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사막에 피어난 장미' 카타르 국립 박물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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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Museum of Qatar ⓒ Iwan Baan 올 3월 개관한 카타르 국립박물관(NMoQ)은 그야말로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다. 규모와 의미 모두 그러하다. 539개의 커다란 흰색 원반이 저마다 각도를 달리해 맞물려 있는 형태는 마치 어린 시절 장난감 ‘따조’를 제멋대로 이어놓은 것 같다. 총길이가 1.5km에 달하는 비정형의 건물 안에 각각 카타르의 자연사와 문명사, 역사, 주요 인물 등을 주제로 한 박물관 11개가 자리한다. 누구라도 보자마자 탄성을 지를 만한 독창적 형태의 건물을 설계한 이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 그는 박물관 개관 기념식에서 이 건물을 18년 동안 구상했다고 밝혔다. 19세기 중반부터 카타르를 통치해온 알사니 왕가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을 짓는 데 거의 무제한의 자원과 인력을 투입했다. 세계 지도를 펼쳐 그 위치를 찾으면 사우디아라비아 동쪽 해변에 자리한, 지도 위에 적힌 ‘카타르’라는 이름 세 글자보다도 훨씬 작은 영토를 지닌 소국이 지난 50년간 석유의 힘을 통해 기적처럼 쌓아 올린 막대한 부와 미래로의 지향을 더없이 선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적 기념비가 바로 카타르 국립박물관이다. 장 누벨은 안도 다다오, 렘 콜하스 등과 함께 당대의 ‘스타 건축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파리 까르띠에 재단(1994), 바르셀로나 아그바르 타워(2004), 필하모니 드 파리(2015),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2017) 등이 그의 대표작이며 한남동 리움 갤러리,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 내부 디자인 등으로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의 건축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면모를 지닌다. 수직과 수평을 벗어난 비정형과 전통적으로 건축에 쓰지 않던 재료를 적극 활용한 장 누벨은 애초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땅속에 구현할 계획이었다. 여름이면 50℃를 넘나드는 가혹한 자연환경을 역발상으로 극복하는 그다운 발상이었지만, 프로젝트를 의뢰한 왕가는 카타르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눈에 드러나는, 그 자체로 역사에 남을 상징적, 독창적 건축을 원했다. 페르시아만으로 둘러싸인 도하의 모래언덕에서 장 누벨이 새롭게 떠올린 해결책은 사막 장미. 사막에 장미가 자랄 리 만무하니 이는 식물이 아닌 광물이다. 바다와 맞닿은 사막 아래에서 염분 등 미네랄과 석고를 머금은 수분이 증발하면서 생성된 결정체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유기적 형태가 장미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예로부터 페르시아 지역에서 발견한 이의 소원을 이뤄주는 행운의 상징이던 사막 장미는 2011년 장 누벨이 이를 활용한 독창적 설계안과 조감도를 발표한 이래 카타르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사막 장미를 닮은 유기적 형태는 1905년에 지은 옛 왕궁 주변을 감싸 안듯 배치된 박물관의 위치적 맥락과 이음매 없이 부드럽게 연결된다. 20세기 초반 왕궁이었고 1975년부터 30년간 국립박물관으로 쓰인 역사적 장소를 복원하고 새로운 박물관의 일부로 편입하는 건 카타르 왕실의 전통성을 잇는 의미를 지닌다. 건물을 구성하는 원반 내부를 파리 에펠탑을 4개 세울 분량의 철골로 단단히 지지하고, 유리섬유를 섞은 콘크리트 패널 7만6000여 개로 빈틈없이 감쌌다. 구상에서 완공까지 18년이 걸린 이유는 사막의 혹독한 기후, 엄청난 규모와 더불어 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설계 탓에 시공 난도가 터무니없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까다로운 작업을 완성해낸 것이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다양한 나라에서 모여든 4000여 명의 건설 노동자다. 카타르 수도 도하에 세워진 현대식 건물 대부분이 외국에서 온 노동자의 힘을 빌려 지은 것이다. 1930년대 석유가 처음 발견되기 전까지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카타르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 바다에서 진주를 잡으며 유목하던 베두인족의 후예인 원주민은 현재 카타르 총인구 270만 명 중 12%에 불과하다. 카타르 국립박물관 건축을 총지휘한 세이카 알마야사 공주가 ‘다양성의 포용’을 국립박물관이 지향해야 할 가장 큰 목표로 삼은 이유다. National Museum of Qatar ⓒ Iwan Baan 실내 역시 외관만큼이나 신선하고 역동적이다. 바닥을 제외하면 수평과 수직을 이루는 벽면이 하나도 없는 유기적 공간이 미로처럼 길게 이어진다. 유물을 벽에 똑바로 걸 수 없다는 핸디캡을 새로운 매체인 영상으로 해결했다. 이야기는 페르시아만에서 발견된 4억 년 전의 거대 심해어 화석 유물에서 시작해 고고학, 야생동물, 베두인족의 유목 생활, 진주잡이 등으로 이어지다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발견으로 급격히 전환된다. 2세기 가까이 이 지역을 통치해온 알사니 가문의 역대 국왕의 유물 역시 박물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939년 최초의 유전 발견과 1971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외에 카타르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라면 1995년 6월 발생한 왕실 쿠데타다. 타밈 현 국왕의 아버지인 하마드 전 국왕이 부왕인 칼리파를 폐위하고 스스로 왕좌에 올랐다. 1990년대 초 걸프 해역에서 발견된 대규모 가스전이 원인이었다. 선왕은 개발에 나서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걸프 해안의 보수적 질서에 안주하려 했다. 하마드 국왕은 선왕이 스위스 여행을 떠난 사이 왕권을 찬탈하고 천연가스를 석유로 액화하는 시설에 엄청난 금액을 투자한다. 국가의 명운을 건 과감한 도박은 믿을 수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2018년 카타르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은 12만4130달러. 압도적 세계 1위다. 다시 한번 지도를 펴 카타르의 위치를 확인해보자. 대규모 유전과 천연가스전이 사막과 주변 해안에 자리한 건 드문 축복이지만 지리적 조건 자체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갑갑하다. 걸프 해역에 갇힌 조그만 반도국 카타르가 유일하게 국경을 마주하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인구는 약 12배, 면적은 200배에 달하는 대국이다. 국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카타르는 지리적 제약을 지정학적 상상력으로 극복하는 쪽을 택했다. 물리적 국력으로 상대가 안 되니 문화와 교육, 스포츠 등 소프트 파워에 주목한 것이다. 카타르는 2006년 아시안게임과 2012년 기후변화협약 당사자 총회에 이어 중동 지역 국가 최초로 2022년 월드컵을 유치했다. 중동 전역을 감시하는 미국 공군 기지가 카타르 도하에 있고, 미국의 유명 대학 분교도 연이어 설립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매체에서 활동하던 중동 출신 기자를 모아 설립한 ‘아랍의 목소리’ 알자지라 방송사도 카타르 왕실의 지원으로 만든 것이다. 알자지라는 아랍권 방송 특유의 정치적 금기를 없애고 왕실 내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드러냈으며 2011년 ‘아랍의 봄’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하마드 전 국왕은 입헌 왕정을 표방하며 넷째 아들 타밈에게 왕좌를 물려주었다. 세계 어느 곳보다 보수적인 아랍 지역에도 민주화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 그 변화에 앞장서겠다는 복안이었다. 그와 더불어 카타르는 석유 경제가 끝나고 난 먼 훗날을 계획한다.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11명이 완성한 도하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 미국과 유럽의 주요 대학 분교, 아름다운 박물관과 축구장 건물 등을 통해 카타르가 꿈꾸는 것은 아랍권 전체의 문화·교육 수도다. 다른 무엇보다도 왕권의 안정을 중시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경을 맞댄 작은 나라의 독자 노선에 발끈했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 등 걸프 지역 왕정 국가가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하고 국경을 봉쇄했다. 누가 봐도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었지만 카타르는 완고하고 굳건했다. 소프트 파워를 키워 국제 사회에서 존재감을 높이는 전략에도 박차를 가했다. 계속되는 주변 국가의 국경 봉쇄에도 카타르의 건재함을 알리는 상징적 이벤트가 바로 지난 3월 열린 카타르 국립박물관 개관식이었다. 런던에서 빅토리아 베컴이, 뉴욕에서는 디자이너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와 알렉산더 왕이, 파리에서는 모델 겸 가수 카를라 브루니가 남편인 전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 정·재계를 비롯해 세계 패션과 스포츠,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이 불시착한 비행접시 같은 형태의 카타르 국립박물관으로 모여들었다. 세계 언론은 전에 없던 독창적 건축물에 일제히 찬사를 쏟아냈다. 카타르 왕가가 이 기묘한 건물의 탄생에 18년이라는 시간과 천문학적 비용을 들인 효과가 더없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위협에 맞서 자존심을 지키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방법, 카타르의 경우는 바로 이 국립박물관 건설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