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란 무엇인가?
당신이 알고 있는 뮤지션은 이미 인디가 아닐 가능성이 많은 이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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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뭐가 그리 샘이 났길래 그토록 휘몰아쳤던가…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거야.’ 아니다. 나는 아직은 이 노래 가사처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게 될 거야’라는 노래를 부른 뮤지션 한로로의 음악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한로로의 처음을 기억한다. 그는 코로나19 엄동설한이 서서히 녹아내리던 2022년, 아직은 서늘한 공기가 남아 있던 시기에 첫 봄 인사를 건네는 ‘입춘’으로 데뷔했다. 경력도, 이름도 없는 낯선 인디 싱어송라이터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까지는 놀랍게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디서 불어온 바람에 실려 소문에 소문을 타고 그의 음악은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의 세례를 받으며 수많은 사람에게 가닿았다. 이때 ‘입춘’에 대해 내가 쓴 소개글이 있어 당시의 기록을 가져와 본다. “2000년대 초 밴드 러브홀릭, 더더, 파스텔 뮤직의 음악이 떠오르는데, 선명한 멜로디 기반의 록 가요를 다시 선보인다는 점에서 과거 가요를 사랑했던 팬들과 신세대 싱어송라이터를 원하는 인디 팬들의 니즈를 동시에 충족하고 있다”.
창원 출신 한지수는 빠르게 그가 한 번도 속한 적 없던 인디의 대표 역할에 익숙해졌다. 지금은 유튜브 공식 음원 조회수만 1000만 회를 넘어가는 ‘사랑하게 될 거야’와 ‘자처’ 등 몇 곡의 싱글을 더 내고 나서 난생처음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어색해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의 고향 바로 옆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현장에서 록 팬들은 ‘대로로’를 연호하며 새로운 아이돌의 등장에 환호했다. 이듬해 EP ‘이상비행’과 ‘집’을 발표하고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무대에 선 한로로는 완전히 다른 음악가였다. 무대 매너는 깔끔해졌고, 밴드 마스터로 라이브를 이끌었고, 록 문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제 한로로는 대중음악 시장에 우뚝 섰다.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이다.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의 주요 지표로 기능하는 멜론 차트에는 ‘사랑하게 될 거야’와 ‘0+0’가 오래도록 10위권 내를 지키고 있다. 멜론의 음악 축제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맡고 있는 ‘트랙제로’ 분야를 대표해 축하 무대를 꾸민 그의 모습은 몇 년 전 후드를 뒤집어쓰고 수줍게 호응을 유도하던 시절의 그와는 전혀 달랐다.
솔직히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장기하, 혁오, 잔나비 등 인디 신에서 출발해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 이름을 올린 사례가 한로로가 처음도 아니었으니 대단한 성공이라고만 생각했다. 선명한 구조의 기승전결을 갖춘 노래의 멜로디는 나날이 탄탄해졌고, 연약한 영혼을 위로하는 청춘의 구루로 기능하는 노랫말의 표현도 섬세해졌다.
내가 이상함을 느낀 건 음악이 아니었다. 소설이었다. 한로로의 소설 <자몽살구클럽> 말이다. 동명의 앨범을 듣고 뒤늦게 구입한 책을 펼치고 나서, 나는 이 글을 쓴 사람과 저 음악을 만든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살을 앞둔 청춘들에게 유예 기간을 주고 그 안에 살 이유를 찾게 한다는 설정 안에는 논리적인 서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이 저 노래가 되고, 이 캐릭터가 뮤직비디오에 나온다는 거지?’ 그 소설은 사실 앨범과 연동한 미디어 믹스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지나친 마케팅 전략 탓에 의심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그의 경력을 되짚게 됐다. 국문과 재학생 한지수는 우연히 본 뮤직비디오에 매료되어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소속사 스튜디오 모스(오늘날 어센틱)에 데모 파일을 보냈다. ‘공부용 노트북에 무료 작곡 프로그램을 깔아서 이어폰 줄을 연결해 녹음을 했다’는 것이 한지수가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고백한 자수성가의 서사다.
소속사는 인디 레이블이라는데, 인디 레이블치고는 매우 낯선 ‘연습생’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한로로의 음악적 재능을 갈고닦았다고 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소속사가 처음 한로로를 위해 그린 모습은 영어 가사를 노래하는 하이틴 팝스타였다고 한다. 폐기된 이 ‘데모 한로로’를 거쳐, 그는 한국어 가사 기반의 문학적인 서사를 담은 인디 로커로 세상에 등장했다. 3년 전 ‘IZM’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 방향이 ‘회사와 함께 열심히 달려온 성과’라고 고백하며,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가 노래한 우울한 청춘의 고통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게 더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라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만들어진 중2병? 훔쳐버린 우울? 청춘의 고통을 노래하는 록 싱어송라이터는 밴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 블루 오션을 개척한 결과물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의심이 싹튼다. 이제 한로로의 소속사는 일상을 공유하는 채널을 만들고, 인기 트렌드에 맞춰 쇼츠를 찍고, 앨범에 포토 카드를 끼워 넣는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고도의 자본을 바탕으로 아이돌 기획사가 전개했던 마케팅이 인디펜던트 음악 시장에서 얼마나 통하는지를 확인해보려는 시장 실험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한로로를 대표로 언급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작동하는 방식이 오늘날 '인디'라는 간판 아래 가장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마케팅 모델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잔나비, 혁오, 그리고 오늘날 밴드 붐의 선두에 선 실리카겔과 같은 밴드들은 비록 소속사의 도움은 있었으나, 언더그라운드에서 본인들의 음악을 갈고닦아 성장하여 스스로의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들의 소속사는 기획사로서의 역량이 그리 크지도 않았다. 다른 경우도 있다. 한로로와 함께 공연을 꾸민 경험이 있는 싱어송라이터 윤마치는 콜드플레이 커버 영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뒤에도 기획사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자기 레이블을 차렸다. 밴드 열풍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일조한 오디션 프로그램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에 출연해 명성을 얻은 유다빈밴드나 터치드도 클럽을 돌며 실력을 쌓아 이름을 알린 케이스다. 터치드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수상 밴드이기도 하다.
‘밴드 붐’이라는 풍경 안에 속한 음악가들의 출발점과 주도권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클럽에서 자생적으로 출발한 밴드, 소속사를 거부하고 자기 레이블을 차린 싱어송라이터, 음악 경연대회에서 이름을 알린 뒤 미디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만난 밴드, 그리고 처음부터 소속사가 연습생으로 육성해 시장에 내놓은 경우까지 다양하다. 나는 이 모든 케이스가 ‘인디’라는 레이블이 붙은 채로 소비자 앞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다.
이건 2026년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인디’는 이미 검증된 브랜드다. 언제부터였을까? 네버 마인드가 3000만 장 팔리면서? 아케이드 파이어가 그래미를 받으면서? 혹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인디펜던트 음악은 다른 단어가 되었다. 저자본으로 마케팅에 휩쓸리지 않는 독립성을 바탕으로 자아를 표현하는 양식을 뜻하는 단어에서 지금의 인디펜던트는 저항과 반항의 이미지, DIY스러운 저가형 사운드를 스타일적으로 쏙쏙 뽑아 버무린 새로운 셀링 포인트가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디는 정신이 아닌 하나의 음악 양식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고? 어쩌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현실은 이렇다. 이제 인디는 더 개인화된 취향을 겨냥하고 있다. 나만의 음악을 찾는 사람들, 세상은 아직 모르는데 내가 먼저 발견한 음악가를 좋아하는 사람들, 소수의 취향을 중심으로 결집하려는 하는 수많은 플랫폼을 겨냥한다. 회사는 시장의 수요에 맞춰 제작 전략과 전략적 PR 체계, 체계적 유통 구조를 결합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낸다. 핵심 정서는 낭만 혹은 우울이다. 밴드 이세계의 ‘낭만젊음세계’가 전자라면, ‘자몽살구클럽’은 후자다. 이렇게 완성된 ‘인디 싱어송라이터’가 ‘인디 플랫폼’을 자처하는 PR 채널을 통해 ‘인디’스러운 정체성을 완성한다. 조직적으로 작동하는 팬덤은 공연장에서 대여섯 시간씩 음악가를 잡아놓는 ‘퇴근길’ 문화를 즐기며 비평을 무력화한다. 인디라는 이름이 보호하던 가치(독립적 창작, 솔직한 평가가 가능한 거리)는 사라지고, 긴장 없는 창작 환경이 만들어진다. 마이너의 문법을 메이저가 차용하고, 메이저가 다듬은 마케팅과 사운드의 표준화된 시스템을 마이너가 흡수하는 순환이 일어난다. 물론 이는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일이다. 인디 음악이 위키피디아의 정의대로 ‘창의적인 자유, 적은 예산, 직접 제작’을 특징으로 한다면,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름을 알고 있는 대다수의 ‘인디 뮤지션’들은 이미 인디가 아니다. 그들의 작동 방식은 팬덤과 음악 전문가들이 그토록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케이팝 시스템과 똑같다. 케이팝에는 없는 낭만과 진정성을 마케팅 자산으로 쓴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물론 밴드캠프에 음악을 올리며 소속사 없이, PR 없이, 팬덤 전략 없이 인디라는 원래 단어에 부합하는 음악가들도 있다. 그리고 당신은 아마도 그들의 이름을 모를 것이다.
한국대중음악상 트로피 3개를 가진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이 얼마 전 ‘수명산파크’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표하며 동봉한 ‘내역서’의 일부인 ‘인디’라는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최근 몇 년간 ‘인디’가 가장 많이 보이는 곳은 경제신문이다. 생산도 개발도 하지 않고 브랜딩과 마케팅만 하는 화장품 회사들이 자기네를 ‘인디 브랜드’라고 칭한다. 그런 회사의 목표는 웃기게도 탈인디다. (...) 이 뜻도 저 뜻도 아니게 말을 헤집어 놓고 내 알 바 아니라며 가버리는게. 계속 남아 그 말 쓸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오히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 영국의 대중음악평론가 겸 철학자인 마크 피셔의 이 유명한 문장이 떠오른다. 종말은 아마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꼭 멈춰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피셔는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전, 체제 바깥에서 발생했던 에너지의 감각만은 분명히 남아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니 평론가가 해야 할 일은 그 에너지의 감각을 좀 더 열심히 읽어내는 것이 아닐까?
데뷔곡 ‘입춘’에 대해 한로로는 <유퀴즈>에서 이런 탄생 비화를 남겼다. “어느 날 밤 산책을 하다가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는데 저기 저 마치에 풀꽃이 피어 있더라. 그게 너무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딱딱한 회색빛의 아스팔트에서도 저렇게 피어났는데 나라고 안 될 거 있나. 그리고 나와 같은 청춘들도 충분히 저 풀꽃처럼 충분히 새싹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입춘’은 정말 좋은 노래다. 이 노래가 수많은 소년 소녀에게 봄을 선사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들의 봄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게 될 거야’라고 말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으며 지금은 대중음악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 중이고,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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