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하지 않는 공허한 풍경을 담은 부재의 포토그래피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끝나지 않는 겨울밤, 껍데기만 존재하는 도시, 남겨지고 잊힌 피아노. 세 명의 포토그래퍼가 포착한, 사람이 없는 풍경.


And Then There Were None



끝없는 밤을 버티는 거리


〈Polar Night〉 Mark Mahanaey
어느 아침, 마크 머헤이니는 신문에서 뾰족한 문장 하나를 읽는다. “미국 최북단의 마을은 매해 두 달간 끝없는 어둠에 빠진다.” 나이키, 구글, 스미소니언 미술관에서 청탁을 받고 〈타임〉 〈에스콰이어〉 〈모노클〉과 협업하며 데이비드 호크니, 그레타 거윅의 초상을 촬영한 이 상업 사진가는 지난 몇 년간 개인 작업에 할애할 시간을 거의 내지 못했으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자신이 직접 그 마을을 찾아가 그곳의 삶을 포착하게 되리라 직감했다. 비록 그 직감이 절반만 맞기는 했지만. 비행기가 극야(극지방에서 해가 뜨지 않고 밤이 지속되는 상태) 기간의 우트키오야비크에 착륙하는 순간, 그는 이 달 표면 같은 마을에서 삶을 찍을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주민들은 ‘최대 절전’ 모드였어요. 좀처럼 밖으로 나오질 않았죠. 무엇보다 그들 대다수가 이누피아크(북알래스카 원주민)였고요. 백인인 제가 삶을 기록하겠다고 토착민 공동체의 문을 두드리는 게 착취가 될 수 있겠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Polar Night〉의 주제가 ‘어둠’ 그 자체가 된 건 그런 이유다.

단, 마크 머헤이니가 ‘어둠’이라고 말할 때는 그 맥락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체로 사진가의 언어, 즉 조도에 관한 표현이지만 때때로 심상에 관한 표현이기도 하니까. 이를테면 “어둠은 어둠을 불러왔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이 인터뷰의 답변처럼 말이다. “우트키오야비크는 제가 가본 그 어떤 곳과도 달랐습니다. 햇볕도, 마을과 외부를 잇는 도로도, 나무도, 신선한 음식도 없었죠. 그리고 극야 기간 동안 우울증, 범죄, 약물 남용과 자살이 급증합니다. 거리 곳곳에서 특유의 ‘에너제틱한 무거움’을 느낄 수 있죠.” 어둠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가 이토록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를 갖게 된 것도 그런 이유다. 모든 것을 뒤덮은 새하얀 눈과 완벽한 어둠 속에서는 가로등, 옥외 조명, 자동차 라이트 같은 인공조명이 각각의 색온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마크 머헤이니의 눈에는 이 솜사탕 같은 색상들의 레이어가 마을에 감도는 기괴함이 표면화한 순간처럼 보였다고 한다.


〈Polar Night〉는 작년 연말, 사진집 형태로도 나왔다. 새까만 커버 사이를 채운 26장의 사진은 대부분 앞서 묘사한 우트키오야비크의 황량한 거리 풍경인데, 몇 장의 예외가 있다. 한 장의 인물 사진, 그리고 개를 포착한 세 장의 사진. 그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건 극지 마을의 척박함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크 머헤이니의 표현에 따르면 이 사진집은 ‘고난과 생존에 대한 시각적 시(詩)’다. “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마을의 자랑인 레슬링 선수를 만났어요. 저는 그 학생이 경기장 안에서 공격 자세를 취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죠. 전사처럼 보였달까요. 알래스카 북부의 마지막 썰매 개들 역시 사진집에 생명을 불어넣는 요소입니다. 기척이라곤 찾을 수 없는 거리를 찍고 있으면 코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곤 했으니까요.” 예외적 사진이 한 장 더 있다. 햇빛을 담은 사진. 극야는 정확히 마크 머헤이니가 마을을 떠나던 날 아침에야 끝났고, 그는 어둠이 물러가는 장면을 가까스로 한 장 남길 수 있었다. 마을의 상징인 바다표범 사냥 배와 얼어붙은 고래의 턱뼈 너머로 분홍빛 하늘이 열리는 이 사진은 〈Polar Night〉의 마지막 장에 실렸다.



외피로만 존재하던 마을들


〈The Potemkin Village〉 Gregor Sailer
1787년, 예카테리나 여제는 배를 타고 크림반도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 새로 러시아에 합병된 지역을 시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해당 지역은 볼썽사나운 빈촌이었고, 지역의 총독이자 예카테리나 여제의 연인이었던 그레고리 포템킨은 고민 끝에 가짜 마을을 만들기로 한다. 배에서 내다보이는 기슭에 근사한 건축물들을 그린 패널을 세운 것이다. 이게 바로 관용 표현 ‘포템킨’의 시초다. 오늘날 다양한 분야의 학계에서는 일련의 범주 앞에 ‘포템킨’이라는 단어를 붙여 ‘매력적으로 꾸며놓았지만 내실이 없는 무언가’로 통용한다. “사실 그게 실제 사건이었는지 전설인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해요.” 오스트리아 기반의 사진가 그레고르 세일러의 설명이다. “하지만 제가 2016년 모스크바 북부의 수즈달에 갔을 때도 반파된 판잣집이 매력적인 포장재로 덮여 있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얘기를 들어보니 4년 전에 푸틴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지방 관리들이 해놓은 조처라고 하더군요. 도통 변하지가 않는 법이죠, 어떤 것들은.”

〈The Potemkin Village〉는 이름 그대로 가짜 마을들을 촬영한 작업이다. 다만 프로젝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피사체보다 사진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레고르 세일러는 ‘재해석’하기보다는 ‘포착’하는 사진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적 시선으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인간의 흔적과 표상이 만드는 특정 분위기를 사진에 담으려 한다. 그는 18세기에 탄생한 ‘포템킨 빌리지’의 개념이 현대에 어떻게 확장되고 어떤 건축적 표현으로 구현되는지에 주목했고, 미국과 유럽의 군사훈련 시설, 스웨덴의 차량 시험용 도시, 유럽 도시를 고스란히 구현한 중국의 관광 단지까지 세계 곳곳을 방문했다. “그곳들에서 내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매혹과 두려움이었어요. 이런 환영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늘날 얼마만큼의 노력과 기술이 투자되는지를 보면 그런 감정이 들 수밖에 없죠. 위장 기술은 놀랍도록 효과적으로 작동하곤 했거든요. 심지어 그게 가짜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그레고르 세일러가 프로젝트를 위해 방문한 지역 중 대다수가 출입 제한 구역이었다. 조사와 섭외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때로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걸리기도 했다. 통상 허락된 방문 시간은 짧았고, 재방문이 불가했으며, 감시인 없이 혼자 움직이는 게 불가한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The Potemkin Village〉의 모든 사진을 대형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25kg에 달하는 무게나 촬영 소요 시간, 촬영과 인화 사이의 다양한 변수까지 고려한다면 좋은 선택이라고 하긴 힘들다. 다만 그가 여태 아는 바, 오직 이런 수고로만 담을 수 있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빛’ 같은 것. “물론 대형 필름 카메라이기 때문에 생기는 제약이 많죠.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한 지점에서 한 가지 구도의 사진밖에 남길 수 없었고요. 대신 그 제약들이 제 의식을 아주 예민하게 만들어줍니다. 그게 이미지 언어에 영향을 끼치고요. 대형 카메라는 자체 무게 덕분에 좀 더 장노출로 촬영할 수도 있고, 추위에도 강하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빛입니다. 빛은 이 시리즈에서 필수적인 요소거든요.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전달하고, 보는 사람을 사진 속의 위치로 연결해주며, 시리즈 내에서 특정한 하모니를 만들어주죠.”

얼마 전까지 뒤셀도르프, 뮌헨, 그라츠, 포르투에서 〈The Potemkin Village〉의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는 사진의 뒤편을 볼 수 있게 해놓은 구조나 장막 같은 장치를 통해 환상을 제시하고 다시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형태였다. 그레고르 세일러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환상은 탈환상이 되고 현실은 초현실이 되는, 현실과 환상 사이의 줄타기’. 그가 굳이 코로나19로 중단된 전시 내용까지도 소개해줄 수 있는지 정중히 묻기에 여기에 덧붙인다. 어떤 사진은 보여주는 방식에서, 전시장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기도 하겠기에.



피아노가 남겨진 자리


〈Requiem pour Pianos〉 Romain Thiery
‘어벡스(urbex)’라는 표현이 있다. ‘urban exploration’, 즉 ‘도심 탐험’의 줄임말로 도심 속의 버려지거나 출입이 금지된 공간을 탐험하는 취미를 뜻한다. 로메인 티에리 역시 지난 10년간 유럽 곳곳의 버려진 성과 문화 시설을 찾아다닌 사진가다. 다만 그의 대표작 〈Requiem pour Pianos〉는 통상의 어벡스 사진과는 조금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폐허 자체가 아닌, 그 속에 버려진 피아노를 포착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피아노가 고상함이나 권력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죠. 부유한 집은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피아노 한 대씩은 꼭 장만해놓던 시절 말이에요. 하지만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되면서 때로는 짐이 되기도 했을 거예요. 또 어느 시점에는 내다버리거나 집에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기기도 했을 테고요.” 아시아인의 눈에는 방치된 피아노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하자 로메인 티에리는 “내 눈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지금껏 프랑스를 비롯한 11개 국가에서 100개가 넘는 피아노를 촬영했으며 프로젝트는 앞으로 더 확장할 예정이다.

〈Requiem pour Pianos〉는 실상 사진가의 개인사에 연원한 프로젝트다. 로메인 티에리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15년 동안 음악학교를 다닌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며, 그의 어머니는 문화유산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가였다. 그는 10여 년 전 피아노에서 사진으로 진로를 바꿨고 마침 프랑스의 고건물을 촬영하던 어머니의 프로젝트에 동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행로에서 또 다른 운명을 맞닥뜨린다. 2014년 프랑스 남서부의 한 버려진 성을 찾았다가 내부에 방치된 피아노를 발견한 것이다. “그 순간 제 예술 세계가 바뀌리란 걸 직감했어요. 사진과 피아노의 교차로에 놓이게 되리란 걸요. 마음속에 두 갈래의 열정을 갖고 있던 제게는 그 풍경이 ‘예술의 정점’이었으니까요.” 그가 피아노를 찾는 주된 방식은 구글어스, 혹은 옛 사진을 살피거나 지구 곳곳의 팬들이 보내주는 정보를 검토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도치 않게 버려진 피아노를 마주칠 때도 있다고 했다. 그 감흥에 대해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이라는 짧은 문구로만 표현했다.


그렇다면 이 사진들이 대중에게도, 특히 피아노와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 사진가 자신은 그 답을 기나긴 세월동안 피아노가 축적해온 특유의 이미지에서 더듬는다. “악기를 볼 때 사람들의 마음에 피어나는 일종의 신성성이 있죠. 심지어 그 대상이 낡고 부서진 악기라고 해도요. 그리고 저는 그 안에서도 피아노만의 특별함이 있다고 믿어요. 존재 자체로 안심을 주는 악기랄까요. 연주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둘만 남겨지면 괜히 한 번쯤 쳐보게 되는 악기잖아요.” 일리가 있는 말이되, 로메인 티에리의 이런 태도 자체가 비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껏 발견한 피아노 중에 연주를 시도해본 것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으니까. “지금껏 발견한 피아노 전부 연주해봤어요. 전부 다요. 촬영을 하기 전에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 피아노와 공명하는 것이거든요.” ‘Requiem pour Pianos’, 즉 ‘피아노를 위한 추모곡’이라는 제목이 마냥 수사적인 표현은 아니라는 뜻이다.

끝나지 않는 겨울밤, 껍데기만 존재하는 도시, 남겨지고 잊힌 피아노. 세 명의 포토그래퍼가 포착한, 사람이 없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