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 온 게 처음은 아니라던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랑 왔었다. 그리고 3년 전 학교에서 해외문화유럽탐방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온 적이 있다. 2주간 유럽 도시를 여행하며 현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동기 네 명과 같이 신청했다가 운 좋게 발탁돼 오게 됐다.
세 번째로 본 밀라노는 어떤 인상이었을까?
감회가 새로웠다. 두오모를 다시 보니 예전 생각도 나고. 그런데 두오모 앞에서 화보 촬영까지 하니까 너무 좋았다. 밀라노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것 같아 영광이었다.
두오모도 영광이었을 거다.
그럴 리가!(웃음)
올해 대학을 졸업한다고 들었다.
2월에 한다.
뮤지컬학과에 재학했다던데.
원래 영화뮤지컬학부인데 영화과와 뮤지컬학과로 분리돼 있다.
영화과가 아니라 뮤지컬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영화과에서는 연기를 배우지 않는다. 연출, 촬영, 조명 등에 관련된 수업을 듣는다. 뮤지컬학과는 노래도 배우고, 춤도 배우고, 연기도 배우는 학과라 내게 더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사실 박보검이 대학을 순탄하게 다닐 수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너무 잘 다닌 것 같더라.
꼬박꼬박 MT도 다녀왔다. 나름대로 알차고 즐겁게 보냈다. 그래서 졸업할 때가 되니 아쉽다.
졸업 공연으로 <헤어스프레이>를 무대에 올렸다고 들었는데 배우가 아니라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고 들었다.
맞다. 원래 역할을 맡고 싶었는데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무대에 서려면 더 배워야 할 거 같았고, 혹시라도 작품 일정이 생기면 연습에 불참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괜히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 신경 쓰이더라. 그래서 고민하는데 교수님께서 음악감독 자리를 추천하셨다.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으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지.
음악감독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고충은 없었을까?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라 동기나 선배들에게 누가 되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도 교수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잘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음악감독이 공연 때 지휘도 맡아야 했는데 <내일도 칸타빌레>에 출연할 때 지휘를 조금 배운 게 도움이 됐다. 내 손짓 하나로 음악이 달라지고 공연의 큰 그림을 통제하는 입장이 된다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워져서 더욱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고, 열심히 준비했다. 개인적으론 재미있었다.
연기를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오히려 연기 이외의 경험을 얻게 된 것 같다.
최소한 4년이란 시간을 헛되게 보낸 것 같진 않다. 새로운 방향성도 정립할 수 있었고, 마음의 그릇도 넓어진 것 같다. 3학년 때는 단막극 연출도 해봤는데 연출이라는 게 어렵지만 재미있는 작업이라는 걸 알았다. 감독님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뮤지컬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배우가 되기 전엔 뮤지션을 꿈꿨던 것으로 안다. 뮤지컬학과를 선택한 배경에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201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대학에 진학하는 게 좋을지 선배님들께 많이 여쭤봤다. 그때 다른 분야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고들 하셔서 작곡과, 실용음악과에 지원했는데 다 떨어졌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탓이었겠지만 좀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잘하는 애들만 뽑지 말고 나처럼 배우고 싶은 사람을 뽑아야 하는 거 아냐?’란 식으로 나쁜 마음도 먹게 되고.(웃음) 그러다 뮤지컬에 관심이 생겼는데, 명지대학교 뮤지컬학과가 알아주는 곳이라 해서 지원했고 합격해서 다니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금의 소속사 대표를 만나 배우로 진로를 정했다고 들었다.
꿈에 대한 갈피를 확실히 잡지 못했을 때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고민했다.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으니 싱어송라이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영상을 촬영해 잘 알려진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대부분 보냈다. 그런데 고맙게도 많은 곳에서 응답이 왔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고민 끝에 ‘제일 먼저 연락 오는 곳이 하나님이 뜻하신 곳이라 생각하니 그쪽으로 발걸음을 인도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지금의 소속사 대표님으로부터 가장 먼저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가수보다 배우를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다고 하셨다. 연기를 하면서도 음악을 병행할 수 있다 하니 배우가 되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딱히 음악 할 걸 그랬다고 후회한 적도 없고, OST 작업에 참여할 기회가 생겨 영광이었다.
고민이 생기면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편인가?
보통은 그렇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생겨도 빨리 잊는 편이다. 이런 성격이 장점일 수 있지만 너무 빨리 잊는다는 게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 어릴 때부터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 뭘 했는지, 뭘 잘못했는지, 뭘 잘했는지,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곱씹고 반성하고 생각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꾸준히 썼다면 굉장히 많은 기록이 남아 있을 텐데.
중간중간 빼먹은 날도 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써온 걸 모두 갖고 있다. 요즘에도 쓰고 있고. 사실 가족 모두가 다이어리 쓰는 습관이 있는데 아버지께서 ‘정확한 기억보단 희미한 기록이 낫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기억은 잊히기 마련이니까, 결국 오늘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추억들이 되살아나더라.
스스로에게 엄격한 타입처럼 느껴진다.
준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실수하거나 아쉬움이 남게 되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편이다. 그래서 뭐든 마음에 찰 때까지 해보려고 하는 편이다. 온전히 거기에 집중하려 하기도 하고, 그만큼 준비가 되면 자신감도 생기고. 설령 남들이 보기에 괜찮다 해도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역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무엇이든 최대한 착실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는 편이다. 한편으론 내가 지나치게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한다. 다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 같아서. 어쩌면 정말 피곤한 성격인 것 같다.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고 남다른 책임감을 요구한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을 거다. 그런 게 종종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는 없었나?
일단 연예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하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빨리 찾았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이렇게 큰 행운을 얻은 것 자체가 축복이라 생각해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다만 그런 생각에 얽매이며 살지는 않았다. 연예인이니까 더 선하고, 더 밝게 보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씩은 사람들이 사적인 생활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잘 안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안타깝기도 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서로의 마음을 좀 더 헤아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조금 단순한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선한 영향을 주고 싶다는 게 선한 캐릭터만 연기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텐데.
물론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선한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말이다. 물론 연기나 작품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막 닫아두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다만 내가 공감할 수 있어야 내 연기를 보는 분들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악역이라 해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 불분명한 이유로 반인륜적인 행위를 하는 역할보단 보는 분들도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역할이어야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보람을 느끼고 즐겁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