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GREAT EXPECTATIONS

더 글렌리벳이 200년 동안 쌓아 올린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라는 엄격하고 진중한 기준. 그리고 그 모든 관습을 대하는 이토록 유연한 변주.

프로필 by ESQUIRE 2024.01.28
 
‘글렌(Glen)’은 ‘산골짜기’를 뜻하는 게일어다. 유서 깊은 위스키 브랜드에 유독 이 표현이 많이 붙어 있는 이유는, 위스키 문화 태동기에 개별 위스키 명칭에 그 증류소가 자리한 지역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판례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된 위스키 외에는 유럽에서 판매되는 위스키에 ‘글렌’이라는 명칭을 이름에 넣을 수 없기에, 이제 그 자체로 진본성과 유구한 역사에 대한 인증 마크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글렌’으로 시작하는 여러 브랜드 중에서도 더 글렌리벳에는 눈여겨볼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앞머리에 붙은 정관사 ‘더(the)’다. 스코틀랜드에 불법 증류가 난무했던 1800년대 초, 더 글렌리벳은 최초로 합법적 증류 면허를 획득한 설립자 조지 스미스에 의해 탄생한 스페이사이드 지역 최초의 합법적 증류소였다. 엄격한 품질관리와 위스키 스타일에 대한 빼어난 통찰력을 통해 고품질 위스키의 대명사로 자리 잡기 시작한 더 글렌리벳은 곧 무수한 카피캣들을 맞닥뜨리게 되었고, 그들이 훔치려는 건 특유의 스타일에서부터 그 이름이 담보하는 품질까지 폭넓었다. 지역명이자 브랜드 네임인 ‘글렌리벳’을 아무렇게나 도용해 의도적으로 혼란을 야기하는 업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결국 1884년에 이르러 더 글렌리벳은 법원으로부터 ‘글렌리벳’ 앞에 정관사 ‘The’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브랜드라는 상표등록 인증을 받아냈고, ‘유일한’ ‘단 하나의’라는 의미의 ‘The’는 그때부터 지금껏 한 번도 브랜드 이름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더 글렌리벳 증류소가 공식 설립된 것은 1824년의 일. 이 불세출의 위스키 브랜드는 올해로 탄생 200주년이 되었다. 조지 스미스의 업적은 단순히 스페이사이드에서 처음 증류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라는 점이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어내고자 한 개척자였고, 다양한 도전 끝에 결국 당시 유행하던 묵직한 스타일을 벗어나 꽃과 과실 향이 넘실거리는 화사한 위스키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의 그 이례적 위스키, 더 글렌리벳은 오랜 세월 대중의 인기를 끌며 오늘날에는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의 기준이 되었다. 만약 당신이 ‘아일라’라고 발음할 때 코끝에 스치는 이탄 향의 매콤한 향을 떠올리듯 ‘스페이사이드’라고 말할 때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과실 향과 부드러움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그 인식에는 조지 스미스의 유산이 크게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스페이강이 가로지르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북동 지역에 자리한 스페이사이드는 과히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발 274m 이상의 고도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라는 가혹한 환경을 빚어냈지만 대신 연중 내내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기에 위스키 숙성에는 천혜의 환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 글렌리벳이 아니었다면 이 지역의 운명은 다소간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찍이 스페이사이드의 가능성을 포착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장을 연 더 글렌리벳의 위스키는 무수한 증류업자들을 감탄시켰고, 앞서 말했던 후발 주자들 중 많은 증류소가 특유의 스타일을 좇아 이곳에 둥지를 틀며 아니러니하게도 스페이사이드를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의 본고장으로 발전시켜나간 것이다.
 
전통에 기반한 혁신의 여정,
오리지널 바이 트래디션
 
더 글렌리벳은 스페이사이드 지역을 넘어 스코틀랜드 전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합법적 증류소다. 글렌리벳 지역에서 최초로 증류 면허를 취득했던 조지 스미스는 앞서 말했듯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어내고자 했고, 오늘날 더 글렌리벳은 다양한 라인업을 통해 조지 스미스가 세운 위스키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유러피언 오크 캐스크와 아메리칸 오크 캐스크에서 숙성하는 더블 오크 숙성 방식을 거쳐 부드러운 파인애플 향이 특징적인 더 글렌리벳 12년을 시작으로, 마지막 3년을 프랑스 리무쟁 오크통에서 숙성해 풍부하고 이국적인 캐릭터가 가미된 더 글렌리벳 15년, 잘 익은 과일 향과 참나무 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더 글렌리벳 18년, 차원이 다른 부드러움을 선사하는 더 글렌리벳 21년, 퍼스트 필 페드로 히메네스 셰리 캐스크와 트롱세 오크 코냑 캐스크 숙성으로 더 글렌리벳의 상징인 부드러움과 과일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더 글렌리벳 25년까지. 더 글렌리벳 증류소 내 수천 개의 캐스크 중 15개의 최상급 캐스크를 엄선해 선보인 더 글렌리벳 23년 싱글 캐스크는 국내에 단 하나의 캐스크, 즉 200여 병만 들어왔기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은 아니지만 인공색소와 물을 첨가하지 않은 캐스크 스트렝스 방식에 냉각 여과를 거치지 않은 논 칠 필터 방식으로 생산된 위스키로, 스카치 싱글 몰트 위스키의 정수를 보고 싶다면 꼭 한번 경험해봐야 할 제품 중 하나라 할 만하다.
 
더 글렌리벳의 리뉴얼된 패키지. 200년을 지켜온 헤리티지에 모던하고 경쾌한 이미지를 절묘하게 섞어냈다.

더 글렌리벳의 리뉴얼된 패키지. 200년을 지켜온 헤리티지에 모던하고 경쾌한 이미지를 절묘하게 섞어냈다.

더 글렌리벳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은 이 브랜드가 창립자가 구축한 맛의 세계만 계승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로 200살이 된 이 브랜드는 최초로 증류 면허를 취득하고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위스키를 추구한 조지 스미스의 ‘개척 정신’을 핵심 가치로 체화해, 오늘날까지도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를테면 위스키 칵테일이라는 장르를 처음 제안한 것도 더 글렌리벳이었다. 일반적으로 위스키 음용법을 니트 혹은 온더록으로 제한해왔던 딱딱한 문화를 타개하고, 변화해가는 시대상을 고려해 위스키를 보다 편하게,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꾸준히 칵테일 레시피를 선보여온 것이다. 심지어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RTD 위스키 칵테일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더 글렌리벳 트위스트 앤 믹스(Twist & Mix)는 캡을 돌리면 칵테일 풍미를 더해주는 원액이 아래의 싱글 몰트 위스키와 혼합되는 방식의 제품으로, 더 글렌리벳의 개성 강한 풍미는 유지한 채 간편하게 위스키 칵테일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올드패션드와 뉴 맨하탄 2종 모두 한 입 머금는 순간 기존 위스키 애호가를 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어필하면서도 더 글렌리벳만의 매력을 선명히 전달하겠다는 집념을 느낄 수 있다.
더 글렌리벳 캡슐 컬렉션 역시 이 유서깊은 브랜드의 혁신적 사고방식을 드러낸 사례라 할 만하다. 더 글렌리벳 캡슐 컬렉션은 해초 추출물로 만든 캡슐 안에 위스키를 넣어 글라스 없이 마실 수 있도록 한 제품으로, 입에 넣는 순간 캡슐이 녹고 액체가 퍼지며 입안 가득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 속에 든 것은 더 글렌리벳 파운더스 리저브와 더 글렌리벳 12년 등을 활용한 칵테일. 런던의 유명 바 ‘Tayēr+Elementary’ 와의 협업으로 제작한 것으로, 기존 칵테일 레시피를 응용해 캡슐 형태로 섭취했을 때 그 매력을 가장 선명히 느낄 수 있을 맛을 찾아낸 것이다. ‘더 글렌리벳×파티세리 후르츠’ 프로젝트도 좋은 예다. 파인 디저트 부티크 ‘파티세리 후르츠’와의 협업으로 전개된 이 프로젝트는 퓌레에 실제 더 글렌리벳 위스키 원액을 넣어 만든 과일 무스 케이크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잠재 소비자들에게는 위스키와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지점을, 위스키 애호가들에게는 싱글 몰트 위스키와 과일 디저트의 접점과 시너지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파인 디저트 부티크 ‘파티세리 후르츠’와의 협업을 통해 실제 더 글렌리벳 위스키 원액으로 과일 무스 케이크를 만든 ‘더 글렌리벳x파티세리 후르츠’ 프로젝트.

파인 디저트 부티크 ‘파티세리 후르츠’와의 협업을 통해 실제 더 글렌리벳 위스키 원액으로 과일 무스 케이크를 만든 ‘더 글렌리벳x파티세리 후르츠’ 프로젝트.

늘 새로움을 고민하되 그 본질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더 글렌리벳의 양가적 에너지는 리뉴얼된 패키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전 라인업에 적용된 새로운 패밀리 룩은 더 글렌리벳이 가진 고유의 이미지를 품으면서 ‘언제 어디서나 경쾌하고 캐주얼하게 즐기는 술’이라는 싱글 몰트 위스키에 대한 최근 새롭게 부상하는 인식을 더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부드러움’이라는 더 글렌리벳의 맛과 풍미의 지향점에 맞춰 (글렌리벳은 본래 게일어로 ‘부드럽게 흐르는 계곡’이라는 뜻이다) 보틀 모양에도 편안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주는 미묘한 곡선을 담아냈고, 12·15·18년에 각각 차별화된 컬러를 적용해 스타일리시한 경쾌함을 더했다. 그리고 이 감각적인 보틀을 기울여 술을 따를 때 하단에 드러나는 창립자 조지 스미스의 얼굴과 서명에 이르면, 더 글렌리벳의 캠페인 프레이즈가 새삼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Original by Tradition.’ 200년 전 조지 스미스가 더 글렌리벳을 처음 세웠을 때 그가 직면했던 위기는 후발 주자들의 모방만이 아니었다. 그는 불법 증류업자들로부터 자신의 목숨과 증류소 건물에 대해 실제로 위협을 빈번히 받았고, 그래서 어디를 가든 늘 2정의 화승총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기록에 따르면, 자신이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에 일체의 주저가 없을 것임을 누구나 선명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과실 향과 화사한 느낌이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이토록 아름다운 위스키는 그 결기 아래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나아가 오랜 세월 사랑받으며 위스키 역사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큰 뿌리가 되었다. 더 글렌리벳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소이자 싱글 몰트 위스키,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브랜드지만, 그 시작점은 독창성과 강인한 개척 정신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20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더 글렌리벳은 전통과 창조성이 반대 지점에 있다고 믿지 않는 듯하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 THE GLENLIVET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