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REVIVAL OF IRISH WHISKEY
한때 쇠락을 겪었던 아이리시 위스키의 화려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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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위스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린 스펠링은 아마 스카치의 ‘위스키(whisky)’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 주류 시장을 휘젓는 ‘메기’들은 알파벳 ‘e’가 들어가는 ‘위스키’(whiskey)들이고, 그 대표 주자 중 하나가 아이리시 위스키다.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국제주류연구기관(IWSR, International Wines and Spirits Record)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까지 한국 수입 위스키 시장에서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의 점유율은 81.5%에 달했다. 그러나 같은 기관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내 아이리시 위스키를 포함한 논-스카치 위스키(non-scotch whiskey)의 점유율은 2017년 8.8%에서 31.7%로 늘었다. 그중 아이리시 위스키는 총 위스키 판매의 11%를 차지할 만큼 급격하게 성장했다. 시장을 말 그대로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한국만의 변화는 아니다. 아일랜드위스키협회(Irish Whiskey Association)는 아이리시 위스키의 전 세계 판매량이 2010년 6600만 병에서 2021년 1억6800만 병으로 급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10여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아이리시 위스키 시장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아이리시 위스키의 급격한 인기 상승에는 뉴페이스의 등장을 의미하는 ‘메기’라는 표현보단 ‘부활’이라는 단어가 더 맞을 것 같다. 아일랜드는 19세기까지 압도적인 세계 1위의 위스키 생산국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위스키의 60% 이상이 아일랜드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00년대 들어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그에 따른 영국의 수출 제한 조치, 전체 매출의 60%를 책임지던 최대 수출국 미국의 금주령 실시 등 연달아 불행한 사건들이 터졌다. 상황은 뒤집어졌다. 아일랜드의 위스키 산업은 급속도로 쇠락했다.
1960년대가 지나는 동안 아일랜드에 위치한 거의 대부분의 증류소가 문을 닫았지만, 남아 있던 세 곳은 ‘아이리시 디스틸러스(Irish Distillers)’라는 이름 아래 의기투합했다. 아이리시 디스틸러스는 두 곳의 증류소가 위치해 있던 더블린의 시설을 폐쇄하고,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증류기를 보유했던 미들턴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미들턴은 인근에 높은 건물이 없고, 강이 흐르며, 보리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라 위스키 생산에 적격이었다. 1980년 미들턴 증류소를 통해 판매된 아이리시 위스키는 단 30만 병에 불과했다. 불과 몇십 년 사이 상황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이제 아일랜드에 위스키를 생산하고 블렌딩하는 증류소는 40군데가 넘는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어떻게 이렇게 급속도로 성장한 것일까? 아이리시 위스키의 성장은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스위치를 누르지도 않았는데 불이 켜진 것처럼, 갑자기 아이리시 위스키는 다시 유행하게 되었죠.” 아일랜드위스키협회 이사 윌리엄 라벨이 <가디언>에 농담처럼 던진 말이다. 그러나 이유 없는 인기는 없다. 아이리시 위스키의 인기를 견인한 건 독보적인 풍미였다. 부드러운 맛과 크리미한 텍스처로 201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MZ세대’의 입문용 위스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밀레니얼과 Z세대는 아이리시 위스키의 열렬한 소비자죠. 이는 전 세계적인 ‘스피릿’일 겁니다.” 라벨이 한 말이다.
단순히 아일랜드에서 주조되었다고 해서 아이리시 위스키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몰트를 포함한 곡물을 사용하고, 오크통에서 최대 3년 이상 숙성하며, 병입 시 도수가 최소 40도를 넘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아일랜드 위스키법(Irish Whiskey Act)’이 1980년에 제정되었고 이를 철저하게 지켜야만 ‘아이리시 위스키’라 불릴 수 있다. 전통과 역사가 긴 만큼 독자적인 양조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이리시 위스키의 특징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싱글 팟 스틸’ 방식으로 증류한 스피릿(증류 후 아직 숙성을 거치지 않은 투명한 상태의 원액)들은 아이리시 위스키 중에서도 손꼽히는 풍미를 자랑한다. 발아하지 않은 생보리와 발아한 보리인 몰트를 혼합해 구리로 만든 단식 증류기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얼핏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와 제조 방식이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포인트가 ‘생보리’에 있기 때문이다. 몰트의 달콤한 맛과 전분 함량이 높은 보리의 고소함 및 약간의 매콤함이 크리미한 질감과 조화를 이뤄 특별한 풍미를 선보인다.
사실 아일랜드인들이 처음부터 맛을 추구하기 위해 생보리를 쓴 것은 아니었다. 이는 아일랜드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18세기 아일랜드를 점령한 영국 정부는 몰트에 과중한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아일랜드의 증류소들은 몰트 함량을 낮추고 생보리를 섞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몰트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지만, 싱글 팟 스틸 위스키는 사라지지 않았다. 생보리를 섞어 증류해보니 그 풍미가 꽤나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료의 차이가 맛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긴 하나, 단순히 몰트와 생보리를 섞는다고 싱글 팟 스틸 방식이 내는 맛을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다. 숙련된 블렌더의 섬세한 손길이 들어가야 한다. 여기에 더해, 증류를 세 차례나 거치며 위스키의 밑바탕이 되는 스피릿들은 더욱 부드러운 맛과 풍부한 향을 지닌다. 이 과정을 거친 아이리시 스피릿들은 연속 증류 방식을 사용하는 스카치 그레인 위스키에 비해서는 훨씬 풍부한 향미 물질을 포함하게 되며, 두 번 증류한 몰트 위스키에 비해서는 조금 더 절묘하고 정제된 풍미를 띤다.

레드브레스트 15년은 향긋한 베리류와 오크 향이 이루는 복합적 풍미와 스파이시한 맛의 조화가 특징이다.
레드브레스트는 싱글 팟 스틸 방식으로 제조된 대표적인 아이리시 위스키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위스키의 근본이자 시초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아이리시 위스키의 명맥을 오늘날까지 계승해온 브랜드가 바로 레드브레스트죠.” 페르노리카 코리아 전무 미구엘 파스칼의 설명이다. 앞서 페르노리카코리아는 2022년 레드브레스트 12년을 그리고 지난해 레드브레스트 15년을 차례로 한국에 출시했다. 한국은 아이리시 위스키의 중요한 시장이다. 지난해 아일랜드 위스키 증류소의 마스터 블렌더 빌리 레이턴(Billy Leighton)과, 미들턴에서 생산되는 모든 블렌딩의 품질을 책임지고 있는 마스터 디스틸러 케빈 오고먼(Kevin O’Gorman)이 한국을 찾아 레드브레스트의 브랜드 가치와 헤리티지에 대해 직접 전달한 이유다.
케빈은 한국 시장에 소개하고 싶은 아이리시 위스키 중 하나가 레드브레스트였다고 전했다. “정식 수입되기 전부터 이미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나 있었죠. 1800년대부터 고수해온 싱글 팟 스틸 방식으로 제조되는 위스키이자, 아이리시 위스키의 정통성을 대표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니까요.” 빌리는 한국의 MZ세대를 언급했다. “한국의 MZ세대를 중심으로 위스키와 칵테일 문화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더군요. 특히 아이리시 위스키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연간 판매량이 55%씩 성장했습니다. 증류주 카테고리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것이죠.” 전략적 판단에는 또 다른 근거가 있다. 일례로 페르노리카 코리아의 대표적인 아이리시 위스키인 제임슨이 지난해 여름 주최한 팝업 이벤트에는 총 17만 명이 방문했다. 두 사람은 자사의 위스키 브랜드인 제임슨의 성공을 바탕으로 레드브레스트가 한국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다양성을 제공하고, 흥미롭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드브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싱글 팟 스틸 방식의 아이리시 위스키이기도 하다. 상에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이는 긴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변함없이 지켜낸 가치에 부록처럼 따라붙은 영광일 뿐이다. 전통을 지키는 마스터 블렌더의 어깨는 무겁다. “블렌더의 관점에서, 아이리시 위스키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빌리의 말이다. “모든 작업은 최고 품질의 오크통을 선별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증류 과정과 수년간의 숙성을 거치기 위해서는 필수죠.” 싱글 팟 스틸 위스키의 전성기인 지금, 레드브레스트 15년이 여태껏 한국 소비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유니크한 맛과 풍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덧붙이는 그의 말에서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레드브레스트는 팟 스틸의 스파이시한 맛과 버번과 셰리 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15년의 경우, 싱글 팟 스틸에서 3회 증류를 거친 뒤 최상급의 버번 캐스크와 셰리 캐스크에서 각각 15년 이상 숙성된 원액을 섬세하게 블렌딩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숙성 과정에서 퍼스트 필 캐스크와 리필 캐스크를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다. “퍼스트 필 캐스크를 사용하면 각 오크통에 배어 있는 버번과 셰리의 향과 풍미가 고스란히 위스키 원액에 전해져요. 아메리칸 버번 캐스크를 예로 들면, 바닐라와 같이 달콤한 향신료 그리고 아삭하고 강한 캐릭터의 과일 향을 느낄 수 있죠. 반면 리필 캐스크를 사용하면 오크통에 배어 있는 최초 액체의 풍미가 조금 덜 배어듭니다. 상대적으로 팟 스틸 증류 원액이 가지고 있던 스파이시한 맛이 더욱 강하게 도드라진다는 뜻이죠.” 빌리의 설명이다. 먼저 출시된 12년 역시 싱글 팟 스틸에서 3회 증류 과정을 거친 뒤, 아메리칸 버번 캐스크와 올로로스 셰리 캐스크에서 각각 최소 12년 이상 숙성된 원액으로 만들어진다. 15년이 향긋한 베리류 그리고 오크 향이 이루는 복합적 풍미와 스파이시한 맛의 조화가 특징이라면, 12년은 달콤한 과일 향과 미세하게 느껴지는 스모크 향이 균형을 이룬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나무 그을음과 과일 맛 그리고 셰리 향이 조화를 이루죠. 두 제품 모두 부드러운 목 넘김이 인상적이고요.” 미구엘의 설명이다.
미구엘이 말한 ‘부드러운 목 넘김’은 긴 시간 위스키를 사랑해온 애호가뿐 아니라 이제 막 입문 단계에 접어든 젊은 세대 모두가 즐길 수 있다는 점 외에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썰스티>에 따르면 아이리시 위스키는 바텐더들에게 인기가 높다. 스트레이트나 온더록으로 깔끔하게 즐길 수도 있지만, 칵테일 재료로 사용하기에도 손색없기 때문이다. 혹시 위스키를 탄 ‘아이리시 커피’를 한 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커피와 자연스럽게 녹아들 정도로 순한 맛을 자랑하는 위스키의 정체가 바로 아이리시 위스키이니 말이다. 하이볼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레드브레스트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혹시 이 글의 도입부에 쓴 아이리시의 ‘위스키(Whiskey)’와 스카치의 ‘위스키’(Whisky) 사이 차이가 궁금한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18세기 문헌에서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이 차이는, 속설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위스키 생산자들이 스코틀랜드 위스키와의 차별화를 위해 ‘e’를 붙인 것이라고 한다.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아이리시 위스키의 정체성과 두 민족의 긴 역사를 놓고 보면 결코 사소한 차이는 아닐 것이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 REDBR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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