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요리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내 기억으로 짜장면이 60원 하던 시절이다. 면은 100% 수타요, 고기는 돼지를 통으로 받아서 각을 뜨던 때였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가게 하나를 운영하던, 전형적인 중국인들의 식당이었다. 맛있고 시끌벅적하고 기름 연기 냄새가 가득 차 있던. 이제는 일부러 영화 세트나 만들면 모를까, 다 사라진 역사다.
요즘 중국집 면 요리는 대부분 엉터리다. 수타는커녕 많은 집이 면을 사서 쓴다. 인건비가 없어서다. 배달 중심이다 보니 불지 말라고 소다를 왕창 친다. 알칼리 효과로 면이 아주 노랗고 고무줄처럼 질기다. 슬프다. 옛날엔 탕탕, 수타를 쳤다. ‘난닝구’ 입은 면장(麵長)의 울퉁불퉁하던 이두박근의 힘! 여름이면 땀이 번질거리던 그 피부! 다 무덤 속의 기억이 되었다. 짜장도 지금처럼 왕창 부어주지 않았다. 잘 볶아서 되직하고 짭짤한 장을 살짝 얹었다. 장 색깔도 갈색이었다. 그때 내 소원은 곱빼기를 먹는 것이었다. 짬뽕도 곱빼기, 볶음밥도 곱빼기. 갈색 춘장에 반찬으로 곁들여내던 대파.
십수 년 전에 중국요리 내부에서 면 요리의 힘겨루기가 있었다. 짬뽕과 우동의 대결이었다. 우동이 밀렸다. 매운 걸 좋아하는 스트레스 시대의 요청이었을까. 짬뽕이 대세다. 우동 파는 중국집은 찾기 어렵다. 시원하고 고소한 국물, 갑오징어 몇 점, 시금치와 당근, 양파가 들어 있던 옛날 우동. 시원하게 해장하려는 사람들이 우동을 시켜서 고춧가루를 살짝 쳐서 먹었다. 1990년대 들어서 짬뽕의 자극적인 맛이 우동의 순수를 약탈해갔다. 중국집만의 우동은 이제 명맥을 잃었다. 원래 이 우동은 따루면에서 시작되었다. 북경, 산둥 사람들이 겨울 음식으로 즐겨 먹는 따루면이 조선 반도에 들어와서 우동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본 식민지였으니까. 요즘 대림동에 가면 따루면이 있긴 하다. 본토 요리사들이 만드는 것인데, 어째 옛 국물 따루면이 아니다. 매콤하게 장을 얹어 낸다. 매운 짜장면 같다.
기스면도 기억하실지. 닭고기를 실처럼 잘게 썰어서 끓이는 면이어서 기스(鷄絲)면이라 명명되었다. 닭을 삶아서 살을 바르고 그걸 가늘게 썰었다. 삶은 국물과 뼈 우린 국물에 고명을 얹고 가늘게 뽑은 면이 들어갔다. 기스면은 우아한 아저씨들이 먹었다. 면이 가늘어서 따로 뽑아야 하니까 가격이 좀 나갔다. 입안에 비단실 타래를 펼치는 듯한 기스면. 충무로 어디서 이 면을 판다고 하여 간 적이 있다. 그냥 고무줄 면에 성의 없이 자른 닭고기가 들어 있었다. 고우면서도 삼삼한 국물도 아니었다. 마음에 ‘기스’가 났다.
울면도 없어졌다. 전분을 풀어서 걸쭉하게 내던 울면. 겨울에 먹으면 딱 좋던 울면. 번안한 캐럴송의 가사를 패러디해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짜장도 안 돼” 하던 개그맨의 익살을 따라서 우리는 합창하듯 이 유치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사라진 지금, 울면도 없어졌다. 도대체 이렇게 걸쭉한 국물 면을 왜 먹을까 싶다가도,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을 때 시키던 울면. 진짜 중국집이 없어졌다고 해서 울면 안 되겠지….
탕수육이 1000원이면 뎀뿌라는 900원이었다. 뎀뿌라는 고기튀김이라고도 불렀다. 탕수육과 비슷한데 고기 부위도, 양념도 약간 달랐다. 탕수육은 남녀노소 가족형, 뎀뿌라는 아저씨들 술안주용. 뎀뿌라는 고기의 양은 더 많아도 탕수육보다 조금 싼 것이 불문율이었다. 대신 소스가 없었다. 뎀뿌라를 시키고는 작은 종지(그 ‘간장 종지’ 맞다)에 간장과 식초를 황금 비율로 섞고 중국집에서만 볼 수 있는 고운 고춧가루를 살짝 쳤다. 기름 냄새가 훅 끼치던 뎀뿌라를 집어서 간장 소스에 푹 찍은 후 입에 넣으면 혀를 데었고, 입천장이 찔려서 상처를 입었다. 바삭할 정도로 딱딱하게 튀기는 게 뎀뿌라였다.
짜춘결도 보이지 않는다. 소를 채워서 계란으로 말아낸 일종의 에그 롤. 고급 요리였고, 솜씨에 태가 나는 종류였다. 이젠 이런 요리도 제대로 할 인력이 중식 동네에 없는지 파는 집이 드물다. 고소한 계란 지지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간장 소스에 찍어서 입에 미어져라 넣던 짜춘결. 인천이나 다른 지역의 옛 중국집에서나 간혹 볼 수 있다. ‘그까짓 계란’이라고 하시겠지만, 한때 계란이 최고급 식재료이던 시절의 흔적이랄까. 무엇보다 이제 부엌 작은 배식구에다 청나라 옷을 입은 늙은 주인이 외치던 주문이 들리지 않는다. “짜장 이거, 탕춰러 이거!” 다 사라져버린 거리에서 나는 아직도 무얼 찾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