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막걸리계의 돔페리뇽 '복순도가'의 김민규 대표와 나눈 이야기

복순도가는 ‘막걸리계의 돔페리뇽’이다. 외부에서 회자하기에는. 김민규 대표는 복순도가가 농촌과 현대 도시를 잇는 플랫폼이라 생각한다. ‘도가(都家)’라는 이름은 그런 정신에서 출발한다.

BYESQUIRE2020.08.02
 
 

후예와 개척자 

 
양조장 앞에서 보이는 이 경치를 굉장히 좋아하나 보다. 시설 안내를 하다 말고 경관 설명을 하고, 설명 끝난 뒤에도 계속 보고 있더라.
(일어나서 테라스 문을 열며) 우리가 여기를 워낙 좋아한다. 에디터님도 방금 서울에서 왔지만, 너무 좋지 않나? ‘영남 알프스’라고 불리는 저 산맥도 그렇고, 논이 너르게 펼쳐진 풍경도 그렇고. 모내기 철이 되면 더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논은 ‘농촌의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울산역에서 택시 타고 오면서 처음 한 얘기도 이 지역의 아름다움과 내력에 관한 것이었다. 복순도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게 인상 깊었다.
나는 누가 우리 양조장 오고 싶다고 말하면 꼭 이렇게 답한다. ‘저희 양조장도 너무 좋은데, 주변에 또 좋은 게 많아요. 마을에 이런 거, 저런 거가 있으니 꼭 가보세요.’ 어제 내가 보내준 여행 정보 팸플릿 스캔 파일 있잖나. 그걸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다니다가 이야기 나올 때마다 보내주기도 하고.(웃음)
 
복순도가라는 브랜드 자체가 울산이라는 지역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양조장도 동네 분들과 함께 지었고, 레스토랑에서 동네 어른들이 담근 장을 활용한 메뉴를 내기도 하고.
우리가 아주 오래도록 해왔고, 너무 가까이서 봐서 가치를 잘 몰랐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재해석하면 좋지 않을까 했다. 양조장 디자인도 기술적인 문제보다 그 단계에서부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좀 막연했다. 설계야 내가 할 수 있지만 시공하는 분을 한 명도 모르니까.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그냥 마을을 돌아다녔다. 어느 마을이나 공사를 하는 곳은 있지 않나. 다들 집이나 사무실은 지으니까. 그러면 거기 가서 관찰하다가 ‘어, 저분이 미장 잘하시는 것 같다’ 그러면 가서 얘기해보고, 그분께 다른 분야 잘하시는 분 추천받고, 그러면 또 직접 찾아가고.
 
현지의 숨겨진 고수들을 찾아서 드림 팀을 만든 셈이다.
중요한 건, 어느 분이 일을 잘하나 그런 것만 관찰한 건 아니었다는 거다. 내가 이 지역과 농사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지 않나. 모내기되어 있는 건 늘 봤어도 논바닥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런 과정을 하나도 모르더라, 내가. 그래서 꽤 오랫동안 관찰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대화도 나누고. 어르신들이 어떤 생각으로 농사를 짓는지를 하나하나 찾아가니까 그때야 좀 보이더라. 농부에게 대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론 흔히 말하듯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예를 들면 1년 농사가 끝나고 나면 ‘화농’이라고 해서 농부들이 추수가 끝난 논에 불을 지른다. 병충해를 예방한다고. 이게 사실은 효과도 별로 없고 산불의 원인이 된다고 정부에서는 계속 금지하는데 어르신들은 그래도 계속하는 거다.
 
일종의 의식으로.
1년 농사를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내년 농사가 더 풍년이 되게 해달라고 비는 마음으로. 정서적인 의미가 담긴 행위인 거다. 복순도가 양조장이 검은색인 게 이 지푸라기 재를 칠했기 때문이다. 마감하기 전에 한 달 정도 그대로 둬서 지역과 시간의 영향을 입히려고 했고. 막걸리는 쌀에서 오고 쌀은 논에서 오지 않나. 그런 식으로 이곳 정서를 곳곳에 응용했다. 장도 마찬가지다. 김치 만들고, 발효 장 담그고, 된장찌개 간 맞추는 게 어르신들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각자 저마다의 레시피가 있고 그걸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해서, 양조장 옆에 레스토랑 ‘오두막’을 짓고 우리가 직접 만든 것과 어르신들이 만든 것을 가지고 간단한 요리를 내도록 한 거다.
 
 
재래 누룩과 집안에 내려오는 레시피를 활용해 최대한 전통 방식에 가깝게 빚어낸다.

재래 누룩과 집안에 내려오는 레시피를 활용해 최대한 전통 방식에 가깝게 빚어낸다.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았나. 미국의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지역성, 상생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그 영향일까 싶었다.
딱히 벤치마킹을 했다기보다는 내가 여기 사람이다 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냥 내가 일상생활에서 느낀 것, 본 것을 이렇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한 거지. 바꿔 말하면 나는 이런 지역성을 빼놓고 어떻게 브랜딩과 마케팅을, 건축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지역에서 자문을 얻으러 오는 분들이 있다. 대부분 술에 대해서만 물어보는데, 그럼 내가 반대로 묻는다. 당신의 지역에는 뭐가 있느냐고. 예를 들어 나는 고창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지역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들은 것만 알 수 있지 않나. 고창 태생인 사람은 그 지역의 좋은 점을 누구보다 잘 알 거다. “그 지역의 장점과 지역성을 충분히 ‘삭혀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늘 그렇게 조언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삭혀서?
나는 발효의 의미를 좀 더 넓게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도 그런 표현을 많이 썼는데, “니 마음도 삭히봐라”라고. 한국 사람은 마음으로도 발효를 한다는 거다. ‘발효 건축’이라는 표현도 그런 맥락이다.
 
김민규 대표는 복순도가의 공동 대표이자, 건축가로서 건축 사무소 발효 건축을 운영한다. 뉴욕 쿠퍼 유니언 건축 대학 졸업 논문 주제도 ‘발효 건축’이었다고 들었는데, 이게 원래 존재하던 개념인가?
원래 없던 개념이다. 그래서 서양 애들이 ‘김치처럼 냄새가 나는 건축이냐’, ‘한국 사람이라 이런 논문 쓰는 거냐’며 많이 비아냥거렸는데… 뭐 지금도 그냥 양조나 발효하기 좋은 건물을 만드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이 많다. 내가 생각한 발효 건축은 지역성을 바탕으로 지역을 발전시키고, 대지를 발효시키고, 사람을 발효하는 그런 넓은 의미의 아이디어였다. 건축이란 개념은 건물을 짓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것도 건축이다. 지금 보이는 대지, 지역을 확장해서 사용하는 것, 그게 발효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비전공자에게는 쉽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 아까 보니까 양조장에 동네 어르신들이 계속 들락날락하더라. 담소도 나누고, 식사도 하고. 양조장이라는 건물을 지어놓아서 생긴 이런 공동체적 효과를 생각하면 될까?
그것도 예가 될 수 있고. 이걸 지어놓으니 주변의 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 않나. 우리가 쌀을 매입하니까. 농촌에 쌀이 남아도는 문제로나 개발 문제로나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논이었다. 뭐 이것도 일례고. 발효 건축을 알기 쉽게 정의해달라는 건 내게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오랫동안 쓴 논문인데 어떻게 한마디로 얘기할 수 있겠나. 하지만 꼭 쉽게 설명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발효’의 사전적 의미는 ‘유기물이 인간에게 유용하게 바뀌는 과정’이다. ‘부패’와 종이 한 장 차이인 거다. 똑같은 화학적인 과정을 두고 사람에게 유익하면 발효, 아니면 부패라고 하는 거지. 발효 건축의 정의도 ‘공간이 인간에게 유익하게 바뀌는 과정’이다. 지은 지 오래 지난 지금도 그런 공간이 되게끔 하려고 노력하고.
 
어떤 분이 들어와서 소파에 무표정하게 앉아 계셨는데, 나중에 들으니 동네 우체국장님이라고 했다. 옥수수 들고 와서 다들 먹으라고 쪄놓고 가셨다고. 그런 게 재미있었다. 마을회관 같기도 하고.
다들 오가다 한 번씩 들른다. 양조장이 마을 입구에 있으니까. 논 매다가 오기도 하고, 술 마시러 오기도 하고. 왜 이름부터가 좀 친근감이 있지 않나. 우리 술도가의 장인인 어머니 함자가 ‘복’ 자에 ‘순’ 자를 쓰셔서 붙인 이름이긴 한데.
 
‘복’ 자도 ‘순’ 자도 한국인에게 좋은 어감을 주는 글자다.
맞다. 촌스럽지만 친근하고. 그런데 ‘도가’는 또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본래 술 빚는 집안을 ‘도가’라고 부르는데 그때는 보통 ‘질그릇 도(陶)’ 자를 쓴다. 복순도가의 ‘도’는 ‘도시 도(都)’ 자다.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뜻이다.
 
원래는 ‘질그릇 도’ 자를 쓰는구나. 몰랐다.
이 이름이 나한테 주는 의미도 크다. 해외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트렌디하다. 한국만큼 국제적이고 유행에 기민한 나라가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도시와 농촌이 정말 다르다. 커뮤니케이션이 되질 않는 거다. 도시에 좋은 게 농촌에 없고, 농촌에 좋은 게 도시에 없다. 그걸 잘 연결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
 
 
 
복순도가의 손막걸리와 약주(청주).

복순도가의 손막걸리와 약주(청주).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고, 어머니 박복순 장인이 할머니 대부터 내려오던 막걸리 양조 기술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보려 한 게 복순도가의 시작이라고 들었다. 건축학도였던 김민규 대표가 관여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
내가 사실 건축 공부를 10년을 했다. 혼자 공부하느라 좀 오래한 부분이 있는데. 아무튼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2학년 마치고 군대 때문에 휴학을 했다. 그리고 군 복무 끝난 후에 쉬는 동안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CNN에서 필요한 취재원이나 인터뷰이, 스태프를 소개하고 섭외하는 그런 일이었다. 당시에 어머니는 소일거리 삼아 막걸리를 빚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나눠주었다. 그냥 생수통 같은 데에 담아서. 그걸 내가 일이 있을 때 챙겨 가서 한 잔씩 돌린 거다. 우리 어머니가 만드는 막걸리인데 맛보시라고. 반응이 좋았다. ‘어, 이거 사고 싶다.’ 그런데 집에서 만든 걸 팔면 밀주가 되지 않나. 그래서 사업자 허가를 받고 복순도가를 시작한 거다.
 
‘부모님 일이니까 도와드려야지’ 하는 마음보다 사업에 대한 확신이 먼저 생긴 셈이겠다. 사람들이 좋은 술이라고 하니까.
그렇기도 하고. 일단은 내가 쿠퍼 유니언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동생이 UC버클리에서 수학을 전공했는데, 둘 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니긴 했지만 아무튼 너무 힘들게 공부했다. 집안을 힘들게 하기도 했고. 군대 갔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밥도 주고, 옷도 주고, 멘탈 걱정 안 해도 되고.(웃음) 일단 공부하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해서 집세 내기 바쁜 생활을 안 해도 되니까 그게 너무 좋았다. 그러다 제대를 했으니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막걸리가 참 좋다고들 하시니 ‘이걸 만들어야겠다’ 싶었던 거다. 그러다 의외로 사업이 잘돼서 1년 더 휴학을 했고. 원래는 휴학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사정사정했다. 막걸리 만드느라 휴학한다고 차마 솔직하게 말은 못 하고….
 
사업이 잘됐다는 건 어떤 측면일까?
브랜드가 크게 알려졌다. 핵안보정상회의에 공식 만찬주로 올라가고, 청와대에도 들어가고. 그때 주변 사람들이 다 그랬다. 지금 네가 무슨 공부냐고. 그것도 해봤자 돈도 안 되는 건축을. 그냥 한국에 남아서 사업에 집중하라고. 그래도 나는 그간 오래해온 공부를 끝마치고 싶었고, 그래서 그때 완전히 비즈니스 세팅을 했다. 부모님께 배송 시스템 같은 것 알려드리고, 일하면서 주문 전화 받을 수 있도록 무선 이어셋 사드리고.
 
김민규 대표가 없어도 사업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맞다. 문제는 나였지. 그리고 복학하니까 학교가 더 이상 학교로 안 보이는 거다.(웃음) 다행히 교수님들이 내가 좀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나 혜택을 많이 주셨다. 졸업 논문 쓰는 첫날도 항아리에다 술을 빚어서 갖고 갔다. ‘이게 내 건축 논문이다. 발효 건축이다.’ 그때는 양조장까지 설계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결국 돌아와서 실제 건물도 짓게 됐고. 양조장을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마케팅도 더 할 수 있었고, 부산의 레스토랑과 서울의 펍도 열었고, 그 외에 여러 기획도 할 수 있게 됐고.
 
일약 성공한 것처럼 비칠 수 있는데, 사업 초반에는 고생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가방에 막걸리 여섯 병씩 넣고 매일 기차나 버스 타고 전국을 돌면서 홍보했다고.
맞다. 진짜… 전국에 안 가본 골프장이 없다. 호텔 같은 데도 많이 돌았고. 결국 첫 계약을 맺은 것도 경기도의 한 골프장이었다. 뭐 내가 그렇게까지 한 게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은데, 나는 사실 그때를 생각하면 부모님이 대단한 것 같다. 100병을 만들면 10병 팔리던 때였다. 그럼 나머지 90병은 내가 들고 다니면서 나눠주고 홍보한 거다. 아무리 홍보라고 해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쓰이는 게 싫지 않았을까? 그런데 한번도 내가 그렇게 사용하는 걸 아깝다고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 믿음이 영업의 큰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나도 그걸 ‘나눈다’는, 지역에서 만드는 것 중에 이렇게 좋은 게 있다고 알려준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러니까. 아버지인 김정식 공동 대표가 오너이고, 어머니인 박복순 장인이 술을 빚고, 동생인 김민국 실장이 제품 개발과 생산 관리를 하고 있다. 의견을 모으기 힘들지는 않나?
아, 너무 힘들지.(웃음) 부모님이랑 같이 일한다고 상상해봐라. 얼마나 힘들겠나. 그래도 설득하는 게 내 일이고, 지금도 많이 싸우면서도 또 설득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니까 이게 가능한 것 같다. 나는 늘 밤새우면서까지 일할 필요 없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또 본인의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고, 또 아버지 입장에서는 내가 하는 마케팅 활동에 대해서 ‘쓸데없이 길거리에 돈 뿌리고 왜 그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들어본 중에 마케팅을 가장 낮잡은 표현인 것 같은데. 쓸데없이 길에 돈 뿌리고.(웃음)
그래도 또 존중해주시니까.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아, 그렇게 말씀까지 하시는 건가?(웃음)
그렇다.(웃음)
 
 
복순도가 양조장의 발효실. 술을 빚는 데 사용하는 항아리는 전부 만든 지 50년에서 70년은 된 것들이다.

복순도가 양조장의 발효실. 술을 빚는 데 사용하는 항아리는 전부 만든 지 50년에서 70년은 된 것들이다.

복순도가 브랜드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간 이룬 가장 큰 성취는 뭘까?
‘프리미엄 막걸리’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는 것. 예를 들자면 복순도가는 초창기부터 주류 페어나 푸드 페어를 넘어 국내외의 아트 페어, 디자인 페어 같은 다른 분야의 행사에 참여해왔다. 전통주, 막걸리라는 범주에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범주에서 접근한 거다. 실제로 새로운 맥락에서 선보였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에서 인식하게 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홍콩에 수출 판로를 뚫은 것도 홍콩 와인 페어에서였으니까. 그렇게 전에 없던 시장이 만들어졌고, 복순도가를 선두 주자로 새로운 막걸리 브랜드가 많이 나왔고, 결국 전통주 시장이 커지지 않았나 하는 자부심이 있다.
 
적절한 마케팅이 없었다면 ‘막걸리치고 너무 비싸다’는 편견의 벽에 부딪혀 좌초했을 가능성도 있을 테다. 지금은 복순도가 손막걸리보다 훨씬 비싼 막걸리도 많이 나왔지만.
맞다. 프리미엄 막걸리 브랜드가 정말 많이 생겼다. 시장이 커져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면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고. 아까 얘기했듯이 마케팅 활동을 하려면 부모님과 동생을 설득하는 데에 힘이 많이 들었다. 귀도 잘 안 기울였고. 그런데 경쟁 업체가 많이 생기니까 이제 가족들이 나를 찾는 거다.(웃음) 챌린지가 있으니까 가족끼리 더 단합하게 되고, 그런 것 같다.
 
어제 서울의 유명 전통주 주점에 다녀왔다. 브랜드가 많이 생겼어도 막걸리 부문 판매 1위는 여전히 복순도가 손막걸리더라. 비결이 뭘까? 마케팅일까, 아니면….
마케팅의 핵심은 결국 제품의 품질인 것 같다. 제품이 안 좋다면 마케팅을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다. 제품이 좋은 게 첫 번째이고, 마케팅은 그 소통 방식이라 생각한다.
 
복순도가 생막걸리의 차별점은 할머니 대부터 내려온 레시피와 직접 만든 누룩이라고 알고 있다. 또 뭐가 있을까?
전부 옛날 방식 그대로 한다. 예를 들면 항아리도 전부 만든 지 50년에서 70년은 된 것들이다. 요즘은 저런 방식으로 항아리를 만드는 곳이 없기 때문에 어렵게 구한 거다. 이런 항아리는 유약을 안 발랐기 때문에 씻어서 말린 후에 볏짚을 넣고 태워서 소독해야 한다. 막걸리 한 항아리를 빚으려면 항아리 3개를 써야 하는 셈이다.
 
울주군의 쌀을 사용하는 부분도 의미가 있을까? 맛의 차원에서?
나는 지역 쌀을 쓰는 게 굉장히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시중 막걸리 중에는 국산 쌀도 쓰지 않는 제품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국산 쌀을 쓰는 브랜드라고 해도 도정 시기라거나 유통 관리 부분에서도 차이가 날 테고.
맞다. 복순도가는 인근 지역 정미소에서 도정된 쌀을 쓰니까. 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아직 일본 술도가처럼 술에 좋은 벼종을 따로 쓴다거나 조금 더 깎아서 쓴다거나 하는 단계는 못 되지만. 그런 부분도 계획 중이긴 하다. 청주나 소주는 그런 측면에서 좀 더 연구 개발을 하려고 한다.
 
설레는 이야기다. 아직 전통주는 개선의 여지가 많구나, 더 맛있어질 수 있겠구나 하고.
충분히 여지가 있다고 본다.
 
 
복순도가 양조장은 뉴욕 쿠퍼 유니언 건축 대학교를 졸업한 김민규 대표가 직접 설계한 것이다. 요소요소에 지역의 풍습과 풍토가 담겨 있다.

복순도가 양조장은 뉴욕 쿠퍼 유니언 건축 대학교를 졸업한 김민규 대표가 직접 설계한 것이다. 요소요소에 지역의 풍습과 풍토가 담겨 있다.

생산 비용이 높겠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프리미엄 전략으로 가격을 산정한 게 아니라, 비용 때문에 불가항력으로 비싼 가격이 붙은 게 아닐까 싶다.
반대로 내 경우에는 시중의 막걸리가 어떻게 그렇게 저렴할 수 있는지 몰랐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막걸리를 빚는 모습은 수도 없이 봐왔지만 공장에서 어떻게 만드는지는 몰랐으니까.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 아닌가. 생수를 800원 정도에 살 수 있는데 막걸리가 1200원이라는 게. 그럼 도매가는 800원, 원가는 300원이 안 될 거라는 뜻이니까. 나중에야 획기적인 방법이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는데… 솔직히 그런 방법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나도 혹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젠 의미가 없지. 우리에게는 이미 우리만의 막걸리 제조 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러니 얘기한 것처럼 처음부터 프리미엄을 겨냥하고 제품을 만든 건 아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만들다 보니 그게 프리미엄이었던 거지.
 
복순도가 술에는 손막걸리와 탁주가 있고 곧 청주와 소주, 과하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실 청주는 막걸리를 빚고 나서 위에 뜨는 맑은 부분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10년 만에 내놓는 게 새삼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 전에도 만들긴 했는데, 좀 더 확실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 노력한 것이다. 사실 몇 년 전에 만든 청주와 지금 내놓는 청주가 막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았다. 그래도 최대한 좋은 제품을 내려고 노력하는 게 우리 일이니까.
 
연구 개발에 힘을 많이 쏟나 보다.
동생과 부모님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나도 거들고. 새로운 제품 개발도 하고, 지금도 소주를 여러 가지 도수로 개발해서 출시 계획 중이다. 수출하기에 좀 더 용이한 방식도 연구하고, 유산균도 개발하고, 화장품 라인도 있다. 물론 화장품 안전성 시험은 화장품 공장에서 하지만 우리도 단계적으로 채취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있다.
 
대표 제품인 손막걸리는 어떨까? 그간 맛의 변화가 있었을까?
물론이다. 계속 나아지고 있다.
 
재래 누룩을 쓰고 멸균 처리를 하지 않으니 맛을 컨트롤하는 게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매번 균일한 맛을 내기도 어려울 테고, 유통 환경에 예민하기도 할 테고. 그래서 복순도가 손막걸리를 일본과 홍콩에 수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랐다.
맞다. 수출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들어보니, 통관에만 3~4일이 걸린다고 했다. 일본 유통업자들도 만나봤는데 큰 업체는 독점을 요구하거나 요청 사항이 많고, 작은 업체는 가격이 비싸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후쿠오카에 지사를 냈다. 그때부터 부산에서 출발해 후쿠오카까지 한 시간 걸리는 배편으로 매일 술을 보내고 있다.
 
대단하다.
해봐서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더 나은 방식이 있다면 시도는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남들이 안 갔던 길이라도. 나는 그런 생각으로 일한다.
 
탁주나 청주, 소주까진 그렇다 쳐도 화장품까지 개발한다는 대목에서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화장품은 복순도가의 핵심 기술인 누룩이 있으니까. 누룩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사실 화장품 브랜드들에서 먼저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지금 막걸리가 유행이니까 그걸로 화장품을 만들자고. 그런데 미팅을 해보니까 이게 좀…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려 한다기보다는 일종의 마케팅 툴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은 거다. 결국 진정성 있는 제품이 나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직접 해야겠다는 데에 생각이 다다랐지.
 
언뜻 다른 분야로 보여도 누룩이라는 요소로 연결이 되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복순도가를 주류 브랜드라고만 인식하는 게 좀 안타깝다. 내가 보기에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더 큰 의미의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식의 한계를 넘기가 어려우니까.
 
부산의 레스토랑 복순도가 F1963이나 서울 노들섬의 뮤직라운지 류만 해도 단순히 시음 공간이나 직영점 개념을 넘어선 공간이다.
맞다. 공간 마케팅으로 브랜딩을 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그런 F&B의 영역이 될 수도 있고, 팝업 행사가 될 수도 있고, 광고 채널이 될 수도 있고…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해외 사례만 봐도 와이너리가 확장성이 굉장히 크다. 와이너리 리조트도 있고, 타운 전체가 와이너리가 되는 그런 경우도 있고. 이게 지역 전체를 살릴 수도 있는, 산업으로서 가치가 충분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복순도가는 또 뭘 준비하고 있을까?
지금은 우선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뭐, 해외 비엔날레에도 나가고 홍보도 많이 하고 싶은데, 코로나19 때문에… 여건만 따라준다면 한국에 이런 좋은 술이 있다는 걸 해외에 좀 더 알리고 싶다. 일단 지금은 국내 북 페어 한 곳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직접 대면하는 방식의 홍보를 선호하나 보다.
복순도가에 광고비, 홍보비가 따로 책정되어 있지 않다. 그냥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직접 이야기하는 식으로 홍보를 하려고 한다. 술 따라드리고,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알려드리고. 이걸 어머니가 직접 만드셨고 아버지가 어떻게 하고 계시고…. 그런 얘기를 하다 보면 저절로 우리 마을이 어떤 마을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하는 주제로 흘러간다. 그런 이야기 안에서 우리 브랜드가 더 좋아 보이게 되는 것 같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좋은 자리에 좋은 분들이 있을 때 좋은 술을 내는 거, 그게 가장 좋은 홍보가 아닌가 싶다, 내 생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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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박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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