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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미술상 수상자 김희천이 말하는 '기술 발전 시대의 위안'

기술이 그리는 우리의 외곽선이 완벽해지면, 그보다 재미없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작가 김희천은 아직 남아 있는 틈 사이에서 생각할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8.29
제2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 김희천이 미술상 수상자 개인전 <스터디(Studies)>를 공개했다. 그간 테크놀로지로 생성한 ‘휘발성 강한 이미지’들을 다뤄왔던 김희천의 신작은 실사로 촬영된 배우와 대사가 있는 극영화 형식이다. 굳이 따지자면 장르는 공포물. 전국 대회를 앞둔 한 고교 레슬링 팀에서 선수들이 행방불명되는 원인 미상의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50여 분에 달하는 작품은 의외로 예술적 성취와는 별개로 의외의 극적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작품이 공개된 날 김희천을 만났다.
실사 극영화라니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가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런지 고생을 사서 하고 있어요. 사실 지난번에 국립현대에 전시한 ‘커터’는 저 역시 게임 엔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처음 다뤄보는 거였거든요. 그때 정말 힘들게 작업했고 참 많이 헤맸어요. ‘이게 뭐야. 나 정말 큰일났다’라고 생각하면서 한 작업이었거든요.
‘커터’를 바탕으로 영국의 헤이워드 갤러리 전시작을 하나 더 작업했지요.
맞아요. 그 작품이 ‘더블 포저’예요. ‘커터’의 배경이 작품을 전시한 국립현대미술관이었으니 그거 헤이워드 갤러리 버전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맵(map)만 만들어서 바꾸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욕심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더라고요. 작업을 하다 보니까 ‘커터’에서 게임 엔진으로 해보고 싶었는데 미처 수행하지 못한 아쉬웠던 것들을 다 넣게 되더라고요. 결국 닮긴했지만 완전 새로운 작품이 되었어요. 문제는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 게임 엔진을 한번 잡았으면 계속 게임 엔진 작업을 하면 되는데 갑자기 실사 촬영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거죠. 주변에서 다들 ‘왜 그러냐 너무 힘들다’고들 하더라고요. 제가 ‘작업실에서 랜더링이나 걸지 않고 실제로 직접 촬영하러 나가면 얼마나 재밌겠냐’며 호기롭게 밀고 갔는데, 정말 엄청나게 후회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배경이 중고등학교와 레슬링 연습실 등이잖아요. 장소 헌팅부터가 너무 어려웠을 것 같아요.
힘들었죠. 학생 선수들을 다루고 싶었는데, 학교라는 곳은 사실 굉장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문제가 생길 소지 자체를 안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이니까요.
본인이 레슬링을 하잖아요.
그게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아는 레슬링 지도자들의 연줄을 총동원해서 사방으로 알아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더라고요. 결국 제가 다니는 체육관 관장님의 소개로 레슬링 명문인 청량중학교와 청량고등학교에서 촬영했는데, 아이들 자체가 정말 맑고 밝고 재밌었어요. 허가를 받게 된 과정도 참 재밌었던 게 작품에 ‘영준’으로 등장하는 친구가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바람에 교장 선생님을 비롯 의사결정권을 가지신 분들이 ‘이번 기회에 레슬링부를 더 알려야 한다’면서 기분 좋게 허락해주신 거였죠. 재밌는 우연이 또 있었는데, 제가 아직 본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소년체전을 취재하러 캠코더를 들고 갔었거든요. 제가 거기서 바로 그 친구가 실제로 금메달 받는 모습을 찍어왔더라고요. 그 친구가 영상에 찍힌 줄 나중에 알았어요.
아! 영상 중간에 나오는 포디엄에 올라가 있는 소년이 작품 속 영준이군요.
맞아요. 절묘한 우연이었죠.
김희천, '스터디'(2024) 스틸 컷. 디지털 6mm 캠코더로 찍은 영상의 색감이 무척 아름답다.

김희천, '스터디'(2024) 스틸 컷. 디지털 6mm 캠코더로 찍은 영상의 색감이 무척 아름답다.

영상 색감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하이에이트(Hi8) 같은 예전 카메라로 찍었나요?
비슷해요. 6mm 디지털 필름으로 찍었어요.
DCR-VX 2000 같은 카메라로요?
DCR-VX 2100이랑 DCR-PD150D로 찍었어요. 색감은 정말 우연이에요. 처음에는 제가 찍은 화면이 엄청 어두워서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그런데 보정을 조금 해보니까 색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얻어걸린 거죠.
첫 구상의 단초는 뭐였어요?
첫 구상은 ‘학생 선수들이 운동을 하는데 상대가 사라지면 어떨까?’라는 거였죠. 만약 학생 선수들이 경쟁을 포기하면 어떨까, 자기가 하려는 것들을 굳이 해내려 하지 않고 반드시 이기려 하지 않는 사회는 어떨까, 그런 상상을 막연하게 한 거죠. 어른이 돼서 아이들이 져도 되는 사회를 상상한다는 게 좀 고약하잖아요. 그런데 제 동료 작가 중 한 명이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말해줬어요. 한 육상대회에서 실제로 너무 뛰어난 선수가 있었는데, 다른 선수들이 전부 기권하는 바람에 그 친구가 결승 경기를 혼자 뛰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육상이랑 레슬링은 다르잖아요.
그렇죠. 레슬링은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경기를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요. 만약 상대가 사라진다면 그 레슬링은 무엇일까?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 거죠. 학생이 사라지고 사라진 학생의 어머니가 등장하되 둘 다 굉장히 미스터리어스하게 그려진다면 공포영화로서의 좋은 출발점이 되리라는 생각을 했지요.
지난번에 우리가 만났을 때는 구상 중인 작품(‘커터’)에 대해 얘기하며 ‘인스턴트 너프’(Instant NeRF)라는 기술에 대한 얘기를 했었지요.
엔비디아의 부사장이 그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을 봤는데, 그게 너무 인상 깊었거든요. 간략하게 얘기하면 이제 우리는 3D라는 것을 압축해 저장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진을 압축하는 제이펙이라는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설명하며 이제 대상을 두고 사진 몇 장을 찍어서 이걸 학습하게 하면 점점 선명해지는 입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였어요. (반대로 얘기하면 사진 몇 장의 데이터로 3D의 데이터를) 압축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되는 거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어떤 질문 같은 게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지금 기자님의 사진을 3장 정도 찍어서 인스턴트 너프로 돌렸더니 너무나 생생한 기자님의 모습이 생성되었다고 한다면, 이보다 재미없는 게 어디 있겠어요. 우리는 서로에게서 보이는 단면들을 보면서 살고, 내가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단면들을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살잖아요. 그 단면들로 전체를 생각하려다 가끔 오해를 하거나 오해를 사기도 하고요. 전 이렇게 단면으로 압축되지 못하는 성질 때문에 우리가 다면적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단 3개의 면이 나라는 존재를 단일하게 또 너무나 정확하게 재현해낸다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도 압축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오늘 ‘스터디’(2024)에 관해 열렸던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님이 얘기한 ‘기술이 만들어낸 나의 외곽선’이라는 표현에서 ‘커터’를 구상하며 얘기했던 인스턴트 너프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꼭 이미지가 아니라도 내가 뿌리고 다닌 정보들만으로 나와 매우 흡사한 정체성을 재현할 수 있다면, 그것도 정말 재미없는 일이겠죠.
그러니깐요.
존재가 너무 허무해지잖아요.
예전의 저였다면 제가 말씀드린 이런 부분을 작품에 많이 풀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커터’에선 그러고 싶지가 않았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결국 사람들은 오해하고 부정확하게 이해하지요. 그래서 그러지 말고 ‘그것’이 주는 답답함을 실제로 재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거죠. 거대한 화면에 게임 캐릭터가 돌아다니는데, 그걸 내가 플레이할 방법은 없고, 그걸 플레이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요. 그런 식의 답답함을 체험해 보게 하고 싶었던 거지요.
‘기술이 만들어낸 내 외곽선’이 나와 닮으면 닮을수록 나는 무기력해질 것 같아요. 나의 아이덴티티에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전 ‘닮으면 닮을수록’이라는 말보다는 ‘설득력이 있어지면’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닮았다는 건 우리가 대상들을 비교하는 거잖아요. 전 그보다는 기술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 ‘설득력이 있을 때’라고 표현하는 걸 더 좋아해요. 전에 우리가 노래 추천을 예로 들었잖아요. 기술이 ‘너 이거 좋아할 거야’라고 나만을 위한 추천이라며 던져줬는데 그게 정말 설득력이 있으면, 우리가 우리의 외곽선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기술이 대신 해주니까요.
이번 작품 ‘스터디’에선 삭제의 이미지가 인상 깊었어요. 레슬링 경기 중인 상대방이 사라지는 걸 이미지로 표현했지요. 동영상에서 인물을 지우고 그 자리를 AI가 프로세싱한 공간의 이미지로 채워 넣는 기술이지요. 그런데 작가님은 그 기술이 불완전하다는 데서 위안을 느낀다고 했어요.
더 냉정하게 얘기하면, 기술은 발전하게 되어 있으나 아직 그게 오지 않았다는 느낌이에요. ‘위안’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런 순간이 다가왔다고 해서 우리가 불행해졌다거나 그런 순간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녜요. 저는 기술의 발전을 디스토피아로 보지 않고 거기에 공포를 느끼지도 않고 그저 하나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기술이 가지고 있는 어떤 답답함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아직은 도착하지 않아서 어떤 틈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 틈에 대해서 또 그 틈 안에서 나는 이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점이 제겐 위안이었어요. →

Credit

  • ASSISTANT 송채은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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