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hall we dance?" 뱅상 샤프롱이 만드는 샴페인의 세계

샴페인계의 슈퍼스타, 돔 페리뇽의 셰프 드 까브 뱅상 샤프롱이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9의 ‘레빌라시옹’ 행사를 위해 서울을 찾았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와인과 함께 춤을 추어야 한다고.

프로필 by 박세회 2024.05.19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9가 출시됐습니다. 수확된 지 15년 만에 출시된 와인이지요. 2008년에 비해 리치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매 해마다 자연은 새로운 시나리오를 제시하지요. 돔 페리뇽은 오로지 빈티지 와인만을 만듭니다. ‘2009’라는 말은 오로지 그해 수확한 포도로만 빚은 와인이라는 뜻이죠. 그런 와인들은 당연히 그해의 기후 특성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자연이 시나리오를 쓰긴 하지만, 그걸 연출하는 건 인간의 몫이죠. 자연을 존중하며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것과 그해에 느낀 제 감정과 정서 이 두 가지 큰 요소 사이에서 긴장감을 가지고 균형을 찾아나갑니다. 2008년이 클래식하고, 프레시하고, 정밀한 와인이라면, 2009년은 관대하고, 활기차고 촉감이 생생한 와인입니다. 아마 이 두 와인을 비교하면 ‘빈티지 샴페인’의 개념이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 확실히 느껴볼 수 있을 거예요.
한 기사에서는 뱅상 샤프롱이 셰프 드 까브가 된 이후에 돔 페리뇽에서 피노 누아의 스틸 와인(로제 샴페인 특유의 붉은 빛깔을 내기 위해 섞는 레드와인)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내용을 봤어요. 그런데 뱅상이 셰프 드 까브가 된 시점은 2019년이니까, 2009년 빈티지는 당신의 책임이 아니지 않나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군요. 제가 셰프 드 까브가 된 건 2019년이지만 돔 페리뇽에서 2005년부터 일했고, 당시부터 만들어진 모든 와인들의 블렌딩 비율에 관한 의사결정에 저도 참여했지요. 물론 당시 제 선임 셰프 드 까브였던 리처드 제프로이의 가이드 아래서 모든 게 이뤄졌지만요. 피노 누아의 비율에 대해서는 설명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20년 전 제가 팀에 합류했을 때부터 제프로이는 ‘피노 누아 스틸 와인의 표현력을 좀 더 드러내자’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어요. (일반적으로 피노 누아는 샴페인 전체 맛과 향의 구조감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때부터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로제에서의 피노 누아의 표현력을 밀어부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단순하게 수치로만 보면 좀 다르게 읽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1990년대에 돔 페리뇽 로제에 섞는 피노 누아(품종명엔 ‘레드와인’으로 표기) 비율은 15%였고, 계속 증가하다가 2005년에는 그 비율이 28%에 달했죠. 그런데 2005년 이후부터는 계속 수치가 떨어지고 있고 이번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9의 경우엔 13%입니다. 이걸 수치만 보고 읽는다면 대체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절대 알 수 없을 거예요. 저희는 리처드 제프로이와 함께 좀 더 강렬한 레드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는 방식에서부터 다양한 실험을 해왔죠. 즉 1990년대의 레드와인보다 2009년 빈티지에 섞인 레드(피노 누아)는 훨씬 강렬한 표현력을 가진 와인들이에요. 비율에 드러난 숫자들은 저희의 창의력을 표현하는 여러 파라미터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돔 페리뇽도 레시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메종 샴페인 중엔 레시피에 따라 만드는 곳들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저희는 저희의 풍미에 대한 감성을 믿고 매해 레시피를 재발명하다시피 해오고 있어요. 게다가 저희의 선택지의 광대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희가 운영하는 포도밭은 예비 밭들까지 다 합치면 약 900헥타르(여의도 면적의 3배)입니다. 어마어마하지요. 그런데 저는 그 거대한 밭에서 나는 포도 중 50% 정도만 사용합니다. 물론 작황이나 그해의 와인 메이킹의 방법에 따라 10%일 때도 있을 수 있고, 70%일 때도 있을 수 있지만 대략 50% 정도예요. 그만큼 자유롭게 그리는 맛과 향에 따라 포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죠.

임정식(왼쪽), 안성재(가운데) 셰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뱅상 샤프롱의 모습.

임정식(왼쪽), 안성재(가운데) 셰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뱅상 샤프롱의 모습.

돔 페리뇽은 새로운 빈티지를 발표할 때마다 전 세계의 VIP와 프레스를 세계의 한 도시로 모아 시음 행사를 열고, 그 도시 최고의 셰프와 함께 최고의 페어링을 제공하지요. 이번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24의 ‘레벌라시옹’ 행사는 서울의 평창동에서 열렸고,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와 모수의 안성재 셰프가 음식을 준비했어요. 안성재 셰프는 “돔 페리뇽에서 영감을 받는 이유는 온도가 조금만 변해도, 또 분위기가 살짝만 달라져도 돔 페리뇽은 맛과 느낌이 변하기 때문. 마실 때마다 새롭고, 그래서 흥미롭다”고 말하더군요. 임정식 셰프는 “온도가 살짝 올라가니 미네랄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게 느껴지더라”라며 “돔 페리뇽은 브리딩을 하기도 하는데, 1시간 정도 브리딩을 한 뒤에 마셔보니 처음 마실 때는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맛들이 아주 생생하게 느껴지더라”라고 말했고요.
셰프들이 정확하게 봤습니니다. 저희는 그런 경험을 ‘와인과 함께 춤을 춘다’고 표현합니다. 돔 페리뇽은 끊임없이 움직이니까요. 우리는 와인과 춤을 춰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와인이 추는 춤을 페어링의 제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누군가에겐 기회지요. 이건 저희가 셰프들에게 ‘와인은 음식의 일부’라고 항상 얘기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애초에 있는 음식에 와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메뉴를 창조할 때부터 와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돔 페리뇽이 레이디 가가와 함께 강조하는 메시지 ‘Labor of Creation’에서도 당신은 늘 춤을 강조했어요. 예를 들면 “나는 마치 댄서가 스테이지에 올라가듯 포도밭으로 걸어 들어간다”라고 말한 바 있지요.
저는 춤의 이미지를 여러 비유로 사용하기를 즐깁니다. 그 이유는 춤이라는 예술의 형식이 ‘보디’(몸)를 강조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우리의 지성이 뇌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의 (뇌를 포함한) 몸 전체가 지적인 기관입니다. 몸은 세상에 닿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느끼는 기관입니다. 그런 몸을 이용해 추는 춤은 제게는 몸과 자연의 대화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댄서가 스테이지에 올라가듯 포도밭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표현했습니다.
당신의 노동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수도사 돔 피에르 페리뇽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브랜드의 기원인 돔 피에르 페리뇽은 베니딕트회의 수사였고, 베니딕트회의 모토는 라틴어로는 ‘오라 에트 라보라(ora et labora)’, 영어로 하면 ‘기도하고 일하라’였지요. 전 ‘노동’이라는 것이 항상 영적인 무언가와 연관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노동’이라는 단어의 가장 깊은 의미는 ‘창조’입니다. 몸으로 하는 물리적인 동작으로 무언가를 더 높은 상태, 무언가 영감을 주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노동의 본질이죠. 전 노동이 우리 존재의 본질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샴페인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매력적인 과정은 ‘리콘택트’(효모를 거르지 않고 샴페인 안에서 분해되도록 두는 과정)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샴페인의 브리오슈 향은 죽은 효모들이 자가분해 되며 만들어지지요.
맞아요. 이 효모들은 자신들의 노동인 ‘발효’의 과정을 마치고 나서도 10년 혹은 20년 동안 돔 페리뇽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실은 문자 그대로는 우리는 죽은 효모의 시체들이 녹아 있는 와인을 마시는 거지요.
(웃음)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요. 아상블라주(여러 와인을 섞어 만든 샴페인의 베이스 와인)에 우리가 선택한 효모를 넣으면 이 효모들이 당을 버블로 만듭니다. 그리고 이 효모들은 모든 당이 발효되고 나면 죽지요. 그리고 나면 이 효모들은 와인이 됩니다.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돔 페리뇽들을 보면 이 효모의 잔존물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숙성 과정을 30년 정도 거치게 되면, 이 효모들이 모두 깨끗하게 와인에 녹아듭니다. 데고르주망이나 필터링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되지요. 돔 페리뇽 빈티지에도 효모들이 많이 녹아 있지만, 더 오랜 숙성을 거친 플레니튜드 2, 플레니튜드 3로 갈수록 더 많은 효모들이 분해되어 와인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나뭇잎이 광합성을 한 뒤 떨어져서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이 다시 광합성과 생장을 통해 나뭇잎이 되지요. 효모가 와인을 만들고 다시 와인에 흡수되는 과정은 마치 자연의 사이클을 하나의 병에 담아 둔 것 같은 메타포입니다.
약 7년쯤 전에 한 인터뷰를 얼마 전에 읽어봤습니다. ‘병에 담긴 와인은 셀러에 두면 에이징될 뿐이지만, 돔 페리뇽은 숙성된다’고 말했더군요.
효모들에게 감사하게도, 숙성은 ‘아직 맛을 형성하고 있는 과정’을 뜻합니다. 효모가 죽고 나서도 샴페인의 맛은 계속 형성되지요. 오래 숙성하더라도 샴페인의 밸런스는 계속 변하고 아로마와 복합도는 계속 증가합니다. 프랑스에선 그 과정을 엘바쥬(Elevage, 숙성 혹은 양식)라고 하지요. 효모의 작용을 멈춘 와인을 셀러에 보관하면 결국 일어나는 것은 (아주 느린) 산소와의 접촉입니다. 날카로운 타닌들이 가지런해지고 부드러워지긴 하지만, 그 복합도가 증가하지는 않아요. 엘바쥬가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얘기죠.
당신은 돔 페리뇽에서 숙성됐나요? 아니면 그저 노화했나요?
(웃음) 저를 말하는 건가요? 좋은 질문이네요. 언젠가 제가 이곳에서 ‘노화’ 중이라고 생각되면 전 당장 이 회사를 그만둘 거예요. 전 아직 숙성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안성재 셰프가 그러더군요. 뱅상은 참 피터 팬 같다고요.
정말 좋은 얘기네요. 피터 팬은 항상 꿈을 꾸는 존재죠. 또 인생과의 진정한 관계는 어린 시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 시절이 우리의 본성, 가장 솔직한 모습이니까요.

Credit

  • PHOTOGRAPHER 김선
  • ASSISTANT 신동주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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