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보통의 직장인이 뮌헨의 한 갤러리의 미술 작품을 구매한 이유

영감의 샘이 필요한 우리네 인생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미술이다.

BY이효진2020.06.01
 

보통의 직장인은 왜 미술 작품을 샀는가? 

 
에이샤-리사 아틸라, 〈수평-바카수오라〉, 6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3초, 2011.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 위원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에이샤-리사 아틸라, 〈수평-바카수오라〉, 6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3초, 2011.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 위원회 기증.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핀란드 작가 에이샤-리사 아틸라는 11m짜리 가문비나무를 영상으로 찍기로 했다. 가문비나무를 찍는 일이라고 하면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다. 온전한 형태의 11m짜리 가문비나무의 초상을 어떻게 왜곡 없이 영상으로 담아낼 것인가? 나무 꼭대기까지 한 번에 찍으려면 꽤 멀리 떨어져서 광각렌즈를 사용해 담아야 할 텐데, 그렇게 찍은 영상에 왜곡은 없을까? 또 그렇게 찍는다고 한들 카메라 위치는 어떻게 할 텐가? 나무 아래쪽에서 렌즈를 위로 향해 찍으면 밑동은 굵게, 나무 위쪽은 가늘게 나올 것이고, 나무 위쪽에서 렌즈를 아래쪽으로 향해 찍으면 가분수처럼 나올 게 분명하다. 딱 한가운데인 5.5m 높이에 렌즈를 위치시키는 게 정답일까? 그래도 위아래로 왜곡이 생길 텐데? 아틸라는 11m 높이의 가문비나무를 6개의 카메라로 촬영해 6개의 화면을 이어 붙였다. 11m짜리를 6개의 시점으로 나눴으니 아주 완벽하지는 못한, 그러나 노력과 고민을 거쳐 좀 더 완벽에 가까운 자연의 기록을 남긴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수평의 축Axis of Horizon〉 전시의 표제작 격인 에이샤-리사 아틸라의 거대한 영상 설치 작품 〈수평-바카수오라〉가 탄생한 과정이다.
생각은 한발 더 나아간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역시 11m짜리 가문비나무는 6개의 카메라로 찍어야 그 멋이 산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수평-바카수오라〉 앞에 앉아 6분이 조금 넘는 영상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걸 보고 있자니, 새로운 것이 보였다. 이어 붙인 화면에 같은 가지들이 조금씩 겹쳐 보였고, 같은 모양을 한 가지들이 서로 다르게 움직였다. 즉 6개의 카메라가 기록한 영상 속의 타임라인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또 이 거대한 나무의 영상은 원래 모습인 수직으로 서 있는 게 아니라 수평으로 누워 있다. 서로 다른 시간을 기록한 초상의 접합은 같은 역사가 시대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상상하게 했다. 수평으로 누운 거대한 나무는 사람의 생각, 하나의 사건이 책 또는 사진이라는 텍스트 형태로 저장되어 도서관이나 미술관에 수장되는 과정을 상상하게 했다. 아틸라의 작품 앞에서 온몸으로 기록의 본질을 실감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영감이 너무도 강렬해서 마치 귀싸대기를 맞은 느낌이었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런 영감의 순간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깨닫지 못하는 단순한 행위, 이를테면 ‘기록’처럼 익숙한 과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예술이 그 매개체를 자처한다. 소설이, 영화가, 드라마가, 미술이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우리에게 영감을 주려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즉각적이고 강렬한 포맷은 바로 미술이다. 〈롤리타〉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언젠가 한 대학 강의에서 “소설은 반드시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읽는 행위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 번 읽어 전체를 파악하고 그 전체의 맥락에서 다시 세부의 아름다움을 관찰해야 한다는 의미다. 당시 나보코프가 반례로 든 것이 바로 미술 혹은 그림이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림을 감상할 때는 한눈에 전체를 감상하고 곧바로 세부를 감상할 수 있다’는 식으로 그림과 소설을 비교해 말했다. 이 말은 미술 혹은 그림이 그만큼 직관적이고 경제적인 감상을 던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굳이 말하자면, 스탕달 신드롬이란 것도 있지 않은가? 이번 달에는 배우 신현빈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도중 우리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 서면 사람들이 눈물을 줄줄 흘린다는 대화를 나눴다. 신현빈은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로스코 채플에서도 사람들이 채플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렇게들 운다고 말했다. 영화는 감성 폭탄을 심어놨더라도 진짜 감동을 받기까지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린다. 소설은 장편의 경우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안나 카레니나〉를 나보코프처럼 다시 읽으려면 꼬박 2주는 잡아야 할 것이다. 그림은? 조각은? 미술은? 그야말로 즉각적이다. 어찌 보면 시간의 경제를 따져볼 때 미술관 나들이야말로 시간 대비 영감의 효율이 가장 좋은 일일 수 있다.
미학자의 관점에서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사고방식이 단순한 편이라 머릿속에 ‘최고로 효율적인 예술 감상 방법은 미술’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자 버텨낼 수가 없었다. 미술가들이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이를 소비하지 않는 건 세상을 더럽히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집 안에 들어서면 제대로 된 그림 하나 없는 거실이 볼썽사나워 참을 수가 없었다. 몇 달 전부터 버티고 버티다 결국 아내와 나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가정에 선물을 주기로 했다. 4월에는 내 생일이 있고, 5월에는 아내의 생일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생일 때 서로 선물을 하지 않기로, 상대방에게 은근슬쩍 선물을 요구하지도 않기로 굳게 약속하고, 앞으로 술은 소주만 마시기로 약속하고 그림을 샀다. 보통의 월급쟁이인 나와 아내는 아직 주택 담보대출금을 갚아나가고 있다. 인생을 걸어야 하는 가격은 아니지만, 그 그림은 어쩌면 우리에겐 고골의 캐릭터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목숨만큼 아끼던 외투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 그림은 내가 알기로는 아직 뮌헨의 한 갤러리 수장고에 조용히 모셔져 있다. 페이팔로 돈을 보냈지만 당분간 DHL과 페덱스가 서비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산이 잠잠해지고 물류가 돌기 시작하면 언젠가 우리 집 거실에도 영감의 샘이 하나 자리 잡을 것이고, 나는 그 그림을 보며 매일 펜촉 하나의 흐름을 꼼꼼하게 눈으로 기록할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Who’s the writer?
박세회는 〈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