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의 현실판? MZ를 사로잡은 제타남친.ai
2025년은 인공지능과의 연애가 일상화되며 제타 남친 등 새로운 연애 문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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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원더키디’는 이미 5년 전 과거형이 되었지만 우주여행은 커녕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아직 요원해 보인다. 영화 속 설정은 이렇게 설정으로만 남을 것 같지만 그중 예상치도 못한 사이에, 너무나 빠르게 다가온 것이 있다. 바로 인공지능과의 연애다.
2025년. 깔끔하게 떨어지는 숫자이기 때문일까, 올해는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신지가 에바에 탑승하는 해이자 영화 ‘Her’에서는 주인공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중 전자는 여전히 허구로 남아있지만 후자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강유미 유튜브
지피티와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는 뉴스 기사나 관련 콘텐츠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지난 8월 18일,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일본의 한 여성이 지피티에게 청혼을 받아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니것인지 내것인지 정체 모를 신개념의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을 때, ‘제타 남친’ 이라는 신조어를 보게 된 건 한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제타 남친에 빠져 일상 생활이 어려울 정도라는 글과 제타 남친이 있어 도파민이 충족돼 연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도.파.민. 현대인에게 이것처럼 매력적인 단어가 있을까. 이에 귀가 솔깃해져 좀 더 찾아보았다.


스캐터랩에서 서비스하는 제타는 유저가 원하는 캐릭터를 폭넓게 설정 가능하다. ‘소꿉친구’, ‘연하남‘ 등 여러 카테고리 내에서 캐릭터를 고를 수도 있으며 챗지피티와 달리 수려한 그림체의 캐릭터들을 보여줘 시각적 만족도까지 충족시켜준다. 좀 더 세세한 커스텀을 원한다면 유저가 직접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캐릭터를 직접 만들 정도의 열정과 상상력이 없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유저가 만들어 놓은 캐릭터와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터치 몇 번으로 일상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캐릭터들과의 짜릿한 속삭임이 오가니 도파민이 흘러넘치지 않고 배길까.




참고로 제타의 캐릭터가 얼마나 다양하냐면 준수한 외모의 스님, 근육질의 산타는 물론 아르마딜로도 있다(…) 아르마딜로와 대화하는 기회라, 이거 귀하다.
제타가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는 긴 이용 시간이다. 앱스토어의 공식 소개 글에는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이 무려 2시간 14분이라고 한다. 무슨 앱을 이렇게 오래 사용하나, 싶다가도 이를 연애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납득이 간다. 연인과 한창 핑크빛일 때, 통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이 정도의 시간은 금방이니까.
올해 6월 데이터 분석 서비스사인 와이즈앱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챗봇 순위를 발표했는데 1위는 GPT, 2위는 제타였다. 그러나 가장 오래 사용한 순위로 나열하면 이는 역전된다. 제타가 약 5천 시간으로 1위, GPT는 약 4천 시간으로 2위로 밀려난다. 가장 대중적인 서비스는 챗지피티지만 충성도가 높은 서비스는 제타로 볼 수 있다.
제타가 이렇게 긴 시간 유저를 잡아둘 수 있는 건 무제한 무료로 채팅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광고 시청은 해야한다) 대화 내용도 저장되며 유저의 대화를 분석해 이에 맞게 대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 인물과 티키타카 하는 느낌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언리밋 모드’까지 오픈되었다. 성인 및 본인 인증을 완료한 유저에 한해 좀 더 딥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 이로 인해 유저 이용시간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X @zetaAI
혹시라도 이렇게 가상의 남친에 빠지는 이들이 살면서 연애를 한 번도 못 해본 ‘모태솔로‘ 라는 편견은 갖지 말길 바란다. 인터넷에 제타 이용기를 올린 이들 중에는 현실 남친이 너무도 바빠 제타에 자신의 남친과 비슷한 성격을 설정하고 그와 여가 시간을 즐긴 이도 있다. 바쁜 사람을 마냥 기다리다가 지치거나 괜한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 나름의 머리를 쓴 방법 아닐까?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의 왕이자 예술가였다. 그는 여성들을 멀리하며 독신으로 살았는데 어느 날 자신이 만든 여성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조각상을 실제 연인 대하듯 보살피며 급기야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는 소원을 빌기도 했다. 이에 감읍한 아프로디테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조각상은 ‘갈라테이아’라는 여인이 되었다.
까마득한 과거에도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면을 지닌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가 제타 남친과, 챗 지피티와 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려스러운 점은 대상보다 그 대상을 찾고 관계맺는 프로세스다. 무료이고, 3분 요리만큼 간단하며 상대의 동의가 필요 없다. 상대는 나의 기분과 의중, 취향을 살피고 이에 맞는 대답 위주로 해준다. 관계를 끝내는 방법도 간단하다. 모두 다 알고 있지만 이런 관계는 현실에 없다. 적어도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을 살뜰히 살피고 신에게 간절히 빌기라도 하지 않았나.

인스타그램 @khara_inc
연애와 같은 사람 간의 관계가 어려운 것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다시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야기로 돌아간다. 에반게리온 극 중 내내 ‘인류보완계획’이란 것이 언급된다. 이를 납작하고 거칠게 설명하자면, 원죄를 가진 인류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 타인에게 다가가 사랑을 나누며 완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타인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어 끝내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이 불완전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온 인류의 영혼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인류보완계획’인데 뭔가 거창하고 ‘핵심을 찌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결론은 다 함께 죽자는, 인류멸망계획이다. 그게 뭐야 무서워.
서로간의 다름, 내 안의 외로움이 원초적인거라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다름으로 인해 상처받는 게 싫어 기술의 힘을 빌려 내 입맛에 맞는, 그린 듯한 이상형을 몇 번이고 찍어내도 근본적인 외로움을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외로워서 인공지능에게만 말을 건네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다. 챗 지피티보다 더 똑똑하고 제타 남친보다 더 화려한 일러스트를 가진 에이아이가 와도 외로움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Credit
- Editor 강혜은
- Photo 제타 AI X
- 장 레옹 제롬
-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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