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아자부다이 힐스는 과연 메가 시티의 미래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미디어의 반응과 도쿄 사람들의 마음은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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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년이 지난 요즘 일본에서는 아자부다이 힐스에 대해 ‘텅텅 비어 있다’거나 ‘관광지로선 실패했다’ 같은 부정적인 기사가 한창 나돌고 있다. 구글 검색창에 ‘아자부다이 힐스’를 입력하면 연상 키워드로 ‘텅텅’이 나올 정도다. SNS를 봐도 ‘금요일 밤인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오히려 쾌적하게 놀 수 있다’ 같은 관광객의 소감이나 ‘너무 한가해요! 우리 숍에 손님 제발 와주세요!’라는 종업원의 절규(?)를 찾아볼 수 있다.
과연 정말 텅텅 비어 있을까. 11월 초의 한 주말, 명품 쇼핑을 취미로 하는 동료 여자 후배를 데리고 처음으로 그곳을 방문했다. 지하철 가미야초역에 직결하는 엔트런스에선 BTS 멤버 진을 기용한 패션 잡지의 대형 광고가 우리를 반겼다. 건물 밖에 나가 벨루티, 불가리 등 해외 명품 브랜드의 로드숍이 나란히 서는 언덕길을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총 63층짜리인 일본 최고층 빌딩인 ‘모리 JP 타워’로 이어진다. 그 밑에 있는 잔디 스페이스 ‘중앙 광장’에서는 렉서스 차 전시 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광장은 식사나 차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요새 어디를 가도 외국인 관광객으로 넘치는 일본이지만 그날은 오히려 일본인 관광객의 비중이 더 높은 것 같았다.
천고마비(그렇다. 일본도 가을 하늘은 푸르다)의 푸른 하늘이 가득한 주말에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 12시를 넘으면 시설 안의 ‘디지털 아트 뮤지엄’도, 식당가도 거의 다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이 너무 없어서 걱정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붐비는 음식점이라도 60분 정도 기다리면 입장 가능한 정도로 보였다. 보통의 손님에게 그 정도의 웨이팅은 오히려 여유가 있어 좋다.
그런데 어디든 들어가보자고 후배에게 제안해도 애매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피로도 쌓여 할 수 없이 타워 1층의 스타벅스에 자리를 확보하고 앉자마자 후배의 불만이 폭발했다. “아니, 이런 언덕길 올라오면서 가볼 만한 숍이라곤 하나도 없잖아요. 다 기존 백화점에나 다른 로드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고요.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결국 우린 스타바(일본에서 스타벅스의 줄임말이다)야 스타바!” 주위를 돌아보니 “어디 가볼래?”라는 질문에 “글쎄…”라고 답하는 관광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들이 많이 모이지 않은 이유는 이 시설의 구조적인 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자부 일대의 지형은 고저차가 비교적 커서 지하 통로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도 끝까지 올라가는 게 무척 힘들다. 게다가 원래부터 주택지였던 이 일대에는 기껏 와서 돌아볼 만한 주변 관광지가 별로 없다. 개업 66주년을 맞이한 도쿄 타워가 모리 타워 바로 옆에 서 있지만, 도쿄 시민들이 주말에 찾을 만한 곳은 절대 아니다.
개발업체인 모리 빌딩의 입장에선 단기적인 관광객의 감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모리 빌딩의 쓰지 신고 대표는 “거리의 신선함과 (찾아오는 사람들의) 정은 반비례한다. 당연하지만 신선함은 오픈한 직후에 최고로, 그 후 점점 내려간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행사도 하고 정기적으로 테넌트 숍을 바꾸긴 하지만, 사람들의 정은 개업 후부터 점점 강해진다. 다시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거리는 성장해나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20년후에도 폐허가 되지 않고 발전해나갈 수 있을것인가’를 개발 시점에서 생각하는 이유”라며 한 언론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1955년에 창업한 모리 빌딩은 부동산 임대와 재개발을 수행하는 대규모 부동산업체이자 도쿄 미나토구의 일대 지주다. 원래 쌀집이었던 창업지를 시작으로, 지금은 미나토구를 중심으로 임대 건물만 해도 103동, 임대 면적은 총 169만 m²(2024년 4월 기준)에 달하는 부동산업체가 되었다. 신바시, 아카사카, 롯폰기 등 미나토구의 번화가를 걸어가면 ‘제ㅇㅇ 모리 빌딩’처럼 번호가 붙은 크고 작은 건물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특히 1993년에 취임한 창업 2세 대표 모리 미노루 (2012년 사망)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비지에에게 영향을 받아 초고층 빌딩 건설과 녹지 조성을 기축으로 한 ‘도시 재생’을 재개발의 기본 사상으로 삼아왔다. 2003년에 개장한 ‘롯폰기 힐스’, 2014년의 ‘도라노몬 힐스’ 등 50층을 넘는 건물에다가 오피스, 문화시설을 갖춘 주상복합시설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건물의 주택 부분에 사는 ‘힐스족’은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일본 신흥 부유층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힐스족’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꼭 곱지도 않다. IT 버블의 바람을 타고 단기간에 거액의 돈을 손에 넣은 젊은 경영자들. 부자가 당연히 갖추어야 할 품위나 교양이란 아예 관심도 없고 경제력을 과시하려는 듯 날마다 최고층의 회원제 클럽에서 파티를 즐기는 힐스족에 더불어 그런 파티를 돌아다니며 힐스족에 매달리려고 하는 사람을 가리켜 ‘미나토구 여자’라는 말까지 생겼다. ‘힐스’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와 함께 그런 야비함과 미숙함을 연상케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아자부다이 힐스를 걸어가면 모리 빌딩이 그런 기성의 ‘힐스’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려고 시도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모리 JP 타워에 인접하는 부지에 도쿄 최대 규모의 국제학교 ‘더 브리티시 스쿨 인 도쿄’를 유치했다. 그들은 베스트셀러보다 문학작품과 아트 사진집의 매대를 넓힌 서점을 타워 안에 만들었다. 그들은 롯폰기 힐스와는 달리 모리 JP 타워 최고층에 전망대를 만들지 않았다. 일반 관광객들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34층 카페까지. 그 위는 오피스와 주거 공간이고 일반인의 출입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세계 최상위 리조트 체인인 아만 그룹이 관리하는 ‘아만 레지던스’가 제공하는 최고층의 펜트하우스는 총3채다. 1채당 450평, 판매 가격은 무려 200억엔이나 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모리 빌딩은 아자부다이 힐스를 일반 관광객들이나 자신들이 만든 ‘힐스족’들이 모이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곳을 진정한 의미의 ‘부유한 자’들이 모이는 문화적인 생활 공간을 만들려고 기획했다.
모리 빌딩이 아자부다이 일대의 목조 주택 밀집 지역의 개발에 착수한 것은 1989년. 애플TV 드라마 시리즈 <파친코>에서 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재일교포 3세 솔로몬이 재개발을 위해 헌 목조 집에 혼자 사는 재일 교포 1세 할머니의 땅을 매수하려고 애쓰던 시기다. 그때 도쿄에는 수많은 그런 할머니가 있었다. 내 머릿속에도 그 땅을 고수하려던, 절대 돈이 목적이 아닌 그런 할머니들의 얼굴이 실제로 몇 명 떠오른다. 모리 빌딩이 2030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제2 롯폰기 힐스’가 완공되면, 롯폰기에서 아자부, 아카사카를 거쳐 도라노몬에 이르는 커다란 ‘힐스 존’이 완성된다. 지금까지 모리 미술관 등 수많은 문화시설과 총 12ha에 달하는 녹지 공간을 도심부에 조성해온 그들의 공적은 크다. 그러나 어디를 바라봐도 깨끗하고 고급스럽고, 시설마다 차이점을 찾아보기 힘든 ‘힐스’로 도심부가 매듭지어지는 상황을 나는 어떻게 봐야 할까? 돈과 상관 없이 도쿄의 땅을 지키려던 할머니들의 얼굴부터 수많은 주택가의 추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이건 모리 빌딩만의 문제도 아니다. 시부야나 다카나와 등 다른 업체들이 도쿄 곳곳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재개발도 마찬가지다.
요시노 다이치로는 1997년 <아사히 신문>에 입사해 국제부와 사회부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아사히신문사 산하의 라이프스타일 인터넷 매체 ‘Kosho-Kojitsu’의 부편집장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요시노 다이치로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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