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QUIRE CLUB

비싼 것보다 ‘내 취향’ 달라지는 럭셔리의 기준

로고와 가격으로 자신을 증명하던 시대에서 나만의 안목으로 삶을 채우는 시대로. 미술과 공간, 패션을 거쳐 커뮤니티로 확장되는 새로운 럭셔리의 기준을 살펴본다.

프로필 by 이화수 2026.10.17
소유에서 취향으로, 취향에서 커뮤니티로
  • 로고와 가격으로 증명하던 시대에서 나만의 안목으로 삶을 채우는 취향 중심의 소비로 전환
  • 대상의 맥락과 철학을 알아보고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과 깊게 연결되는 경험의 확장
  • 작가의 세계관을 일상으로 가져와 나만의 미학적 주관을 완성하는 미술품 컬렉팅
  • 공간, 패션,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넓어지는 개인의 정체성과 감각
  • 자신만의 기준으로 일상을 큐레이션하고 그 의미를 타인과 나누는 궁극의 럭셔리
어두운 전시장 안에 회화와 돌, 다양한 재료의 조각 작품이 함께 놓인 이강소의 전시 풍경. 작품의 물성과 배치를 천천히 바라보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취향이 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어두운 전시장 안에 회화와 돌, 다양한 재료의 조각 작품이 함께 놓인 이강소의 전시 풍경. 작품의 물성과 배치를 천천히 바라보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취향이 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한때 럭셔리는 얼마나 비싼 것을 소유했는가로 증명됐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로고, 쉽게 가격을 짐작할 수 있는 물건, 남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즉각적으로 가치가 전달되는 것들.


절제된 공간에 회화와 오브제가 자연스럽게 배치된 신조 다이지로의 전시. 작품과 공간, 소재를 함께 바라보며 개인의 안목을 확장하게 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절제된 공간에 회화와 오브제가 자연스럽게 배치된 신조 다이지로의 전시. 작품과 공간, 소재를 함께 바라보며 개인의 안목을 확장하게 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하지만 이제 럭셔리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알아보고, 무엇을 함께 경험하는가가 그 사람의 취향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에서 내가 살아가는 시간을 채우기 위한 소비로. 유명한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에서 나만의 기준으로 대상을 선별하고,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맥락을 같은 취향의 사람들과 나누는 것으로. 소비의 중심이 '소유'에서 '취향'으로, 다시 '커뮤니티'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람이 모인다

거친 건축 구조 아래 작은 프레임의 작품들이 나란히 걸린 전시 공간. 하나의 작품뿐 아니라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경험하는 취향 소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거친 건축 구조 아래 작은 프레임의 작품들이 나란히 걸린 전시 공간. 하나의 작품뿐 아니라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경험하는 취향 소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취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을 선택하다가도 어느 순간 소재와 마감, 제작 방식, 디자이너의 철학을 보기 시작한다. 잘 알려진 이름보다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대상을 찾게 된다. 빈티지 가구의 오래된 나무 표면에서 시간을 발견하고, 독립 디자이너의 작은 오브제에서 제작자의 태도를 발견한다. 누군가에게는 낡은 물건일 뿐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금 다시 만들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안목이다. 그런데 안목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같은 것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면서 더 깊어진다. 누군가와 같은 작품 앞에 오래 서 있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 취향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가 된다.


그래서 최근의 럭셔리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브랜드가 커뮤니티를 만들고, 갤러리가 컬렉터를 모으고, 독립 서점이 독서 모임을 만들고, 와인 바가 정기 모임을 여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것을 넘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취향을 공유한다.


취향 소비란 경험을 함께 만드는 것

조명과 가구, 오브제가 서로 다른 시대와 질감으로 어우러진 유랩의 공간.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배치하는지가 한 사람의 취향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조명과 가구, 오브제가 서로 다른 시대와 질감으로 어우러진 유랩의 공간.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배치하는지가 한 사람의 취향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이러한 변화는 특히 미술품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술품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캔버스 하나를 구입하는 일이 아니다. 작가가 고뇌한 시간과 미학의 세계관을 내 일상으로 스미는 행위에 가깝다.


한 작품에는 작가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 고민, 선택이 축적되어 있다. 붓을 어디에 놓을지, 어떤 색을 남길지, 무엇을 덜어낼지 결정하는 수많은 순간이 하나의 화면 안에 남는다. 그 작품을 곁에 둔다는 것은 결국 그 시간을 나의 삶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품 컬렉팅은 일반적인 소비와 조금 다르다. 옷이나 가구처럼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제품처럼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품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나는 왜 이 작품을 좋아하는가. 왜 이 색에 끌리는가. 왜 이 작가의 세계가 나에게 오래 남는가.

」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발견이 혼자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질문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 취향은 하나의 대화가 되고, 그 대화가 쌓여 하나의 커뮤니티가 된다. 작품을 사는 순간보다, 그 작품을 둘러싼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취향은 결국 사람을 설명한다

거대한 바위와 작은 인물, 원형의 선을 섬세하게 담아낸 손승범의 작품. 작품 한 점을 고르는 경험이 개인의 미학적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거대한 바위와 작은 인물, 원형의 선을 섬세하게 담아낸 손승범의 작품. 작품 한 점을 고르는 경험이 개인의 미학적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흥미로운 것은 한 점의 작품을 고르는 경험이 미술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작품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은 어느 순간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가구의 비례를 보고,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보고, 소재와 색의 관계를 살핀다. 옷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유명한 브랜드인지보다 실루엣과 소재, 디테일, 그것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취향은 하나의 영역에 갇혀 있지 않다. 감각은 공간으로, 패션으로, 음악으로, 여행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확장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같은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그 모임이 다시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컬렉팅은 물건을 늘리는 행위가 아니라 감각의 범위를 넓히고, 그 감각을 나눌 사람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작품 한 점을 곁에 두는 일이 때로는 새로운 세계 하나를 갖는 것과 같고, 좋은 사람 몇 명을 곁에 두는 일이 때로는 그 세계를 완성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미술품 컬렉팅은 취향 소비의 최상위 단계다

넓은 벽 한가운데 작은 크기의 작품 하나만을 조명해 집중도를 높인 전시 풍경. 크기나 가격보다 자신에게 오래 남는 감각을 선택하는 취향의 의미를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넓은 벽 한가운데 작은 크기의 작품 하나만을 조명해 집중도를 높인 전시 풍경. 크기나 가격보다 자신에게 오래 남는 감각을 선택하는 취향의 의미를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럭셔리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희소성에 닿는다.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가장 개인적인 사치는 남들이 모두 알아보는 브랜드를 갖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으로 선택한 것을 오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타인의 평가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의 안목과 감응에 기반한다. 한 점의 원화를 소유하는 경험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깊고 정교한 미학적 주관을 형성한다. 더 나아가 혼자만의 취향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같은 취향의 사람들과 연결되고, 그 연결이 하나의 장면을 만든다. 개인의 취향이 모여 집단의 문화가 되는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경험형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취향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한다.


작품의 맥락을 이해하고, 작가의 세계를 읽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가치를 알아보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누군가와 나누는 것. 그것은 경험과 관찰, 그리고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긴다. 결국 럭셔리의 가장 깊은 단계는 '비싼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가치 있는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을 함께 경험할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상태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취향이 정체성이 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해왔다.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어떤 가방을 드는지가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가치를 누구와 나누고 있는가?"


파랑과 노랑, 주황 등 투명한 색으로 구현된 일상의 건축 요소와 오브제. 익숙한 공간과 사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서도호의 작품이다. / 이미지 출처: 공명

파랑과 노랑, 주황 등 투명한 색으로 구현된 일상의 건축 요소와 오브제. 익숙한 공간과 사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서도호의 작품이다. / 이미지 출처: 공명

취향의 시대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 내가 고른 작품, 오래된 가구, 좋아하는 책, 특별한 오브제와 공간은 모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작은 단서다. 그리고 그 단서들이 모여 하나의 컬렉션이 된다. 그 컬렉션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같은 것을 알아보는 사람들과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 컬렉션은 반드시 비싸거나 희귀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선택한 이유가 자신의 언어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언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취향을 소비한다는 것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럭셔리가 저물고, 내 삶의 결을 정돈하는 취향의 시대가 왔다. 취향 소비는 물건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그 대상이 품고 있는 시간과 철학을 내 일상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가장 유일무이한 것은 남들이 다 아는 브랜드가 아니라, 오직 나만의 안목으로 선별한 일상의 큐레이션이다.


결국 취향을 소비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브랜드를 정교하게 세공하는 일이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누구도 똑같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세공의 과정이야말로 이 시대가 말하는 가장 깊은 럭셔리일 것이다.


앞으로의 럭셔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더 많이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곁에 둘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 자신이 선택한 것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 의미를 시간이 지날수록 깊게 만들어가는 사람. 그리고 그 의미를 나눌 사람들을 곁에 두는 사람.


관련기사

ESQUIRE CLUB MEMBER
이화수
작가/큐레이터
예술로 문화 자산의 가치를 만듭니다.

댓글쓰기

0 / 1000

댓글 0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