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빠니보틀은 "늘 뒤통수 맞는 것 같은 작품을 좋아했다"고 했다

빠니보틀은 진화한다. 영역을 확장한다. 그러면서도 늘 핸들을 휙 꺾을 수 있는 샛길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설레는 마음으로.

프로필 by 오성윤 2025.09.22

십대의 치기를 벗고, 이십대의 애살에서 겨우 벗어나면, 삼십대에 인생의 첫 절정기가 찾아온다. 한국 최초의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스콰이어>는 존 레논이 ‘Imagine’을 발표하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펴내고, 데이미언 셔젤이 <라 라 랜드>를 찍은 바로 그 삼십대에, 올해 처음 당도했다. 2025년 10월에 맞은 서른번 째 생일을 자축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룬 절정기의 삼십대, ‘프라임 서티즈’(Prime 30s) 열 명을 만났다.


그레이 경량 구스다운 재킷, 스웨터, 핑크 워싱 티셔츠, 스트레이트 데님 팬츠, 펀세이버 키링 모두 코닥어패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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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촬영 일정 잡으면서 느낀 게, 정말 바쁘시더라고요. 해외 일정도 너무 많고. 6년 동안 쉴 새 없이 전 세계를 쏘다녔는데 건강은 괜찮나요?

딱히 문제 되는 부분은 없습니다. 비행시간이 길다 보니 허리가 간간이 안 좋은 정도? 아, 시차 적응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긴 해요. 하면 할수록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커지더라고요.

지금의 빠니보틀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결혼을 안 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저한테 여행이 갖는 의미 변화가 아마 그 비슷한 느낌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는 어디를 여행하든 무조건 설렜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여행이 일이 됐고, 솔직히 예전만큼의 설렘은 없죠. 그런데 또 ‘이젠 내가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건가’ 하기에는 한 번씩 강렬한 설렘을 느끼기도 하고요. 제가 1년에 한두 번씩 아예 카메라를 놓고 개인적으로 즐기는 여행을 떠나거든요. 그럴 때 느끼죠. ‘내가 아직 여행을 이렇게나 좋아하는구나’ 하고. 제 인생을 너무 많이 바꿔 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좋다 싫다 하고 단순하게 표현하기가 어렵게 되어버린 부분도 있고요.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30대를 보내고 계신 것 같아요. 스스로 ‘나는 서른세 살 이전까지 백수였다’라고 한 적도 있죠.

사실 엄밀히 말해서 백수까지는 아니었는데요. 취업을 해도 다 금방 그만두긴 했죠. 제일 오래 다닌 곳이 1년이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직장인으로 사는 건 아무리 봐도 제 스타일은 아닌 거예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고요. 많은 분이 ‘패기 있었다’고 말씀해주시는데, 어떻게 보면 대책이 없었던 거예요. 나이도 차서 친구들은 대리를 다네 마네, 결혼을 하네 마네 하고 있는데 저는 미래에 대한 기약도 없이 무작정 떠난 거니까. ‘여행하다가 괜찮은 곳 있으면 거기에 정착해서 사는 인생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오히려 기반이 아예 없으니까 과감하게, 어떻게 보면 무모하게 뭔가를 해볼 수도 있더라고요. 그러다 운이 좋아서 이렇게 6년째 유튜브를 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일 오래 한 직업인 거예요. 이전까지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이제 ‘유튜버’가 그걸 넘어서고 있는 거죠.

운이 좋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네요. 운만으로 국내 최고의 여행 유튜버 자리를 이렇게 오래도록 유지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운이 좋았고, 타이밍이 좋았죠. 그런 걸 다 빼면 제 채널이 좀 솔직했다는 게 주요하지 않았나 싶기는 해요.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별로면 별로라고 가감 없이 얘기를 해왔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조심하는 부분도 많이 생겼지만 채널 초기에는 그 부분이 컸다고 봐요.

그때보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이 생겼을 테니까요.

맞아요. 제가 유튜브를 몇 년 하고 말 거라고 생각했을 때는 ‘망해도 상관없어’ 하는 마인드로 임했고 확실히 그 동력으로 발전을 해나간 부분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쿨찐(쿨한 척하는 찐따)’ 느낌이 있죠. 쌓아온 이력이 있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일자리도 달려 있잖아요. 저만 망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안타까워할 사람들이 있을 테니 저도 이제 그런 식으로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으려고 하죠. 최대한 조심하면서 또 솔직해지는 거, 그 밸런스 맞추는 게 정말 어려워요.

한 마디의 무게감이 달라지기도 했죠. 이제 빠니보틀의 작은 언행도 크게 화제가 되니까.

옛날의 ‘날것’ 같은 느낌을 그리워하시는 분도 많아요. 하지만 그분들이 간과하는 건 제가 정말로 그렇게 하면 이제는 무조건 논란이 될 거라는 거죠. 논란을 떠나서 제가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일을 해왔는데 아무 변화가 없다면 그게 더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옐로 구스다운 재킷, 마이크로플리스 스웨트셔츠, 스트라이프 긴소매 티셔츠, 코듀로이 팬츠, 캠프캡 모두 코닥어패럴.

옐로 구스다운 재킷, 마이크로플리스 스웨트셔츠, 스트라이프 긴소매 티셔츠, 코듀로이 팬츠, 캠프캡 모두 코닥어패럴.

작년에는 MCN에서 독립해 자기 회사인 피제이에이치미디어를 차리기도 했어요.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설립할 때는 딱히 꿈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운영을 하다 보니까 나중에 유튜브에서 명맥이 끊겨도 소규모 제작사로 동력을 이어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장 신사업을 도모하겠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요즘은 간간이 제 돈을 투자해서 소규모 프로젝트를 해보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나영석 PD님이나 김태호 PD님처럼 엄청난 제작자가 되겠다거나 그런 꿈을 꾸는 건 아니고요. 그냥 소소하게.

그래도 그 두 분을 언급하신 게, 나침반이 가리키는 건 그쪽인가 보군요.

방향성은 그런 분들에게서 보고 있죠. 규모는 전혀 그쪽이 아니고요. 저는 계속 서너 명이서 해나가고 싶어요. 규모가 커지면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기도 하지만 또 줄어드는 부분도 있잖아요. 자전거는 핸들을 이리저리 꺾을 수가 있는데, 비행기는 확 꺾을 수가 없는 거랑 비슷한 거죠. 자전거 재미있잖아요. 딱히 빨리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갑자기 호기심을 자극하는 샛길이 나타나면 휙 들어가 보기도 하고.

아이디어도 좀 더 과감하게 낼 수 있고, 같은 걸 하더라도 안전하기보다는 특이하게 만들어볼 수 있고요. 제가 어릴 때부터 영화나 만화도 B급을 더 좋아했거든요. 늘 그냥 잘 만든 것보다는 뒤통수 맞는 것 같은 작품이 좋았어요.

<좋좋소> <찐따록: 인간 곽준빈> 같은 작업들을 통해서 이미 각본과 연출에도 재능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죠.

저는 사실 그것도 타이밍과 운이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차별성이 잘 부각된 부분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타이밍이나 소재를 잘 고르면 능력이 조금 떨어져도 성공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배운 기회이긴 했죠. 그래서 실패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오히려 더 없어져가는 것 같아요. 애초에 제 능력이 그 정도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 것 아닐까요?

그럴 수밖에 없죠. 제가 방송을 하면서 셰프라든가, 운동선수라든가, 한 분야에서 엄청난 성취를 이루신 분들을 만나잖아요. 그분들 얘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이분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사람인데 왜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 거지?’ 물론 그건 굉장히 감사한 부분이죠. 저도 놓고 싶은 생각은 없고요. 하지만 동시에 그걸 제가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어요.

30대가 빠니보틀의 최고 전성기일까요? 아니면 나이가 들며 더 큰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느끼나요?

저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늘 그 순간이 커리어 하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웃음) 방송인으로 이루고 싶은 건 대부분 이뤘다는 느낌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 제작자로서의 욕심이 생기고 있기도 해요. 스트레스가 더 많은 분야인 것 같지만 재미도 더 있더라고요.

플레이어로서의 빠니보틀보다 디렉터로서의 빠니보틀을 기대하는 거군요.

물론 여전히 제 안에서는 여행 유튜버로서의 아이덴티티가 가장 중요하죠. 창작자는 두 번째고요. 하지만 언젠가 그 두 아이덴티티의 중요도가 뒤바뀌는 날을 그려보고 있어요. 분명 언젠가는 유튜버 빠니보틀이 너무 많이 소비되어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도 지루해지는 날이 올 거잖아요. 저는 그때의 자연스러운 스위치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지금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리버서블 패딩 재킷, 코듀로이 윈드 셔츠, 허리에 두른 후드 집업, 데님 6부 팬츠, 양말 모두 코닥어패럴. 워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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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임한수
  • STYLIST 박선용
  • HAIR & MAKEUP 김환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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