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지만 2018년 코리안 시리즈 우승의 기쁨은 아직 남아 있나요?
TV 채널을 바꿔가며 보면 아무래도 스포츠 채널에서 마지막 경기, 우승할 때의 장면이 계속 나오거든요. 볼 때마다 그날의 기분이 떠오르긴 하지만 빨리 떨쳐내고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두고 올해를 준비해야죠. 지나간 일이에요.
아무리 응원하는 팀의 팬이라도 마운드에 선 선수가 느끼는 기쁨과는 결이 다르지 않을까요?
승리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은 팬들도 저희 선수도 똑같아요. 같은 마음이니까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더 기분 좋죠. 저 또한 SK 와이번스의 선수지만 동시에 팬이거든요.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다면 팬의 마음으로 보게 되고, 이기면 그만큼 기쁘고 애정도 더 커지는 것 같아요. 팬들도 애정이 있으니까 같이 기뻐해주고요.
승리의 기쁨은 일상에서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고 놀 때 느끼는 감정은 아니지 않을까, 정말 그동안 기울였던 노력과 힘들었던 시간이 한 번에 다 잊히는 걸까 궁금해요.
맞아요. 학교 다닐 때 상을 받는 기분과 비슷해요. 아주 큰 상을 받는 거죠. 여태까지 우리가 했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고, 그때까지 힘들었던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아요. 승리로 다 만회돼요. 정말 기분이 좋죠.
결국 스포츠는 승리를 위해서 하는 걸까요? 승리만이 중요할까요?
그렇죠. 졌지만 잘했다는 말은 승부의 세계에서 용납이 되지 않아요. 무조건 이겨야 잘 싸운 거예요. 프로 선수로 입단하자마자 2등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꼈어요. 자꾸 이기려 하고,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해결해야죠.
김광현 선수를 만난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처음부터 톱이었는데 지금처럼 꾸준히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부상 때문에 쉰 적도 있었고 나름대로는 굴곡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한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평탄하게 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계속 MVP였고 항상 잘했던 선수니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선도 있어요.
본인과 사람들의 시선에 차이가 있네요.
엄청 힘들었던 시간도, 아플 때도 많았어요. 지금은 다 겪었고 지난 일을 뒤돌아보는 거라,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생각하지만요. 이제는 비슷한 시련이 온다 하더라도 한번 경험해봤으니 그만큼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경력이 쌓이면서 어려움이 와도 여유롭게 받아들이니까 팬들이 보기에는 꾸준하게 잘하고 있다고 봐주시는 게 아닐까요?
말한 것처럼 ‘항상 잘하는 선수, 비교적 평탄하게 걸어온 선수’라는 평판이 부담으로 작용한 적도 있었겠죠.
선수 생활 처음에는 엄청 부담이 됐죠.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고요.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늘어나면서 없어졌어요.
2018년 SK 와이번스의 우승이 더 드라마틱한 건, 김광현 선수가 팔꿈치 수술로 한 해를 쉬었다 복귀한 뒤에 이뤄낸 쾌거였기 때문인데요. 본인의 커리어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일까요?
입단하자마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계속 힘들었어요. 한국 시리즈 때부터 겨우 잘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늘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죠. 그리고 정확하게 10년이 지난 후 재작년에 수술했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서 서른한 살이 될 때까지 20년 동안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처음으로 1년 동안 야구를 쉬면서 ‘과연 이 감각을 잊지 않고 잘할 수 있을까, 수술한 팔로 잘 던질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어요.
20년 동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학교 다닐 때는 많이 했지만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어요. 솔직히 말하면 매일 준비 운동부터 시작해서 마무리 운동까지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훈련은 지루하고 힘들어요.(웃음) 저는 특히 상대방과 시합하고 경쟁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습은 정말 지겨워요. 시합이 없는 겨울은 더 그렇죠.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는 시합도 하고 경기를 보는 재미도 있고, 아까도 말했듯 이기는 맛도 느끼면서 고생했던 게 싹 사라져요. 그 맛에 계속하는 거죠.
늘 칭찬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은 사소한 비판이나 질책도 남들보다 배로 크게 다가올 수 있어요.
매번 잘하다 한 번 못하면 꼭 지적이 돌아와요. 때로는 이유 없이 못할 수도 있고, 컨디션이 저조할 때도 있는데 주위에 반드시 그 이유를 찾아서 꼭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지적받은 대로 바꾸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완벽할 수는 없어요. 만약 시합에서 졌다면 ‘질 수도 있어. 그러나 다음에는 지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계속해요. 비난은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점검해보기도 하지만, 제 판단에 틀렸다 싶으면 넘기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폼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으면 영상을 보고 실제로 변화가 있었나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거죠. 일일이 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요.
지금껏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속상했던 비난이나 지적이 있어요? 멘탈이 강해 보이긴 하지만요.
맞아요. 저는 지적을 받으면 오히려 속으로 두고 보라고 생각해요. ‘너는 동작이 너무 커서 체력이 부족할 거야, 서른 살만 되면 야구를 그만둘 거야’ 뭐 이런 말들이 많았죠. 스무 살 때 많이 들었어요. 그럼 저는 ‘두고 봐, 내가 서른다섯, 마흔 살까지 야구하는 모습 꼭 보여줄 거야’라고 마음먹었어요.
혹시 본인 기사를 자주 검색해요?
거의 매일 해요. 예전에는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냥 손이 가더라고요. 그런데 크게 감흥이 없어요. 어릴 때는 스트레스받았는데 10년 동안 욕도 많이 먹으면서 보니까 이제 괜찮아요.(웃음)
그렇다면 마운드에 설 때마다 즐거워요? 경기에 지고 있어도?
재미있죠. 첫 타구 때는 긴장하지만 즐겁지 않은 건 아니에요. 지고 있는 상황이어도 근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행복해요. 사람들도 좋아해주고 저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요. 물론 반복적인 훈련은 지루하죠. 하지만 타자를 제 계획대로 잡고 시합을 이기는 맛은 좋죠.
좋은 투수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마인드가 정말 중요해요. 투수는 이긴다는 생각으로 싸워야 해요. 흔히 ‘타자가 공격이고 투수가 수비다’라고 여기는데요, 저는 반대로 투수가 공격이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투수가 많은 승리를 거두니까요. 후배들도 그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좋겠어요. 재능은 보이는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건 마인드에 문제가 있는 거라 생각해요.
2007년 가을, 신인 투수로 첫 팀의 승리를 기록했던 열아홉 살 김광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그때는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운동만 하던 아이였어요. 어린 나이에 에이스라는 말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도 참 많이 받아서 쓰러진 적도 있어요.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죠. 경험해봐야 알아요. 부담이 컸을 텐데 다 지나간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 번씩 뒤도 돌아보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때보다 2019년의 김광현은 더 좋은 선수가 되었나요?
많이 성숙해졌죠. 열아홉 살 때는 내일이 없었어요. 오늘만 있었죠. 오늘 팔이 부러져도 당장 던지고 이겨야 했어요. 매일 끝장을 봐야 하니까 하루하루 위태로웠어요. 몸도 기술도 생각할 줄 몰랐죠. 지금은 내일도 생각하고, 한 달 앞을 보기도 하고, 내년을 고려할 줄도 알게 됐어요. 어떻게, 얼마나 공을 던져야 하는지, 컨디션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죠.
말을 하면 할수록 달관의 경지에 오른 느낌이에요.
그래요? 어릴 때는 다들 멋있게 박수 칠 때 떠난다고 얘기하는데요, 지금의 저는 그렇지 않아요. 마흔이든 언제든 던질 수 있을 때까지 던질 거예요.
그게 바로 김광현을 정의하는 말이네요. 야구를 벗어난 남자 김광현은 뭘 좋아해요? 공을 잡지 않으면 무엇을 해요?
보통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온라인 게임을 자주 해요.(웃음)
게임은 잘해요? 늘 이겨요?
아니요, 못해요. 그래서 지면 엄청 화나고 속상해요. 팀을 이뤄서 하는 게임이라 진 날은 팀원들도 미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