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part 1. <흑백요리사> 안성재가 말하는 '미식의 시대'

새로운 '모수'가 만들어지는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10.22
셔츠 보테가 베네타. 팬츠 에스티유.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 보테가 베네타. 팬츠 에스티유.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흑백요리사> 덕에 파인 다이닝 신이 들썩이고 있어요. <마스터 셰프 코리아>와 <냉장고를 부탁해> 시절 이후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기분 좋은 흥분입니다.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캐치테이블 검색이 4000% (최근에는 7400%라는 기사도 나왔다) 증가했다는 얘기를 저도 들었으니까요. 그 많은 문의가 전부 예약이나 방문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그것 자체로 엄청나게 관심이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죠. 이 프로그램이 있기 직전까지 파인 다이닝 셰프들이 정말 다들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잖아요. 셰프들이 뭘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홍보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니까 노력은 하는데 결과가 안 나오는 상태였단 말이죠.
상황이 얼마나 안 좋았던 건가요?
솔직히 진짜 무서울 정도였어요. 심지어 셰프들끼리 모이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일정한 수준의 매출을 유지하는 업장이 있긴 했죠.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고 느낄 정도의 암울한 수준이었어요.
이런 대반전의 흐름에 일조해서 엄청 뿌듯하겠어요.
제가 이 방송에 출연하기로 처음 마음먹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내가 하는 요리,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요리사들이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가지고 정말 멋지게 일하는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전달해주고 싶었고, 그렇게 된 것 같아서 그게 가장 뿌듯해요. 이게…이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에서 정말 중요하거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다이닝 주방에 사람을 한 명 뽑고 싶어도 지원자가 없었대요. 그런데 지금은 한 명 뽑는데 이력서가 스무 통씩 온다고 합니다.
그렇죠. 그게 정말 중요하죠. 선망하는 직업이 되도록 하는 일.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덕에 아직 어린 친구들의 꿈이 셰프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감사할 일인 거예요. 넷플릭스에 감사할 일이고 백종원 씨에게 감사할 일이죠. 사실 어떤 사회가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는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셰프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정말 미식에 관심이 많은 사회인 거고, 그래서 이런 기회에 저희 같은 기존 셰프들은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죠. 그래야 더 큰 동기부여가 될 테니까요.
다른 모든 면은 그렇지 않지만, 미디어 덕에 젊은 친구들의 관심이 급증했다는 면에선 <쇼미 더 머니>와 정말 비슷해요. 그 쇼가 시작되고 나서야 더 많은 친구가 힙합 아티스트를 꿈꾸기 시작했으니까요.
저희에겐 젊은 친구들이 미식계에 어떻게 하면 관심을 갖게 할지가 정말 큰 숙제였어요. 일단 이 업계로 유입되는 인력이 있어야 우리가 그들을 트레이닝하고 교육하고 미식업계 전반이 다음 세대로 또 그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거니까요. 그걸 전달할 방법이 없었는데, 우리의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셰프들이 티비 쇼에 나와서 경연을 펼치는, 그야말로 일반 대중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포맷으로 넷플릭스가 풀어준 셈이죠.
티셔츠 준지.

티셔츠 준지.

이런 사건이 있으면 대중 다이닝이나 파인 다이닝의 수준도 크게 한 번 올라가지요.
사실 미식 문화 수준은 얼마나 다양한 식재료와 주종들이 수입되느냐로도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 시장이 너무 침체되어 와인 수입사의 약 30%가 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파인 다이닝 신이 지금처럼 활기를 띠게 되면 이 시장도 다시 살아나겠죠. 이미 그런 징조가 보이고 있어요. 제가 곧 컬래버레이션 팝업 행사를 위해 도쿄 불가리의 일 리스토란테 루카 판틴에 가는데요, 아이스크림에 필요한 재료가 있어서 발주하려 했더니 물량이 없더라고요. 일반적인 재료가 아닌 고급 재료인데, 그 재료들이 이미 이렇게 잘 팔리기 시작했다는 거죠.
일반 가정에서 요리하는 집셰프들도 이런 미식 호황을 피부로 느끼곤 해요. 좀 오래전에는 카르보나라를 해 먹고 싶어도 구안찰레나 판체타를 사는 게 너무 힘들었고, 사려면 대량으로 사야 했지요. 안초비도 성게알도 그랬어요. 그런데 아까 얘기한 미식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다이닝 신이 활성화하면서 그런 것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됐죠. 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었겠지만요.
조금 정치적인 발언일 수도 있지만, 전 이번 기회에 규제가 조금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와인이나 식재료 등이 들어올 때 법적인 면, 과세적인 면 등에서 수입하기 너무 힘든 장벽이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그걸 조금만 느슨하게 해준다면 우리나라 안에서도 미식 경험의 폭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프로그램 이후에 쏟아지는 관심에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사실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에 스타 셰프들이 워낙 많이 나왔잖아요. 거기에 나온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거의 다 알 정도로 정말 유명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정작 그분들은 저를 몰랐을 거예요. 제 느낌상 90%는 저를 몰랐어요.
저도 방송에서 보여준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모를 수밖에 없어요. 전 티비에 출연하는 사람이 아니고, 홍보를 하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전 이날까지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왔어요. 자연인, ‘노 바디’로요. 그저 제가 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어딘가에서 보여지고 나니 저를 자기가 갈 길을 걸어온 사람, 자기가 갈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 멋지게 봐주시고 궁금해 해주시더라고요. 조심하자. 정말 ‘조심하자’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던 것 같아요. 제 개인에 대한 것보다 업계 전체에 뭔가 하나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셰프님의 성향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안다고 생각하는데, 관심받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전 관심을 끌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긴 해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 하면 강민구 셰프님께서 한 인터뷰에서 저를 두고 “안성재는 말보다 요리로 표현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그래, 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라고 나 자신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제 모든 요리를 모든 사람이 먹어볼 순 없잖아요. 이미 제가 ‘말’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된 이상 이제는 제가 하는 말도 중요한 상황이 되어버렸죠. 제가 아는 말 하나가 ‘미쉐린 스타 셰프’와 파인 다이닝 신을 대변하는 일종의 ‘스테이트먼트’가 되었으니 부담이 됩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안상미
  • STYLIST 이지현
  • HAIR & MAKEUP 스텔라
  • ASSISTANT 남가연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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