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선이라는 뿌리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비옥한 환경에서 태어난 정경선은 자신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척박한 땅을 찾아서. 더 나은 아침을 위하여. | 인터뷰,정경선,체인지메이커,당신은 체인지메이커입니까

신기주(이하 신) 재벌 3세를 만나본 건 처음이에요.진짜요? 한국에 은근 흔한 것 같은데.김은희(이하 김) 대표님 주변에야 흔하겠죠.(웃음)신 -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겠죠? 마치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언젠가는 제게 할아버지를 존경한다며 악수를 청하시더라고요.(웃음)김 - 고 정주영 회장님.네, 네.신 - 재벌 3세라는 것, 상대방이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나에 대한 정보와 어떤 선입견과 프리즘을 갖고 있다는 뜻이잖아요.그런데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의 형태로는 다 겪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지역 출신이다, 어느 대학교를 나왔다, 어떤 일을 한다 하면 이 사람을 만나보기도 전에 선입견을 가지고 투영하니까. 왜, 그런 이야기들 많이 하잖아요. ‘그 친구 어디 출신이야’ 그러면 ‘아, 걔 그래서 그렇구나’.신 - 태깅이 된다고 해야 하나. 그렇네요. 태깅이라는 건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재벌 3세는 ‘희귀템’ 같은 거고.아무래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일에 반비례해서 언론에서 가공되거나 재생산되는 이미지로 더 자주 노출되다 보니까 더 많은 기대치라고 할지 선입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김 - 내가 재벌 3세구나, 우리 집이 다른 집과는 좀 다르구나 자각한 건 언제예요?신 - 저는 떡국 먹는 사진 봤어요. (정경선 대표가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공개한 사진으로 유치원생 시절 설날 아침 풍경이 담겨 있다. 정주영 회장을 비롯해 한복을 입은 일가가 모여 앉아 떡국을 먹고 있다. 사진에 등장한 가족만 약 40명 된다.)개인적으로 그 사진 좋아해요. 우리 집이 조금 다르구나 느낀 순간은 아마 대학교에 들어가서였던 것 같아요.김 - 오히려?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우리 집이 조금 더 여유가 있다, 아니면 우리 할아버지가 조금 유명하다 정도의 인식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 인생 중에서 ‘피크’로 집안이 달랐을 때는 할아버지께서 대선 나가고 이러셨을 때이긴 한데 그럴 땐 오히려 어리니까 할아버지는 다 대선 나가나 보다….신, 김 - 할아버지는 다 대선 나가나 보다!(웃음)남의 할아버지도 다 그러는 줄 알았어요.(웃음) 마침 같은 초등학교에 DJ 손자분도 계시고 해서. 대학교 들어가면서는 제가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거든요. 동아리 활동에 회사의 후원을 받거나 아니면 졸업한 지 한참 된 선배분들께 연락해 찾아뵙는 일이 제게는 너무나 쉬운 거예요. 다 아빠 친구, 엄마 친구니까. 그때 어떻게 보면 나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구나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는 거 똑같고, 선생님 말씀 들어야 하는 거 똑같고, 학교 매일 가야 하는 거 똑같고, 교복 입는 거 똑같고….신 - 공교육이니까.네. 애들이랑 놀러 가는 것도 똑같이 코엑스에 영화 보러 가고, 아니면 압구정에 옷 사러 가고 이런 거였으니까 애초에 내가 주변과 다르다는 인식을 할 기회 자체가 없었는데 이제는 30대 그것도 벌써 중반이 되다 보니까….신 - 어, 진짜요?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김 - ….신 - 왜 그렇게 봐… 알았어.(웃음)김 - 자판기 누른 줄. ‘어? 진짜요?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웃음)신 - 나 이런 거 하려고 온 거야.(웃음)감사합니다.(웃음) 이제 서른넷이니까 주변에 결혼하는 분들 이야기 들으면 집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애는 어떻게 키워야 하나, 이런 것들에 대해 제게는 선택지 자체가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김 - 대부분의 사람은 나의 이익, 나의 성공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선택지가 훨씬 많은 와중에 비영리단체인 루트임팩트를 세웠고 체인지메이커라 부르는 사회적 기업가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우리가 함께하는 사회’, ‘더 나은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죠. 왜일까, 그 배경은 무엇일까 궁금했어요.아마 제가 상대적으로 소수인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만약 사회적으로 권장되고 요구하는 것에 잘 부합되는 사람이면 지금의 사회 룰 세팅 자체가 본인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거잖아요. 남을 이야기할 필요 없이 나 혼자 잘하면 되는 건데, 제게는 이 룰이나 조건 자체가 딱히 우호적이지 않았어요. 재벌이라는 콘텍스트를 떠나서요. 제가 속해 있던 소규모 그룹에서든 어디서든 조금 다른 사람이다 보니까 나를 구박하지 마, 나를 그냥 나대로 살게 해줘, 그럼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된 거죠.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만 저 같은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거잖아요. 포용적인 사회가 되려면 불만이 넘치지 않아야 하거든요. 불만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넘치지 않아야 사람들이 여유가 생기고 남을 이해할 수 있고 남과 만나서 대화하고 들어보려는 의지가 생기니까 그렇기에 저는 좋은 사회를 이야기하는 거죠. 더 나은 사회를, 저를 위해서.김 - 다른 사람이라 하면, 무엇이 다르다는 걸까요?소위 말해 정도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좇아가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이 나이에도 또래 집단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동종 또래 집단과는 다르죠.신 - 정도. 그 길을 간다. 그 길이 뭐예요?보통 일반적,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길 있잖아요. 예를 들어 재벌 3세 같은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두 가지 코스가 있는데 하나는 정사원부터 쭉 해서 오래오래 올라가는 버전, 다른 하나는 인베스트먼트 뱅킹이나 컨설팅에 갔다가 들어오는 버전이죠.신 - 파이낸스, 재무 배우고 들어오든가, 아니면 현장에서 올라오든가. 어쨌든 간에 남들보다 퀀텀 점프로 승진 속도는 굉장히 빨라서 30대 후반쯤 되면 드라마 주인공처럼 ‘실땅님’ 되고 뭐 이런 코스 말이죠?네, 네.(웃음) 저는 굉장히 마니악하기 그지없는 비영리단체로 출발을 하긴 했죠. 사실 현재 유학 중인 MBA도 나름 비슷하다면 비슷한 코스지만.신 - 아버님, 어머님은 아들의 다름을 놔두셨나요?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좀 더 남들이 그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편이긴 한데, 두 가지 면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부모님께서 그래도 “그래, 네가 좋은 걸 해야지. 우리가 걱정해서 하는 말은 듣기만 하고 선택은 네게 맡길게”라고 해주시는 것. 이런 부모님을 만난 것 자체가 굉장히 축복이죠. 두 번째는 솔직히 제가 의무는 다 이행을 했죠. 공부는 어지간히 했고, 좋은 대학교 들어갔고, 현역으로 복무했고, 유학 가라고 할 때 갔으니까.신 - 부모님과 딜을 해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자.그렇죠. 사실 제재가 강하게 들어오기에는 저의 다름이 뭐랄까, 철학적인 다름에 가까웠기 때문에 딱히 잡으실 것까지도 없었죠. 그런데 그것조차 저는 제가 운이 좋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고집스러움인 것 같아요. 여태까지 한국의 일관적인 문화를 정말 잘 드러내는 속담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환경적으로든 뭐로든 정 맞아서, 정에 깎여서 일반적인 기준에 맞춰진 분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저는 정을 안 맞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정을 맞을 수도 있으니 난 나대로 살 방법을 빨리 강구해봐야겠다, 그래서 이 시점까지 이르게 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김 - 나를 구박하지 마, 나를 그냥 나대로 살게 해줘, 그럼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더 나은 사회를, 나를 위해서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더 나은 사회란 무엇인 건가요?신 - ‘더 낫다’라는 방향은 사람마다 다 다를 테니까.개인적으로는 포용적인 사회. 그런데 포용적인 게 문화적인 측면이라면 물질적으로는 아마 UN에서 이렇게 정의했을 텐데 ‘이 정도의 퀄리티 오브 라이프(quality of life)를 누린다’고 하는 기본적인 수준의 삶의 질, 이 두 가지 측면이 결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신 - 시대정신이라는 표현을 어딘가에서 말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시대정신이다.네, 그렇죠.신 -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 과정 중이잖아요. 예전에 김우중 회장인가 말씀하셨죠. “어딜 가든 나는 다 돈으로 보여.” 아마 할아버님도 그러셨을 것 같은데.김 - 사업가 기질.신 - 사업가 기질인 거죠.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너무 보인다는 거죠. MBA 갔더니 그 기질이 막 깨어나. 비영리보다 영리가 더 재밌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아직 무언가 더 재밌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한길이라는 말씀이신 거고.한길…. 한길은 아니죠. 엄밀히 말하면 저는 2014년부터 HGI라는 임팩트 비즈니스 회사이자 영리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비즈니스 스쿨에 있다 보니까 느끼게 된 것은, 그리고 또 뉴욕에 있다 보니까 요즘의 IT 트렌드라든지를 보면서 느낀 건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결국 보다 나은 사회인데 이 나은 사회를 달성하는 방법론에 여태까지의 비영리가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이런 것에 대해 좀 더 여러 가지 열린 형태로 고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신 - 예전에 취재한 소셜 벤처가 생각나는데, 딜라이트라는 보청기 회사였어요. 그때 아이러니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의도가 좋죠. 딜라이트가 등장해서 아주 싼 형태의 보청기를 시장에 공급하니까요. 그런데 경쟁 회사들이 몹시 싫어하죠. 시장 자체가 교란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싼 보청기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경쟁자들은 물론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경쟁을 일으키고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고 역설적으로 더 나은 보청기를 만들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그러면 소비자들도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보청기 구하기 어렵다느니 말이죠. 선의가 꼭 좋은 결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 예일 수 있는 거죠. 사실 MBA야말로 시장의 총아이자 요람이잖아요. 거기 가서도 그 신념을 유지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교수님들마다 성향이 다르긴 한데 수업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예를 들어 시장 실패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여태까지 기업들이 단순 재무제표를 넘어서는 사회적인 비용에 대해 고려를 안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정부에서든 소비자든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니까 그렇다면 이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주주만을 고려하는 자본주의, 주주만의 이익을 위했던 회사들이 거대한 규모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치면서 이것을 제어하기 위한, 소위 말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야 하는가. 이런 여러 이야기들, 저는 이런 담론이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다름과 연결되는 화두인데, 저는 요즘 항상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그른 것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최적의 선택지를 어떻게 고르느냐, 그리고 그 선택을 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계속 보완해나갈 것인가,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여러 가지를 보고 배우고는 있어도 아무래도 비즈니스 스쿨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제한적이기는 한데, 애초에 제가 듣는 수업들이 기업의 책임을 조금 더 강조하는 강의라서 오히려 이 수업에서는 순혈 금융 자본 오리엔티드 애들이 소수죠.(웃음) 그래서 그 친구들이 공격적인 시장 중심 이야기를 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전부 다 일어나서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래요.신 - 사실 교실 문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그들이 다수인데.그렇죠. 그런데 느낌이 많이 바뀌기는 했어요. 일적인 면에서 지향하는 것과는 별개로 정치 철학이나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인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곳이기는 하죠.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만 하더라도요.신 - 이런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에누마(장애가 있는 아동을 위한 학습 앱을 만드는 회사), 째깍악어(시간제 어린이 돌봄 매칭 서비스 전문 기업. 워킹맘, 한 부모 가정, 저소득층 및 장애 어린이 가정 등 사회 취약 계층을 지원한다), 두손컴퍼니(일자리를 통해 빈곤을 퇴치하고자 하는 소셜 벤처) 등 HGI가 투자한 여러 회사가 있는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벤처라는 건 같지만 분야가 다 달라요. 어떤 분들은 ‘자, 교육이 가장 중요해. 이게 이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어젠다야’. 어떤 분들은 ‘아니야, 양육을 도와줘야 해’, ‘아니야, 노숙인 자립이 먼저야’…. 그들끼리도 전혀 다른 어젠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거기서부터 갈리기 시작하는 거죠. 그런데 다 필요 없고 ‘자, 가장 중요한 건 돈이야’ 이러면 심플하지 않나요?‘돈이 가장 심플하다’는 건 저희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과연 심플한지 모르겠는 게, 결국 돈이란 성공과 비슷한 건데 그렇다면 성공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은 건지, 그럼 그 인정의 형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소비를 하고 싶은 건지, 그 소비가 본인에게 왜 좋은 것인지, 깊이 들어가보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다 다를 수 있거든요. 그런데 묶어놓으면 편하다고 생각하는 거죠.김 - 정경선 대표님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뭐예요?제 기준에서 저의 가장 성공적인 삶이오? 음…. 제가 사회적으로 필요가 없어져서 저는 어디선가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면서 남들 신경 안 쓰고 사는 것.(웃음)김 - 내가 쓸모없어지는 것?네. 내가 쓸모가 없어도 되는 것.신 - 사회적 기업가가 필요 없을 만큼 사회적인 문제가 많이 해결되는 것.네. 혹은 저 같은 재벌 3세의 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신 - 그런데 사회적인 문제라는 게 말이죠, 이번에 내신 책 에서는 임팩트 측정이라고 잠깐 언급됐는데, 기업에서는 투자 대비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이야기하는 게 단순할 수 있어요. 역설적으로 숫자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죠. 사회적 기업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매출도 있어야 하는데 재무적 결과, 사회적 결과도 있어야 하고. 그런데 사회적 결과는 또 어떻게 평가되는 건지, 이게 가장 어렵겠다 싶더라고요.저는 임팩트 측정이라는 것 자체는 기업에서 기존에 진행하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고객 만족도 조사. 가령 제약 회사들이 ‘수많은 임상 실험을 통해 이 약을 복용했을 때 실제로 이러한 효과가 있습니다’라고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사회적 기업에서 하는 임팩트 측정인 것이죠. 그런데 사회적 기업의 임팩트 측정이 어려운 것은, 예를 들어 에누마가 낙후된 지역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했을 때,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올라가는 게 순수하게 이 프로그램 때문인지, 아니면 마침 당시 유니세프나 다른 데서 들어온 지원 프로그램도 같이 있어서 나아진 것인지 독립 변수의 차이가 있는 거죠.신 - 평가도 어려워.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사회적 기업의 성공 기준은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 건가요?완벽하게 독립 변수로서 ‘우리가 어떻게 유의미한 기여를 했다’고 알려고 하는 것은 욕심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약의 효과 중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플라시보인지는 제약 회사도 고민하는 문제잖아요. 저는 기업으로서 필요로 하는 적정 수준의 유의미한 데이터까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고, 실제로 임팩트 측정의 방법론 중 하나가 애큐먼(사회 변화를 위해 투자한다는 임팩트 투자 개념을 도입한 개척자 조직 중 하나. 초기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투자한다는 점에서 체인지메이커 인큐베이터이자 생태계 역할을 하는 루트임팩트와 비슷하다)이 개발한 린데이터(Lean Data, 애큐먼이 투자하는 지역 내 사회적 기업의 고객, 즉 최종 수혜자에게 모바일로 진행하는 간단한 고객 조사)예요. ‘너희 규모의 단체에서는 이 정도까지만 확인하면 임팩트를 내는 거라고 말해줄 수 있어’ 이런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는 거라서, 어떻게 보면 적정 데이터인 거죠. 고객은 당연하고 회사 이해관계자, 직원과 주주, 파트너사에게 ‘우리는 이런 일을 통해 실제로 우리가 약속했던 결과를 제공했어’라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해야 하는 거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단체가 우리는 이런 일을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정말 그런지에 대해서 확신을 못 하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죠.신 - 알고 싶지만 알기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표가 되고 평가 대상이 되니까. 잡지만 놓고 보아도 프린트는 몇 명이 보는지 안 나오잖아요. 그런데 디지털로 가는 순간 클릭 수부터 도달률까지 나오니까.(웃음) 어렵네요.그중에서도 실구매율로 이어지는 건 프린트가 더 높고 디지털은 더 낮을 수도 있고, 또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충성 고객은 몇 명인지 이런 건 모르잖아요.신 - 너무너무 복잡계가 들어가버리니까요. 게다가 사회적 기업은 복잡계를 피할 수 없는 비즈니스 영역이라는 거죠. 그런데 거기서 평가를 해야 하는 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그들의 활동을 돕는 회사도 운영하고 계시니, 이렇게 되면 대표님께는 그걸 어떻게 평가할지가 너무 중요할 것 같아요. 그 일을 수년 하셨으니 이제는 나름 감은 있으실 것 같기도 한데요.개인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결국에는 평가를 수행하는 체인지메이커 당사자들의 태도인 것 같아요. 본인들이 그 부분을 얼마나 엄격하게 진행하려고 했는가. 하지만 그와 동시에 평가에 경도되어서 ‘완벽한 임팩트 측정법을 만들 때까지 우리는 아무 일도 못 해’ 이러한 태도는 아니고, 충분히 현실 가능한 수준에서 적용하면서 동시에 수정 보완하려는 의지, 어떻게 보면 이 태도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을 해요.신 - HGI가 설립된 게 2014년이니까 벌써 6년 차에 접어들었네요. 지금까지 HGI가 투자한 회사에 대한 임팩트 측정 결과가 있나요? HGI가 투자한 회사의 평가가 결국 HGI의 평가일 테니까요.그래서 저희가 2018년에 임팩트 리포트라는 것을 발간했어요. 저희 HGI 웹사이트에서도 보실 수 있어요. 루트임팩트와 협업해서 만들었는데 HGI가 투자한 회사 중 몇 회사를 하이라이트해서 이들이 어떤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정리했어요. 예를 들어 째깍악어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육아를 하는 데에서 양육자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이런 점을 보게 되고, 마리몬드(디자인 제품과 콘텐츠로 존귀함의 회복을 실현하는 브랜드. 특히 일본군 위안부 성 노예 피해 여성 지원 기금 모금과 관련 재단 설립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가장 정량적인 임팩트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죠. 실제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 단체에 얼마나 많은 돈이 전달되고 있는지를 보면 되니까요. 두손컴퍼니 같은 경우에는 노숙인분들이 고용을 통해 얼마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지 보고 있는 게 있고요.신 - 나름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고, 만들고 있다는 말씀이신 건가요?네. 저희 목표는 회사마다 나름대로 평가 기준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저희가 만들어서 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 회사가 스스로 ‘우리는 이렇게 성장했을 때 가장 좋은 모습인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잖아요. 그걸 만드는 데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 제일 좋은 거죠.우리는 영원히 변화할 텐데, 끝이 없이 변화할 텐데, 그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죠.김 - 저는 이게 재미있었어요. 책 표지를 가만히 보다 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문장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냥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각자의 자리’라는 표현에서, 정경선 대표님은 재벌 3세라는 자신의 자리를 인정하고 이 자리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것 같더라고요. 어쩌면 영리한 거죠.(웃음)그냥 하려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은데….(웃음)김 - 나의 자본력을 인정하고, 그렇다면 내가 가진 이 자본력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 고민이 체인지메이커를 돕는 체인지메이커고.그래서 사실, 정말 좋은 물주가 되면 되는 거였는데 아무래도 ‘물주’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다들….신 - 아니면 쩐주 어때요, 쩐주.(웃음)어, 정말, 엄밀히 말하면 제가 “나는 좋은 쩐주지”라고 이야기했더니 다들 그 단어 써도 괜찮은 거냐고 했거든요.(웃음) 그런데 쩐주는 왜, 에 나오는 그 대감님인가 누구지? 허생이 처음에 “내가 장사 좀 할 테니 돈 빌려주시오” 했더니 “가져가라” 하고 돈 그냥 주신 영감님 그분이 쩐주잖아요. 물론 듀 딜리전스(due diligence, 기업 실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좋은 건 아니었지만.(웃음) 하여튼 믿고 맡겨주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완전히 믿고 맡겨주고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기 때문에 너의 의사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역할을 해주는 사람. 더 나아가서는 이런 부분에 돈이 정말 들어가야 하는데 안 들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에 더 들어가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이 제가 잘해야 하는 역할인 것 같고, 잘하면 좋은 거라고 생각을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떻게 보면 제가 제자리를 찾았죠. 그리고 플러스 이런 얼굴마담 역할.(웃음)신 - 그러게요. 루트임팩트가 처음 생겼을 때 임팩트라는 말조차 무엇인지 모를 때였지만 ‘현대가래’, ‘정씨 집안에서 하는 거래’ 이런 이야기로 관심받았죠. 언론과의 접점을 만드는 데 재벌 3세라는 점을 적절히 이용했으려나요.그렇죠.신 - 지금은 어때요? 이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요.어휴, 아니죠. 그거 아니면 사람들이 저한테 왜 관심을 갖겠어요.(웃음) 저의 포지셔닝을 이해하는 것, 받아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하긴 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저의 포지셔닝 또한 제가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소스 중 하나인 거죠. 영향력의 근원 중 하나인데 이것을 아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예를 들어 ‘좋은 일은 돈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어’라는 인식은 안 갖도록 노력하되 사람들이 이 이유로 한 번이라도 더 임팩트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 기업에 대해 고민한다면 이건 얼마든지 써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죠. 잘 팔죠, 저를.(웃음) 회사에서는 싫어해요. 개인 이야기 좀 그만하고 회사 이야기 하라고.(웃음)김 - 아까 보니까 동료들이 ‘영앤리치(Young & Rich)’라고 부르더라고요.(웃음)사실 저도 내가 어쩌자고 이랬을까 싶을 때도 많아요.(웃음) 그런데 관계를 위해서 제일 중요한 건 노출이고 인지거든요. 아무리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있어도 사람들이 모르면 소용이 없는 거죠. 성수동도 그때는 정말 제한된 사람들,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는데, 저희가 정말 임팩트를 더 확장하고 싶다면 어떤 형태로든 알려야 하는 거고, 그랬을 때 어디가 됐든 ‘재벌 3세’를 붙이면 훨씬 잘 작용하니까요. 일을 위해서 어떻게 보면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야 된다는 마음가짐이에요.신 - 요즘도 글 쓰세요? 책 읽는 거, 글 쓰는 거 좋아하신다고요.제가 최근에 HGI에서 시작한 법인 중에 안전가옥(모든 이야기의 안식처를 지향하는 공간. 글 쓰는 창작자, 다양한 장르 문학을 위한 커뮤니티)이라는 곳이 있어요. 안전가옥은 정말 저의 개인적인 자아가 엄청 들어간 곳인데, 거기 ‘월간 안전가옥’이라고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글을 쓰는 게 있어요. 그쪽에 에세이를 쓰고 있죠.김 - 필명이 있거나 하진 않고요?필명이 있는데, 어차피 저를 아는 사람은 ‘아, 얘가 쓴 글이구나’ 알 거예요.김 - 뭔데요, 필명?안 알려줌.(웃음)김 - 최근에 쓴 글은 뭐예요?취미로 와인을 제일 좋아하는데 지난 11월에 처음으로 와이너리 투어를 기획해서 간 적이 있어요. 부르고뉴 쪽으로 갔는데 너무 좋아서 그 이야기를 썼어요. 프랑스에서 유명한 와인 산지이고 거기서 나오는 와인이 세상에서 제일 비싸지만 부르고뉴는 정말 작은 마을이거든요. 요만한 지역에서 만드는 건데, 흔히 좋은 농경지라고 하면 판판하고 물이 많고 기름지고 비옥한 토양을 최고로 치잖아요. 그런데 좋은 와인이 나오려면 오히려 물이 다 빠져야 해요. 물이 다 빠져서 포도나무가 물을 찾으려고 억지로 뿌리를 깊이 내려가지고 여러 미네랄을 받아서 영양소가 풍부해져야 해요. 보통 이미 양분이 풍부해서 포도가 자라기 쉬운 환경이면 포도나무가 열매를 엄청 많이 맺으면서 그 영양소가 다 흩어져버려서 포도가 묽어지거든요. 그래서 인위적으로 포도나무를 계속해서 괴롭혀야 해요. 그래야 포도나무가 굉장히 응축된 포도를 맺게 되고 그때 제일 좋은 와인이 나와요. 그게 어떻게 보면 사람과 되게 비슷해요. 보면 그냥 한평생 만족하면서 크게 질문하지 않는 사람들은 너무 나이스해요. 저도 진짜 힘들고 지칠 때는 그런 사람들 옆에서 그냥 저 행복한 거 하는 게 제일 편하기는 한데, 그게 그리 재밌지는 않아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좋은 이야기, ‘응, 괜찮아’ 하니까. 크게 고민도 안 하고.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고 잘 노는 친구들은 정말 엉망진창인 애들이에요.(웃음) 알루미늄 포일 같은 애들 있죠? 완전 구겨져 있어서 펼쳐도 그 구깃구깃한 자국이 남아 있는데, 그래도 그게 소위 말해 곪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승화시키는 길을 찾은 애들. 전 그런 애들을 제일 좋아해서, 와인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비슷하다 그런 글이었어요.신 - 에 필자로 모셔야겠는데요.이렇게 확실하게 퀄리티 컨트롤이 되어야 하는 매체에 나가기에는 제가 아직 부끄러워서.김 - 제 퀄리티도 컨트롤이 안 됩니다.신 - 그냥 저희도 체인지메이커예요.(웃음)아유.(웃음)김 - 민망해하시니 마지막 질문 드려야겠네요. 요즘 행복하신가요?행복하진 않고 굉장히 만족하는 것 같아요.김 - 행복과 만족은 다르다고 생각하시는군요.저는 행복함은 고양감이라고 생각하고 행복이라는 특성상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부탄이 국민 행복 지수로 유명하잖아요. 예전에 제가 뜬금없는 기회로 지금 부탄 왕의 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원래 자기들이 의도한 건 국민 만족 지수였다고 해요. ‘Gross Contentment Index’를 만들고 싶었대요. 왜냐면 행복이란 건 주관적인 것이니까, 만족은 어느 정도가 채워지면 되는데 행복은 어느 시점부터 행복인지가 애매해서 만족 지수로 하려고 했대요. 그런데 그럼 덜 섹시해서 국민 행복 지수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러니까 행복 지수이지만 실제로는 만족 지수에 가까운 거죠. 저도 그와 비슷한 상태인 것 같아요. 행복에 집착하는 게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만을 만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냥 꾸준히 잘 가는, 만족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