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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크 웨스턴이 말하는 '컨템퍼러리한 클래식'

던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크 웨스턴은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교차시키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던힐을 더 우아하고 특별하게 만든다.

BYESQUIRE2020.09.14
 
 

NEW CLASSICISM 

 
던힐에 합류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그동안 던힐은 훨씬 모던하고 동시대적으로 바뀌었다.
던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브랜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나서 처음 세운 목표는 이러한 유산을 좀 더 현대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거였다. 던힐의 고유한 색깔과 원칙을 존중하면서 동시대적 관점을 더하는 것. 과거를 현재와 세련되게 연결하는 것. 2018년부터 선보인 컬렉션은 영국적인 클래식을 21세기적으로 전복시키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클래식’의 정의는 뭔가? 던힐은 클래식한 브랜드인가?
전통과 역사는 클래식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우아함과 엄격함 사이의 균형, 유연함과 편안함의 어떤 조화가 본질이라고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던힐은 클래식한 브랜드가 맞다.
‘클래식’과 ‘컨템퍼러리’는 대개 상반된 개념으로 쓰인다. 하지만 요즘 던힐은 클래식과 컨템퍼러리를 동시에 보여준다.
‘컨템퍼러리한 클래식’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순적 조합이 불러일으키는 강렬하고도 특별한 에너지가 분명 있다. 역설이 만드는 도발과 관능은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진 주제다. 기존 문법을 해체하고 뒤집어 새롭게 구성하는, 그러면서 동시에 어떤 명확함과 정확성을 보여주는 방식이 굉장히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실루엣의 형태와 비율을 다양하게 뒤바꿈으로써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드러내고자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던힐의 유산은 뭔가? 그것은 지금 던힐에서 어떻게 해석되나?
알프레드 던힐은 120년 전에도 힙 플라스크나 라이터 같은 개성적인 아이템을 많이 선보였다. 전통적이면서도 독특한 발상, 과감한 실험 정신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랫동안 쌓아온 다양한 아카이브와 레퍼런스도 우리의 중요한 헤리티지 중 하나다. 실제로 과거의 아이템과 광고, 향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사용한 기호와 상징이 지금 컬렉션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에 출시한 락 백이 좋은 예다. 전통적 형태와 현대적 기능이 조화를 이룬 이 가방은 전통적인 영국식 브리프케이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대부분의 제품은 이탈리아에서 생산하지만 런던 이스트엔드의 월섬스토(Walthamstow)에도 워크숍이 있다고 들었다. 이곳에선 무엇을 만드나?
월섬스토에선 브리프케이스와 닥터 백을 비롯해 주문 제작을 통한 맞춤형 가죽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이곳에서 만드는 가방은 모두 고도로 숙련된 장인들이 수제로 완성한다. 또한 우리가 런웨이와 캡슐 컬렉션을 만들 때 참고하는 풍부하고 폭넓은 아카이브를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다.
굳이 제품 중 일부를 영국에서 생산하는 이유가 있나?
영국식 가죽 제작 전통과 기술, 장인 정신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다른 나라와 확연히 구분되는 영국 특유의 형태와 작업 방식이 있다. 이는 던힐의 성장 근원이기도 하다.
21세기에 장인 정신이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가치는 아직도 유효한가?
장인 정신은 전통 기술과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에 대한 존중이다. 그것이 사물을 가치 있고 독특한 것으로 만든다. 장인 정신을 구시대적인 감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요즘 같은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드물고 값진 것이다. 좋은 제품은 서두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들여 만들고 결과물을 꼼꼼히 마무리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옷을 만들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고집하는 부분이 있다면?
실용적이면서 우아하고, 진부하지 않은 옷을 만드는 것, 그리고 잊혀가는 남성복의 숨겨진 코드를 발견해 새롭게 되살리는 것에 중점을 둔다.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런 가치를 우선하는 것이 내겐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지금까지 당신이 만든 옷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템은 뭔가?
랩 재킷과 밑단을 절개한 바지. 그 두 실루엣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고, 반응도 좋았다.
이번 2020 F/W 컬렉션 얘기를 해보자. 이 컬렉션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뭔가?
1970~1980년대 유명한 런던의 블리츠 클럽, 그리고 호머 사이크스(Homer Sykes)가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영감이 됐다. 당시 블리츠 클럽은 다양한 개성과 문화, 감각과 시대정신이 자유롭게 섞이고 충돌하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이번 컬렉션은 프레피와 뉴웨이브, 체제와 반체제가 교차되는 지점에 있다. 가죽 아우터웨어와 테일러링 슈트, 랩 재킷과 페그드 팬츠의 조합에서 확인할 수 있듯 다양한 요소를 취합하고 재구성하며 맥락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기술적으로도 흥미로운 세부가 많다. 이번 컬렉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해체와 재조합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장어 가죽을 사용한 바지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 소재를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죽은 던힐의 핵심 소재다. 매 시즌 다양한 가죽을 사용하고 가공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 이번에는 아름답고 독특하면서도 책임감이 있는 소재를 사용하고 싶었다. 식품 산업의 부산물인 장어 가죽이 딱 그런 소재였다. 가볍고 내구성도 훌륭한 데다 특수한 가공을 거치면 색상과 광택까지 탁월하게 만들 수 있다. 묘한 관능미도 있고.
던힐 맨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남자를 상상하며 옷을 만드나?
던힐 맨을 한 사람이나 특정한 캐릭터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식으로 대상을 규정하고 축소하는 것은 부정확하고 낡은 접근이니까. 대신 스타일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믿는지 고민하는 다양한 남성상을 생각한다. 여러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해당하는 시각적 어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당신이 생각하는 멋진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
자신감이 있지만 조용하고 우아하며 신중하게 행동하는 남자.