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두꺼워서 혹은 너무 무거워서 손이 안 가는 책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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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두꺼워서 혹은 너무 무거워서 손이 안 가는 책들

못 읽거나 안 읽거나.

ESQUIRE BY ESQUIRE 2020.07.09
 

못 읽거나 안 읽거나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의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의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던 2014년 11월은 책을 사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평소에는 보지도 못할 책들이 할인 도서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말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수천 권의 책을 보면서 한참 생각했다. 한국에 이렇게 훌륭한 책이 많구나. 그런데 평소에 참 안 팔려서 이참에 싸게 날리는구나. 텍스트업계 종사자로서 착잡한 마음으로, 텍스트업계 소비자로서 즐거운 마음으로 며칠 동안 할인 목록을 들여다봤다. 많이 사기도 했다.
그때 산 책 중 하나가 노먼 메일러의 〈숲속의 성〉이다. 메일러는 평전과 논픽션과 픽션을 아름답게 섞은,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라 할 만한 글의 대가다. 영미권 잡지의 피처 기사를 뒤적거리다 보면 한 번은 마주하게 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나 역시 메일러가 무하마드 알리를 다룬 책 〈챔피언〉을 즐겁게 읽었다. 〈숲속의 성〉은 그런 메일러가 히틀러를 주제로 쓴 책이다. 아니, 이런 걸 안 살 수가 있나. 게다가 70% 할인인데. 하지만 사놓고 펴보지도 않았다. 이 원고를 쓰는 어느 일요일 밤에야 한번 펴봤다. 새 책을 펼 때 나는 ‘쩌억’ 하는 소리가 빈 방에 울렸다. 너무 좋을 게 뻔한데 안 보게 되는 책이 있다.
어떤 건 너무 두꺼워서 손이 안 가기도 한다. 도서정가제 기간에 산 책 중에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의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도 있었다. 요제프 괴벨스의 평전인데 총 1054페이지 분량이다. 이런 책을 보고 있으면 내 몸무게보다 무거운 벤치프레스 앞에 선 기분이 든다. 원고를 쓰는 도중 확인해보니 나는 이 책을 45페이지까지밖에 못 읽었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은 제목 때문인지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도 잘 팔린다. 이 책을 산 다른 분들은 다 읽었는지 궁금하다.
다 읽지 못했지만 처분하지 못하는 책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역시 두께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근처에는 〈문 앞의 야만인들〉이 꽂혀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은행에서 일하다 지금은 미국으로 떠난 지인이 집을 정리하며 ‘꼭 읽어보라’는 말과 함께 내게 준 책이다. 사모펀드 KKR이 전통의 제조 기업 RJR 내비스코를 인수하는 과정의 이야기다. 2007년 〈파이낸셜 타임스〉가 세계의 경제 전문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경영 도서를 묻는 설문 조사를 했을 때 2위를 할 정도로 중요한 책이다. 1위는 〈국부론〉이었다.
 
마이클 돕스의 〈0시 1분 전〉

마이클 돕스의 〈0시 1분 전〉

그렇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읽지 못하고 있다. 두꺼워서. 912페이지짜리 책을 어느 세월에 읽나 싶다. 걸작을 집에 둔 기분은 뭐랄까, 먹으면 진짜 좋다는데 왠지 매일 챙겨 먹지는 않게 되는 영양제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비슷한 책으로 마이클 돕스의 〈0시 1분 전〉이 있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일촉즉발 상황에 대한 664페이지짜리 논픽션이다. 나는 영미권의 걸작.대작 논픽션을 사놓고 읽지도 않는데 버리지도 못 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니얼 퍼거슨의 〈콜로서스〉

니얼 퍼거슨의 〈콜로서스〉

구하기 어려워서 귀중한 책도 있다. 종이 책은 글이라는 내용물이 담긴 물건이다. 콘텐츠 이전에 하드웨어이고, 좋은 책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있는 걸 알았는데 그게 내 손에 없으면 마음이 급해진다. 예를 들어 니얼 퍼거슨의 〈콜로서스〉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책이다. 냉정한 전통적 엘리트 관점에서 영국 제국과 미국 제국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냥 편안한 이야기는 아니어도 세계를 보는 데 도움이 되는 시점을 제공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아, 이건 사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후 찾아보니 절판되어 있었다. 이 책이 없으면 아쉬울 것 같아서 중고 서점을 냅다 검색했다. 며칠 후 상태가 좋은 책이 도착했다. 그 이후로는 펴보지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버릴 생각은 없다.
반대 경우도 있다. 한때 책 담당 에디터를 한 적이 있다. 책 담당을 하면 전문 통신사를 통해 봉투에 내 이름이 적힌 책이 무더기로 들어온다. 한번은 궁금해서 목록으로 만들어봤더니 1년에 500권 넘게 들어왔다. 홍보용 책은 어떻게든 소개되지 않으면 갈 곳을 잃고 버려진다. 그때 재미있겠다 싶어 틈틈이 챙긴 책들이 있다. 짐 바우튼의 〈볼 포〉는 연봉을 알렸다가 MLB에서 엄청난 따돌림을 당한 짐 바우튼의 이야기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노동권 확립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에마뉘엘 카레르의 〈왕국〉은 2014년 프랑스에서 화제가 된 초기 기독교에 대한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다.
왠지 이쯤 되면 내가 이 책들을 어떻게 읽었을지 감이 오지 않나? 이런 책들은 초반 약 70페이지까지는 놀랄 정도로 흥미롭다. 그런데 뭐랄까, 맛이 없는 건 아닌데 한 개를 다 먹기 힘든 카스텔라처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그건 책이 아니라 독자인 나의 문제다. 당시 나의 평정심 문제, 아니면 나의 절대적인 지력 또는 의지력 부족 문제. 혹시나 책을 읽는 여름 별장 같은 거라도 있으면 하루 종일 앉아서 읽을 텐데 내게는 아직 별장과 시간이 없다. 다행히 두껍고 재미있는 책은 책장 안에 넘칠 듯 쌓여 있다.
책을 사는 데에도, 버리는 데에도, 버리지 못하는 데에도 각자 이유가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뭔가 신성한 상징물로 여기기도 한다. 나는 그 생각엔 반대다. 옷이나 다른 물건과 책은 별로 다르지 않다. 책이 안 신성한 게 아니라 다른 물건 역시 책만큼 신성하다. 대신 나는 책을 좋아한다. 소중한 책은 내가 다 읽고 못 읽고를 떠나서 버리지 못하곤 한다.
 
케네스 프램튼의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

케네스 프램튼의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

엄청나게 성의 있게 만들었거나 의미 있는 책 역시 재미를 떠나서 버릴 수가 없다. 책 만드는 입장에서 ‘아, 고생하셨구나’ 싶은 게 보인다면 그걸 어떻게 버리겠나. 예를 들어 케네스 프램튼의 〈현대 건축: 비판적 역사〉 한국어판 같은 건 그 자체로 출판인의 숭고한 의지의 결과물이다. 총 838쪽에 이르는 고난도의 건축 에세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해봤자 이걸 누가 보겠으며, 출판사라고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특히 이런 전문 서적은 후반 작업이 아주 고되다. 전 세계 건축가 이름의 철자를 틀리지 않게 쓰는 것, 각 도판에 알맞은 캡션이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것, 영문 참고 문헌을 빼놓지 않고 성의 있게 집어넣는 것, 이런 것이야말로 정말 정신의 스쿼트 1000개 같은 고된 노동이다. 이런 책을 샀다면 좀 재미없고 딱딱하다고 해도 어떻게 버리나. 응원의 의미로라도 책장에 모셔둘 수밖에. 나는 책이 좋아서 책을 즐겁게 읽다가 책과 비슷한 뭔가를 만드는 걸 직업 삼게 됐다. 독자일 때는 모르던 요소가 보이는 건 가끔 슬픈 동시에 대부분 기쁜 일이다.
열지 않을 테지만 버리지 못할 마지막 책들은 내가 참여했지만 지금은 폐간된 잡지들이다. 2010년의 〈오프〉라는 여행 잡지와 2014년의 〈젠틀맨〉이라는 남성 잡지를 아시는지? 당신은 몰라도 내가 안다. 내가 폐간호 혹은 거의 폐간 직전까지 참여한 잡지니까. 매번 이사할 때마다 허리가 부러질 듯한 고통을 느끼며 들고 다니면서도 이상하게 버리지 못하겠다. 한때 월간지 에디터였던 자의 카르마의 무게랄까.
 
WHO’S THE WRITER?
박찬용은 〈에스콰이어〉 전 피처 에디터다. 지금은 매거진 〈B〉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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