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정권은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진보 진영은 집권에 성공하겠지만 성공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 대통령,정치,대선,정권 교체

3월 10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 전원이 대통령의 파면에 찬성했다. 사람들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헌법재판소가 여론의 관심을 모으는 사안에 대한 결정에서 여론에 자유롭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동성동본 간의 결혼 금지는 심지어 중국과 북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민법 규정이었으나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것은 1997년이었다.간통죄를 규정한 형법 제241조의 위헌 결정 역시 불과 2년 전인 2015년에야 이루어졌다. 2015년에 간통죄 위헌 결정이 내려졌을 때 성도덕의 문란을 초래할 수 있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뒤로해 자칫 가족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위헌에 반대한 것이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었다.하지만 이번 파면 결정은 아무리 보수적 성향을 가진 법률가라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국민의 80퍼센트 가까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결정을 헌재가 할 수는 없었다.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외교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순전히 일본에 대한 상식 밖의 고압적 태도 때문이었다. 한일 정상회담은 대통령 취임 이후 거의 3년 가까이 열리지 않았다.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수상 아베를 만나 그의 악수를 거절한 것은 박근혜 반일 외교의 정점이었다. 상식 밖의 외교적 결례를 저질렀으나 지지율은 더 올라갔다.비현실적인 균형 외교 원칙을 내세우면서 노골적인 친중국 행보를 이어가던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2월 한국을 방문한 존 바이든 미국 부통령에게 “미국의 반대편에 배팅해서 좋은 적이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미국 편에 제대로 줄을 서야 할 것이라고 노골적인 면박을 당했다.하지만 박근혜는 2015년 9월 중국의 전승일 열병식에 참석했다. 서방 선진국 정치 지도자 중 군국주의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열병식에 참석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전격 타결한 후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전격적인 사드(THAAD: 종말 고고도 지역 방어) 배치를 선언한다. 약 보름 간격으로 벌어진 외교정책의 총체적 실패 선언이었다.박근혜는 경제민주화라는 시대 변화를 간파하는 정책으로 집권했다. 하지만 집권 직후 경제민주화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박근혜를 도왔던 김종인은 분개했고 나중에 민주당에 들어가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게 만들었다.국민 다수의 찬성에 힘입어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산에 성공했지만 열혈 반대자를 만들어내면서 정치적 힘을 낭비했다. 2015년 10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사업을 추진하지만 국민의 70퍼센트가 반대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정치적 에너지를 소진했다.2014년 7월 최경환을 경제부총리로 임명했고 그가 ‘초이노믹스’라는 경기 부양책을 들고 나오면서 잠시 시장에 일본처럼 적극적 거시 정책이 사용될 것이란 기대감을 주었다.아베노믹스를 흉내 냈으나 좋은 경제정책에 대한 표절에 시장은 드디어 필요한 정책이 나왔다며 환호했다. 그러나 선언만 요란했을 뿐 실제 정책으로 이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급등했던 주가도 6개월 만에 모두 원상 복귀했다.박근혜의 마지막 6개월은 몰락을 향해 가는 필연과 우연이 뒤엉킨 시간이었다. 압승할 수 있었던 총선은 차기 반기문 카드를 위해 공천을 친박들로 채우면서 패배했다. 이화여대 시위가 최순실에 대한 줄줄이 폭로로 이어지면서 정권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박근혜가 탄핵되면서 박정희 시대는 끝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시대를 추억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청산의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주식 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좋은 종목을 연속으로 잘 골랐을 때 원금이 빠른 속도로 불어난다. 매년 20퍼센트씩 수익을 거두면 4년이 되지 않아 원금은 두 배가 된다. 복리의 힘 때문이다.하지만 50퍼센트 손실을 본 후에 50퍼센트 이익을 보아봤자 원금은 여전히 25퍼센트의 손실을 본 상태일 뿐이다. 그래서 투자에서는 이익을 보는 것 다음으로 손실을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하지만 인간의 삶은 전진하지 않으면 퇴행한다. 한 걸음 뒤로 나간 후에는 한 걸음 앞으로 가도 제자리에 돌아갈 수 없다. 인간의 삶이 시간이란 힘에 의해 뒤로 움직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박근혜 파면은 기회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위기이다. 진보의 진화가 아니라 보수의 추락으로 얻은 승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위기가 성공으로 바뀔 가능성은 없지 않지만 높지도 않다.노무현 정부의 정책 실패로 많은 사람이 집값 폭등을 든다. 하지만 노무현의 실패는 집값이 폭등해서가 아니라 잡을 수 없는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한 것이었을 뿐이다.2000~2007년에 한국의 집값 상승은 20퍼센트 중반 정도로 OECD 국가 중에서도 집값 상승률이 낮은 편이다. 가장 많이 오른 스페인의 집값 상승률은 100퍼센트에 육박한다. 진보 인사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한국 주택 시장을 글로벌 경제와 함께 보는 거시적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글로벌 주택 시장이 크게 오를 때 국내 주택 시장 가격 안정을 목표로 경제정책을 세우면 어떤 일이 생길까?부동산 가격을 잡을지는 모르나 경제 전체가 붕괴된다. 경제가 붕괴되면 소득과 고용이 망가지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면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집을 사지 못하고, 돈이 많은 자산가들이 저평가된 주택을 사고 상황이 정상화되면 그들은 더 부자가 된다.하지만 과연 집권을 눈앞에 둔 진보 진영은 노무현의 실패를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지금도 집값 하락을 원하는 지지 세력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편승하고 언제나 주택 가격은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만 반복하는 이들의 주장에 현혹되어 있지는 않은가?집값 붕괴론자들은 인구가 줄어들고 1인 가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주택 수요가 구조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데다 2000년대 가격 상승기에 이루어진 주택의 과잉 공급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으며 소득 대비 가격이 지나치게 높고 경기 부진의 장기화로 구매력이 약하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그런데 왜 2008년부터 지금까지 집값은 하락하지 않은 걸까? 사악한 정부 때문에?집값이 구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보수의 집권 시기에는 진보와 야당의 목소리를 키워준다. 집값이 상승하면 정부와 여당에 사악한 악당의 혐의를 씌우기 쉽기 때문이다.하지만 막상 진보와 야당이 집권하면 이런 시각은 자기 함정이 된다. 집값도 세계화에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또 다른 정책 실패로 종합부동산세가 있다.‘종부세’는 좋은 정책이었다. 좋은 정책을 내놓고 실패한 것은 국민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고 자기들이 생각해)도 국민이 원치 않으면 하면 안되는 것이 민주주의다.2014년 기준으로 볼 때,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은 세수에서 재산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상위권이다. 보유세가 낮은데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취득세가 특히 높기 때문이다. 9억원 이상 주택의 경우 3퍼센트에 달한다.미국에서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퍼센트 내외의 보유세를 내야 한다. 보유세는 그 집에 살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를 사용하는 대가이기 때문에 영국은 심지어 주택 보유자가 아닌 거주자가 내고 주택 가격과 무관하게 지역에 따라 단일 세율이며 지방세다.경제학에서는 세금을 꼭 필요한 경우에만 거두어야 한다고 본다. 세금이란 그 존재 자체로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특히 보유세보다 거래세와 같은 세금은 거래 행위를 방해하고 민간의 소비 활동을 위축시키는 상대적으로 더 나쁜 세금이다.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늘리는 것은 경제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조세 구조를 선진국처럼 바꾸는 좋은 정책이다.하지만 국민은 당장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종부세를 부동산 가격을 잡는 정책으로 홍보한 것이 큰 패착이었다. 모든 조건이 같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늘리는 정책을 쓰면 부동산 가격은 안정된다.문제는 모든 조건이 같기는커녕 당시 글로벌 환경이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종부세는 실패했다.이명박은 정권을 잡자마자 종부세를 거의 원점으로 돌렸다. 조세에 저항하던 9억원 이상의 집을 가진 이들은 안도했다. 노무현을 지지하던 계층은 노무현이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며 등을 돌렸다. 우리는 여전히 후진적인 재산세 구조를 갖고 있다.버크셔 해서웨이의 5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워런 버핏이 주주 서한을 보냈는데 미국 경제가 향후에도 다른 나라들을 앞지를 것이라 주장하면서 개인의 독창성, 시장경제 시스템, 재능 있는 이민자의 유입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버핏이 말한 이 네 가지는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원칙이기 때문에 복지의 확대 같은 것은 없다. 버핏은 부자에 대한 과세의 엄정함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믿음 때문이지 세금이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전 재산을 환원하기로 했지만 국가가 아닌 재단에 기부했다.미국에는 다른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유급 출산 휴가라는 것이 없다. 1993년 제정된 가족의료휴가법(FMLA)에 의해 12주의 출산 휴가를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무급 휴가다. 유치원 이전에 갈 수 있는 공립 어린이집도 없다. 모두가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소수를 위한 어린이집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생산성 극대화에 최적화된 이러한 시스템은 높은 생산성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승자 독식’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경쟁에서 이긴 자가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간다.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독점 유무를 확인하고 파괴한다.그러면서도 중부담 중복지의 복지 구조를 만들어놓았다. 오는 5월 9일로 예정된 우리나라 대선에 참가할 유력 후보들이 주장하는 정책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 개인의 독창성을 줄이고 시장경제와 개방성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81만 개의 일자리를 공공 부문에서 만들겠다는 문재인의 정책이 대표적이다.젊은이들이 민간 기업에 취업하거나 기업을 만드는 꿈을 갖는 대신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나라에 근사한 미래가 있기는 어렵다.여야 상관없이 골몰하고 있는 골목 상권 보호와 활성화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골목 상권은 활성화되어야 하지만 영업 제한으로 다른 기업의 진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골목 상권의 수준을 올리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과연 스타벅스가 없던 시절의 카페와 파리바게트가 없던 시절의 빵집이 지금보다 좋았을까? 더러운 화장실과 믿을 수 없는 유효기간에 한숨 쉬지 않았나? 저런 바보 같은 정책을 공약해도 한국이 금방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첫째, 많은 공약이 현실화될 수 없는 것들이며 둘째, 이미 한국의 많은 기업은 이미 한국을 떠났으며 셋째, 한국은 해외 경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특히 한국의 높은 대외 의존도는 양날의 칼이다. 코스피 지수가 최근 고점을 높이고 성장률도 그럭저럭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로 다른 나라, 특히 미국 호황의 좋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이유로 우리 경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실기하게 된다.나는 최순실 스캔들도 경제가 좋았으면 묻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의 경제와 자유에 대한 균형 감각에 회의적이다. 그래서 이번에 진보가 집권에 성공하지만 경제에 실패하면 진보의 집권은 당분간 힘들 것으로 예상한다.개념적으로 보수라는 것은 ‘현상 유지’를 의미한다. 진보는 현상을 바꾸고자 하는 리스크 테이킹이다. 문제는 모순투성이의 현상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가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쓰레기차를 피하려다 똥차와 마주했을 때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