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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 밸리의 보물 '퀸테사'의 2021년 빈티지를 맛보다

러더포드 출신, 천상계 보르도 블렌딩과 만났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9.06
퀸테사 에스테이트의 전경.

퀸테사 에스테이트의 전경.

샌프란시스코 앞바다는 알래스카에서 내려오는 한류의 영향을 받아 1년 내내 서늘한 기온을 유지한다. 샌프란시스코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간 산파블로 만도 마찬가지. 이 한류의 영향을 받은 차갑고, 또 차가워서 무거운 바람들은 바다 바로 앞쪽에 있는 계곡을 타고 서늘한 기운을 실어나른다. 마카야마와 바카, 두 개의 산맥이 마치 스트로우처럼 서늘한 바람들을 계곡 안쪽으로 흘려보내며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식힌다. 바다와의 거리에 따라 산파블로 만 바로 앞인 로스 카네로스가 가장 서늘하고, 계곡을 따라 안쪽에 있는 욘트빌, 오크빌, 러더포드의 순으로 조금씩 따듯해진다. 북위 38도로 한국과 거의 비슷한 위도 대지만, 서늘한 바람 덕에 아침이면 물안개가 낄 정도로 기온이 낮으면서도 낮에는 늘 화창한 날씨 덕에 충분한 일조량을 확보할 수 있는, 와인 양조용 포도의 최고 수준 맞춤 산지가 바로 이곳 '나파 밸리'인 이유다. 현대 와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도의 유지다. 밤이 되면 서늘해진 나파 밸리의 바람이 포도의 산도를 지켜준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산지를 꼽자면 누구나 얘기하는 곳이 바로 '오크빌'과 '러더포드'다. 오퍼스 원, 조셉 펠프스, 프리마크 애비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퀸테사'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들이다.
1989년에 러더포드에 자리를 잡은 퀸테사가 왜 그리 '캘리포니안 보르도 블렌드'로 유명한지는 이들의 에스테이트 입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동쪽으로 흐르는 바카 산맥과 나파강 사이 작은 구릉지에 위치한 퀸테사의 포도밭은 서로 다른 기울기와 방향의 경사면을 가진 수많은 클러스터들로 이루어져 있다. 경사면에 따라 일조량이 다르기도 하지만, 바카 산맥이 산사태를 일으켰을 때 만들어진 토양과 그라블이 섞인 자갈토가 섞여 있다. 와인 메이커는 이 클러스터들에서 수확한 서로 다른 포도들을 블렌딩해 그 해의 퀸테사를 창조한다. 퀸테사가 아름다운 복합미를 뽐낼 수 있는 이유다.
퀸테사의 와인 메이커인 레베카 와인 버그의 모습.

퀸테사의 와인 메이커인 레베카 와인 버그의 모습.

지난 8월 우리는 이 와이너리의 플래그십 보틀인 '퀸테사 2021'의 출시를 기념해 퀸테사의 와인 메이커 레베카 와인버그와 줌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 아름다운 와인의 첫 시음을 기념했다. 그녀는 "나파 강의 영향을 받는 서쪽 포도밭 중에서도 라이트하고 가벼운 질감을 주는 경계면의 백색 밭과 중간 부분의 조금 더 어두운 토양의 밭이 모두 달라요. 전자의 밭에서 난 와인들은 가볍고 섬세한 질감을 후자의 밭에서 난 와인들은 바디감과 구조감을 선사하죠"라며 "전체적으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와인이 완성됐어요"라고 밝혔다.
퀸테사의 2021년은 건조한 겨울과 상쾌한 봄으로 시작됐다. 포도 송이들은 서서히 충실하게 익어갔고, 여름에도 비교적 온화한 기온 속에서 멋진 색상과 산도를 지켜 나갈 수 있었다. 포도나무의 잎과 송이는 작은 편이었고 포도의 알도 작았다. 파인 와인의 영역에서 이는 축복이다. 포도가 건조한 환경에서 농축미를 지닌 채 자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특히 생장기의 막바지까지 온화한 날씨가 이어져 최고의 컨디션으로 수확을 마쳤다.
퀸테사 와인의 다양한 사이즈들과 일루미네이션 2023의 모습(가장 왼쪽).

퀸테사 와인의 다양한 사이즈들과 일루미네이션 2023의 모습(가장 왼쪽).

숙성 과정에서도 복합미를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 뉴 프렌치 오크 65%, 중성 오크(여러번 사용해 오크 유래 물질의 영향이 거의 없는 오크)의 비율이 32%, 테라코타 암포라 3%의 비율로 22개월 숙성했다. 검은 베리류의 과실향들 바깥으로 제비꽃, 라일락, 아니스, 삼나무, 로즈메리 등의 복합적인 부케가 떠돌며 입 안을 가득 메운다. "저희는 와인에 테루아를 담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미션이라고 생각해요." 레케바가 말했다. "그것이 결국 저희의 비전이지요."
보르도 블렌딩의 레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 퀸테사는 역시나 보르도 블렌딩인 화이트 와인도 출시 중이다. 세미용과 소비뇽블랑을 블렌딩한 퀸테사 화이트와인의 이름은 '일루미네이션'. 이번에 출시된 빈티지는 2023년이다. 레베카 와인버그는 2023년을 두고 "아주 좋은 '엑설런트 빈티지'라고 생각해요"라며 "겨울에 비가 많이 왔고 케노피(와인 나무의 형태를 만드는 줄기의 모양)가 아주 잘 자랐어요. 한편 날씨는 좀 시원했기 때문에 생동감 있는 산도를 만들어내는 데 아주 좋은 해였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루미네이션 2023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보르도 화이트와 다르다. 토착 효모를 사용해 발효했으며, 아카시아 오크통과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숙성한 원액을 섞어 산도와 풍미의 레이어를 한겹 더 만들었다. 특히 부르고뉴의 양조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바토나주(효모 앙금 휘젓기)를 통해 훌륭한 효모 유래의 풍미(신선한 빵 반죽의 향)를 한층 더했다. 자몽과 금귤을 떠올리게 하는 우아하고 생동적인 산미 뒤로, 부드럽지만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숙성의 제스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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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uintessa Win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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