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두 아들이 다시 그려본 서세옥의 세상

‘프리즈 서울 2024’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곳은 전시 <Suh Se Ok×LG OLED : 서도호가 그리고 서을호가 짓다>가 열리는 LG전자의 부스였다. 장남 서도호는 아버지 서세옥 화백의 작품 세계를 재해석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차남 서을호는 그걸 전시하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이들의 재창조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내에선 처음 선보이는 ‘LG 투명 OLED TV’의 기술력이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9.30
“이번 프로젝트는 ‘LG 투명 OLED TV’를 보는 순간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서세옥 화백의 차남 건축가 서을호가 말했다. 그는 이번 ‘프리즈 서울 2024’의 헤드라인 파트너인 LG전자와의 협업으로 자신의 형인 아티스트 서도호와 함께 아버지 서세옥의 그림을 재해석한 미디어 전시를 꾸렸다. 전시의 타이틀은 <Suh Se Ok×LG OLED : 서도호가 그리고 서을호가 짓다>. 전 세계 비엔날레에서 초청받는 현대미술 작가 서도호가 아버지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하버드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치고 현대모터스튜디오의 건축설계를 맡은 바 있는 서아키텍스의 대표 서을호가 공간을 디자인했다. LG전자 부스에서 열린 이번 전시의 주인공을 맡은 디스플레이는 그간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몇 번 드러낸 적 없는 ‘LG 투명 OLED TV’. 아직 정식으로 판매된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에선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처음이다.
“저는 제 형과 광주 비엔날레의 ‘틈새호텔’이라든지,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청사진’ 등의 작업을 여러 번 같이 해왔거든요. 그래서 이젠 눈빛만 봐도 알아요. LG 투명 OLED TV를 보는 순간 형은 애니메이션의 구상을 떠올렸고 저는 지금 있는 이런 공간의 연출을 떠올렸죠. 서로 ‘콜’을 외치다 보니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프리즈 서울 2024’에 자리 잡은 LG전자 부스 설치 전경.

‘프리즈 서울 2024’에 자리 잡은 LG전자 부스 설치 전경.

승부수는 레이어의 연출이었다. 공간의 파사드 전면에는 서세옥 화백의 ‘사람들’ 연작 중 한 작품을 인쇄한 거대한 반투명 천을 걸고, 그 뒤쪽에는 8대의 ‘LG 투명 OLED TV’, 또 그 뒤쪽에는 8대의 ‘LG OLED 에보’를 설치해 ‘레이어 뒤에 레이어 뒤에 레이어’를 완성했다. 3중 레이어가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반투명의 천과 무한대의 명암비를 가진 OLED 에보(evo) 사이에 ‘LG 투명 OLED TV’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을 보면 “투명한 화면의 디지털 캔버스라는 특별함에 귀가 번쩍 뜨였다”는 서을호의 말이 조금의 과장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검은 먹이 유난히 잘 표현되는 OLED 에보(evo)의 화면에 검게 번지는 검은 먹의 모습 전면으로, ‘LG 투명 OLED TV’의 투명한 스크린의 하얀 도상이 겹쳐지는 광경은 말 그대로 경이롭다.
디스플레이 앞에 또 다른 디스플레이를 쌓는 형태는 서을호 대표가 설명하는 수묵화의 작동 원리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서양화는 불투명한 캔버스 천을 나무 틀에 맞게 늘려서 거기에 젯소를 바르고 유화 물감을 덧입혀 그리지요. 그림을 그릴 때 붓으로 컨트롤하는 게 가능해요. 또 혹시 잘못 그리더라도 그 위에 다른 색을 덧칠하면 됩니다. 그런데 완성이 되고 나면 그 과정의 레이어는 보이지 않아요. 아버지의 수묵 작품은 달라요. 수묵은 먹과 화선지 두 개의 미디어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고, 우리는 다 그린 그림을 보고도 작가가 붓을 어디서 어떻게 찍고 뗐는지를 다 알 수 있지요.” 수묵은 붓으로 선을 긋는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종이에 닿은 먹은 농담에 따라 번지고, 이 번짐은 시간의 층위를 완성한다. 두껍게 칠해지지만 그 레이어를 볼 수 없는 유화의 작동 방식과, 종이에 스며들어 하나가 되지만 농담에 따라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수묵의 그것은 다르다. 그러니 어쩌면 선명한 OLED 디스플레이 위에 포갠 투명한 디스플레이는 화선지 위에 먹이 번지는 작동 방식을 감각적으로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인지도 모른다. 투명 디스플레이가 가능케 한 시각 효과는 형인 작가 서도호에게도 충격이었다. 서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쇼룸에서 투명 OLED TV를 처음 봤다”며 “특히 불투명한 모드에서 투명 모드로 바뀌는 과정을 보면서 2차원적인 평면이 3차원적인 공간으로 변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서세옥 화백의 작품을 두 아들이 최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풀어낸 이번 전시에 대한 평도 좋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개막일에 부스를 찾은 마이클 고반 LA현대미술관(LACMA) 관장은 “최첨단 기술이 위대한 예술과 만났을 때 어떤 새로운 관점이 탄생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LG 투명 OLED TV 옆에 선 서도호(좌),서을호 형제.

LG 투명 OLED TV 옆에 선 서도호(좌),서을호 형제.

이쯤에서 서도호의 애니메이션 얘기를 잠시 해야 한다. 8개의 디스플레이를 쌓아 만든 ‘LG OLED 에보’의 움직이는 화폭에는 서세옥 화백이 그린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집들이 등장한다. 뭉클한 것은 사람의 안에서 사람이 생겨나는 장면이다. 집의 형태를 한 사람의 속에서 생겨난 아이는 거푸집을 벗고 분리된다. 그 장면은 언뜻 서도호의 대표작인 ‘집속의 집속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저희 아버지는 붓의 움직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이 붓의 무브먼트 자체가 아버지의 작품 세계였죠. 아버지께서 생전에 말씀하신 ‘기운생동’이 들어간 바로 그 붓의 움직임을 저희 형 서도호 작가가 ‘리-이매진’(re-imagine)한 거예요.” 서을호 대표가 말했다. “마리엣 웨스터만 구겐하임 관장님도 오셔서 아버지의 작품 세계에 대해 한참을 얘기해주시더라고요. 투명성에 대해, 투명 캔버스를 활용해 레이어를 만든 것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죠.”
가장 뒤편, 3개의 레이어로 된 영상 설치 작품의 뒤쪽에는 OLED 사이니지 24대로 구성한 대형 미디어 월에서 서세옥 화백의 작업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이 상영됐고, 좌우 측면의 벽에는 ‘즐거운 비’(1976), ‘행인’(1978)을 비롯한 7편의 원화가 걸렸다. “한 인터뷰에서 서도호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 ‘행인’을 꼽는 걸 봤어요. 저 역시 참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서을호 대표와 긴 이야기를 마치고 전시장에 걸린 ‘행인’을 잠시 바라봤다. 네 개의 귀퉁이 가운데 선 사람의 형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서세옥의 작품들은 멈춰 있지만, 항상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서세옥 화백은 생전 펴낸 자신의 그림책 <즐거운 비>에서 그 책의 독자로 상정되는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어느 날, 종이에 점을 찍어 봤어요. 점을 옆으로 이어 보았더니 선이 되더군요. 선이 죽었다 살았다 얼마나 신나던지요. 그러다가 물감을 확 붓기도 하고, 마른 꼬챙이 같은 붓으로 마구 긁어도 보고, 물이 듬뿍 묻은 붓으로 확 그어 보기도 했어요.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을 그림에 담을 수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통쾌한 삶이구나 생각했어요. 내 그림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습니다.” 서 화백이 말하는 ‘통쾌함’이 기술의 옷을 입고 되살아난 것처럼 보였다. →

Credit

  • PHOTO Courtesy of LG전자 | 한국경제신문 | 문덕관
  • ASSISTANT 송채은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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