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당신이 음악을 듣기 전에 생각하는 것들

노래 하나를 듣기 위해 알아야 하는 콘텍스트가 너무 방대해지고 있다는 생각. 저만 한 건 아니죠?

프로필 by 박세회 2026.10.05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정민우 감독의 영화 <파리의 수학자>를 봤다. 노랫말을 쓰지 못하는 음악가 파이와 수없이 수식을 적어가며 고민하는 수학자 허수의 이야기다. 파이는 할 말이 있어야 노래를 쓸 수 있다고 말하는데, 정작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 악기만 두드리고 있다. 수학적 대상을 탐구하며 질서와 규칙의 쾌감에 매료된 허수는 국제적 난제에 대한 독창적인 해답을 내어놓고도 위대한 수학자들의 도시 프랑스 파리로 훌쩍 떠나버린다. 예술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허수의 지론에 파이도 무언가를 깨닫는다. 위대한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가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에서 ‘예술은 안전하게 놀이를 하는 일’이라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다르게 얘기하면 무언가 대단한 뜻을 담지 않아도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말에 마음이 놓였다. 희한한 일이다. 음악에 담긴 뜻을 설명하고 작품을 소개하는 평론가가 이런 대목에 안도해도 되나. 고백하자면 요즘은 노래를 듣고 무엇을 느꼈는지 생각하기 전에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전에 발표한 작품을 다시 새겨보고, 그 뮤지션의 삶에 발생한 특정 사건을 짚어본다. 아주 쉽게 얘기하면,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구글 검색으로 찾아본다.

대개는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다.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20주 이상 정상에 올라 있는 싱어송라이터 엘라 랭글리의 출세곡 ‘Choosin’ Texas’가 그렇다. 테네시에 사는 컨트리 가수가 사랑하는 남자를 텍사스 여자에게 빼앗기는 이 슬픈 노래가 어떻게 나왔는가 하니 곡을 함께 쓴 미란다 램버트와의 대화로부터 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슬픈 이별 노래가 반드시 실화일 필요는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엘라가 노랫말 속의 주인공일 필요도, 테네시에 살 필요도, 그녀의 전 남친을 빼앗아간 여자가 텍사스 여자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도.

올해 가장 완벽한 팝 앨범 <You Seem Pretty Sad for a Girl So in Love>를 발표한 슈퍼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음악에서는 배경지식이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된다. 배우 루이 파트리지와의 뜨거운 연애와 차가운 이별을 겪고 나서 만든 앨범은 전반부엔 강렬한 몰입과 황홀한 집착 속의 불안을 그리고 후반부엔 관계가 끝나고 난 이후의 공허함과 사랑에 대한 불신을 거쳐 성장하는 음악가의 초상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음악적인 콘텍스트가 넓어지면서 표현의 지평이 풍부해졌다는 점이 이 앨범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전까지 에이브릴 라빈 부류의 팝 펑크 록으로 묶였던 올리비아는 루이 파트리지와의 연애를 위해 런던에 머무르면서 1980년대 더 큐어를 위시한 영국 고딕 록에 깊이 빠져들었다. 심지어 더 큐어의 프런트맨 로버트 스미스를 작품에 초빙했으며 이 밴드의 이름과 같은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며 이전보다 더 슬프고 오싹하고 우울한 멜로디를 써 내려갔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테일러 키즈’들의 자전적이고 고백적인 음악이 대세로 떠오르며 곡에 대한 해석은 필수 불가결해졌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내슈빌에서 컨트리 팝을 시작하며 만나고 헤어진 수많은 이들을 일기장에 적어 내려가듯 노래를 만드는 방식에 완전히 매료된 Z세대 창작가들 말이다. 대표 격인 올리비아는 가사에 이름, 날짜, 주고받은 대화까지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그녀만 그런 게 아니다. ‘That’s So True’의 그레이시 에이브럼스는 테일러의 <folklore>나 <evermore> 시기 포크 팝에 깊은 영향을 받아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위트 있게 풀어내며, 금발 백인 여성이라는 자신의 상징성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사브리나 카펜터도 이 계열에 속한다.

자전적 소설 스타일의 음악 제작 방식은 대부분 효과적으로 작동하며, 때로는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올리비아가 런던에서 누구와 시간을 보냈는지 몰라도 이번 앨범의 노래는 간단명료하게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사랑의 열기에 마음이 익어버린 소녀의 ‘집착광공’은 다른 나라, 다른 언어, 심지어 나이도 더 많은 지구 반대편 아저씨들의 마음까지 울렸다.

문제는 이런 콘텍스트들이 음악 감상의 사전 필수 과제처럼 될 때다. 흥미롭게도 가장 두드러진 예는 스위프트 키즈들의 모태이자 밀레니얼들의 자전적 아이콘인 테일러 스위프트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를 생각해보라. 수수께끼처럼 모호한 비유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로 꽉꽉 채워 최종 31곡을 욱여넣은 이 앨범에 대해 평론가들은 ‘그 앨범이 팬들에게는 보람 있는 숙제(homework)지만, 핵심 팬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짚었다. 마치 <어벤져스> 이후 수많은 후속작과 새로운 인물의 등장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아져서 과거의 인기를 잃어버린 마블 시리즈처럼 말이다.

작품 자체는 바나나를 덕테이프로 붙여놓은 것뿐인데, 그 의미에 대해서 쓴 수십 페이지의 노트를 읽어야 하는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느낌. 게다가 이런 콘텍스트 과다 현상은 노래를 들어보기도 전에 여러 다른 텍스트들을 통해 그 노래를 어떤 마음으로 감상해야 할지를 미리 정해주는 디렉션으로 작동한다. 독자들 중엔 부지런한 평론가가 곡과 관련된 사연을 미리 숙지하고, 작품을 풍부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방향을 짚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콘텍스트 과잉의 시대에 음악가들이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미디어 채널을 통해 숱하게 늘어놓는 노래에 숨겨진 사연과 공백 기간의 근황,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다 주워섬기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음악의 공급 과잉이 아니라 음악을 둘러싼 트리비아의 공급 과잉이다.

음악 그 자체보다 음악을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화제성을 몰고 가는 경우도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자전적인 고백을 담은 신보 <Petal>을 두고 사람들은 음악 자체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서 수척해진 모습으로 등장한 아티스트에 대한 갑론을박을 쏟아냈다. 개인적이고 섬세한 감정으로 무장한 앨범의 이야기는 뒷전이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몸을 두고 거식증을 동경하는 프로아나 진영과 섭식장애 회복 진영이 각자의 주장을 쏟아내며 음악을 사회적 토론 거리로 만들었다. <Petal>을 듣기도 전에 이런 뉴스부터 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광경이 이 시대 음악 소비의 특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콘텍스트가 음악보다 앞선다. 마케팅이 종종 가치를 이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좀 지친다.

케이팝을 설명할 때는 더 곤란하다. 2010년대 중후반 케이팝이 빌보드 차트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할 때, 몇몇 평론가들은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과 전후 역사 그리고 ‘자콘(자체 제작 콘텐츠)’의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챙겨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청춘을 담아내는 특유의 서사와 음악적 특징, 팬덤과 함께 성장하는 역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음악, 그 야심을 엄청나게 거대한 규모로 풀어내는 세계관 등이 케이팝 해석에서 필수 요소가 됐다. 지금은 황성 옛터처럼 느껴지는 SM의 ‘광야’가 한때는 그 소속사의 음악에 대한 평을 쓰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 전공과목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온갖 가사에 다 등장했기에 모른 채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경우가 리센느다. 2년 전 리센느의 ‘러브 어택’을 소개할 때도 나는 이들을 좋아했다. 간단명료하고 경쾌한 댄스 팝에 사뿐하게 얹히는 멤버들의 우아한 보컬이 듣기에 편하다고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리센느의 인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인기를 견인한 유튜브 콘텐츠를 봐야 하지만, 지친다는 느낌은 없다. 그건 이들의 콘텍스트가 음악을 앞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이와 미나미의 고향을 몰라도, ‘야호 갸루’가 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도 ‘러브 어택’을 듣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가사에 거제가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팝에서 콘텍스트는 ‘알면 재밌고 몰라도 괜찮은 정도로만’이라는 마음이 있다. 솔직히 팝 음악에서 새로운 의미와 진보의 가치를 기대하고 싶지 않다. 그건 언더그라운드의 혁신가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다. 팝은 대중음악의 흐름을 끌어안으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의 재미를 주는 음악이어야 한다. 콘텍스트 시인이 되어버린 테일러 스위프트가 오래전 <Lover>에서 들려준 아름다운 노래들을 생각해보자. 앞서 언급한 엘라 랭글리의 ‘Choosin’ Texas’를 아무런 편견 없이 들어보자. 이 얼마나 명료한 팝인가. 리센느의 ‘러브 어택’이 역주행 이전에도 어느 정도 반응을 끌어냈던 이유도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 없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음악을 들을 때는 굳이 정보를 찾을 필요가 없다. 노래를 듣는 순간 자체가 좋다.

물론 과다한 레이어가 예술처럼 여겨지는 때도 있다. 제천에서 본 또 다른 영화 <더 모먼트>가 좋은 예다. 2024년 온 세상을 네온 그린 색으로 물들였던 <Brat>의 주인공 찰리 XCX의 이야기를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꾸민 영화. 극 중 찰리는 진솔한 파티 걸의 취향과 개인적인 혼란을 음악에 담아 엄청난 슈퍼스타가 되지만, 성공한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착취적인 연예 시스템에 무너진다.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를 과감하게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현실의 찰리가 그 정반대에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찰리는 오히려 <Brat>에서 팝스타라는 거대한 지위에 함몰되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나약한 자아를 고백하며, 춤추고 노래하며 뛰어놀았다. 물론 모든 팝이 이렇게 의미 있으면서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만 해야 한다면 의미만 담기보다는 그저 아름답기를, 나는 바란다.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 속 문장을 인용하며 고민을 마무리해본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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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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