된 중식당도 많거든요. 저희가 표방하는 건 그 사이의 어느 지점이에요. 미국인이 먹어도 맛있게, 한국인이 먹어도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주안점이었고요.” 하지만 그에 대해 ‘내가 아는 아메리칸 차이니스와 다르다’며 불평하는 사람은 없을까? 장유식 셰프는 물론 많다고 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묻고 싶죠. ‘뭐가 아메리칸 차이니스라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아무렇게나 자유롭게 만들어놓고는 그걸 아메리칸 차이니스라고 하면 곤란하겠죠. 하지만 예를 들어 어느 중국집에서 ‘어떻게 우리 탕수육만의 레시피를 만들 것인가’ 고민하고 뭔가를 내놨다고 해서 그게 탕수육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것처럼 미국에도 지역마다, 가게마다 정말 다양한 중식 레시피가 존재하는 거예요.”

지유켄의 츄카소바. 츄카소바는 ‘중화 면요리’라는 뜻으로, 라멘의 원형 격 음식으로 회자된다.
흥미로운 건 지유켄의 이진우 대표에게 주영하 교수의 생각을 들려줬을 때 그 역시 고개를 끄덕거렸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정말 많은 마치추카에 가 봤는데 확실히 ‘너무 맛있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하면서. 그럼 그는 왜 을지로에 마치추카를 표방하는 식당 지유켄을 차린 걸까? 그의 답인즉슨, 마치추카라는 문화 자체에 끌렸다는 것이다. “그 평범한 맛이 좋았어요. 놀랍게 맛있지는 않지만 대신 아무나 부담 없이 들어와서 원하는 걸 먹고 갈 수 있잖아요. 샐러리맨이든, 주부든, 맥주 마시면서 경마 신문 읽는 아저씨든 다 자기 식대로 식사를 하는 거죠.” 그래서 지유켄은 외관부터 내부의 작은 요소들까지 일본 소규모 식당의 서정을 담은 것들로 그득하다. 일본 문화에 해박할수록 그 안에 숨겨진 디테일에 계속 놀라게 될 정도로. 그리고 음식 맛을 한번 보면, 그 모든 요소가 단순히 ‘기믹’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자카야 콘부로 이미 음식 맛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인정받은 바 있는 이진우 대표는 마치추카 음식에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뉴에 대한 질문에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세를 바꿔 열띤 어투로 설명을 이었다. 두 가지 육수에 닭 기름, 온갖 재료로 만든 타레(소스)까지 갖은 노력을 기울인 추카소바(중화소바) 국물에 대해서, 요리사에게 손목이 소모품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꼭 웍질로 챠항(볶음밥)을 만드는 것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서, 가격적으로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핵심을 지키면서도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쌀과 면에 관해 했던 고민들에 대해서.
음식 문화가 품은 ‘정신’에 매료되었다는 건 라오빠빠의 김동원 오너셰프도 마찬가지였다. “티베트나 원난성에 국경을 두고 있는 라오스 소수민족 자치주나 태국 자치주 같은 곳들에 가보면 사람들이 불교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아주 소박하게 살아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여행이나 하러 갔다가 오래 체류하게 된 거죠. 거기 있으면 행복하니까. 그리고 저는 그게 음식에도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당일 도축 당일 소비’ 같은 정신을 갖고 있으니까 도가니 국수 같은 게 나오는 거죠.” 라오빠빠가 선보이는 요리는 동남아식 중식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생소한 분야겠지만,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발명품은 아니다. (주영하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는 남방 화교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나라들이다.) 라오빠빠의 대표 메뉴는 바쿠테. 푸젠성 이민자들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 정착시킨 갈비탕의 일종으로, 김동원 셰프는 이 메뉴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그 안에 깃든 정신에 대해 먼저 말했다. “생존 음식이죠. 한국의 화교들이 차별을 이겨내기 위해 만든 음식이 짜장면, 탕수육이라면, 동남아 화교들이 생존을 위해 만든 게 육골차(바쿠테의 또다른 명칭으로, 뼈를 차처럼 오래 우려낸다는 뜻을 갖고 있다)인 거예요. 그쪽은 차별과 혐오가 정말 심했거든요. 살인 사건도 빈번했을 정도로.”

라오빠빠의 음식들. 라오빠빠는 동남아시아의 중화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으로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식초 등뼈 바쿠테 국수, 커리마살라 중새우, 뚝강무(동남아식 돼지갈비튀김)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탈리아나 프랑스,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화교 음식이 잘 발달하지 않은 걸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주영하 교수는 “왜 그런 것 같아요?” 하며 가볍게 웃었다. 마치 강의 시간에 기특한 질문을 하는 학생이라도 만난 것처럼. “뉴욕에 가면 차이나타운과 리틀 이탈리아가 바로 옆에 붙어 있잖아요. 파스타와 국수는 비슷한 면이 있는데도 섞이는 부분이 없어요.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바라보기 때문이죠. 다들 마이너리티(소수자)잖아요. 한국에는 고급 음식으로 들어왔고 나중에는 혼분식 장려 운동을 하면서 중식의 한국화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중국인들을 ‘시나’라고 부르며 멸시하다가 패전 후에 경계를 무너뜨리고 ‘중화요리’라고 대우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런 서구권 국가들에서는 상황이 달랐던 거예요. 계속 소수자의 음식이었니까요.” 그래서 홍콩의 중식은 특이한 입지를 차지한다. 기본적으로 광둥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중국 각지의 유명한 음식을 서구권의 관점에서 재표준화해 선보이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 본토 방문이 어려워진 서양인들은 홍콩을 통해 중국을 이해했고, 홍콩은 음식문화 측면에서 일종의 ‘작은 중국’ 같은 역할을 하며 발전한 것이다. “이것저것 뒤섞인 게 홍콩 요리 문화라고 봐요. 거기에 이제 해산물이 많이 잡히니까 해산물 요리를 많이 하고, 좀 고급화를 한 거죠.” 주영하 교수의 설명이다.
고덕의 안태검 대표와 장영조 대표도 그 말에 동의했다. 호텔의 고급 광둥요리 전문점에서 일하며 홍콩 현지에서 연수도 하고 현지 셰프들과 친분도 쌓은 바 있는 두 사람은 홍콩 요리의 화려함과 다채로움을 몸소 알고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이 새로운 식당 고덕에서 풀어내려는 건 ‘홍콩식 차이니스’의 좀 다른 층위였다. “홍콩의 서민 음식은 그런 다채로운 요리를 바탕으로 간편함을 중시하며 발달해온 측면이 있어요. 닭고기덮밥 같은 것도 그냥 절여놓은 닭을 바로 썰어서 밥 위에 올려주는 요리이고, 딤섬 중에서도 샤오마이처럼 끝을 여밀 필요가 없는 것들을 많이 먹죠.” <첨밀밀> 같은 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홍콩에도 중국 이민자들이 존재한다. 홍콩에서 돈을 좀 벌어보려고 중국 각지에서 뒤늦게 온 사람들. 고덕이 주목한 건 바로 이 ‘대륙인’들이 즐겨 먹으며 발달한 홍콩 서민 음식이다. 고기덮밥, 탄탄면, 딤섬 같은 것들. 그게 식당의 콘셉트라고 하기에는 상호에도 넣을 만큼(Go ‘Duck’) 대표 요리 격인 오리구이가 좀 이질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심지어 이 메뉴는 광둥식 오리구이도 아니고 ‘북경오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저희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일단은 저희가 자신 있는 요리라서 하기로 했습니다. 북경오리는 중국 어디에서나 먹는 요리이고 홍콩에서도 많이 먹으니까요.” 안태검 대표의 답변이다. 그렇다면 고덕이 추구하는 건 ‘홍콩식 북경오리’라고 할 수 있을까? 안 대표는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저희 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거기서 쓰는 북경오리용 오리를 쓸 수가 없어요. 생물 오리는 수입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한국에서 다른 오리를 찾았는데, 특성이 다르니까 그걸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했죠.” 그의 답변은 어쩐지 이 기사의 주제에서 그리 벗어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나 세계화가 진행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토착화에 의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암시처럼 들리기도 했다.

고덕의 음식들. 고덕은 홍콩의 거리 음식 문화에 중점을 둔 식당으로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날치알 샤오마이, 차슈 바비큐 덮밥, 크리스피 새우 창펀이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이현준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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