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1위가 1년째 안 바뀌는 이유, 범인은 스트리밍 알고리즘?!
엘라 랭글리의 ‘Choosin’ Texas'가 빌보드 핫 100 최장 1위 기록을 세운 지금, 차트의 세대교체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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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차트를 대중음악의 성경처럼 매주 읽고 암송하던 시대가 있었다. 모든 해외 음악이 ‘팝’으로 통하던 20세기, 대중음악의 기본을 알려면 시대마다 가장 인기 있던 노래를 술술 꿸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던 때 말이다.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는 그 제도권의 습관을 물려받아 음악을 공부했다. 그래서 ‘빌보드를 빛낸 100명의 위인’은 지금도 읊을 수 있다. 핫 100 1위곡만 통산 20곡인 비틀스, 냈다 하면 핫 100에 노래를 올리는 드레이크, 앨범 한 장(<Bad>)에서 1위 곡 다섯 곡을 배출한 마이클 잭슨, 핫 100 최장 연속 1위 기록을 차례로 갈아치운 머라이어 캐리와 릴 나스 엑스. 그리고 역사는 흐른다.
새로 외워야 할 이름이 생겼다. 컨트리 가수 엘라 랭글리다. 그가 지난해 10월 발표해 올해 2월 처음 정상에 오른 ‘Choosin’ Texas’는 10월 초 기준 통산 24주 동안 핫 100 1위를 지켰다. 캐럴 중의 캐럴로 꼽히는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2019년부터 해마다 연말이면 정상에 돌아와 7년에 걸쳐 쌓아 올린 22주를 넘어선, 핫 100 68년 역사상 최장 1위 기록이다. 테네시에 사는 여자가 텍사스 출신의 다른 여자에게 남자 친구를 빼앗기는 슬픈 사연이, 사랑 하나면 어떤 선물도 필요 없다는 명절의 낭만을 이긴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 연금’은 찬 바람이 불어야 차트에 돌아온다. 한 해 내내 잊혔다가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김없이 높은 순위에서 울려 퍼진다. 엘라 랭글리의 노래에는 그런 계절의 도움조차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물론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영미권의 수많은 음악 팬이 매일같이 이 컨트리 싱어송라이터의 이별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머라이어 캐리가 다시 정상에 서야 비로소 기록 경쟁이 재개될 것이다. 그전까지는 적수가 없다.
정상 아래의 풍경은 어떨까. 차트 베테랑들이 요충지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케빈 파커의 1인 프로젝트 테임 임팔라는 ‘Dracula’로 50주 넘게 빌보드 핫 100에 머무는 중이다. 몽롱하면서도 직관적인 곡 자체의 매력에, 올해 2월 블랙핑크 제니가 참여한 리믹스가 나오면서 화제를 더했고, 이 리믹스 덕에 테임 임팔라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핫 100 톱 텐에 진입했다. 그 바로 옆에는 올해 2월 그래미 어워드 신인상을 받은 영국 싱어송라이터 올리비아 딘이 있다. 그의 미국 출세작 ‘Man I Need’는 이미 55주를 넘겼고, ‘So Easy(To Fall in Love)’도 50주째다. 세 곡 모두 톱 텐 안에 있다. ‘Choosin’ Texas’까지 포함해 네 곡 모두 지난해 나온 노래다. 2026년이 저물어가는 지금도 지난해 노래가 차트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다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노래가 좋고 나쁘고를 따질 생각은 없다. ‘Choosin’ Texas’와 ‘Dracula’, 올리비아 딘의 노래는 모두 누구나 무난히 고를 수 있는 히트곡이다. 지난달 이 지면에서 내가 바란다고 썼던, 복잡한 사연을 공부하지 않아도 그 멜로디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팝이기도 하다. 내가 궁금한 건 차트가 왜 이렇게 굳어 있는지, 그러니까 ‘차트의 세대교체’가 왜 일어나지 않는지다. 매주 차트에 오르는 곡이 똑같으니 성실하게 챙겨 볼 필요도 없다. 이 칼럼이 나올 때쯤이면 머라이어 캐리가 다시 산타 드레스를 입고 1위 복귀를 자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인을 파고들면 답은 결국 하나다. 특정 음악업체의 사악한 사재기 전략이나 고루한 리베이트 따위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음악을 듣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 스트리밍이 빌보드 차트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에이, 스트리밍이 나오기 전에도 나는 좋아하는 노래만 계속 들었는데? CD 한 장을 몇 달씩 CD 플레이어에 넣고 다니다가, 나중에 케이스를 열어 보니 판이 없어서 당황한 적도 있다니까. 노래 다섯 곡만 넣어도 메모리가 꽉 차던 MP3 플레이어에도 절대 빼지 않는 노래가 있었다고. 맞는 말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질릴 때까지 듣는 습관은 스트리밍이 만든 게 아니다. 스트리밍이 바꾼 건 계산서다. 음반은 백 번을 들어도 구매는 한 번뿐이다. 마이클 잭슨의 <Bad>에 실린 1위 곡 다섯 곡을 다 듣겠다고 앨범을 다섯 장 살 필요는 없다. 스트리밍은 다르다. 오늘 듣고 내일 또 들은 노래가 그때마다 이번 주 통계에 반영된다. 매주 많이 재생된 노래가 더 많은 사람에게 추천되고, 그들이 클릭 한 번으로 새 재생 수를 보탠다. 이번 주 상위권 노래가 다음 주에 더 높이 오르는 일, 그 자리에 오래오래 머무는 광경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런 청취 습관은 우리가 생각보다 음악에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풍부한 감수성의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이 성실함에 박수를 보내기에는 수상한 구석이 있다. 예전에는 앨범 한 장이 끝나면 무언가를 직접 해야 했다. 다른 음반을 꺼내든가, 같은 음반을 다시 틀든가, 아니면 음악을 그만 듣든가. 지금은 그 선곡권이 시스템에 넘어갔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자동 재생은 내가 고른 음악과 가장 가깝고 내 취향에 맞닿은 곡을 알아서 이어 붙인다. 스포티파이는 검색, 재생, 건너뛰기, 저장 같은 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취향을 추정하고, 애플 뮤직은 보관함과 청취 기록을 개인화에 활용한다. ‘잼(Jam)’ 기능을 켜면 친구와 한 대기열을 실시간으로 함께 듣기도 한다. 남의 취향과 섞이는 순간마저 같은 추천 엔진 위에서 일어나는 셈이다. 그러니 다음 곡에 자꾸 엘라 랭글리와 머라이어 캐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익숙한 음악을 추천받아 듣고 나면 그 기록이 다시 다음 추천의 재료가 된다. 추천 알고리즘 입장에서는 더없이 ‘합리적인’ 방식이다. 문제는 이런 추천과 탐험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데 있다. 처음 듣는 이름의 가수인데, 이상하게 방금 들은 곡에서 그다지 멀리 온 느낌이 들지 않는다. ‘컨트리를 좋아하는 내가 메탈에 맞춰 머리를 흔들고 있다니’ 같은 깨달음은 이 시스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신인을 소개받고 새 제목을 외워도, 음악 자체는 계속 쳇바퀴를 도는 느낌이다. 요즘은 내가 외운 그 신인이 실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일도 있다. 농담으로 넘길 수 없는 얘기다. 지난해 여름 스포티파이에서 월 청취자 100만 명을 모은 밴드 벨벳 선다운이 AI로 만든 가상 밴드로 드러난 일을 생각해보라.
뉴욕의 음악 저널리스트 리즈 펠리의 책 <무드 머신(Mood Machine)>은 스트리밍 공룡 스포티파이가 어떻게 음악산업의 강력한 게이트 키퍼가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펠리는 플랫폼이 내미는 ‘완벽한 플레이리스트’가 음악가와 팬이 음악을 대하는 방식을 돌이킬 수 없이 바꿔놓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취재한 전직 스포티파이 직원은 스트리밍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용자의 ‘인지적 수고’를 줄이는 데 있다고 털어놓았다. 무슨 음악을 들을지 고민하는 시간까지 서비스가 대신 아껴주겠다는 얘기다. 출근하고, 운동하고, 운전하고, 이메일에 답장하기도 바쁜데 음악까지 심사숙고해 고를 시간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음악이 너무 궁금해서 하던 일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당신의 일상을 채울 완벽한 소리를 들려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이다.
나처럼 매일 음악을 듣고 소개하는 게 일이 아닌 사람들을 붙잡고 취향을 계발하라고 훈계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친구에게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권하고 불협화음의 아름다움과 세상을 바라보는 처연한 시선을 느껴보라고 윽박지르는 건 폭력이다. 내가 따져보고 싶은 건, 우리의 피로를 덜어주는 스트리밍이 결과적으로 더 손쉽게 만들고 있는 그 선택이 ‘어떤 선택’이냐다. 익숙한 음악에 머물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검색창을 열어 듣고 싶은 노래를 일일이 찾을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서비스는 이게 다 다른 노래라고, 당신만을 위한 추천이라고 말해주는데 말이다.
실제로는 ‘다 다른 노래’도, ‘나만을 위한 추천’도 아니다. 스포티파이의 ‘디스커버리 모드’는 음악가나 레이블이 프로모션하고 싶은 곡을 지정하면, 그 곡의 저작권료를 일부 깎는 대가로 개인화 추천에 반영해준다. 즉 플랫폼에 더 많은 이익을 남겨주는 노래를 추천해준다. 선곡에 상업적 이해관계가 끼어드는 것이다. 이게 무슨 폭로 기사를 통해 알려진 사실도 아니고, 스포티파이가 직접 공개한 제도다. 2020년 11월 회사 블로그를 통해 발표했다. 음악가나 레이블이 홍보하고 싶은 곡을 지정하면, 그 곡이 라디오·자동 재생·믹스처럼 알고리즘이 고르는 자리에서 재생될 때 저작권료의 30%를 스포티파이가 수수료로 가져가는 구조다. 홍보하고 싶은 곡으로 지정했다고 추천이 반드시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스포티파이가 광고하는 ‘나를 위한 추천’이라는 문구를 떠올리면 어색해진다. 그건 나를 위한 추천이 아니잖아. 너네가 들려주고 싶은 노래 아냐? 스포티파이는 아직 청취 데이터가 부족한 신곡의 경우 차트에서의 상승세 같은 인기 신호를 추천에 활용한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좋아요’가 순식간에 쌓이는 영상처럼, 많은 사람이 찾는 노래니 다른 사람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추천을 받은 이용자가 노래를 재생하면 그 데이터가 다시 다른 이용자의 추천에 반영된다. 이미 알려진 음악이 더 많은 주목을 받는 순환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차트가 집계하는 대상이 손에 쥐는 ‘실물 판매량’에서 스트리밍 재생 수를 판매량으로 환산해 합산하는 방식으로 바뀐 오늘날, 차트의 고착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빌보드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빌보드는 지난해 10월, 순위가 떨어지는 노래를 차트에서 내보내는 ‘리커런트 규정’을 강화했다. 원래는 52주가 지나 25위 밖으로 밀려나야 퇴출됐지만, 이제는 52주가 지난 뒤 10위 밖으로, 78주가 지난 뒤 5위 밖으로 떨어지면 핫 100에서 빠진다. 이 규정이 시행된 첫 주에만 112주 동안 차트에 머물던 테디 스윔스의 ‘Lose Control’을 비롯해 장기 집권하던 곡 열 곡이 한꺼번에 빠졌다. 하지만 이 규정으로도 정상을 지키는 노래까지 억지로 끌어내릴 수는 없다. 반세기 넘게 대중음악의 지표 노릇을 해온 빌보드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장기 집권은 예전 라디오 방송국들이 히트곡을 자주 틀던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닮은 구석도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모두가 각자의 라디오 방송국을 하나씩 갖고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노래가 다 비슷하다는 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Choosin’ Texas’가 좋다. 테임 임팔라와 올리비아 딘의 음악도 언제든 무리 없이 틀 수 있는 곡이다. 이 노래들이 정상에서 내려와야만 음악의 새 역사가 쓰인다는 거창한 생각 따위는 없다. 그냥 궁금할 뿐이다. ‘Choosin’ Texas’를 한 번 고르고 나면 하루 종일 지치지도 않고 빌보드 차트를 되풀이해 주는 이 스트리밍 시스템이, “다른 노래 좀 추천해줘”라고 했더니 컨트리만 주야장천 틀어주는 이 알고리즘 비서가, 과연 우리에게 정말 새로운 음악을 들려줄 생각이 있기는 한지 말이다. 나야 알아서 찾아 들으면 되겠지만….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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