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책 <쇼크 독트린>과 재난 자본주의

위기가 기회일까?

BYESQUIRE2020.08.09
 
 

위기가 기회일까? 

 
Documentary 〈The Shock Doctrine〉, Mat Whitecross, Michael Winterbottom

Documentary 〈The Shock Doctrine〉, Mat Whitecross, Michael Winterbottom

모두가 포스트코로나를 이야기한다. 서점에 가면 더 그렇다. 미래학자는 물론 경제학자와 경영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가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전망한다는 책이 서가에 즐비하다. 금융과 부동산 전문가가 빠질 리 없다. “지금 우리가 눌러야 할 버튼은 ‘시스템 종료’가 아니라 ‘다시 시작’이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유명 강사의 자기 계발서는 목하 종합 베스트셀러 1위. 대개 들춰 보면 하던 말씀을 그대로 하고 계신다. 위기는 기회라더니. 하던 이야기 그대로 새로 묶어 내도 팔리니 이게 기회가 아니면 무엇이 기회일까.
이슈에 맞는 발 빠르고 참신한 기획. 작은 출판사가 생존하기 위한 금과옥조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어떻게, 왜 끝날지는 도무지 알 수 없으니 그다음 이야기라도 해보자. 사람들 생각이 다르지 않으니 그 많은 책이 나왔으리라.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금융 위기를 통해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받은 바로 그 시기에 소수는 막대한 부를 쌓아 올렸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위기는 기회니까 이번 기회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지.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생각. 그런데 그 기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겸 작가, 활동가 나오미 클라인이 쓴 〈쇼크 독트린〉. 2007년 처음 나오고 2008년 금융 위기와 맞물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국내에도 2008년 번역되어 나왔지만 곧 절판. 큼지막한 판형의 양장본, 699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책이 활자로 가득하다.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박사가 무려 〈한국경제〉에 우호적인 서평을 쓰는 등 평가는 좋았지만 판매는 신통찮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잊힌 책이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조금씩 주목받고 있다. 중고 서적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에 찾는 이가 생기더니 최근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검색해보면 판매가가 물경 10만원이 넘는다.
책의 시작은 다소 뜬금없다. 저자인 나오미 클라인이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한 노년 여성을 만난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도 나오는 ‘MK 울트라’ 프로젝트의 피해자.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대, 캐나다 맥길 대학교의 심리학자 유언 캐머런 박사는 미국 CIA의 기부금을 받고 연구와 실험을 시작한다. 캐머런 박사는 미국과 캐나다, 세계 심리학협회 회장을 역임한 저명한 심리학자였다. 그는 정신 질환을 겪는 환자들에게 올바르고 새로운 행동을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마음 내부로 들어가 ‘오래된 병리적 패턴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칠판’ 같은 백지 상태로 되돌려놓는 것.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주장을 실천하는 방식은 가히 끔찍했다. 환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전기 충격을 가했고, 그래도 과거의 인성이 제거되지 않자 흥분제와 진정제, 환각제 등을 투여했고,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실에서 약에 취한 상태로 15~30일간 지내도록 했다. 그 후 유령이 존재하며 과학은 사기라는 등의 녹음테이프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저자가 만난 피해자는 실험이 끝난 후 수십 년간 자신이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라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상실증과 우울증, 약물중독으로 가족에게 의절당한 후 우연히 ‘MK 울트라’ 프로젝트를 다룬 신문을 보고서야 자신이 피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의 무대는 1950년대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부로 옮겨간다. 그곳은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하나의 학파로 인식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발상지. 시카고학파는 공급과 수요, 인플레이션, 실업 등 경제적 동인이 스스로 균형을 이루는 진정한 자유시장을 표방한다. 마치 생태계처럼 시장은 모든 것을 맡겨놓으면 알아서 균형을 맞춘다. 무언가 경제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찾기 전에 정부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과학을 넘어 신학에 가까운 신념. 하지만 그 근본주의적 믿음이 현실 경제에 실제로 적용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카고학파는 근거지인 미국에서는 힘을 가진 정치가와 그들에게 표를 줄 대다수 유권자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설득이 아닌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건 바로 유언 캐머런이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과 같았다. 충격과 공포.
 
 
대개 신자유주의 경제의 시작으로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나오미 클라인은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으로 국가 경제 자문 역할을 한 1970년대 칠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는 투표로 선출된 아옌데 대통령을 실각시킨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의 시작부터 시카고학파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쿠데타 이후 밀턴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재무장관과 국립은행장 등 칠레 경제계의 요직을 맡으며 ‘왜곡’된 칠레 경제를 ‘백지 상태’로 되돌리고 자유 시장경제를 이식하기 위해 기존 국가 경제 시스템을 파괴한 뒤 재건하고, 제거한 뒤 다시 창조했다.
 
‘충격과 공포’는 그저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파괴적인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운동가와 지식인들은 쿠데타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집단으로 끌려가 고문당하고 그중 많은 사람이 연고 없이 죽었다. 그렇게 첫 번째 시카고학파 국가가 출현했다.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제는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와 함께 시작되었다. 시카고학파는 칠레에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로 점차 그 영향력을 넓혀갔다. 모두 쿠데타 또는 내전에서 승리한 독재자와 함께였다. 포화가 빗발치고, 친지가 고문실에 끌려가 시민들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국가 기간산업은 물론 학교와 병원 등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이 신속하게, 전면적으로 민영화되었다.
 
전쟁과 재난을 통해 이룩한 자유 시장경제. 나오미 클라인은 이를 ‘재난 자본주의’라고 일컫는다. 재난 자본주의는 볼리비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폴란드, 중국, 러시아를 거쳐 자본주의 경제학의 고향인 영국과 미국에 이식된다. 대규모 실업과 파업, 경제 침체로 실각 위기를 맞은 마거릿 대처 총리는 포클랜드 전쟁을 발판으로 시카고학파의 신념을 이식했고, 레이건과 부시 부자로 이어진 미국 공화당 정권은 쿠웨이트 전쟁과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등을 통해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민영화’라는 이전엔 상상조차 못 했던 목표를 이뤄내기에 이른다.
전쟁뿐 아니라 자연재해 역시 재난 자본주의의 좋은 먹잇감이다. 2004년 동남아를 초토화한 쓰나미 이후 스리랑카 연안의 여러 해변은 어부들의 고깃배와 오두막 대신 다국적 기업의 호화 리조트로 가득 채워졌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태국과 몰디브,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해외 자본의 눈엣가시가 재난 이후 깔끔하게 사라졌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엄청난 후원금은 지역민이 아닌 관광객을 위한 시설의 건축에 쓰였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 지역을 휩쓴 허리케인 이후에 벌어진 상황도 비슷했다. 사람들의 생활이 제거된 해변에 호화 리조트가 들어섰고, 미국 정부는 재난 재건 사업까지 민영화시켰다.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역시 ‘재난 자본주의’가 기회로 삼을 만한 완벽한 재난이라고 이야기한다.
 
〈쇼크 독트린〉은 야심만만한 책이다. 현상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학자가 아닌, 팩트를 전하는 저널리스트의 속도감 넘치는 문체로 1960년대 이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개별 사건들을 ‘신자유주의’와 ‘재난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를 통해 경쾌하게 연결한다. 전하는 메시지도, 책의 물성도 거대하지만 정작 빛나는 건 각 개별 사건을 집요하게 캐내고 연결시킨 디테일에 있다. “영혼을 그릴 수는 없다. 육체를 잘 그리면 영혼은 온 사방을 빛낸다”라는 화가 폴 세잔의 말이 떠오를 정도의 솜씨.
 
자칫 음모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전복적 시각으로 현대 세계경제를 꿰뚫는 이 책의 결말은 의아할 정도로 희망적이다. 저자는 칠레와 볼리비아, 브라질 등에서 자유 시장경제에 반발하는 새로운 정치적 움직임과 쓰나미, 허리케인 이후 피해를 복구하는 동남아, 뉴올리언스 시민의 자발적 행동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에서는 모두의 일상을 되찾기 위한 의료진과 시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하게 행하는 노력을 말한다. 재난 자본주의의 피해자가 아닌 자발적 시민으로 사는 일. 그렇게 피어오르는 희망.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 다시 한번, 위기는 기회다. 재난은 느리게 진행되던 변화와 개혁이 마치 마법처럼 이뤄질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방향을 설정하기에 앞서 지금껏 있었던 위기와 기회를 찬찬히 살펴볼 때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나온 〈쇼크 독트린〉은 코로나 시대 이후를 이야기하는 그 어떤 책보다 동시대적으로 의미 있는 시각을 선사한다. 한국이 등장하는, 1997년 외환 위기에 관련한 내용은 아프게 읽힐 만큼 새롭고 흥미롭다. 2009년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오래전 절판된 이 책을 다시, 보다 많은 사람이 읽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내 자리에서 묵묵히.
 
WHO’S THE WRITER?
정규영은 〈GQ〉 〈루엘〉 등의 피처 에디터를 거쳐 지금은 출판사 모비딕북스 편집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