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셉 라키, 패션의 제왕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사이키델릭한 패션 래퍼’ 에이셉 라키는 패션 그 자체다. | 인터뷰,음악,힙합,뮤직,랩

라키를 만나기에 앞서 관계자에게 몇 가지 주의를 받았다. 하루가 끝날 즈음에는 그가 너무 피곤해하거나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잘해야 30분 정도 좋은 인터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할리우드 서부에 있는 밀크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하얗고 거대한 큐브 모양 방에 단둘뿐. 저녁 햇빛이 스카이라인을 따라 쏟아졌고 우리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조금 뒤 그의 어시스턴트 이사벨이 와서 라키가 담배를 찾고 있다 전했고, 운 좋게도 내 가방에 전자 담배가 하나 있었다.라키는 대뜸 그룹 섹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명 인사의 인터뷰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을 법한 주제인데 말이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섹스 파티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고조되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지, 아무 때나 툭 내뱉을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반면에 라키는 섹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것 말고 매우 매우 좋아한다. 그게 인터뷰의 주요 논점이 아니었지만 거의 그렇게 될 뻔할 정도로. 함께 마주 앉은 지 겨우 6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시작은 집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베벌리힐스에 맨션을 가지고 있는데 할리우드 서부 근처의 그림 같은 대로에 있다. “제가 그 (망할) 인테리어를 다 직접 했어요. 팀 버튼과 웨스 앤더슨 스타일로 전부 꾸몄죠.” 그는 4살 때 을 본 뒤로 팀 버튼 감독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했다. “본인 침대도 직접 디자인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꽤 조사를 하셨네요?” 자신의 침대를 직접 디자인한 사람은 이 유명 래퍼가 내 생애 처음이다. “침대를 팔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제품을 만드는 데만 6만 달러 가까이 들어요. 정식 제품은 거의 10만 달러 정도 될 테고요. 최고급 자동차를 살 돈으로 침대를 살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1억짜리 침대는 도대체 어떨까? “엄청 거대하죠. 제 맨션에서 친한 파트너들과 자주 파티를 즐기기 때문에 큰 침대가 필요해요.” 이렇게 그는 별거 아닌 듯 처음 말을 꺼냈던 것이다. 마치 내가 코골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분으로 베개를 하나 더 쓴다고 얘기할 때처럼.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라키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할 뿐. 그는 거의 지나가는 말처럼 그만의 특별한 삶의 단면을 털어놓았다. 여자들이 라키와 1억짜리 침대 위에서 밤새 즐기는 은밀한 장면처럼.세상에는 온갖 래퍼들이 있다. 갱스터 래퍼, 멈블 래퍼, 하드코어 래퍼, 트랩 래퍼, 붐뱁 래퍼 등. 하지만 라키는 어딘가 다르다. 이 바람둥이는 8년 전 22살에 래퍼로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며 흡입력을 드러냈다. 만약 라키에게 걸맞은 카테고리가 있다면 ‘사이키델릭한 패션 래퍼’일 거다. 그는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패션을 그 누구보다 잘 접목시킬 줄 아는 래퍼다. 디올 맨의 블레이저와 구찌 바지를 입고 리복 운동화를 신는 것처럼 상반된 것들의 조화를 즐긴다. 그의 라이프스타일도 패션 스타일을 닮았다. 히피처럼 환각제에 취하기도 하고 로커처럼 무대에 뛰어들기도 한다. 가정사가 복잡하지만 세계적인 경매 회사 소더비즈에서 중국의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와 함께 그의 앨범 을 위해 예술 공연을 열었다. 16살에 교도소에서 복역했지만 옥스퍼드 연합 사회 모임에서 연설을 했다. 라키는 소통이 부재한 다른 두 세상을 잇는 다리다. 할렘에서 소더비즈로, 구찌에서 언더아머로, 옥스퍼드에서 브롱크스로. 그는 스스로를 ‘다이내믹하다’고 표현했다. “저의 열정 덕분에 제가 다이내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힙합은 항상 다재다능한 사람들을 생산해낸다. 1990년대에는 러셀 시몬스나 션 콤브, 제이 지같이 음악에서 시작해 라이프스타일로 소비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경우가 잦았다. 지금 그 틀이 깨지고 있다. 이제는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아티스트의 시대다. 그 길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도널드 글로버. 차일디시 감비노라는 래퍼이자 코미디언이자 TV 프로듀서, 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해 라키가 ‘AWGE’라는 크리에이티브 기획사를 론칭하면서 이 대열에 합류했다.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던 ‘에이셉 몹’ 계열사다. 아무도 AWGE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라키는 그래서 더 마음에 들어 한다. “요즘 시대에 신비로운 걸 찾기는 힘들죠. 똑같이 창작 활동을 하지만 보통 기업이 하는 방식과는 달라요.”초기 단계인 지금까지는 AWGE의 작업이 흥미로워 보인다. 에이셉 몹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영상 제작을 비롯한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플레이보이 카르티와 스무키 마르지엘라 같은 래퍼들과 계약을 맺었으며, 작년에는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에서 여러 팝업 이벤트를 열었다. LA에서는 ‘미드나이트 레이브’라는 앨범 발매 기념 파티를 열었는데 루이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질 아블로가 디제이를 맡았다. 라키가 발을 허공에 휘두르며 “제가 그 파티를 위해 이 리복 신발을 디자인했어요”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신발 옆면에 ‘미드나이트 레이브’라고 쓰여 있었다. “다들 잔뜩 기분 좋게 취해서 마음껏 섹스하고 토하고 엄청 대단했어요.”AWGE에서 라키는 패션 컨설턴트 역할도 한다(누구와 했는지는 비밀이지만). “개인적인 컨설팅이죠. 아시잖아요.” 가장 최근에는 언더아머에서 스니커즈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의 스타일리스트인 매트 핸슨이 이날 그 신발을 신었다. 이후에는 검은색 신발에 흰색 밑창이 검은색 밑창보다 더 잘 어울리는가에 관한 짧은 토론도 뒤따랐다. 흰색 밑창이 모두의 표를 얻긴 했지만 라키는 동의하지 않았다. “흰색은 쉬워요. 올 블랙 스니커즈를 소화하는 게 훨씬 어렵고. 아주 뛰어난 패션 감각을 지녀야 하죠. 그 점이 포인트예요.” 어떤 래퍼들에게 옷이란 그저 약간의 허세뿐일 수 있지만 라키에게는 다르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세요. 저는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유산이에요. 중요성을 담고 있죠.” 꽤 진지한 표정이었다. ‘패션 킬라’나 라프 시몬스에 대한 노래 ‘라프’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패션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을 때는 오히려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질문은 ‘브랜드 작업을 계속할 건가, 직접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고려하고 있나’였다.“들어보세요. 저는 지금 정말 음악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게 제 주된 관심사예요. 물론 몇 년간 브랜드들을 위해 비밀리에 컨설팅을 하고 있죠. 지금도 여러 트렌드 사업을 책임지고 있어요. 좋아요, 한 가지 말씀드릴게요. AWGE 덕분에 사람들이 요즘 게스를 입게 됐어요. 예전에 유행했던 게스의 줄무늬 티셔츠 기억하죠? 모노그램 로고도. 지금 게스가 다시 인기를 끌게 된 이유가 바로 저 때문이에요.” 그가 활짝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제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얘기하세요. “저는 패션을 입지 않아요. 제가 패션이죠.”라키는 평범한 래퍼와는 거리가 멀다. “통계적으로 래퍼의 커리어는 고작 2년에서 4년이에요. 저는 그 시기를 지난 지 3년쯤 됐고요. 음악이나 패션, 연기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아요. 결국 다 같이 가는 거거든요. 저는 돈을 한꺼번에 왕창 벌었다가 흥청망청 탕진해버리는 그런 래퍼가 아니에요. 제 돈은 모두 제품 개발이나 발명을 위한 투자금으로 쓰거나 음악을 만들고 영화를 제작하는 데 쓰고 있어요. 옷을 사지도 않죠. 가장 맘에 드는 가격에 구입하거든요. 0원.” 입고 있는 모든 옷을 가리키며 ‘공짜’를 연발하다가 체인에서 멈추더니 아주 크게 웃으며 말했다. “주얼리는 사요!”라키의 노래를 잘 모르는 사람도 제법 있지만, 사실 상관없다. 그의 이야기만으로 놀라울 만하니까. 심지어 신화적인 요소까지 있다. 전설적인 래퍼의 이름을 딴, 할렘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여러 장애를 극복하고 스스로 전설이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그의 이름은 라킴 메이어스였다. 누나는 에리카 비. 남매의 이름에서 부모님의 원대한 그림이 엿보인다. 할렘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생활했지만 라키는 굴하지 않고 9살 때부터 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라키가 12살 때 아버지가 마약 혐의로 감옥에 수감되었고 그다음 해에 형 리키가 총상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라키와 에리카를 데리고 보호소를 전전했다. 라키는 브롱크스에서 마약을 팔며 끊임없이 말썽을 부렸는데 심지어 그의 볼에는 15살 때 총으로 맞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 1년 뒤 그는 리커스섬 감옥에 2주 동안 수감됐고 그곳에서 카사노바라는 래퍼를 만났다. 라키가 범죄 생활을 청산하고 랩에 제대로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은 건 그때부터다.19살 때 에이셉 몹에 합류한 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할렘 공동 사업체에는 래퍼, 프로듀서, 감독, 디자이너들이 있었다. 얌스, 바리, 일리즈 등 여러 창립 멤버들이 있었고 라키는 금방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다. 22살에 ‘페소’라는 싱글로 시작해 믹스테이프 으로 이어졌고 RCA와 3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냈다. 그 후 바로 얌스와 함께 ‘에이셉(A$AP)’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론칭했다.“이제는 모든 빈민가 녀석들이 저를 닮고 싶어 해요. 게이 친구와 어울려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죠. 단계를 넘어선 거예요. 저는 게이, 백인, 아시안 모든 사람들과 친구예요. 스케이트를 타거나 그림을 그리는 친구도 있죠. 저는 랩을 하고요. 아무 상관없어요! 그 망할 빈민가 녀석들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다면 그땐 아무도 저에게 뭐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미 그곳을 벗어났으니까.”그의 미소를 봐서는 절대 눈치챌 수 없다. 계속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미소가 있기까지 비극의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형이 죽은 뒤로 앨범 3장을 발표할 때마다 큰 장례를 치러야 했다. 24살, 를 발매하기 얼마 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015년에는 발매 직전에 그의 멘토이자 친한 친구였던 에이셉 얌스가 사고로 죽었다. 라키는 얌스에게 있었던 보라색 몽고반점을 자신의 얼굴에 그린 모습으로 앨범 재킷을 장식했다. 그리고 지난해 처음으로 얌스의 도움 없이 작업한 을 발표하기 몇 개월 전, 그의 누나 에리카 비가 죽었다. 라키는 10월 3일 30살이 되었다. 내가 상실(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침묵이 흘렀다.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오르려는 것 같았다.“유명해지면 어려움이 따라요.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없거든요. 슬퍼할 시간이 없어요. 그저 앞으로 나아가며 스스로를 밀어붙여야 하죠.”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라키처럼 투어가 일상인 래퍼에게 낯선 여자와의 하룻밤은 이미 익숙하다.“이따금씩 한 여자만 사랑할 때도 있어요. 애인이 두세 명씩 있는 것도 나쁘지 않죠. 예전에 그런 적이 있거든요. 지속성이 중요한 거지만. 지금 제가 원하는 여자들은 모두 애인이 있어요. 저랑 함께했던 여자들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거나 결혼했고요.”그의 표정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아주 잠깐, 그가 안타까워 보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거 알아요? 저는 아마 평생 외로울 거예요. 거기에 불만은 없어요.”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인터뷰 시간이 다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어젯밤에는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었다. 그 전날에는 런던과 벨기에에 있었고, 할리우드로 돌아오는 길에 투어를 준비하며 공연도 몇 개 했다. 얼마 후에는 과테말라에 있는 작은 섬 안티과로 떠난다.“그냥 쉬고 싶어서요. 사람으로 진화하려는 노력이에요. 아시잖아요. 바른 음식을 먹고 책도 읽고. 자기 훈련이죠.” 밖으로 나오자 AWGE 사람들이 빠르게 그를 둘러쌌다. 누군가 그에게 담배를 줬고 이사벨이 차를 불렀다. 다들 배가 고팠다. 라키가 소호 하우스를 제안하니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