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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는 어떤 영양제를 먹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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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에 설 것인가 결정하기에 앞서, 영양제라는 게 뭔지 대강 정해두고 가자. 보통 뭉뚱그려 말하자면 영양제에는 크게 두 축이 있다. 우선 인체에 필수적인데 모자란 물질을 보충해주는 것이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배를 오래 타는 선원에게 괴혈병은 흔한 일이었다. 비타민C 결핍으로 관절이 붓고 치아가 빠지고 심지어 바다를 언덕으로 착각해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비타민C의 존재를 알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보기 드문 질환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지나칠 정도로 잘 먹고 있다. 비타민, 미네랄 같은 미세 영양소는 모자라는데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같은 거대 영양소만 과잉 섭취한다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섭취 기준 대비 100%에 못 미치는 영양소는 칼슘, 비타민A, 비타민C, 칼륨 정도다.
다만 이런 결과는 실제 식사량에 비해 과소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섭취 칼로리가 남성은 기준의 96%, 여성은 기준의 87%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이 그렇다. 24시간 동안 먹은 음식을 회상하는 식으로 물어보면 실제보다 적게 먹은 걸로 답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가 불규칙하고 고른 영양 섭취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루 종합비타민제 한 알을 먹는 걸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종합비타민제에는 인간이 비타민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해놓은 영양소가 고르게 들어 있긴 하다. 하지만 채소와 과일 속의 모든 성분을 알약 하나에 모을 수는 없다. 칼륨 섭취량이 낮게 나온다는 건 채소와 과일을 너무 적게 먹고 있다는 의미이다. 편식을 못 고칠 운명이니 비타민제나 먹자는 식으로 포기하기엔 인생은 너무 길다. 채소와 과일을 어떻게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보길 권한다.
또 다른 축은 건강한 사람이 영양제를 통해 슈퍼맨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사실 영양제를 옹호하는 전문가 진영은 대부분 이쪽에 가깝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대표적이다. 폴링은 비타민C를 하루 1g 이상 먹으면 감기에 덜 걸리며 암 예방 효과가 있고 노화 방지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효과는 모르겠으나 그의 섭취량이 슈퍼맨급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루 1g의 비타민C를 음식으로 섭취하려면 감귤 40~50개를 먹어야 한다. 폴링은 하루에 12g을 먹었다고 하니 감귤로 치면 하루 600개 분량의 비타민C이다. 권위자의 말인 만큼 반향이 컸다. 지난 40여 년 동안 여러 과학자들이 나서서 다수의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비타민C에는 감기를 예방하는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도 비타민C를 많이 먹은 결과 감기에 안 걸린다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고? 그 사람이 손을 잘 씻어서 감기에 안 걸린 것인지, 감기에 걸린 사람과 접촉을 덜 한 건지, 아니면 감기에 걸리긴 했는데 모르고 지나간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 사실은 분명한데, 우선 라이너스 폴링은 비타민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탄 게 아니다. 또 비타민C를 고용량으로 먹는다고 감기에 덜 걸리는 슈퍼인류가 되진 못하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다른 영양제를 먹어도 효과를 본다고 말하기 쉽다는 것이다. 영양제에 대한 믿음으로 플라세보 효과를 보기 쉬운 사람이니 말이다.
효과에 대한 긍정적 믿음이 암을 낫게 하거나 혈관을 깨끗이 청소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뇌는 플라세보 효과에 예민하다. 통증을 덜 느끼거나 컨디션이 좋아진 듯한 느낌을 받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위약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효과가 나타난다. 하버드 의대에서 플라세보 효과를 연구하는 테드 캅추크의 실험에서 참가자에게 플라세보라는 걸 알려줘도 진짜 편두통 약의 50%에 달하는 증상 완화 효과가 나타났다. 술자리에 그 어떤 숙취해소제를 가지고 가도 이걸 먹으니 술이 덜 취한다고 얘기를 듣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술이 덜 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숙취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쓰여 있는데도 술이 취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니 그야말로 전형적 플라세보 효과이다.
그러나 영양제의 효과가 전부 심리적인 거라고 무시하는 것도 곤란하다. 하루 한 알 종합비타민제를 먹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억력, 인지 기능 테스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연구 결과가 올해 1월 나왔다. 60세 이상 성인 573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게다가 이 연구는 제약회사가 아니라 초콜릿 제조사와 미국립보건원의 후원을 받아 진행한 것이었다. 초콜릿 제조사 측에서는 초콜릿 속 플라바놀이란 항산화물질이 심장병이나 암 발병 위험을 낮추는지 기대하며 후원한 연구였을 터다. 하지만 그런 효과는 코코아 플라바놀에도, 종합비타민제에도 없었다. 그저 종합비타민제가 기억력 감퇴를 조금 늦출 수 있다는 정도의 결론을 얻었을 뿐이다. 연구자들은 종합비타민제 복용으로 뇌 노화를 2년 지연시킬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영양제 반대파에서는 지나치게 긍정적 해석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확실히 슈퍼인류와 일반 인류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긴 하다. 종합비타민제가 뇌 건강에 도움이 되는 효과를 낸 것인지, 아니면 참가자 중 일부가 비타민B₁₂, 비타민D, 아연 같은 뇌 건강에 중요한 영양소 섭취가 부족하여 보충제가 효과를 낸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루에 종합비타민제 한 알을 먹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 더 기분 좋게 삼킬 수 있게 해주는 연구 결과라고는 할 수 있겠다.
나이가 들며 체내에서 덜 만들어지는 물질을 보충하면 젊음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인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항산화물질 중 하나인 코엔자임Q10은 20대에 제일 수치가 높고 나이가 들면서 체내 수치가 낮아진다. 하지만 코엔자임Q10을 보충해준다고 하여 노화 방지 같은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타우린도 나이가 들면 체내 수치가 크게 줄어든다. 작년 6월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에 타우린 보충이 생쥐에게 건강 수명 연장 효과를 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그 참에 나도 타우린 1kg 세 통을 직구로 사서 아직까지 먹고 있다. 운동 전에 물에 타서 마시곤 한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다고 느꼈지만 시간이 갈수록 먹은 날과 먹지 않은 날의 차이가 희미해졌다. 그렇다고 특별히 해로운 것도 아니니 남은 건 다 먹을 생각이다.
건강기능식품이나 식이보충제 중에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기엔 근거가 부족하지만 해롭지는 않은 것이 많다. 녹차 추출물에 항산화, 체지방 감소,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능성 표시가 되어 있지만 대단한 효과가 증명되었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뭔가 나한테 효과가 있다고 느껴지며 적어도 안전하고 가격이 과도하지 않다면 먹어도 괜찮다. 건강한 사람이 특정 프로바이오틱스를 먹고 속이 편안하거나 배변에 도움이 된다면 먹어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암 환자나 면역이 저하된 사람이라면 프로바이오틱스 속 생균이 드물지만 세균 감염이나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그때그때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영양제의 세계에서 정답은 중도파에 있다. 세상은 극단으로 흐를지라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정재훈은 약사이자 푸드 라이터다. 자칭 ‘카트 끄는 잡식동물’로 미식과 새로운 음식 맛보기를 즐긴다. 저서에 <소식의 과학>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정재훈의 식탐> 등이 있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정재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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