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엘 샤키가 생각하는 감각 너머의 세계
와엘 샤키가 <와엘 샤키: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로 한국을 다시 찾았다. 전시가 열리는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우리가 감각하는 이 세계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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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암스테르담)’(2005)은 독일의 한 마트에 들어가서 <쿠란>의 내용을 읊는 작가의 모습을 원테이크로 찍었어요. 아무리 봐도 이어 붙인 흔적은 없더라고요. 설마 그 긴 작품이 다 외워서 한 건 아니겠지요?
아뇨. 외워서 한 거고 보신 것처럼 원테이크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 없이 암송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원테이크이긴 하지만, 테이크 자체는 여러 번 가야 했고요.
엄청나군요. 저도 꽤나 주의 깊게 처음부터 끝까지 봤는데, 너무 빨라서 어떤 내용인지 다 이해되지 않았어요.
<쿠란>에선 챕터를 ‘수라’라고 해요. 제가 읽은 수라는 카흐프(동굴)의 수라지요. 이 수라는 이주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기존에 있던 장소에서 힘과 지식이 부족할 때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여행해서 그곳에서 힘과 지식을 얻어 돌아와 그것들을 전파해야 한다는 메시지예요. 카흐프의 첫 장은 어느 동굴에서 잠든 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한 무리의 신실한 청년들이 신앙을 달리하는 주민들로부터 박해를 피하고자 어느 동굴로 도망치면서 시작하지요. 신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309년 동안 이들을 잠들게 해요. 이들은 잠에서 깨어나지만, 자신들이 309년이나 잠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지요. 잠에서 깬 청년들은 배가 고파 시장을 찾아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돈을 누군가에게 주며 몰래 시장에서 먹을 걸 사다달라고 부탁해요. 그런데 상인들이 그 돈을 보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고 동굴의 소년들을 찾아가지요. 상인들은 소년들이 309년 동안 죽었다가 살아난 걸 보고 신을 믿게 됩니다. 소년들은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를 증거로 삼아 신의 권능을 새 세대에 설파하지요. 이슬람 학계에서는 이 이야기를 예언자 무함마드가 지식과 힘을 찾아 메카에서 메디나로 건너간 일과 연관 짓기도 합니다.
해당 영상은 암스테르담의 한 슈퍼마켓에서 촬영했어요. 저는 렌즈를 뚫어져라 응시한 채 외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선지자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의도한 건가요?
하하하. 아녜요. 전혀 아녜요. 원래 <쿠란>을 읽을 때는 음조를 넣지요. 그런데 전 오히려 뉴스 리포터처럼 일부러 정장을 차려입고 목소리 톤도 죽이고 정말 주관을 배제한 채 텍스트를 읽듯이 한 거예요.
저는 당연히 선지자의 모습을 의도한 건 줄 알았어요. 영상에서 뒤쪽에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마치 록스타를 보듯 구경을 하더라고요.
아녜요. 그냥 정말 평범한 공개된 공간, 그냥 슈퍼마켓이었어요. 아마 <쿠란> 소리가 들리니까 사람들이 놀란 거겠죠.
전 당신의 작품에서 늘 어떤 문화충돌을 느꼈어요. 그 문화충돌을 통해 존재에 크랙이 생기고 그 크랙을 통해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메타피지컬한 무언가를 감각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저는 충돌이라기보다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물론 모든 문화가 다르고, 저 역시 저만의 어린 시절, 유산, 문화,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 상태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살기도 했지요.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거대한 ‘캐피털리즘’이라는 우산 속에서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저는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대조적이라기보다는 전혀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한다고 생각했어요. 전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1970년대에 유년 시절을 사우디에서 보냈어요. 이집트의 부족사회에 있다가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며 현대화되고 있던 사우디로의 이주는 저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쳤죠. 베두인 종족 같은 유목민, 토착민들이 갑자기 미국식 럭셔리를 경험하게 되고 그 두 문화가 그대로 공존하는 것을 봤지요. 지금은 인터넷도 발달했고 미디어도 범람하고 있어서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그때는 달랐어요. 그 공존의 장면들이 정말 확연했죠.
이번 전시에서는 2000년대의 주요 초기 비디오 작업인 <텔레마치 Telematch> 시리즈(2007-2009) 중 ‘텔레마치 사다트’(Telematch Sadat, 2007), ‘텔레마치 교외’(Telematch Suburb, 2008), ‘텔레마치 쉘터’(Telematch Shelter, 2008) 세 작품이 공개 중이죠. 당신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십자군 카바레’(Cabaret Crusades) 연작에선 인형들이 등장하고, 이번 텔레마치 시리즈에는 어른의 역할을 아이들이 맡지요.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봤던 ‘드라마 1882’에서는 성인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을 맡아 음악극을 펼치고요. 감정의 개입도를 조절하는 듯한 장치라고 생각했어요.
맞아요. 기본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 않게 인형을 쓰고, 어린아이들에게 어른 역을 맡기고,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에서처럼 반전의 이미지를 쓰는 것은 ‘거리 두기’를 통해 드라마를 죽이는, 지우는 장치죠. 예를 들어 아이들과 작업을 하게 되면 관객들은 보면서도 아이들의 성별을 정의할 수 없게 되지요. 보기에 매우 비슷하거든요. 아이들은 연기를 하지 않아요. 마리오네트처럼 여기서 저기로 움직이라고 하면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할 뿐이죠.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는 이집트 남부의 수도였던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의 한 마을에서 지하에 묻힌 보물을 찾으려고 땅을 파고, 영적 행위를 통해 선대의 비밀을 찾아가는 마을 주민들을 목격했던 제 이야기와 모하메드 무스타갑의 <다이루트의 우화들>에 수록된 단편 ‘해바라기’의 내용을 오버랩해 만든 이야기지요. 제가 그 작품에 아이들을 세운 이유는 그 애들이 그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연기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에 막을 내린 대구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였던 ‘러브 스토리’가 내거티브 필름 효과로 이루어진 것 역시 비슷한 이유인가요?
맞아요. 영상은 판소리를 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지요. 그런데 내거티브 필름이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아요. 그녀가 슬퍼하고 있는지, 기뻐하고 있는지 우리는 볼 수 없지요.
‘러브 스토리’는 ‘누에 공주’ ‘금도끼, 은도끼’ ‘토끼의 재판’이라는 구전설화와 전래동화를 판소리로 재해석했지요. 심지어 한국인인 저도 잘 모르는 ‘누에 공주’ 같은 이야기는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요. 정말 복잡한 내용이더라고요.
사실 갤러리 쪽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찾아줬고, 저는 그 이야기들 중 너무 명확하게 작품의 제목인 러브 스토리에 관한 것들은 배제했어요. 사랑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 간의 관계성을 통해 사랑 이야기의 기술적인 특성이 드러나는 이야기를 원했죠.


바레인의 피제리, 파키스탄의 카왈리, 그리고 이번 ‘러브 스토리’에서의 한국 판소리 등의 다양한 전통 민속음악도 사용해 왔지만, ‘드라마 1882’ 등의 작품에선 새롭게 만든 곡을 쓰기도 했어요. 음악이 작품 전반의 미감에 미치는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큰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면 ‘드라마 1882’나 ‘십자군 카바레’의 경우엔 곡을 다 만들었고, 원하는 스타일도 알고 있으니 등장인물에게 특정한 창법을 요청하거나 편집할 수 있지요. 모든 게 제어가 가능해요. 그런데 피제리나 카왈리 그리고 이번의 판소리까지 전통적인 음악의 경우엔 전혀 제어하지 않는 편이에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거지요. 전통음악은 똑같은 멜로디도 창법이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존재, 상태에 따라 굉장히 많이 바뀌는 음악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카왈리나 판소리의 경우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들이었기 때문에 제어하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십자군 카바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 작품이 공개됐을 때 정말 엄청나게 화제가 됐었죠. 당시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여기저기서 정말 좋은 반응을 받았지만 소위 말하는 아랍 월드, 그러니까 아랍 커뮤니티에서 굉장히 성공적이었어요. 그 이야기 자체가 아랍의 관점으로 십자군 원정을 쓴 역사책에서 따왔기 때문이죠. 제가 참고한 역사책들은 심지어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쓴 이야기예요. 예를 들면 우사마 이븐 문키드(Usama ibn Munqidh)는 11세기에 살았던 역사학자였을 뿐 아니라 다마스쿠스의 대사였죠. 당시의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다마스쿠스는 정말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이 ‘십자군 카바레’도 그렇지만, 시리아나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면 당신의 작품 안에서 역사와 현대가 공명하는 것 같아요.
참 재밌는 일이죠. 제가 이 작품을 시작했을 때는 아직 중동에서 혁명(‘아랍의 봄’)이 일어나기 전이었어요. 3부작을 만드는 데 다 해서 5년이 걸렸죠. 그런데 작품을 발표하고 나면 실제로 다마스쿠스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등 현실에서 너무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지요. 사람들이 제 작품과 현실을 연관 짓기 시작한 이유죠. 제 ‘십자군 카바레’의 두 번째 파트에는 당시 십자군 아랍 세계의 리더들이 십자군과 평화협정을 맺어 서로 살겠다고 싸우는 일이 벌어지지요. 저희 문화에서 이들은 사실 형제 같은 사이예요. 그런데 자신이 살겠다고 서로를 죽이거나 죽임을 당해도 모른 척해요. 지금 아랍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매우 유사하지요.
오늘 우리는 작품에서 당신이 드라마를 삭제하고 거리를 두는 방식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그런데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공개된 ‘드라마 1882’의 경우엔 다른 작품과는 달리 거리를 두지 않았지요. 오히려 저는 굉장히 감정적이라고 느꼈어요. 이집트의 역사를 다뤄서인가요?
흠…. 그건 좀 달라요. 기존에 제가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등의 작품에서 하던 방식과는 물론 차이가 좀 있지요. 성인 배우들을 기용했어요. 제가 ‘거리를 둔다’고 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아까도 말했듯이 등장인물들이 스토리를 이해하느냐 여부입니다.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에 등장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드라마 1882’의 배우들은 자신들이 연기하는 이야기의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었지요. 결론적으로 이전 작품들에서는 ‘드라마 죽이기’(Killing Drama)를 해왔다면, 이번에는 드라마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작품의 제목을 ‘드라마 1882’라고 한 것이죠. ‘드라마’라는 단어에는 수많은 의미가 있어요. 드라마라고 하면 뭔가 재앙적인 상황이 떠오르기도 하고, 영화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쇼들이 떠오르기도 하죠. 또 간혹 약간 시니컬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죠. 누군가가 너무 과장된 표현을 하거나 좀 지나친 연기를 하면 ‘드라마틱하다’고 표현하니까요. ‘드라마’라는 단어에 깃든 그런 여러 뉘앙스가 제 의도와 맞았어요. 당시에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어디에나 이방인’(Foreigners Everywhere)이었잖아요. 지금 ‘외국인’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인지를 생각해야 했어요. 또 제가 다루는 장면이 이집트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도 해야 했고, 그 둘 사이의 관계성도 너무 중요했어요.
‘드라마 1882’는 45분에 달하는 긴 분량이라 베니스에서 보기는 했지만, 다는 못 봤어요. 그 작품이 다루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이집트가 73년 동안 영국의 통치를 받았잖아요. 그런데 영국의 이집트 지배를 촉발한 사건, 그 최초의 사건은 알렉산드리아의 한 카페에서 당나귀꾼과 익명의 몰타인 사이에 벌어진 싸움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300명이 죽었고 도시가 황폐화되었지요. 이 일로 우라비 혁명이 촉발했고, 그게 번져 영국 통치로 이어졌고요. 그런데 많은 역사학자가 이 최초의 싸움이 조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것 자체가 ‘드라마’였다는 거지요. 제가 가면을 쓰지 않은 150명의 성인 배우들과 극장에서 작업하게 된 이유입니다.
당신의 작품을 설명할 때 ‘메타피지컬’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당신에게 ‘메타피지컬 리얼리티’란 무엇인가요?

‘드라마 1882’(Drama 1882, 2024)의 촬영 현장. © Wael Shawky
우리에겐 감각들(그는 이를 ‘senses’라 표현했다)이 있지요. 우리는 그걸로 세상을 이해하고요. 그런데 저는 이 감각이라는 게 우리와 세계 사이의 소통을 제한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면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지요. 그 작품은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라는 마을에서 영혼의 세계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을 만났던 데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입니다. 제가 만난 그 마을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정말로 믿었어요. 자신의 선조들의 영혼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그들이 자신들을 보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줄 거라고 믿었죠.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센스’를 지녔어요. 그들이 믿는 것 자체는 설명할 수 없는, 제가 감각할 수 없는 다른 ‘메타피지컬’한 세계라는 걸 느꼈지요. 전 세속적인 것에서 연결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번에 대구미술관과의 전시도 그렇고, 이번에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린 전시도 그렇고, 한국과의 커넥션이 점점 더 깊어지는 느낌이에요.
맞아요. 작년에는 한국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이러다가 집을 얻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요.
어? 아직 한국에 집이 없어요?
하하하. 아직은 없어요. →
Credit
- PHOTOGRAPHER 김성룡
- PHOTO Mina Nabil
- Courtesy of Sfeir-Semler Gallery
- Lisson Gallery
- Lia Rumma
- and Barakat Contemporary
- ART DESIGNER 최지훈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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