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터의 무게 중심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손님이 누구든, 시장이 어떻든 상관없이 본질에 집중하는 포터의 무게중심. | 포터 탱커,포터

일본의 국민 가방으로 불리는 포터는 2015년 80주년을 맞았다. 1935년 29세의 나이에 공방에서 독립한 가방 장인 요시다 기치조가 회사를 설립한 이후 포터는 단 한 번도 성장을 멈춘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 사업을 물려받은 2대 요시다 데루유키 사장도 “적자가 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위기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은 있었다. 포터는 1984년 ‘러기지 라벨’ 브랜드를 론칭했다. 론칭 초반 폭발적 관심과 인기가 쏟아졌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포터의 살림에도 타격을 미칠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이 가방 메이커는 흔들리지 않았다. 브랜드의 무게중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보통 패션이나 액세서리 브랜드의 무게중심은 계속 변한다. 트렌드에 맞게 출시한 특정 라인업에 사활을 걸고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그만큼 성공과 실패의 명암도 엇갈린다. 모 아니면 도다. 포터의 무게중심은 기이할 정도로 어디에도 쏠려 있지 않다. 점 조직 형태로 흩어진 제품 라인업은 삶에서 펼쳐지는 모든 상황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넓다. 매년 18개 정도 새로운 라인이 탄생하고, 현재는 200여 개의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각 라인에는 하위 모델이 수십 가지다.“아마도 전 세계 가방 브랜드 중에서 종류가 가장 많고 타깃이 가장 명확하지 않은 브랜드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오히려 포터의 최대 강점이다.” 편집장 타일러 브륄레는 포터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면서 브랜드 디자이너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그 말처럼 다양한 종류는 포터의 강점이다.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법으로 다품종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물론 특유의 나일론 소재로 잘 알려진 탱크처럼 포터에도 브랜드를 대표하는 인기 라인이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탱크와 같은 특정 라인이 인기를 끈다고 해서 그 라인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탱커 시리즈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던 시기에도 포터는 차분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모든 사람의 필요를 만족시킬 만한 새로운 가방을 기획했다.디자인실 디렉터인 구와하타 고는 포터를 리바이스에 비유한다. 모두가 입을 수 있는 청바지인 리바이스처럼 포터 역시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사용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포터 가방에 애착을 가지는 이들은 브랜드에 대한 의견을 피력할 때 유독 ‘대응’, ‘부응’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포터가 내놓는 가방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포터 가방은 다양한 환경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개개인을 닮아 있다. 어두운 아파트 복도에서 열쇠 같은 작은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가방에 소형 손전등을 달아둔 가방도 있다. DJ가 헤드폰과 LP판을 안전하게 수납하도록 내부를 쿠셔닝 처리한 가방도 있다. 하나의 가방이 세 가지 형태로 변형된다. 가방 자체가 옷장 역할을 대신하는 것도 있다. 자동차의 에어백이나 방탄조끼에 사용하는 발리스틱 나일론 소재 가방도, 일본산 수소 가죽을 무두질해 자연스러운 빛깔을 내는 가죽 가방도 있다.표현은 에고의 향연이지만, 대응은 에고를 버려야만 가능하다. 브랜드에 대응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제는 일반명사처럼 쓰는 ‘브랜딩’은 대응보다는 표현에 가깝다. 반면 포터에겐 가방을 만드는 사람의 에고보다 가방을 쓸 사람의 필요가 중요하다.포터는 손님이 누구든 개의치 않는다. 런던에서 모노클과의 컬래버레이션 라인을 산 사람과 도쿄 중소기업에 다니며 업무용 포터 가방을 쓰는 사람의 간극은 꽤 클 것이다. 포터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관심사는 오로지 더 많은 상황과 쓸모에 대응하는 것이다.“포터와는 이세탄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합작 상품을 제작합니다.” 만드는 사람과 쓸 사람의 중간자라고 할 만한 이세탄 백화점의 맨즈 섹션 바이어 다카쓰카 요시노부는 이렇게 말한다. “매장에 준비한 상품 가운데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가방이 없을 경우 크기에서 색상, 주머니의 개수와 위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새로 개발하기도 합니다.”실제로 포터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관찰한다. 회사원이 많은 곳에 가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일하며 어떤 환경에서 가방을 사용하는지 지켜본다. 혹은 도구로서의 가방에 참고가 되는 원형의 가방을 전 세계 곳곳에서 찾아내 수집한다. 디자인 디렉터 하세가와 스스무는 사진가, 목수, 레스토랑 웨이터, 우체부 등 각각의 쓸모에 맞게 개발한 여러 가방을 디자인실 한편에 보관해두고 틈이 날 때 이런 가방을 연구한다. 그에게 디자인이란 ‘원형에 가까운 가방을 실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포터에게도 예술적 기질이 있다. 그 재능은 소재와 부속을 다루는 제조 과정에서 드러난다. 일본에서 소규모 가방 아틀리에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는 포터 가방의 예술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일론은 실의 두께나 바느질 방법에 따라 예상치 못한 주름이 생깁니다. 광택이 있어서 주름이 더욱 눈에 띄지요. 마감에서도 다른 소재보다 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고요. 나일론은 그만큼 조심스러운 소재입니다. 포터는 오히려 그 주름과 광택을 매력으로 살려 견고하고 기능성 높은 가방으로 완성했어요. 아마 상당한 시간의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쳤을 거예요.”업계의 디자이너들조차 높이 평가하는 포터의 제품력은 포터와 함께 작업하는 장인들에게서 나온다. 포터와 고용 계약을 맺은 공방은 40여 개에 이른다. 가방 제조 브랜드로 한 도시에서 뿌리를 내린 포터가 자체 소유 공장, 혹은 전속 공방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 효율만을 우선하는 브랜드라면 어림없는 일이다.그들이 계약을 맺은 공방의 규모와 특기, 성향은 모두 다르다. 50~60명의 직원을 두고 일부 자동화 설비를 사용하는 공장 형태의 공방이 있다. 소량의 샘플 제작이나 제품 검수만 진행하는 곳도 있다. 특정 라인의 봉제만 18년간 해온 장인까지, 그 면면이 다양하다. 개중엔 포터 가방과 다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티스트 기질의 장인도 소수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 포터는 공예적 디테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가죽 가방 라인을 그들에게 전담 배치한다.포터가 말하는 장인 정신은 포터가 축적해온 제조 역량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단면에 가깝다. 포터는 오직 제조 기술을 연마하는 데 온힘을 쏟아붓는 장인이야말로 브랜드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동력이라 여긴다. 수많은 공방은 포터의 제품을 제작하면서 서로 자연스럽게 경쟁 구도를 형성하기도 한다.“저희가 만드는 몇몇 모델은 다른 가방보다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포터 홍보 담당자의 말이다. “만들기 어렵고 워낙 기능적 면을 추구하다 보니 가끔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못 만들겠다고 장인들이 손을 내젓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다른 곳에 의뢰해보겠다고 하면, 자신들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많아요. 장인 특유의 기질이죠.” 장인 간의 경쟁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면서도 특정 장인에게 일감이 집중되지 않도록 분배에도 신경 쓴다. 장인의 기술이 녹슬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극한 것이 일본의 가방 제조 산업에 큰 성장을 불러왔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포터와 장인의 관계, 포터와 가방업계의 관계가 하청이나 제로섬게임이 아닌 공생으로 불리는 이유다.요즘은 제품 자체보다 제품을 둘러싼 공기 같은 분위기로 승부하는 브랜드가 많다. 기술 개발보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브랜드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시대에 포터는 본질에 집중하기 때문에 돋보인다. 스스로 정의한 본질을 안다. 그 본질에 상당한 강도로 몰두한다. 오직 제품으로 자신을 증명해낸다. 그거야말로 포터의 성과다.일침입혼.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혼을 싣는다. 포터의 브랜드 철학이다. 고색창연한 교훈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매일의 단련에 더 가깝다. “저희는 운 없이도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자 합니다. 포터의 2막을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는 요시다 데루유키의 말이다. 이 말처럼 포터의 다짐은 화려하지 않지만 견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