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part 2. <흑백요리사> 안성재 "편안함이 곧 럭셔리"
새로운 '모수'가 만들어지는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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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준지. 팬츠 코스.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경연 중에 정말 솔직하게 가장 놀란 디시는 뭔가요?
하나를 꼽자면…아무래도 전 파인 다이닝 요리를 전문적으로 해온 사람이다 보니 고급 요리들에는 아주 큰 감흥을 받지 못해요. 우리도 다 하는 일이니까요. 물론 정말 인상적인 다이닝 요리들도 있었고 테크닉이 뛰어난 작업들도 있었고, 다들 자신만의 소위 말하는 ‘와우 포인트’를 가진 것들이었어요. 그런데 급식대가님인 이미영 셰프님의 요리는 달랐어요. 방송이 됐는지 모르겠는데, 2라운드 때였나? 그 셰프님이 닭볶음탕을 하셨어요.
어! 그 장면 제대로 안 나왔어요.
그 디시를 먹었는데, 온기가 느껴지는 거예요. 우리가 놀라운 맛을 만났을 때 ‘와우!’라고 하는 그런 경험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어요.
물리와 화학의 세계가 아니었군요.
맞아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요리를 만들 때는 ‘난 실력이 좀 있어’라는 마음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그게 아니라 “정성스럽게 만들었으니 편하게 드세요”라고 말을 거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그 접시를 계속 먹게 되더라고요. 별생각 없이 아주 맛있게. 방송을 지켜보는 대중 누구에게 서브해도 그 닭볶음탕이 맛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만한 음식이었어요. 저는 그런 경지가 정말 어렵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 이미영 셰프님은 아마 양념들을 계량한 레시피도 없을 거예요. 그냥 ‘뚝딱뚝딱’하시더니 간을 보시고 내는 거죠.
대중 요리에 대한 리스펙트가 보여요.
늘 리스펙트가 있죠. 제가 모든 음식점의 셰프님들을 존경하지는 않아요. 음식점들 중에는 분명히 좀 더 쉬운 방식을 사용해서 맛을 내는 곳도 있는데, 그걸 다 존경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이번 경연을 통해 제가 먹어본 음식들 중엔 “우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신 분들이 있어요.
이번 경연에서는 프렌치 베이스와 이탈리아 베이스의 차이가 드러나서 재밌기도 했어요.
전 아주 극단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때 ‘이탈리아 음식은 한식, 프렌치는 일식’이라고 표현해요. 모든 요리가 그렇지만 이탈리아 요리는 정말 재료를 중심에 둔 심플한 요리들인데, 그래서 더 장인정신이 필요해요. 리소토나 파스타를 낼 때 결국 반죽과 익힘의 정도에 따른 식감이 미묘한 차이로 판가름 나거든요.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 셰프는요? 저는 나폴리 맛피아 요리가 제일 궁금하더라고요.
잘해요. 리소토라고 해도, 이탈리아의 지역마다 테크닉과 최종적인 식감이 다 다르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나폴리에서 하는 방식의 리소토를 하겠다고 말하고 그걸 표현해낸다면, 우리가 아는 방식과 다르다고 해도 그건 ‘진짜 스킬’인 거죠. 나폴리 맛피아는 나이가 조금 어린데도 굉장히 심오한 자세로 요리를 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특히 ‘밥’. 이 밥은 세계 무대에서 일하는 아시아인 셰프는 자존심을 걸어야 하는 영역이거든요. 아시아인이 쌀을 잘 못 다룬다? 그건 정말 치명적이죠. 또 반대로 차이점을 보여주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친구가 쌀을 다루는 걸 보면 나이에 상관없이 스킬 면에서 엄청난 리스펙을 느꼈어요. 파스타도 그 친구가 만든 건 좀 달라요. 우리가 보통 먹는 파스타들이 이탈리아 중부나 북부의 파스타들이거든요. 저도 나폴리에 가본 적이 없어서 아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복잡해 보였어요.
윤남노 셰프(‘요리하는 돌아이’)는 어때요?
그 친구는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요리를 대하는 자세가 일단 되게 진지해요. 그리고 ‘내가 내어주는 요리를 정말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사람’이에요.
오! 그 마음이 정말 중요한데요.
맞아요. 그게 정말 중요한 거잖아요. 셰프는 “내가 음식을 만드는 이 행위 자체가 너무 멋있으니까, 너희는 그냥 먹어”라는 자세로 요리를 해선 안 돼요. 먹는 사람이 내 음식을 맛있게 먹기를 바라면서 하는 요리와 ‘내 요리 행위’에 중점을 두고 하는 음식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 친구는 전자예요.
그런데 그 모든 셰프만큼 큰 사랑을 받은 안성재 심사위원의 ‘모수’가 지금 공사 중이라 사람들이 화가 많이 났어요.(웃음) 당장 모수에 가보고 싶은데, 갑갑한 거죠.
엄청난 컴플레인을 받고 있습니다. 기자님한테도 지금 요맘때쯤 열 거라고 얘기했었잖아요. 저는 진심이었어요. 그리고 그때까지는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오늘 이곳에서 촬영한 이유도 모수가 제가 생각하는 완벽한 업장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사 중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트렌치코트 메종 마르지엘라. 티셔츠 준지. 팬츠 코스. 슈즈 토즈.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익힘 정도나 간을 아주 ‘서틀’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이번 업장 건축에 큰 신경을 쓰느라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조민석 건축가의 매스스터디스에서 담당해주고 있어요. 영국의 하이드 파크에 있는 서펜타인 갤러리에선 매년 세계적인 건축가 한 명을 초청해 서펜타인 갤러리 옆 부지에 여름 별장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가건물인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지어요. 조민석 건축가는 한국에선 최초로 이 서펜타인 파빌리온 건축에 선정된 분이에요.
워낙 유명하시죠.
실제로 만나보니 엄청 시원시원하시고 원하는 게 뚜렷하시더라고요. 제가 하는 말도 잘 들어주시고요.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오래된 서양식 한국 가옥의 멋을 최대한 살리면서 자연스러운 현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아요. 지금 여기 보이는 이렇게 아치형을 그리는 모양이나 기둥에 붙은 저런 장식(손으로 건축을 가리키며)들을 당연히 살리면서 거기에 뭔가 현대적인 터치를 더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그냥은 못 하겠죠. 아주 미묘한 안성재 셰프의 취향에 맞아야 할 테니까요.
그러니까요. 그러다가 늦어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조금은 대충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요.(웃음) 이미 있는 상업 건물에 열려고 했으면 진작에 재오픈했을 거예요. 그런데 전 새로운 레스토랑은 예전의 레스토랑에 비해 ‘evolve’(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똑같으려면 다시 여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도 그런데, 또 그 마음 때문에 이렇게까지 늦어졌으니, 안고 가야죠.
이미 미쉐린 3스타인데, 더 진화하고 싶어요?
제가 뭐 별 4개를 받겠다는 말은 아니고, 그냥 저는 늘 진화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멋있는 말이네요. ‘끊임없는 진화’. ‘모수는 진화 중’.
좀 지루한데요?(웃음) 미쉐린 얘기를 했으니 좀 얘기해보자면, 이제 우리는 내려갈 일밖에 없어요. 미쉐린 스타를 유지하려면 올해 우리 업장이 영업 중이었어야 하는데, 저희는 거의 1년을 닫았어요. 아마 미쉐린 스타 리스트에서 아예 빠지게 될 거예요.
그렇겠죠. 잠행 기간에 업장이 영업을 하지 않았으니 평가할 수 없었겠죠.
그런데 제게 별보다 더 중요한 건 좋은 레스토랑을 만드는 거거든요. 별을 딸 기회는 나중에 반드시 다시 와요. 오히려 저희가 어떻게든 빨리 업장을 꾸려서 시간을 맞춰 3스타를 유지하려고 했다면 그게 오히려 위험한 생각이에요. ‘우리는 상이란 상은 다 타봤다. 다 됐고, 진화하자.’ 이게 저희의 모토예요.
수많은 영역에서 ‘파인’(fine)이라는 수식어를 쓰지요. 파인 아트, 파인 다이닝, 파인 와인, 파인 리터러처 등등이요. 안성재 셰프가 생각하는 ‘파인’은 뭔가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파인’이 뭔지를 생각해보면, 우리 시대의 파인은 ‘편안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수를 처음 오픈할 때부터 ‘Comfort is luxury’가 제 모토였거든요. 제 서비스의 모토죠. 사람들이 ‘파인 다이닝’이라고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것들, 슈트나 드레스를 입고 가야 하고, 테이블 집기들이 하얗고, 포크와 나이프는 어떤 순서대로 사용해야 하며 등등의 룰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포스트모던 시대잖아요. “그런 룰들을 다 버리고 사람들이 와서 가장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진정한 럭셔리다”라고 얘기했지요. 물론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겠지만요.
멋진 말인데요? ‘Comfort is new luxury’. 제목이 나왔어요.
제가 생각한 말이긴 한데, 물론 어디서 영감을 받아서 접목한 말이겠죠.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안상미
- STYLIST 이지현
- HAIR & MAKEUP 스텔라
- ASSISTANT 남가연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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