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와 뉴욕타임스가 인정한 '최고의 소설' 6
BBC와 뉴욕타임스가 모두 선정한 최고의 소설 6편.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부터 부커상 수상작까지, 놓치기 아쉬운 화제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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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 4·3의 비극을 눈과 기억의 이미지로 풀어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장편소설.
- 다니엘 켈만 'The Director':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제안을 받은 영화감독이 예술과 양심 사이에서 마주하는 선택.
- 키란 데사이 The Loneliness of Sonia and Sunny: 부커상 수상 작가가 19년 만에 선보인, 사랑과 가족, 계급을 넘나드는 장편소설.
- 데이비드 솔로이 '살': 가난한 헝가리 소년이 영국 상류사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을 그린 2025년 부커상 수상작.
- R. F. 쿠앙 'Katabasis': 죽은 지도교수의 추천서를 얻기 위해 지옥으로 향하는 두 대학원생의 기상천외한 모험.
다음에 읽을 소설을 고르고 있다면, 서로 다른 두 저명한 매체의 선택을 받은 책들을 살펴봐도 좋습니다. BBC의 ‘2025년 최고의 책 25선’과 뉴욕타임스의 ‘2025년 주목할 만한 책 100선’에 함께 이름을 올린 소설 여섯 편을 골랐습니다. 한강의 장편부터 부커상 수상작, 대학원생들이 지옥으로 향하는 판타지까지. 이름은 익숙하지만 아직 펼치지 못한 책과 처음 듣는 제목을 함께 담았죠. 공통점은 두 매체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읽고 나서 남는 질문은 저마다 다릅니다.
폭설 속 제주에서 마주한 잊혀서는 안 될 기억
한강 작가의 꿈을 시작으로 제주 4·3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친구가 병원에서 전한 부탁은 제주 집에 홀로 남겨진 새를 돌봐달라는 것입니다. 사고로 손을 다친 인선을 대신해 경하는 제주로 향하지만, 섬에는 거센 눈이 내리고 있죠. 작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여정은 인선의 가족사와 제주 4·3의 기억으로 이어집니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1년 발표한 장편으로, 2025년 영어 번역본이 출간됐습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작가가 2014년에 꾼 꿈이었습니다. 눈 내리는 벌판에 검은 나무 밑동과 수많은 봉분이 있고, 밀려드는 바닷물로부터 뼈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남았다고 하죠. 이후 한강은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숲과 마을 길을 걷고, 제주 4·3 생존자들의 증언과 관련 자료를 읽으며 소설의 형태를 찾아갔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눈과 새는 그 과정에서 선택한 중요한 이미지입니다. 한강은 학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눈송이와 깃털, 그림자처럼 가벼운 것들을 함께 쓰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눈은 하늘과 땅,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 내리며 이들을 연결하는 이미지라고 설명했죠. 경하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마리의 새를 살리려는 마음과 오래전 죽음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같은 이야기 안에서 만나게 됩니다.
나치의 제안을 받은 천재 감독, 예술과 양심 사이에서
실존 감독의 삶에 허구를 더해 예술과 권력의 관계를 그려낸 소설 'The Director'. / 이미지 출처: Quercus Publishing
다니엘 켈만, The Director(감독, 한국 미출간)
」유럽에서 이름을 날린 영화감독도 할리우드에서는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G. W. 파브스트는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병든 어머니를 만나러 가족과 함께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미 나치의 지배 아래 놓인 오스트리아에서 전쟁까지 발발하며 가족의 발이 묶이죠. 그때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파브스트에게 영화 제작을 제안합니다.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나치 정권에 협력해야 합니다.
'세계를 재다'의 작가 다니엘 켈만은 실존 감독의 삶에 허구를 더해 예술과 권력의 관계를 그립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거창한 결단보다 일상에서 조금씩 이루어지는 타협입니다. 파브스트는 영화를 계속 만들기 위해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하나씩 넓혀갑니다. 창작에 대한 열정이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는 순간들이 이 소설의 긴장을 만듭니다.
소설의 서술 방식에도 영화의 특징이 반영돼 있습니다. 켈만은 실제 유실된 영화 'The Molander Case'의 장면을 상상해 글로 재구성했습니다. 파브스트가 머릿속으로 영화를 편집하는 장면에서는 소설 역시 영화처럼 장면을 건너뛰며 전개되죠. 실존 인물의 삶과 영화적 상상력을 결합한 이 작품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25년 최고의 책 최종 10선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 그 사이에 놓인 두 세계
2025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그해 최고의 책 10권에도 이름을 올린 소설 'The Loneliness of Sonia and Sunny'. / 이미지 출처: 호가스
키란 데사이, The Loneliness of Sonia and Sunny(소니아와 서니의 외로움, 한국 미출간)
」'상실의 상속'으로 부커상을 받은 키란 데사이가 전작 이후 19년 만에 내놓은 장편입니다. 인도와 미국을 오가는 소니아와 서니의 사랑을 중심으로, 두 사람을 둘러싼 가족과 여러 세대의 삶이 펼쳐지죠. 2025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그해 최고의 책 10권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각자의 마음만큼이나 가족이 기대하는 미래가 영향을 미칩니다. 서니는 뉴욕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살지만 델리에 있는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소니아와 서니에게는 두 집안의 할아버지들이 한때 둘을 맺어주려 했던 이력도 있죠. 자신이 선택한 삶과 가족에게 보여주는 삶 사이의 간극이 연애의 문제에 겹쳐집니다.
데사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로 써나간 뒤 이들의 동선이 교차하도록 엮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집필 중 원고가 한때 약 5,000쪽까지 늘어났을 만큼 주변 인물들의 삶도 깊게 파고들었죠. 제목의 ‘고독’ 역시 연인이 없는 상태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계급과 문화의 차이, 고향을 떠난 사람이 느끼는 거리감까지 포함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읽는 동안 그들을 가까워지게 하거나 멀어지게 하는 가족과 사회의 조건도 함께 보게 되는 소설입니다.
가난한 소년은 어떻게 영국 상류사회에 들어갔을까
헝가리 소년 이슈트반이 영국 상류사회에 이르는 삶을 따라가는 소설 '살'. / 이미지 출처: 서해문집
데이비드 솔로이, 살
」2025년 부커상 수상작 '살'은 헝가리 소년 이슈트반이 영국 상류사회에 이르는 삶을 따라갑니다. 어머니와 사는 조용한 소년의 생활에서 출발해 돈과 권력이 오가는 세계까지 나아가죠. 삶의 조건은 크게 달라지지만, 이슈트반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급과 부, 남성성에 관한 질문이 그가 거치는 관계와 사건 속에서 드러납니다.
이슈트반은 자기 마음을 길게 설명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대화는 짧고, 감정을 해설하는 문장도 절제돼 있죠. 솔로이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언제나 명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말로 정리되지 않는 상태를 소설에도 남겨둔 것입니다. 독자는 짧은 대답과 행동, 대화 사이의 침묵을 살피며 그의 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원제 ‘Flesh’는 처음에는 가제였습니다. 솔로이는 이 단어가 지닌 육체적이고 때로는 저속한 느낌과 성서·셰익스피어를 연상시키는 오래된 무게를 함께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하죠. 몸으로 살아가는 경험에 대한 관심은 소설 전체를 관통합니다. 이슈트반을 이해하는 단서도 그가 자신에 대해 내놓는 설명보다 몸으로 겪는 사건과 그에 대한 반응에 놓여 있습니다.
추천서 한 장을 위해 지옥까지 내려간 대학원생들
작가 쿠앙이 박사과정 첫해에 캠퍼스 풍자로 쓰기 시작한 소설 'Katabasis'. / 이미지 출처: 하퍼콜린스
R. F. 쿠앙, Katabasis(카타바시스, 한국 미출간)
」학계에서 앞날을 보장받으려면 지도교수의 추천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교수가 죽어 지옥에 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벨'과 '옐로페이스'의 작가 R. F. 쿠앙은 대학원생을 직접 지옥으로 보냅니다. 케임브리지에서 마법을 연구하는 앨리스는 죽은 교수 그라임스를 되찾기 위해 경쟁자인 피터와 손을 잡죠. 서로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은 두 사람이 이제는 협력해야 살아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곳의 지옥은 방문자의 세계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합니다. 두 대학원생에게는 익숙한 대학의 형태로 나타나죠. 이들은 기존 신화와 철학에서 읽은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어, 직접 관찰하며 지옥의 규칙을 파악해야 합니다. 논리학의 역설을 활용하는 마법 체계도 이 세계의 특징입니다.
쿠앙은 박사과정 첫해에 캠퍼스 풍자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좁은 학계 안에서 성공과 실패가 삶 전체를 결정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압박이 작품에 담겨 있죠. 교수 한 사람의 인정에 매달리는 관계, 동료와의 경쟁,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해 포기하기 어려운 마음이 지옥 탐험의 동력이 됩니다. 교수를 구하는 모험의 출발점에 추천서가 있다는 사실부터 이 소설의 풍자가 선명합니다.
2119년의 학자가 100년 전 사라진 시를 추적하는 이유
시인 존 풀러가 아내에게 바친 연작 소네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책 'what wq can know'. / 이미지 출처: vintage publishing
이언 매큐언, What We Can Know(우리가 알 수 있는 것, 한국 미출간)
」2119년, 기후변화와 재난으로 세계의 모습이 달라진 뒤에도 한 학자는 오래전 문학 작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2014년 저녁 모임에서 낭독된 뒤 사라진 시 한 편입니다. '속죄'의 작가 이언 매큐언은 이 추적을 통해 미래소설과 문학 미스터리를 결합합니다. 한 세기 전의 사람들이 남긴 일기와 이메일 등은 연구자에게 과거로 향하는 단서가 되죠.
시의 착상에는 실제 작품이 있습니다. 매큐언은 시인 존 풀러가 아내에게 바친 연작 소네트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 쓴 사적인 선물이 시간이 흐른 뒤 학자가 추적하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소설 속 연구자는 남겨진 기록을 읽으며 작품뿐 아니라 그것이 탄생한 관계와 당시의 삶에도 다가가려 합니다.
매큐언이 택한 미래의 시선에는 현재를 향한 실망과 그리움이 함께 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이 누렸던 세계를 부러워하죠. 기록이 풍부하게 남은 시대라고 해서 이해하기 쉬운 과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일기와 이메일, 사소한 생활의 흔적까지 모은 뒤에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는 여전히 해석의 영역으로 남습니다.
Credit
- Editor 엄예지
- Photo 각 이미지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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