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고함 없이 불만을 표하는 법 '영수증 없이 찾아가서 미안해' 편

당신은 내가 아니기에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냅니다. 고함치지 않고 불만을 표하는 법.

BYESQUIRE2019.08.11
 
윤성중은 달리기 잡지 <러너스월드> 한국판을 만든다. 요즘 달리기를 하느라 바빠 쇼핑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영수증의 중요성을 잊고 있었다.

윤성중은 달리기 잡지 <러너스월드> 한국판을 만든다. 요즘 달리기를 하느라 바빠 쇼핑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영수증의 중요성을 잊고 있었다.

영수증 없이 찾아가서 미안했어요
저기요, 영수증 없이 환불 요청을 한 나에게 결국 환불을 해준 당신요, 오늘 하루 어땠어요? 많이 힘들었죠?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던 중 당신이 생각났어요. 당신은 또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냈을까요? 나처럼 영수증 없이 환불해달라고 매장을 찾은 손님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분명 저보다 더한 사람도 있었겠죠(쓰던 제품을 바꿔달라거나, 당신에게 욕을 하거나, 반말을 하거나). 당신도 아마 수많은 사람에게 시달려 혼이 쏙 빠졌겠죠? 그래서 저처럼 축 늘어진 채 늦은 밤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당신이 오늘 힘든 하루를 보낸 이유 중 하나가 저 때문이라면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그렇지만 저는 당신에게 못되게 굴지 않았잖아요! 그렇죠? 저는 참 신사적이었죠? 막무가내로 떼를 쓰진 않았잖아요. 그렇죠? 맞다고 해줘요. 아무튼 제가 당신께 오늘 무리한 요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할게요. 저는 며칠 전 당신이 일하는 매장에서 무려 20만원짜리 신발을 구매했어요. 제가 신을 건 아니었어요. 아는 사람에게 선물할 거였죠. 그 사람이 제가 선물로 건넨 신발을 신어봤는데 사이즈가 안 맞았어요. 그래서 바꿀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그 사람이 제가 구매한 신발을 받고 무척 즐거워하는 장면을 상상했죠. 그 사람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20만원을 지불한 건데 그러지 못했으니 다시 돈을 돌려받고 싶었죠. 게다가 20만원은 저에게 꽤 큰 금액이니까 다시 통장에 채워 넣고 싶었어요. 물론 다른 사람 걸 산 것이니 교환이나 환불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죠. 그래서 사실 신발을 살 때 “환불 및 교환은 14일 이내에 해야 하고요, 이 종이 영수증을 꼭 가져오세요”라고 다른 직원이 말한 걸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영수증을 가져가지 않았느냐고요? 미안해요. 저는 종이 영수증이 별로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카드로 구매했고, 그래서 제가 당신이 일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했다는 증명은 당신 매장의 컴퓨터에 지워지지 않고 모두 기록되어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랬어요. 제 핸드폰에도 구매 명세가 문자로 찍혀 있고요. 이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환불받을 수 있을 줄 알았죠. 요즘은 모바일, 디지털 세상이잖아요. 지폐도 필요 없는 세상인데 당연히 종이 영수증은 없어도 될 것 같아서 버렸지요.  
 
“종이 영수증을 가져와야 해요. 없으면 환불이 어렵습니다.” 저는 당신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아득했어요. 다른 직원에게 설명을 듣고도 영수증을 못 챙긴 건 분명 제 잘못이었으니 “여기서 산 게 맞는데 영수증이 왜 필요하죠?”라면서 따질 수도 없었죠. 눈앞이 더욱더 깜깜해졌어요. 그래서 괜히 당신 앞에서 몇 분 동안 가방을 뒤적거리며 영수증을 찾는 척했죠. “아, 영수증 어디 갔지?” 이러면서 ‘그 종이 쪼가리는 너무 작아서 우주같이 넓은 내 가방 속에서 언제든 실종될 수 있다’, ‘당신도 분명히 나처럼 영수증을 잃어버린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딱 한 번만 봐줘라’라고 온몸으로 어필했죠. 그래도 당신은 꿈쩍하지 않길래, 결국 저는 당신 앞에 서서 “환불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라면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어요. 저의 이 두 번째 작전도 당신에겐 전혀 먹혀들지 않았어요(이때 당신이 참 얄미웠어요). 저는 침착하기로 했죠. 냉랭한 당신을 뒤로하고 매장을 나와서 저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 쇼핑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죠. 절망적이었어요. 눈물이 나올 뻔했어요.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우는 표정으로 저는 인포메이션 센터로 갔어요. 물음표(?) 표시가 있는 데스크로 달려가서 “영수증을 잃어버렸어요. 어떻게 하죠?”라고 직원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오 맙소사!’ 그 직원은 흔쾌히 영수증을 출력해줬어요! (이 과정이 복잡하지 않더군요. 물건을 산 날짜와 해당 매장을 직원에게 말하고, 구매할 때 사용한 카드를 주니까 바로 영수증이 나왔어요!) 너무 기뻤지만 내색하진 않았어요. 티를 내면 누군가 영수증을 다시 빼앗을 것 같았거든요. 곧바로 당신이 있는 매장으로 달려갔죠. 당신의 냉랭한 태도는 그대로였어요. 그런데 이럴 수가! 영수증을 내밀자 당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로 환불 처리를 해줬죠. ‘종이 쪼가리’ 영수증이 20만원짜리 수표로 보이는 순간이었어요. 눈앞에서 마술이 펼쳐진 것 같았죠.  
 
당신은 왜 그토록 완고했을까요? 난공불락 성벽의 굳건하게 잠긴 문 같았던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영수증 한 장으로 쉽게 열렸을까요? 당신이 일하는 매장에는 아마 나 같은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방문할 거예요. ‘그들이 모두 영수증 없이 환불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해봤죠. 그렇게 되면 당신은 구매 내역을 하나하나 검색하고 확인하느라 일을 못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까 받은 영수증을 확인해보니 거기에는 꽤 여러 정보가 있더군요. 구매한 매장, 구매한 날짜, 구매한 제품 번호 등등. 내 말이 맞죠? 그렇죠? 그래서 당신이 철벽처럼 버틴 거겠죠? 미안해요. 이제 물건을 사고 교환과 환불을 염두에 뒀을 땐 꼭 영수증을 챙길게요. 당신을 번거롭게 하는 일은 이제 없을 거예요. 아, 근데 이건 그냥 생각난 건데요. 참고만 하세요. 혹시 상사분께 종이 영수증을 없애자고 제안하는 건 어때요? 솔직히 이거 종이 낭비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매번 챙기는 건 좀 귀찮은 일이라고요. 구매 내역을 모두 핸드폰 문자로 전송해주면 더 좋을 텐데 말이죠. 그냥 그렇다고요. 제 마지막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제 정말 진짜로 푹 쉬세요.  
 
 
고충 처리 안내
❶ 컴플레인을 하기 전에 업체 쪽에서 명시한 내용을 자세히 확인하고 깐깐한 직원에게 맞서 반격할 수 있는 의견을 미리 생각한다. ❷ 특히 영수증 관련한 문제의 경우 그곳이 백화점이나 유명 쇼핑몰이라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도움을 받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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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WRITER | 윤성중
  • EDITOR | 김은희
  • WEB DESIGNER |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