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월드 투어에 앞서 펜실베니아에 모이는 이유 Part.2

거대한 음악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BYESQUIRE2020.06.18
 
 

BTS는 왜 미국 깡촌으로 향했나? 

 
트로이 클레어는 록 리티츠의 총괄 매니저인 안드레아를 늘 ‘이곳의 어른’으로 소개한다.

트로이 클레어는 록 리티츠의 총괄 매니저인 안드레아를 늘 ‘이곳의 어른’으로 소개한다.

안드레아의 이야기

어셔 사건 이후 록 리티츠의 총괄 매니저인 안드레아 셔크는 라이브 네이션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당신들 정말로 어셔를 다른 데로 보낼 건가요?’라는 식이었어요. 나는 그렇다고 답했고 그는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는 전 세계에서 소음 민원을 받지만 그들에게 꺼지라고 말해준다고요’라고 말했어요.” 그녀는 쉰 웃음과 함께 말한다. “그래서 말했죠. ‘그거 멋지네요. 하지만 이 동네에서 우린 그렇게 일하지 않아요’라고요.”
스튜디오는 일요일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수요일에 워윅 지자체 건물에서 주민 모임이 열렸다. “그때 트로이는 플로리다에 있었고, 애덤은 ‘어, 난 그날 안 돼’라는 식이었죠.” 안드레아가 말했다. 결국 그녀가 주민 모임에 참석해야 했다. 주민들이 차례로 일어서서 불만을 말했다. 지역 주민인 마거릿 케체드는 처음에는 일자리가 생겨서 록 리티츠를 반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집의 건축 구조상에 문제가 생겨 재산 가치가 하락할까 걱정하고 있다. 얼 디펜더퍼와 그의 아내는 55년도 더 된 집으로 이사한 이유가 그 집 주변이 조용해서였다고 따졌다. 그러나 록 리티츠 때문에 이제 그들의 집이 흔들리고 있다. 나무에서 이파리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마릴린 테일러는 집 안 전체에서 진동을 느꼈고 그 진동 때문에 몸이 안 좋다고 말했다.
“성난 군중이었어요.” 안드레아의 말이다. 안드레아가 없었다면 록 리티츠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숏크리트 시공 후 안드레아와 트로이 클레서는 몇 주에 걸쳐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이웃 주민들이 괜찮은지 여부를 확인했다. 안드레아는 옥수수밭에 고객 하나도 모으지 못하는 시설에 돈을 빌려줄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건물을 리허설장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30m 높이의 단층 건물이 은행에 무슨 쓸모가 있을까? 유일한 성공 방안은 정부 지원이었다. 그래서 안드레아는 주 정부로부터 3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얻었다. 그녀는 수십 년에 걸쳐 잘 갈린 흙으로 덮인 산토도밍고 크릭의 범람원을 복구하기 위한 재원을 확보했다. 이제 산토도밍고 크릭은 예전처럼 그 땅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고, 록 리티츠는 몇 헥타르의 건물용 부지를 더 얻게 되었다. 스튜디오 벽면의 숏크리트가 마르기도 전에 안드레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라이브 공연 제작 회사를 유치할 목적으로 2200만 달러를 들여 2만3400㎡ 면적의 건물 ‘포드 2(Pod 2)’를 짓는 일이다.
포드 2는 단편적으로만 보면 상업적 사무 공간이다. 안드레아가 임대인이고 27개 회사가 그녀의 세입자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다. 포드 2는 창조적이고 근면하고 긍정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의 집합체이자 상호 작용과 상승 작용이 있는 생태계다.
아무튼 지금은 그러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바람이 안드레아가 이 일을 하게 만든 동기였다. 그녀가 보스턴 외곽에 있는 마을 보스(Bose)를 떠나 랭커스터로 이주를 결정할 때 그녀는 100명 규모의 팀을 이끌고 있었다. 록 리티츠는 단순히 제품을 쏟아내는 것 이상의 일을 할 기회를 제안했다. 어떤 회사가 포드 2에 공간을 얻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안드레아에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떤 회사가 록 리티츠의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킬지’를 기준으로 입주사를 선정했다. 임대 기간이 10년이기에 입주사 조합을 두고 오래, 그리고 열심히 고민했다. 포드 2의 가장 큰 세입자는 제작사인 아토믹이다. 아토믹은 1990년대 초부터 리티츠에 있었다. 다른 세입자 중에는 불꽃놀이, 바리케이드, 해운 물류 전문 업체도 있다.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면 안드레아는 환영하는 의미로 쿠키 상자를 보낸다.
275명의 사람들이 포드 2에서 일한다. 이 건물에는 공용 공간, 작은 리허설 공간, 카페, 맥주 양조장이 있다. 실내 암벽등반이 가능한 체육관 및 헬스 클리닉도 있다. 뮤지션들이 해외 투어에 나가기 전 이 클리닉에서 백신을 맞을 수도 있다. 밖에 나가지 않고 몇 달을 포드 2 안에서만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주차장을 가로질러 ‘호텔 록 리티츠’에 방을 잡을 수도 있다.
안드레아는 이 호텔 프로젝트도 담당했다. 건물을 짓는 건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건물이 하나의 인적 공동체라는 점이다. 안드레아 팀은 직원 대부분이 여성이지만 팀 자체가 작다. 록 리티츠의 회사들은 소속된 업계와 마찬가지로 남성 지배적이다. 다양성은 어떨까? 다양성이 바로 이 업계와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다. 랭커스터시는 메릴랜드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히스패닉 공동체 중 하나다. 주민 10명 중 4명이 라티노다. 하지만 랭커스터 카운티 나머지 지역의 인구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힐 만큼 백인 천지다. 불과 16km 떨어진 리티츠만 해도 96%가 백인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사람들이 록 리티츠의 사업 모델을 따라 하고 있다. 델라웨어에 하나, 라스베이거스에도 하나, 내슈빌에 몇 곳이 생겼다. 시간과 돈만 있다면 누구나 복제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역동적인 협업 환경을 곧바로 만들 수는 없다. 록 리티츠를 복제 불가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안드레아는 다음 세대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확장 단계를 위해 그녀가 선택한 세입자 중 하나(약 4200만 달러의 총액이 소요될 예정인)는 뮤직 스쿨이다. 그리고 최근에 그녀는 수백 명의 현지 중학교 여학생들에게 STEM 관련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에 대해 연설했다.
그녀는 항상 노력한다. 록 리티츠의 소유주들이 안드레아를 지지해주어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 트로이 클레어가 처음에 그녀에게 이 사업을 이끌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는 이걸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제겐 어른이 꼭 한 명 필요해요.” 그는 안드레아를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한다. ‘이곳의 어른.’
 
 
클레어 형제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위해 만든 ‘엘비스 보드’의 근접 사진.

클레어 형제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위해 만든 ‘엘비스 보드’의 근접 사진.

애덤의 이야기

커뮤니티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 외관으로 판단할까? 록 리티츠는 공동체다. 아미시 지역도 커뮤니티이고 로큰롤도 커뮤니티이다. 테이트사의 최고 개발 책임자인 애덤 데이비스는 공동체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즐겨 말한다.
하나는 리티츠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타운으로, 클레어 일가가 가장 헌신하는 곳이다. 그들은 교회를 리모델링하고 주민 센터를 다시 지었다. 로이는 리티츠 시장으로 8년 동안 재직했다. 그들은 엘런 애버뉴 1 앞쪽의 잔디밭에 있는 공공 야구장을 관리한다.
다른 하나는 라이브 공연업계의 국제적 네트워크다. “전 세계 모든 극장과 공연장의 뒤 공간에 이와 같은 생태계가 존재하죠.” 그의 말이다. “이곳에 들어오면 주변에는 동료들이 있어요. 하지만 일단 떠나면 그게 존재하는지도 모를 거예요.”
마이클 테이트가 2006년에 은퇴하고 데이비스와 윙키 페어로스가 이어받았을 때 테이트는 로큰롤 회사였다. 이제 콘서트 투어가 사업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테이트는 전 세계에 14곳의 오피스를 두고 있다. 작년에 북미에서 가장 매출이 높았던 20개 투어 중 절반이 55세 이상 뮤지션의 투어였다. “우리 고객의 다수는 곧 죽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망하겠죠.” 데이비스의 말이다. “그래서 다변화를 추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클레어 글로벌의 다음 세대도 데이비스와 같은 걱정을 부여잡고 있다. “내 말은, 라이브 엔터테인먼트가 엄청나다는 것이죠.” 션 클레어의 말이다. 그는 형제인 맷과 함께 아버지인 트로이로부터 사업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잠재력이 있냐고요? 아뇨.”
로큰롤 그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클레어는 초대형 교회와 스타디움의 음향 시스템 설치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들은 ‘즉각 설치 네트워크’, 즉 대규모 행사에 임시 와이파이를 설치하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 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와이파이 존을 설치하고 음향 설비를 담당했다. 테이트는 교황 머리 위에 걸린 3.6m 크기의 십자가상을 제작했다. 교황이 이 십자가상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한 나머지 바티칸에 돌아갈 때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로큰롤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는 건 아니에요.” 데이비스의 말이다. 하지만 그가 제일 신나게 논의하는 프로젝트는 음악과 전혀 관련이 없다. 하키 경기장에서 쓰는 이동식 스코어보드, 테마파크용 로봇 인형, 구매 경험을 증진시키는 증강현실 신체 스캔 등이다.
자동화는 테이트의 미래 전략의 근본이다. 테이트가 특허를 얻은 소프트웨어인 내비게이터가 프로젝트의 80%를 움직인다. 컴퓨터가 통제하는 도구가 과거에 작업장의 직공이 맡았던 작업을 처리한다. “정말 많이 발전했어요.” 러셀 스네이블리의 말이다. “난 충분히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작 현장에서 그는 “먼지보다 오래된”이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있다. CNC 머신이 만들 수 없는 게 있다면 그걸 손으로 만들기 위해 스네이블리를 부른다. 그는 회사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이다. 스네이블리는 말한다. “정말 솔직하게, 공룡이 된 기분이에요.”
데이비스의 생각처럼 록 리티츠를 구성하는 다른 모든 회사의 핵심 가치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저 더 커졌을 뿐이다. “성장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걸 더 이상 성장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의 말이다. 작년에 그는 테이트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사모펀드 회사를 끌어들였다. “우리의 모든 사업의 기초는 마술 같은 순간을 만드는 것이에요. 무슨 말이냐면, 좀 더 스펙터클한 순간이죠.” ‘너무 과한 스펙터클’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할까?
“맙소사, 그런 게 있다면 우리가 절대 찾지 못하면 좋겠네요.” 그는 말한다. “로마인들이 했던 일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공연장에 물을 채웠어요. 호랑이와 사람을 싸우게 만들었죠. 진짜 호랑이라니! 사람은 스펙터클을 갈구하기 마련이죠.”
 
 
게리 페렌첵은 스튜디오 관리를 맡기 전에 그워(Gwar)와, 셀레나 고메즈, 위즈 칼리파 같은 스타와 함께 25년간 투어를 돌았다.

게리 페렌첵은 스튜디오 관리를 맡기 전에 그워(Gwar)와, 셀레나 고메즈, 위즈 칼리파 같은 스타와 함께 25년간 투어를 돌았다.

다시 테이트의 이야기

마이클 테이트는 최근 록 리티츠에 있던 자신의 지분을 매각했고 이로써 트로이 클레어와 데이비스가 최대 주주가 되었다. “록 리티츠가 돈을 벌고는 있지만 이건 땅이고, 우리는 디벨로퍼죠. 그리고 이제 진짜 정산을 할 때가 됐어요.” 어느 날 오후 테이트는 포드 2의 공용 공간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록 리티츠는) 장기 투자죠. 그리고 난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을 거예요.”
테이트는 74세다. 그의 민머리 주위를 군데군데 파란색으로 물들인 긴 백발이 둘러싸고 있다. 그의 눈썹도 마찬가지다. 그는 짝짝이 신발을 신고 있다. 그는 관심받는 것을 좋아한다.(“물론 나도 그렇죠. 누가 아니겠어요?”) 적어도 그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지난 몇 년 동안 약간 이상해졌어요.”
미키가 록 리티츠 확장의 일환으로 계획한 공동체 극장인 블랙 박스는 그의 가장 큰 은퇴 겸 최신 프로젝트다. “지금 내 상황에서 가장 멋진 것은 돈을 빌리지 않고 이 건물을 지을 여력이 된다는 점이죠.” 그의 말이다. 그는 전부 털어서 약 500만 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할 예정이다. 공동체 극장의 아이디어는 지난봄에 떠올랐다. 그가 지역 신문에서 여성 1인극의 배우가 말기 난소암에 걸렸다는 기사를 읽은 다음이었다. 테이트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카밀라 셰이드이고 테이트가 물품을 기부했던 극단을 운영한 적이 있다. 테이트는 그녀의 공연을 보지 못했고 그녀는 곧 숨을 거두었다. “난 리티츠를 사랑해요. 랭커스터 카운티도 사랑하죠. 이 극장이 공동체를 위한 훌륭한 존재가 되리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의 말이다. “내 말은, 분명히 나는 테이트, 클레어, 그리고 직원들, 그리고 기타 등등을 믿는다는 거예요. 다들 훌륭하죠. 하지만 이 극장 사업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예술을 육성하는 일이 될 거예요.”
그는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글쎄, 그건 알 수 없죠.” 그는 전기료가 조금 넘는 비용으로 예술 프로젝트에 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장가격보다 돈을 더 준다 해도 결혼식에는 대관을 해주지 않을 셈이다. 테이트는 테이트 타워스를 다음 세대에 넘겨준 뒤 전과 같은 일에는 복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로큰롤에 관한 일은 안 하겠죠. 고리 3개로 하는 서커스 같았어요. 돈 때문에 이 일을 한 적은 없어요. 멋있는 걸 만들기 위해 했던 거죠.”
 

다시 페렌첵의 이야기

어느 바람이 심한 날, 게리 페렌첵이 스튜디오에 혼자 있을 때였다. 건물이 마치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삐걱이며 신음 소리를 냈다. 그렇다고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서풍이 자이언 힐(Zion Hill) 주변을 휩쓸고 시속 160km로 이곳을 강타한다면, 스튜디오는 22cm 정도 기울어지면서도 버틸 것이다. 가끔 이 거대한 스튜디오 공간만의 기후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심지어 가끔은 이 공간 자체가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튜디오의 무대 한구석에 매달려 있는 것은 공기 주입식 눈알이다. 케이티 페리의 ‘위트니스 더 투어’의 리허설에서 사용되고 2년 동안 묵은 유물이다. 바깥의 범람원에는 해마다 오리가 모이고 가끔은 왜가리도 보인다. 겨울이 되면 수천 마리의 흰기러기가 날아든다. 이 땅의 유일한 장기 거주자는 어느 아미시 교도의 가족이다. 건너편 농장주의 형제, 그의 아내,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이 땅의 북서쪽 구석에 있는 19세기의 농가, 비스듬한 헛간, 그리고 콘크리트제 부화장을 비롯한 오래된 건물에서 살아가며 일한다. 이 가족이 이사 왔을 때 록 리티츠가 폐기물 처리와 헛간 지붕의 수리 등을 지원했다. 그 대가로 이 가족은 집에서 드러나는 부분을 좀 깔끔하게 유지하기로 했다.
작년에 수확한 옥수수는 미키가 블랙박스를 세우기로 한 곳에서 자랐다. 3월 초였다. 일주일 전 페렌첵은 빌리 에일리시의 크루들의 퇴거 작업을 진행했다. 그 전에는 홀&오츠와 그린데이가 차례로 왔다 갔다. 록 리티츠는 고객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며 스튜디오의 스케줄을 정확하게 확인해주지 않았다.
BTS의 장비 하역이 시작됐다. BTS 측은 무대를 올릴 강철제 골조의 조립을 이제 막 끝냈다. 컨테이너 30개를 하역하기로 한 계획은 취소되었다. 그 대신 자재는 최소 12대의 약 16m짜리 대형 화물차 짐칸에 실려 도착했다. 화물차들은 곧바로 스튜디오 내부로 향했다.
이 기사를 작성할 때 BTS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투어의 첫 번째 일정인 서울에서의 4일간 공연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페렌첵은 이튿날 아침, BTS 제작팀이 예정대로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테이트가 만든 시내의 한 구획 크기만 한 비디오 스크린, 클레어 글로벌의 음향 시스템, 그리고 나머지 모든 자재를 운반하는 세미 트럭들이 스튜디오에 나타날 것이다. 85명의 현지 요원이 준비될 것이다. 안드레아는 최고의 위생 상태 점검을 위해 그들에게 일찍 모이라고 요청했다. 바쁜 날이 될 것이다. 페렌첵은 자신의 트레일러로 기어 들어간다. 트레일러는 스페어 공간이지만, 그 이유로 트레일러를 좋아하기도 한다. 어쨌든 캠핑카는 집이 될 수 없다. 캠핑카의 오른쪽 면에서 크림색 소파를 끄집어내고 그 위에 몸을 쭉 뻗어 눕는다. 창문의 암막이 범람원의 불침번인 주차장 조명의 빛을 막아준다. 공기가 고요할 때면 개구리 집회라도 열린 것 같은 소리가 난다.
 
*2월에는 4월로 예정된 BTS의 서울 공연이 취소됐고, 3월에는 북미 공연이 취소됐다. 4월 28일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BTS 맵 오브 더 소울 투어’ 전체 일정의 재조정을 발표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측은 공연 일정이 재조정되기 전 BTS가 록 리티츠를 찾아 리허설까지 마쳤는지에 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거대 음악 회사의 간략한 역사

 
1966 프랭키 발리 공연의 음향을 담당한 게 클레어 브라더스의 첫 투어 참가다.
 
1968 대성공: 필라델피아의 스펙트럼에서 열린 크림 공연에서 음향을 담당했다.
 
1971 더 큰 성공: 엘비스는 그들에게 보너스로 100달러 수표를 끊어주었다. 그들은 이를 액자에 넣는 대신 현금으로 바꾸었다.
 
1978 조명의 천재인 미키 테이트가 리티츠에 작업실을 꾸렸다. 라이브 제작의 메카가 구체화되었다.
 
1980 클레어와 테이트 간의 협업이 늘어나고 마이클 잭슨과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의 스타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2011 테이트는 나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U2의 콘서트에 우주비행사인 마크 켈리가 그들의 노래를 소개하는 영상을 전송했다.
  
2013 진 클레어가 사망하자 그의 오랜 고객인 엘튼 존은 어느 콘서트에서 그에게 ‘유어 송’을 헌정했다.
 
2014 유한책임 회사인 록 리티츠의 탄생으로 클레어와 테이트의 리더들이 공식적으로 한데 모였다.
 
2015 테이트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교황의 집회를 위해 거대한 십자가상을 제작했다.
 
2018 호텔 록 리티츠를 개장해 대규모 투어를 준비하는 아티스트와 크루들을 유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