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전해주는 <미스터트롯>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트로트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어느 정도 맛본 사람에게 느닷없이 찾아온다.



갑자기 트로트



트로트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어느 정도 맛본 사람에게 느닷없이 찾아온다.

내 인생에 트로트라니. 2000년부터 홍대 인디 신에서 시작된 내 음악 인생에 트로트는 없었다. 레게 밴드인 버스 라이더스의 드러머로 시작해 로큰롤 밴드 오! 부라더스, 파워 팝 밴드 줄리아 하트 멤버로 활동했다. 같은 소속사였던 페퍼톤스의 퍼커션 겸 드러머로 2010년까지 세션을 맡았으며, 운이 좋아서 안테나뮤직 레이블 파티의 원조 격인 콘서트 ‘대실망쇼’에서 유희열, 정재형, 루시드폴, 박새별 같은 스타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즉 내 음악 인생이란 영미 음악의 세례를 받고 영미 음악의 사제로 살아온 세월이다. 그런데 갑자기 트로트라니.
나보다 먼저 트로트에 빠진 건 아들이다.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입에서 “막걸리~ 한잔”이라는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홉 살인데 막걸리? 아들은 일상에 치이는 아빠와 엄마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노래의 출처는 아들과 함께 한 가족 여행에서 알았다. 여행지에서 보내던 어느 날 밤, 숙소의 방에서 거실로 나오자 나를 뺀 온 가족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을 보고 있었다.
본방 사수는 그날부터 시작됐다. 처음 나를 사로잡은 건 ‘엄청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트로트 보컬리스트들의 수준이었다. 온 가족이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날을 기억한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의 원곡보다 김광석이 불러 더 유명해진 바로 그 노래를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불렀다. 어쿠스틱 기타의 전주가 공기처럼 깔리고, 임영웅이 입술을 떼어 첫 마디를 불렀을 때 우리 집 거실에는 나라를 잃은 듯한 탄식이 흘렀다. 그런 감정을 전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은 안다. 드러머지만 수많은 보컬리스트를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건 발음, 호흡, 전달력, 다이내믹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이상적인 소리를 머릿속에 그리고 내뱉을 때만 가능한 노래다. 노래가 끝난 후 아내를 봤다. 아내도 나처럼 울고 있었다. 60살 노부부가 지나온 삶이 어떤 의미인지 상상도 하지 못할 아홉 살짜리 아들도 앞으로 펼쳐질 50년의 세월을 간접 체험이라도 한 듯 한참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본색이 드러머라 〈미스터트롯〉 밴드의 합을 보는 게 또 다른 큰 즐거움이다. 항상 관심의 초점은 드럼을 포함한 리듬 파트였다. 〈미스터트롯〉 밴드의 드럼은 수많은 레코딩에 참여한 장혁 선생님이, 퍼커션은 얼마 전 ‘완충남’이란 이름으로 가수로도 데뷔한 드러머 이기태 님이 맡았다. 한국의 TV에서 밴드 리듬 파트의 연주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정말 ‘딱’ 좋다는 느낌을 받는 일은 무척 드물다. 안정적이면서 맛깔나는 베이스, 낄 때는 확실히 끼고 빠질 때는 확 빠지는 기타까지 더해지니 탄탄한 골조가 완성된다. 여기에 브라스 섹션과 5인조 코러스 팀이 이 골조를 더욱 풍성하고 화려하게 꾸민다. 밴드가 이렇게 연주를 해준다면 나머지는 보컬 몫이다. 보컬은 밴드가 만들어낸 수많은 사운드의 층을 뚫어내야 한다. 몇몇 참가자가 그 두꺼운 벽을 뚫어내고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뽑아내는 광경을 지켜보자니, 그저 황홀할 수밖에. 트로트에 대한 틀에 박힌 인식이 있다. ‘촌스럽다’, ‘신파적이다’라는 트로트를 향한 그 모든 편견이 완벽하게 직조된 기예의 무대 위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밴드 반주로 진행된 〈미스터트롯〉 후반부의 무대를 모든 음악인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생각하니 나이 마흔에 트로트에 빠진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난 10년 동안 큰 부침이 있었다. 아들이 갓 돌을 넘겼을 때 내게 큰 병이 찾아왔다. 백혈병, 좀 더 자세히는 급성 혼합형 백혈병이었다. 대학 병원 무균실에서 아빠를 만나러 온 갓 돌 지난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드라마에서 하지원의 결혼을 축하하는 조인성의 심정으로 울음을 삼키며 버텼다. 2014년 누이로부터 조혈 모세포 이식을 받은 후 ‘재발 위험성이 매우 적은’ 지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내게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어넣어준 것은 역시 아들이다.
트로트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어느 정도 맛본 사람에게 느닷없이 찾아온다. 이미 〈미스터트롯〉에 빠지긴 했지만 아직 일상에서는 트로트를 듣지 않을 때였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다니며 함께 노래를 부르고 논다. 장인어른께서 길을 걸으며 부르시는 노래가 내 귀에 들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노래의 가사가 내 뒷덜미를 잡아챘다. “눈물도 흘렸다. 원망도 해봤다. 삶에 지쳐 쓰러져도 봤다. 이 나이에 못할 게 뭐가 있을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이 딱 좋아.” 송대관의 ‘딱 좋아’라는 노래다. 나에게 이 곡은 ‘너는 이제 더 이상 화려한 20대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이 정말 딱 좋지 않느냐'며 은은하게 위로하는 무신론의 신, 리처드 도킨스의 목소리로 들렸다. 인생의 크나큰 곡절들을 넘어온 내 가슴에 이 가사의 여운이, 마치 전복 내장의 맛처럼 무겁고 둔탁하게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날 이후 나는 이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요새는 부대찌개를 먹으면서도 트로트를 생각한다. 트로트는 복잡하지 않다. 담백하다 보니 레게, 록, 팝, 스카 등의 다양한 향신료를 더할 수 있다. 대한민국 트로트의 기원이 일제의 잔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환과 사랑 등의 감정과 마음을 진하게 담은 노래로 진화했다. 이거 완전 부대찌개 아냐? 6·25전쟁으로 한국에 주둔하게 된 미군 부대에서 나온 햄, 소시지에 김치를 넣어 만든 부대찌개가 지금은 완연한 한식인 것과 닮았다. 부대찌개를 먹으면서도 트로트를 생각하니, 트로트 중증인 셈이다.
로큰롤 뮤지션은 아들에게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싶을까? 나는 아들에게 주로 비틀스를 들려줬다. 가장 완벽에 가까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이 이제는 트로트가 더 좋단다.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본인이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얼마 전까지 내 ‘올 타임 페이보릿’ 리스트에는 리틀 리처드, 밥 말리, 스틸리 댄, 팻 메스니 그룹, 인코그니토 등의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은 그 리스트의 일부를 배호, 차중락, 최헌의 노래가 차지하고 있다. 어쩌겠는가, 지금의 내가 좋다는데. 어느 노래 가사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트로트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어느 정도 맛본 사람에게 느닷없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